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창궁룡검의 주인-1
#1
푸른 기운이 일렁거림 속에 긴 수염을 늘어뜨린 한 노인이 나타났다. 그 옆으로는 실체화한 궁기가 삐딱하게 서서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기소개 똑바로 해봐.”
“예. 누님. 흠흠... 난 창궁신가의 마지막 가주 신덕이라고 하네. 앞으로 잘 부탁...”
위엄있지만 매우 경건한 표정의 신덕이 제황을 향해 인사를 했다. 이전의 그 광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답이 마음에 안드는지 궁기가 신덕의 엉덩이를 발로 연신 걷어차며 외쳤다.
“어쭈? 하네? 제황이랑 나랑 반말 트는 처지인데 네가 ‘하네?’ 족보 꼬아보고 싶어? 다시 들어갈까? 매가 부족하지?”
퍼퍽! 퍽퍽!
-아, 아닙니다. 누님! 악! 아닙니다! 그만 마세요! 아파요! 아파요! 아악! 악!
애를 심하게 팬 것 같다. 최대한 몸을 쪼그린 채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다시 소개해.”
“차, 창궁신가의 가주 신덕이라고 합니다. 제황님”
분명 들어갈 때는 버릇을 고친다고 한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정신개조 수준이다.
-좀 많이 망가진 것 같은데?
-음. 애가 반골기질이 좀 있더라고... 뿌리부터 뜯어고치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네. 뭐 그래도 광증은 다 나았으니까. 그럭저럭 쓸만하지 않을까?
“후우...”
그다지 자신 없어 보이는 궁기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약 하루.. 시간으로 따지만 9시간 만에 궁기와 신덕은 궁기옥에서 나왔다.
궁기옥에서의 시간으로 따지면 9년... 대체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들어가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교정교화’ 가 된 신덕이다.
“천제황이다.”
“예. 예.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궁기에게 끌려 들어가기 전에는 말끝마다 창궁신가의 가주 어쩌고 하면서 유세를 떨더니 지금 하는 것으로 봐서는 발바닥을 핥으라고 하면 냉큼 엎드릴 기세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바위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심정으로 박박 문지르면? 만년을 두들겨 팰 것을 한번에 팬다는 심정으로?
퍽! 퍽퍽!
그 말을 하며 장난치듯 발길질을 하는데 자동적으로 저 비굴한 자세가 만들어진다.
-아악! 악! 악! 알아들었습니다!
대체 뭘 상상하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더이상 이야기를 꺼내면 안될 것 같다.
“흑... 내가 저 호랑이가 여기 있는 줄 알았다면...”
“뭐야?!”
“아닙니다! 아닙니다! 주둥이가 아직 미쳤나봅니다.”
그 말을 하면서 자신의 입을 연신 두들기는 신덕이다. 노인네가 두들겨 맞는 꼴도 그리 좋지는 않기에 제황이 그를 위해 화제를 돌렸다.
“창궁신가의 핏줄을 찾는다고?”
“아닙니다. 성산도 망하고 천년이 넘게 흘렀는데 이제 혈통 따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생일대의 숙원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것 보면 한편으로는 정말 대단하다.
“아니 약속은 했으니까 찾기는 해야지.”
“가, 감사합니다.”
“그 전에 몇 가지 물을 게 있는데 핏줄이라는 건 어떻게 알아보지? 막상 데려와도 아닐 수 있는 거잖아.”
“그건 창궁룡검의 손잡이를 잡기만 하면 제가 바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편하네.”
-예. 예. 아무렴요.
데려와서 손잡이만 잡아보면 된다니 왜 아직 까지 못 찾았는지가 제황의 입장에서는 이상할 정도다.
“그럼 지금까지 백린은 어떻게 후예를 찾아다녔지?”
“그, 백린이 그놈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핏줄 찾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그래도 뭐 가끔 남에 집 족보도 찾아보면서... 몇놈들을 데려오기는 했지만 모두...”
신덕은 그동안의 이야기를 줄줄 이야기했고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합해 보면 백린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창궁신가의 핏줄 찾기를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대융합 초기 때야 몬스터들과 치고받고 싸우느라 그럴 틈이 없었을 테고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간 뒤는 가까운 이들의 배신과 배반으로 동료라는 것 자체를 두지 않고 철저히 홀로 움직였다고 한다.
물론 아예 손 놓았던 것은 아니고 신덕이 광증을 부릴 때마다.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을 써서 몇 번 시도하기는 했지만 모두 실패.
“딱히 뾰족한 방법은 없네.”
“예.예.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아니, 뾰족한 방법이 없을 뿐이지...”
빠르게 찾아낼 방법은 없지만 그건 규모의 문제일 뿐이다. 백린이야 그 홀로 찾아다녔을 뿐이지만 제황은 단체의 힘을 빌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제황이 깨달은 건 돈으로 안되는 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찾을 때까지 돈을 풀면 되겠지. 일단 들어가 있어.”
“예.예.”
신덕은 누가 붙잡을새라 빠르게 창궁룡검으로 숨어버렸다.
“기합이 바짝 들었네.”
“앞으로 네 무공을 봐줘야 하는 녀석인데 행여 딴마음이라도 먹으면 안되니까.”
“흠흠, 그건 그렇지. 아무튼 고생했어.”
“아냐. 나도 들어간다.”
“응.”
궁기까지 들여보낸 후 제황은 집무실 한 쪽에 놓인 인터폰을 누르고 말했다.
띠릭..
“이루미님 좀 와보시죠.”
제황이 호출한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제황의 집무실 문을 이루미가 노크했다.
“찾으셨습니까.”
“들어오세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이루미가 절도있는 자세로 제황의 앞에 섰다.
“편하게 들어와서 앉으세요.”
“아닙니다! 저는 이게 편합니다.”
“상의할 게 있어서 부른 겁니다.”
“아! 네, 그럼...”
이루미가 쇼파에 앉자 제황이 테이블에 창궁룡검을 올렸다.
한눈에 봐도 보통물건이 아닌 듯 고풍스러운 묵빛의 검집 위로 현기가 흐르는 창궁룡검이 놓이자 같은 검을 쓰는 입장의 이루미의 눈이 반짝거린다.
“이건...”
“창궁룡검이라는 아테펙트입니다. 슈페리얼 아티펙트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물건이죠.”
“최상급입니까.”
“한번 확인해 보세요.”
“네네.”
제황의 말에 창궁룡검의 아이템 옵션을 확인한 이루미가 놀란 눈으로 창궁룡검을 내려다본다. 범상치 않은 옵션은 둘째치고 무려 소환까지 가능한 아티펙트다. 전 세계적으로 슈페리어 급의 무기류 아티펙트는 약 천여 점이 있지만, 그중에 소환이 가능한 아티펙트는 약 오십여 점이 다였다. 이루미는 여기에 있는 이 검이 그것들과 전혀 밀리지 않는 오히려 그것들을 모두 찍어 누를 엄청난 아티펙트라는 것을 자신할 수 있다.
제황을 앞에 두고서도 잠시나마 탐욕이라는 감정이 들 정도로 창궁룡검은 매력적인 무기다.
“이것을 어찌...”
“아는 지인으로부터 창궁룡검의 주인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주인이요?”
“예. 아쉽게도 적합자를 가리는 아티펙트입니다.”
아티펙트라는 것들은 단순한 계승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도 있는반면 아티펙트 자체가 적합자를 까다롭게 고르는 것들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대부분 돈으로는 구할 수 없는 강력한 아티펙트 들이다.
“그렇군요.”
이루미가 조금은 아쉽다는 듯 창궁룡검을 내려다봤다.
비록 그녀가 평소 쌍검을 즐겨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건 그녀가 보유한 아티펙트중 가장 강력한 게 쌍검이며 요인보호나 대인전을 주로 하기에 쌍검을 애용할 뿐이다.
검과 관련해서는 거의 모든 종류에 조예가 깊은 그녀였다.
“그럼 저번에 사람을 찾는 것에 물으신 것은 이 검의 적합자가 될 이를 찾기 위해서셨군요.”
“예.”
제황의 말에 태블릿을 꺼내 놓고 본격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혹 적합자의 조건이 있으신지요.”
“음, 그걸 설명하려면 우리 가문에 관해서도 이야기 해야겠군요.”
이루미의 물음에 제황은 이루미에게 할아버지인 권제나 친구인 동철 외에는 꺼내지 않았던 가문의 비사에 대해 풀어놓기 시작했다. 무련천가와 천주백가 그리고 창궁신가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야 찾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마치 신화와 같은 세 가문의 이야기들을 모두 들은 이루미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했다.
“웬만한 전설 같은 건 명함도 못 내밀 이야기네요.”
“그런가요?”
“예. 제황님의 비범하심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긴 하지만...”
제황은 이루미가 그의 얼굴에 더 금칠하기 전에 말을 끊었다.
“아무튼,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예. 그렇지만 손잡이를 잡으면 확인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일단 가능성이 있는 족보들은 전부 뒤져보겠습니다. 장백산이니 중국 쪽으로도 정보망을 확충해 보겠습니다.”
이루미가 조금 아쉽다는 듯 창궁룡검의 손잡이를 손으로 잡아본다. 무인에게 강한 무기는 마약과도 같다. 흔히 무인은 무기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건 개폼이나 잡기 좋아하는 이들의 허세다. 이름난 헌터들은 대부분 무기수집이라는 취미는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을 정도다. 제황 같은 경우도 비천궁 급의 활이 나온다면 억만금을 주고라도 수집할 것이다.
그때였다. 창궁룡검이 웅웅거리며 떨리기 시작한 것은...
“어...어?”
우우우우웅
이루미가 뭐에 홀린 듯 창궁룡검의 손잡이를 두손으로 꽉 움켜쥐자 창궁룡검은 마치 살아있는 듯 검명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떻게...”
이루미가 어쩔 줄 몰라하며 창궁룡검을 쥐고 있지만, 제황 또한 적잖게 놀라는 중이다.
-허어, 드디어...드디어...!
조금 전부터 감격에 겨운 신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흐음, 이런 개연성 빵점의 막장 드라마는 나도 처음이네.
“하아!”
거대한 창궁룡검을 한손에 쥔 이루미의 눈이 반개한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스스스스...
창궁룡검으로부터 푸른 기운이 뭉클거리며 피어올라 잠시 후 하나의 형상으로 완성되었다.
마치 거대한 뱀이 또아리를 틀 듯 검과 이루미를 감싼 그 첨단에 하나의 머리가 나타났다.
날카로운 이빨과 기다란 뿔 그리고 넘실거리는 수염을 지녔다.
크르르...
나타난 것은 일전에 한 번 면식을 한 청룡이었다. 푸른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오만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창궁룡검의 진체야.
-진체?
-창궁룡검의 혼이라고 할 수 있지.
-신덕은?
-걔는 그냥 검에 붙은 잡귀...검의 정령이라고 할까. 지금은 저 처자와 이야기 하느라 정신없겠네.
-아아...
궁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룡과 제황의 눈이 마주쳤다.
감히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하찮은 인간 나부랭이라 생각했던 것 같은데 제황이 마음먹고 마주 노려보자 청룡의 눈이 찔끔한 표정이 된다. 거기에 결정타로...
“어딜 꼬나봐. 가죽을 확 벗겨서 목을 졸라 버릴까보다.”
제황의 머리 위로 궁기가 나타나 제황과 함께 노려보자 깨갱하는 눈빛으로 시선을 회피하기 바쁘다.
“크르르...”
“너 똑바로 주둥이 안 놀리지? 인간 말 할 줄 아는 거 안다?”
“알겠... 소이다.”
“어쭈! 알겠소이다?!”
“나, 난 바빠서 이만...”
“어쭈 어디가냐? 나와봐! 확!”
궁기의 폭언에 사정없이 눌려버린 청룡이 그대로 이루미의 몸으로 스며들 듯 도망쳐 버렸다.
“파랑둥이 지렁이가 죽을라고...”
아직 오오가무시의 마나석을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궁기는 그녀의 최전성기와 마찬가지다. 저들과는 이미 하늘과 땅차이의 격을 쌓은 그녀 앞에서 기를 세울 수 있는 영물은 거의 없다.
“참아.”
“음, 뭐 알았어.”
제황이 한마디 하자 그제야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하는 궁기다.
오늘따라 궁기의 대단함을 여러 번 느끼는 제황이다.
#2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땡그렁...
창궁룡검을 바닥에 떨어뜨린 이루미가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제황은 쓰러진 이루미를 안아 들었다. 궁기의 말대로 창궁룡검을 온전히 계승 받았다면 그것은 창궁신가의 가주직 또한 계승되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것은 단순히 신분의 계승이 아닌 가문의 모든 것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소유한 이가 된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제황과 동등한 입장에까지 올라서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제황님. 이 아이를 부탁드립니다.
이루미의 몸 위로 신덕의 나타났다. 힘을 많이 소모했는지 그 형상이 많이 흐려져 있다.
-그래.
-저는 이만 기운이 다하여 한동안 쉬겠습니다.
신덕은 그 말을 하는 것도 힘든지 곧장 다시금 이루미에게 스며들려 했지만...
-어디서 약을 팔아. 똑바로 보고 안 하냐.
-호랑이 같은...아니 호랑이 궁기가 으르렁거리며 한마디 하자 곧장 다시 튀어나온다.
-헤...헤헤, 누님은 역시 속일 수 없네요.
신선풍의 노인이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딸뻘 되어 보이는 궁기에게 굽실거리는 건 차마 못 보겠는지 고개를 돌리는 제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