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세계최강-2
#1
“다녀왔습니다. 할아버지.”
“오냐. 허허허”
다가온 권제가 제황을 안았다. 권제를 따라온 사부들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장하다.”
“아닙니다.”
짧은 그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함축되어 있을까. 한동안 제황을 안고 있던 권제가 제황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걷기 시작했다.
권제는 레이드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든 모두 무(武)와 관련된 이야기뿐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나누며 제황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권제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따뜻해진다.
“고맙구나. 언제 이렇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지 모르겠다.”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래? 그럼 나중에 또 좋은 자리 만들자꾸나. 피곤할 텐데 들어가 쉬어라.”
“예.”
권제와 헤어지고 언제나처럼 숙소로 향하는데 어느 틈에 나길환이 곁에 다가와 함께 걷고 있다. 나길환 또한 그 눈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하다. 이전에도 존대하긴 했지만, 그 눈은 마치 외손자를 바라보는 그런 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선망과 존경에 마지않는 그런 눈빛이다.
“형님이 저렇게 기뻐하시는 걸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할아버지께서 기분이 좋아 보이시니 보기 좋네요.”
“예.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일본에서 들려오는 제황님의 소식들은 최우선으로 형님께 보고드렸습니다. 그때마다 정말 즐거워하시더군요. 제황님의 소식들을 들으시며 매일 아침을 시작하실 정도입니다.”
“앞으로 더 좋은 일만 있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제황의 대답에 나길환의 얼굴에는 기쁨과 아쉬움이 묻어 난다.
“부탁드립니다. 부끄럽지만 보필하는 동생들이 부족하여 형님을 너무 외롭게 해드렸습니다.”
“지금껏 무적성이 건재했던 이유는 할아버지의 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분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황의 말에 나길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잔혹한 절대자라는 위명을 평생 등에 메셔야 했던 형님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리고 이제 그것을 등에서 내려놓으셔도 되게 되었으니 이 늙은이들은 제황님께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무적성이라는 거대한 조직은 헌터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다.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 인류애와 희생정신을 주입 시키고 세뇌하다시피 한다. 무적성의 일원이 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개인의 강해짐에 있어서 최고의 지원을 하기는 하지만 그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냉혹하고 철저한 절대자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권제가 맡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몬스터들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사회체제를 회복한 뒤에는 바로 그런 무적성의 노력이 있었다.
“진짜 그러시면 제가 욕먹습니다.”
“허허”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으니 어느새 제황의 숙소 앞에 멈췄다.
숙소의 문을 열며 나길환이 말했다.
“내일부터 공식 발표가 있은 후로 꽤 떠들썩할 겁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오오가무시 레이드에 대한 소식은 내일 전 세계 매스컴을 통해 공식적으로 알려질 참이다.
“제황님을 초대하고 싶어 하는 곳이 많습니다.”
“물론 저는 무적성에서 한발도 나가지 않을 겁니다.”
이전에도 세계 각국의 초청이 쇄도하던 상황이다. 10티어 몬스터를 레이드한 헌터이니 더 바빠질 것은 자명한 일. 모든 초청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정말 필요한 것 외에는 반려할 작정이다. 하나하나 신경 쓰기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후우, 그럼 이거 또 한동안 고생 좀 해야겠군요.”
나길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생이요?”
“허허, 모르셨습니까. 제황님은 지금 밀령의 경호대상 중 1호이십니다. 형님보다도 높지요. 그 쟁쟁한 위명에 비교해 너무 움직이지를 않으시니 목마른 것들이 자꾸 내부로 꼬이는 것이지요.”
“무적성 내에서도 말입니까?”
조금 놀란 제황이 되물었다.
무적성은 크게 구분하면 총 두 개로 구획이 분리되어 있었다.
권제의 거처를 포함한 무적성의 중요시설들 그리고 최정예들이 몰려있는 내성과 그렇지 않은 외성이다. 지금 제황이 기거하고 있는 곳은 내성이었는데 이곳까지 침투해 들어오려 한다는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무적성의 보안체계를 맡은 것이 밀령들이기에 발각당하면 상당히 강력한 제재가 가해진다.
“그만큼 궁금해한다는 방증이겠지요.”
“저 때문에 많은분들이 고생하시는군요.”
“아닙니다. 저희야 곁에서 모시는 것도 영광입니다.”
“혹 경호에 불편하신 건 없으신가요?”
“없습니다. 그래도 무적성 내에서는 경호인원을 최대한 줄이고 수련에 지장이 없으시도록 거리를 ... 아 하나 건의드릴 건 있습니다.”
“어떤...”
“슬슬 숙소를 옮기시는 것을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숙소 말입니까?”
“예. 권제님께서 기거하시는 궁을 추천 드립니다. 경호문제도 있지만 지금 계신 곳은 10성 헌터의 위명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으십니다.”
지금 제황이 있는 숙소가 나쁜 곳은 아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게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지닌바 위상과 비교하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만약 제황이 아닌 다른 이였다면 이미 무적성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한 채 왕으로 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이미 한국에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계 어느 나라라도 제황이 간다고 하면 성을 지어서라도 제황을 반길 테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예. 그럼 그렇게 추진하겠습니다.”
“예. 그럼...”
숙소의 문이 닫히자 나길환은 긴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섰다.
제황에게는 별거 아닌 듯 말했지만 사실 무적성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로 인해 근래 꽤 골치가 아팠었다. 단순한 탐색수준이 아니다. 전방위적인 방법을 통해 무적성 내부 사정을 탐문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미 꽤 많은 제황의 사진이 외부에 노출된 상황이다. 범인을 모두 색출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더욱 바빠지리라.
“쓸데없는 관심이 명을 재촉한다는 걸 몇 번 더 보여주면 알아서 잠잠해지겠지.”
나길환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다음 날, 오오가무시의 레이드 소식이 전 세계에 일제히 퍼져 나갔다. 본래 레이드와 관련된 방송은 생방송이 없었다. 레이드라는 것이 항상 성공만 할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워낙 그 영상이 자극적이기도 한 연유다. 몬스터가 죽는 거야 상관없지만 사람이 압사를 당하거나 터져나가는 모습 같은 것을 필터링 없이 보여줄 수는 없다.
[세계를 약 8초간 공포와 절망에 몰아넣을 10티어 몬스터! 그러나 인류에게는 10성 헌터가 있었다.]
[향후 동북아의 레이드 패권의 중심 대한민국의 행보는?]
[궁신! 9성을 뛰어넘어 10성의 헌터임을 증명하다.]
9성헌터의 수준도 한계짓지 못하는 주제에 10성헌터라는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온다.
대한민국 내에서는 오오가무시의 크기가 10티어 몬스터 급이었기에 제황을 10성 헌터라고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각국의 몬스터 연구소에서는 오오가무시의 크기가 10티어급이기는 하지만 천제황 헌터의 레이드 경력이 일천하고 또한 오오가무시가 10티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레이드당했기에 제황을 오오가무시를 레이드한 제황을 10성 헌터라기보다는 오오가무시와의 비대칭 공격력의 우위에서 온 레이드 전략의 승리라며 애써 제황의 업적을 깍아 내렸다.
물론 그 이유가 제황을 10성 헌터라고 규정했을 시 당분간 아니 제황이 죽기 직전까지는 그를 뛰어넘을 헌터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있었기에 그를 10성헌터로 추대하여 몬스터레이드시장에 있어서 일인 독주 체제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것은 앞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뒤로는 어떻게든 오오가무시의 피부 한 조각이라도 얻어보려고 기를 쓰고 있다.
그러나 각종 매스컴이 들끓는 와중에도 무련천가는 그런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레이드 후반에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것까지 합쳐 근 천여마리의 사케노오스케부터 오오가무시의 사체 그리고 오오가무시가 벗어놓은 껍질까지... 굳이 가격표를 붙이자면 천문학적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모자랄 부산물들의 대한 처리가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떠나서 별 같잖은 것들이 X에 꼬여드는 파리떼처럼 무련천가의 사무장인 이루미를 귀찮게 한다.
“사케노오스케 사체에 대한 권리주장이라고요?”
“예. 도쿄의 피해 복구 및 경제 재건을 위한 재원 마련을 이유로···.”
소식을 가져온 대외업무팀장은 마치 자신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이루미의 눈빛에 고개를 푹 수그렸다. 감히 오오가무시의 대한 권리주장은 할 수 없지만 사케노오스케는 이전에 일본 헌터들이 레이드 했던 것들도 제황의 것과 섞여 있는 상황이기에 나온 이야기였다.
“잘도 그런 주장을 하는군요.”
물론 이루미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저들이 레이드한 영상을 다 따져도 사오십 마리가 넘지 않는 레이드 실적이다. 그리고 세계헌터법으로 따져도 1차적으로 레이드를 실패한 공격대는 몬스터에 대한 권리주장을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게다가 저들은 레이드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도쿄에 핵을 떨구려 했었다.
“그게 제황님의 이미지를 고려해야 하기에 영 무시할 수는 없는 부분입니다. 또한 일본의 정부에서는 이것이 관철되지 않았을 경우 몬스터 부산물의 반출을 방해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부리고 있습니다.”
“일본정부에서는 그렇게 구걸해간 사케노오스케를 제황님의 업적에 끼워 넣고 자신들의 치적인 양 호도할 작정이겠지요.”
“맞습니다. 이번 다크어스 게이트 사태에서 일본정부가 계속 헛발질한 것을 만회하려는 것 같다는 추측입니다.”
“괘씸한 것들...”
만약 저들이 사안에 심각성을 좀 더 무겁게 받아들이고 외부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고려했다면 도쿄 한복판에 핵을 떨구는 방안을 고려할 정도로 일은 심각하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죽이려 했던 수십만의 도쿄시민들을 생각하면 절대 저들이 바라는 대로 해줄 마음이 없는 이루미였다.
“전하세요. 도쿄에 대한 경제 지원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끄라고요. 만약 몬스터 사체의 반출을 방해할 낌새를 보이면 곧바로 보고하세요.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일본정부를 단칼에 쳐내버린 이루미가 고개를 돌렸다.
“자원팀장님?”
“네.”
“마나석 확보는 어떻게 되었나요?”
“사케노오스케는 70프로 가량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오가무시는 장비와 기술부족 아직 미완료 상태입니다.”
“기술부족이요?”
“예. 일단 그 크기가 너무 거대하고 피부조직이 이전에 나타난 몬스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나타난 적이 없는 10티어 몬스터인 만큼 마나석의 위치 탐사에 난항을 보입니다.”
자원팀장의 말에 이루미의 눈썹이 찌푸려진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향후 제황이 레이드하게 될 몬스터가 대부분 9티어 몬스터거나 혹은 10티어에 준하는 몬스터일 텐데 시작부터 이렇게 헤맨다면 레이드하고서도 처리 못해 전전긍긍한 우스운 꼴을 보일 수도 있었다.
“외부에서 인력을 수급하는 일도 고려해 보세요. 이쪽만 바라보며 침 흘리고 있을 이들이 많아 보이는데...”
“그리 말씀하신다면 제가 믿을 수 있는 이들로 새로운 팀을 구성해 보겠습니다.”
“그 부분은 전권을 위임하겠습니다. 그래도 오오가무시의 마나석 확보를 최우선으로 두고 모든 일을 진행하세요. 그것들이 모두 모여 향후 무련천가의 기술력이 될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10티어몬스터를 직접 만지고 해체할 수 있다는 것에 몬스터자원팀 전부가 흥분해 있습니다.”
“다음 안건으로는 이번 레이드에서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