# 218
혼자 덤비게? -1
#1
‘역시 괴물 같은 놈’
이루미를 가르치며 그녀와 함께 겪은 제황은 신덕이 볼 때 오리지널 무련천가의 인간이었다. 저 엄청난 재능을 보라.
무련천가의 후예들은 과거에도 특별했다. 그 상대가 신이라 할지라도 해할 수 있는 절대적인 파멸의 힘...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의 화살. 그것은 적에게도 아군에게도 위험한 일, 그래서 무련천가의 후예들은 기본적으로 칠정오욕을 금제 당했다. 그것은 적에 대한 연민이나 자비심이 없이 ‘신벌의화살’을 사용해야 했기에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저주와도 같았다.
인성이 제거된 인간이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칠정오욕을 금제 당했으니 무련천가는 후손들도 귀했다.
그런 이유로 성산은 무련천가의 천씨에게 하나의 축복을 내려줬다.
‘무의 재능’
비록 그 또한 무련천가를 좋은 무기로 쓰기 위한 축복이기는 해도 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무련천가의 일족은 모두 엄청난 무의 재능을 타고났다. 후손이 귀했기에 어쩔 수 없이 소수 정예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만으로도 나머지 두 가문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던 무련천가다.
그리고 지금 이루미의 앞에 가볍게 자세를 잡은 제황은 확실히 그 후예가 맞았다.
츠츠츠...
제황의 몸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권역’ 이 이루미의 ‘권역’을 잡아먹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제황의 공간지배력이 이루미의 것을 가뿐히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권역의 성질 자체가 이루미와는 차원이 다르다.
좀 더 공격적으로 상대를 압박해 들어간다.
‘누가 무련천가 놈 아니랄까봐. 절대권역을 이런 식으로 쓰는군.’
신덕은 혀를 찼다.
창궁신가의 권역이라는 건 일종의 절대공간을 말한다.
상대가 창궁신가의 절대공간으로 들어오는 순간 절대공간의 주인은 침투한 상대의 생사여탈권을 가진다. 창궁신가가 가진 비전 중 가장 기초에 속하면서도 가장 효율이 높은 이것은 창궁신가가 전장에서 신으로 군림할 수 있게 해주는 비전중에 비전...
그런데 제황은 지금 그 절대권역을 자신이 손수 가르친 이루미보다 더욱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도 방어용에 가까운 절대권역을 이용해 적극적인 공격을 취하면서 말이다.
-창궁신가의 밑천을 다 털리게 생겼군.
-죄송합니다. 선조시여.
-아니다.
이루미가 신덕에게 사과했지만 사실 신덕에게 이루미는 보물과 마찬가지였다.
고작 가르친 지 이 주 정도가 지났는데 그 성장이 가파르다 못해 눈부시다. 눈앞에 괴물이 있어 칭찬해도 빛이 바래지만 이루미 또한 만만치 않다. 게다가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강자인데 그녀가 보유한 스킬이라는 것들도 그가 가르쳐야 하는 것과 유사한 것들이 많았다.
그 증거로 그가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그녀가 보유한 모든 스킬들의 격이 높아짐과 동시에 이름들이 바뀌는 중이었다. 여러모로 흡족한 상황... 다만... 눈앞에 있는 괴물은 이루미처럼 꼼꼼히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닌데 하나를 말하면 열을 터득하는 것처럼 이쪽의 비전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게 열불이 날 뿐이다.
-전력을 다한 창궁십이격! 이격을 사용한 후 삼격을 허초로 사용한 후 창궁무한검!
이루미는 신덕의 지시에 생각보다는 일단 몸을 움직였다.
눈앞의 제황이 고요히 멈춰 있지만 지금 그녀는 제황의 절대권역에 걸려 움직임을 제한받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제황의 절대권역은 그녀의 것과 같이 둥글지 않았다. 필요한 부분만을 지배하고 있다. 이루미를 압박하기 가장 효율적인 모양으로 말이다.
“하앗!”
이루미는 최선을 다해 창궁십이격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진검을 사용하기에 조금 조심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제황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루미는 그녀의 실력으로는 제황을 다치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절감하는 중이다. 그렇기에 항상 최선을 다한다.
탁...
그러나 창궁십이격의 제 일격이 뻗어 나가기도 전에 이미 다가선 제황의 손이 그녀의 팔을 밀고 있다. 동시에 비어버린 옆구리를 향해 손날이 파고 들어간다. 가차 없는 공격, 어찌 보면 항상 ‘적에게 가장 치명적인 곳’ 만을 공격한다는 정직함이 있었지만, 그것을 간파하여 역으로 반격을 준비하기에는 상대가 너무나 빠르다. 이루미가 억지로 이격을 준비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오늘 그녀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였다. 신덕의 지시를 너무 맹목적으로 따른 탓이다.
퍼어어어억!
제황은 사실 주먹보다 발을 더 잘 쓴다. 용혈무는 하체를 이용한 기예. 이격을 준비하는 그녀의 측면으로 반 바퀴를 돌며 후려차는 제황의 발이 이루미의 후두부를 맹렬히 가격했다.
치이이익...
뒤통수를 얻어맞은 이루미가 뒤로 날아가다가 간신히 자세를 잡고 멈춰 섰다. 비명을 지르지 않는 게 그나마 기특할 정도로 제황의 발길질에는 인정사정이 없다. 그렇지만 이루미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녀는 이미 제황이 헌터가 되기 이전부터 6성의 각성자였고 수많은 전투경험을 가진 노련한 헌터다.
발차기를 끝낸 제황의 머리 위를 이루미가 던진 창궁룡검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제황이 검으로 인해 잠시 고개를 숙인 사이 이루미가 제황보다 과감하게 절대권역을 침투해 들어왔다. 맨손 박투가 예상되는 상황,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한 수는 지나친 창궁룡검이다.
‘창궁무한검’
신덕이 사용하는 것에 비교하면 흉내 내기 수준이지만 창궁룡검이 회전하며 제황의 뒤를 노린다. 일격필살의 한 수... 그러나 제황의 몸이 허깨비처럼 사라지며 검은 허공을 갈랐다.
절대권역의 안에 들어온 것은 권역의 주인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 거기에 제황의 속도가 합쳐지자 이루미에 눈에는 제황이 일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막거라!
-네!
‘창천강기’
신덕의 말에 돌아온 창궁룡검을 붙잡은 이루미가 전력을 다해 창천강기를 일으켜 몸을 보호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검 위로 강기를 머금은 제황의 주먹이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쾅!!!
“꺅!”
죽 밀려 나간 이루미는 그대로 벽에 부딪혀 버렸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피륙으로 된 주먹을 검으로 막았건만 오히려 손이 마비되고 있는 건 이루미다.
그녀와 제황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스텟에 있었다. 속도와 근력의 수준이 차원이 다르다.
이루미가 스텟을 민첩에 투자하기는 했지만, 근접전을 하는 만큼 근력도 무시못할 수준이다. 그렇지만 제황은 그녀보다 근 두 배 됨직한 속도와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지신 신위라는 스킬의 힘이다. 이제는 남들보다 거의 두 배 이상의 스텟을 보유한 그다.
벽에 부딪혀 있는 이루미의 곁에 다가온 제황의 주먹이 이루미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췄다. 강기가 일렁거리는 그의 주먹이 이루미의 얼굴을 따갑게 만든다. 만약 제황이 적이었다면 이미 이루미의 얼굴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으리라.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후우, 네. 감사합니다.”
이루미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제황 또한 마주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자리로 돌아가 털썩 앉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루미도 자리에 앉아 신덕과 함께 방금 전의 대련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정말 엄청나게 빨리 강해지네.
-역시 그렇지?
신덕이 제황을 괴물 보듯이 하고 있지만, 이쪽의 제황 또한 이루미를 통해 놀라는 중이었다. 본래 이루미가 쌍검을 다뤘기에 그녀의 몸만 한 태도를 들 때는 우려의 마음이 더 컸다. 행여 그녀의 스킬들이 헝클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마치 본래 거검을 썼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창궁룡검을 사용한다.
게다가 조금 전과 같이 전투 중 스킬을 자유롭게 운용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백 수천번의 훈련과 실전을 통해 몸에 체화시켜야 가능한 움직임을 며칠만에 가능하게 만드는 건 그녀의 재능도 무시무시하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다.
-완전한 7성 헌터야.
-그래. 창궁신가의 모든 것을 계승하면 8성 헌터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
아직 신덕이 전수하지 않은 비전들은 많고도 많았다.
그것은 진정한 창궁신가의 오의이기에 아무리 제황이라도 알려 줄 수 없는 신덕의 고집이 있었고 제황은 그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략적인 것은 전해 들었다.
신덕이 말하기로 창궁검의 메인스킬인 창궁십이격은 많은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다.
창궁십이격이 발전하면 창궁십이연환격으로 스킬이 변화하고 다시 그 창궁십이연환격이 완성이 되면 창궁천뢰격이 된다.
창궁십이연환격은 창궁십이격을 끊김동작 없이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창천신공의 성장과 비전의 완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창궁천뢰격은 십이연격 중 마지막 십이격의 능력인 12배 강력한 참격을 단숨에 날릴 수 있는 것으로 그 강력함은 제황의 무련궁술과도 비견될 만한 강력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제황은 아쉽지 않았다. 굳이 창궁신가의 비전을 탐내기보다는 그가 가진 것을 완성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그런 것이 없더라도 쏠쏠한 부수입은 있었다.
제황은 스킬창을 열었다.
제황식 절대권역 [유니크스킬] 패시브 (-숙련도)
스킬의 효과는 이미 알고 있다. 절대권역 안으로 침입한 것들의 모든 것을 감지해 내는 것은 물론이고 마나를 통해 적의 행동을 제한하거나 혹 상해를 입히는 것도 가능한 스킬이었다. 말 그대로 그의 권역 안에 들어온 그보다 약한 것들에게는 절대적인 강력함을 자랑한다.
재미있는 것은 스킬의 이름에 제황의 이름이 붙었다는 것. 제황은 신덕을 통해 알게 된 절대권역을 그의 여의용혈신공과 결합시켜 좀 더 공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손을 봤다.
원거리에서는 아니지만, 근거리에서는 꽤 만족할만한 스킬이었다. 그렇지만 제황이 더욱 기꺼운 것은 신덕을 통해 여러 가지 마나의 기초를 습득하며 여의용혈신공에 대한 이해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여의용혈신공의 진정한 오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그것이 손끝에 아슬아슬하게 닿는 느껴지는 느낌...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 끝에 닿을 수 있을 것 같기에 조바심이 나고 그 조바심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강함에 대한 열망은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강함에 대한 열망 때문만이 아니다.
‘다크어스’
백린은 제황에게 다크어스에 대해 아주 단편적으로 설명해 줬다.
‘오오가무시보다 강하고 거대한 놈들이 득실거리는 곳’
다크어스의 강력한 몬스터들이 지구로 넘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게이트가 너무 작기 때문이었는데 만약 그 게이트가 지금보다 훨씬 컸다면 지구나 엘어스는 이미 다크어스로 인해 오래전에 멸망했을 것이다.
-궁기
-응?
-곧 그걸 해봐야 할 것 같아. 준비해 줘.
-그래. 알았어.
제황의 말에 답하는 궁기의 목소리가 사뭇 비장하다.
#2
찰칵! 찰칵!
VIP입국장을 통해 수십 명의 외국인이 나타나자 그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수백의 기자들이 일제히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자 공항 안이 한순간 환하게 밝아졌는데 나타난 외국인들은 그런 것에 익숙하다는 듯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엠페러님! 이번에 방한을 하신 목적이 어떻게 되십니까!”
“궁신 천제황을 영입하기 위해 움직이셨다는 관측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팝스타 크리스티와의 염문설이 있으신데 기존의 여인들과는...”
기자들의 질문을 가장한 아우성이 빗발친다.
“기자회견은 30분 후 진행하겠으니 질문은 그 때 받겠습니다.”
수행 요원들 중 나이가 지긋한 노신사가 기자들의 앞에 서서 말했고 그의 말에 기자들도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때 노신사의 어깨를 붙잡으며 한 거한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의 돌발행동에 카메라를 내리던 기자들이 다시금 그를 향해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갑작스레 출현한 9성 아니 10성헌터 궁신으로 인해 퇴색하기는 했지만, 그가 출현하기 전까지 헌터 세계랭킹 1위이며 오랜 기간 최강의 헌터로 군림해 온 엠페러다.
기자들 앞에 나선 엠페러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기자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마치 그의 손이 주변의 소음들을 잡아먹기라도 한 듯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엠페러가 말했다.
“난 궁신과 한판 붙고 싶어 왔다.”
엠페러의 발언에 놀란 기자들이 서둘러 그의 말을 받아적으며 그 말의 의미를 묻기 위해 사방에서 외쳐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엠페러는 기자들과의 볼일은 다 끝났다는 듯 그대로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