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14화 (214/301)

# 214

세계최강-1

#1

“사람 말씀입니까?”

“네.”

“대한민국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저희가 찾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찾지 못한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는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제황이 눈을 감자 이루미가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제황은 지금 다른이들을 배려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모두가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머릿속을 맴도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멸망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반추하는 중이었다.

-그 녀석이 한 말 진실일까?

-그래.

궁기의 답은 단호했다.

-아니었으면 좋겠다.

본래의 신성을 개화하기 시작한 궁기는 거짓과 참을 구분할 수 있었다.

지금껏 그것을 통해 제황은 손쉽게 상대의 거짓을 간파해 낼 수 있었다. 비록 백린에게는 한번 속아버렸지만, 그 이후 백린과 나눈 이야기는 모두가 참이라고 말해줬다.

“세 개의 차원이 하나가 되는 순간 모든 종족들이 하나의 지구에 만나게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엘어스 또한 위험해지는 건데 그 드래곤들이라는 건 왜 손을 놓고 있는 거지?”

제황이 물었다.

“내가 알기로 그것들은 수천 수만년을 사는 것들이야. 세 개의 차원이 합쳐지고 혼란이 있기야 하겠지만 삼사백 년 정도 지나면 안정화 될 거라는 거지. 우리는 멸망이지만 저들은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도움을 바랄 수 없군.”

“그래. 하나 분명한 건 힘이 없는 인간들은 장담컨대 생태계의 최하위로 떨어질 수도 있어.”

백린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60년 전 일어났던 대융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엘어스까지는 괜찮다. 그렇지만 문제는 다크어스다. 인류는 지금까지 다크어스의 게이트가 나타나면 무조건 폐쇄했었다. 그만큼 다크어스의 몬스터들은 지독하리만치 강했다. 아니 단순히 강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다크어스의 몬스터가 나타난 곳은 쑥대밭이 되는 게 기정사실 과 마찬가지였다. 엘어스의 몬스터처럼 적당히라는 게 없는 것들이니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몬스터 산업으로 제 2의 산업부흥을 일으키고 있는 강대국들이 이것을 알게되었을 경우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물론 그들도 차원이 하나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것으로 만족할까?

게다가 헌터들도 문제다.

-차원이 안정화되면 지구방어시스템인 세이브도 잠들어버린다는 걸 헌터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제황의 물음에 궁기가 답했다.

-글쎄, 내가 아는 인간들이라면 필연코 그것을 바라지는 않을 거야.

-역시 그렇지?

무려 60년이다. 이제는 완전히 인간의 역사에 하나가 된 헌터들의 능력이 모두 사라진다는 소리다. 분명 그들 중에는 차원을 안정화시키는 걸 반대하는 이들도 나타날 것이다. 남들보다 우월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통째로 사라진다는 소리니까 말이다.

물리적인 무력을 통해 일을 해결하는 헌터들이니만큼 그들에게 이성적인 판단만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그렇기에 제황은 그것을 타인에게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권제라면 믿을만 하다. 제황이 아는 권제는 대융합을 거친 세대로 몬스터들을 몰아낼 수 있다면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무적성의 모든 이들이 권제와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건 좀 더 고민해야 할 이야기겠지.’

아직 길게는 삼년의 유예기간이 있기에 제황은 골치아픈 문제를 머릿속에서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신경 써야 할 건 그것 뿐만이 아니니까.

“쯧, 어쩌다 이딴 걸 받아서...”

혀를 찬 제황이 무한고에서 한 자루의 태도를 꺼내 눈앞에 세웠다. 전체 길이가 160센티미터는 될 정도로 길고도 긴 장도다. 이름은 창궁룡검... 도의 형상을 취하면서도 검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검이 외날이 아닌 양날이기 때문이다.

백린이 믿음의 증표라며 건네줬는데 웬지 괜히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 같아서는 헬기의 창문을 열고 현해탄에 던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검의 손잡이를 붙잡자 시린 기운이 거침없이 파고 들어온다. 그러나 그 기운은 제황의 손 이상을 벗어나지는 못한 채 웅웅거리며 힘을 내뿜고 있었다.

동시에 시릴 정도로 음울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려왔다.

-빌어먹을! 백린 놈도 나를 저 공간에 쑤셔 넣지는 않았다.

-다시 넣어줄까? 망령이면 망령답게 굴지?

-감히 나 창궁신가의 가주 신덕을 모욕하는 것이냐?

-나 또한 무련천가의 가주다. 예를 받고 싶으시면 예를 차리지.

-고얀!

츠아아앗...

창궁룡검으로 시작된 시린 기운이 팔뚝을 치고 올라오자 제황이 혀를 차며 여의용혈신공을 일으켰다. 잠시 대치상태를 이루다가 다시금 물러난다. 제황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는지 다른 것으로 시비를 건다.

-백린 놈이 네가 창궁신가의 핏줄을 찾아줄 거라고 했다! 어서 찾아라!

“후우...”

백린이 줄 때 반려했어야 했다.

도망치듯 사라지며 ‘사람 하나만 찾아주면 아주 얌전해 질 꺼야! 어쩌면 소원이라도 들어줄지 모르지!’ 하길래 무슨 소린가 했더니 졸지에 말 많은 노인네 하나를 떠안게 되었다. 게다가 정신도 좀 온전치 않아 보인다.

툭하면 몸을 차지해 보려고 용을 쓰는데 귀찮아 죽겠다.

-아직도 시끄러워?

-응.

-어서 빨리 창궁신가의 핏줄을 찾아라!!

머릿속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왕왕 울리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뭐래?

-창궁신가의 핏줄을 찾으라네.

지금 제황은 궁기와 신덕 사이를 차단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궁기와 자신만의 공간이었는데 그 공간에 신덕이 침투하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마치 처음 궁기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것이었다. 당시에도 궁기와 적응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괜히 이 인간을 궁기와 마주치게 만들면 머릿속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대화를 나누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흠, 창궁신가의 가주라고? 이름이 신덕?

-알아?

-알지.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검에서는 당대 최강이었을 거야. 수호 가문의 숙명으로 외부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최강이든 뭐든 지금은 그냥 검에 붙은 망령일 뿐이잖아.

-아니야. 잘만하면 너한테 부족한 부분을 얻을 수도 있어.

-부족한 부분?

-그래. 네게 부족한 부분 말이야!

-별로 이 망령한테 배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군.

-망령이기는 해도 신덕이라면 배울 만하지! 암혼보가 깨지면 용혈무밖에 남지 않잖아. 몬스터들 중에 암혼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몬스터가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구.

-공격당하기 전에 먼저 죽여버리면 돼.

제황의 전투이념이다. 철저한 전투계획 수립 후 선공격을 통한 적극적 제압

-그거야 맞는 말이지만 그 백린놈이 말한 드래곤 같은 것들과 붙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꺼야? 신벌의화살이 있다고는 하지만 신벌의화살은 불확실성과 위험을 내포한 양날의 칼이야. 피하면 그걸로 끝...소모되는 마나도 상당하지 않아?

-그건 그렇군.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기에 제황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 말대로

신벌의 화살이 아무리 빠르고 강력하다고 해도 맞추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무련천가의 능력이 원거리든 근거리든 가리지 않는다고 해도 초근접전에 들어가면 창궁신가의 능력이 더 우위에 있어. 겪어봐서 알잖아.

-으음.

무련천가의 가주가 창궁신가의 비전을 배운다는 거부감에 갈등하는 제황이다.

그러나 궁기는 계속해서 제황을 설득했다. 그녀가 보기에 제황이 창궁신가의 비전을 배울 수 있다는 건 기연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나 제황이 이렇게 갈등하는 건 이 신덕이라는 이가 미쳤다는 것이다. 말과 행동에 두서가 없다.

처음 이야기 나눴을 때는 점잖은 듯하며 제황을 칭찬하더니 은근슬쩍 몸(?)을 내놓으라고 하지를 않나 뜬금없이 핏줄을 찾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시도때도 없이 창궁룡검으로부터 올라오는 한기가 자꾸 신경 쓰이게 만든다. 망령이라고 격하했지만, 힘이 장난이 아니다.

또다시 꾸물거리며 한기가 올라오자 제황이 혀를 차며 말했다.

-포기, 그냥 그 창궁신가 사람을 찾을 때까지 무한고에 봉인할 거야.

-흠, 꽤 난동을 부리는 것 같은데... 내가 이야기 좀 해볼게. 만나게 해줘.

-뭐? 네가?

궁기의 말에 제황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야기를 나누게 하기 위해서는 제멋대로 날뛰는 신덕을 그냥 침투하도록 두라는 소리와 같다.

-응!

-이 미친 노인을?

-내가 선임자로써 잘 가르쳐보지. 후후

궁기의 목소리에서 위험한 냄새가 풍긴다.

-그래. 알았다.

궁기가 이렇게까지 말했다면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제황은 여의용혈신공으로 막고 있던 한기를 풀어버렸다. 그러자 곧 창궁룡검으로부터 한기가 물밀 듯이 들어온다. 백린이 평소 그를 봉인의 형식으로 재워놓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신덕은 틈만 나면 검을 지닌 이의 정신을 차지하려고 한다.

-호오, 드디어 무련천가의 몸을...

가로막는 게 사라지자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신덕이다.

-여... 미친 늙은이 안녕?

-인간의 기운이 아니군. 너...넌 누구냐!

그러나 제황의 몸을 차지하려 침투해 들어오던 신덕은 그를 가로막는 강렬한 존재감을 느꼈다. 백린과 있을 때도 백일기와 함께 백린의 몸에서 셋방살이한 경험이 있지만 지금 느껴지는 존재감은 백일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거친 기운을 내재하고 있다.

-나? 널 교육시켜 줄 분이다.

-뭐? 누가 감히 나를...허억...

반항할 새도 없다. 궁기의 기운이 신덕을 옴싹달싹 하지 못하게 감싸버렸다. 그리고...

-억! 어억! 이...이게 무슨! 어어억!

-호호호! 좀 반항하네!

쿵!

-큭! 이게 무슨! 놓아라!

-이리 와! 자식아! 감히 제황이를 괴롭혀?

쿵! 쿠쿵!

-억! 억!

투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머릿속으로 묵직한 울림이 느껴진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궁기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제황, 나 얘 데리고 궁기옥에 좀 놀러가도 돼?

-마음대로···.

-호호, 좋아. 한동안 손맛 좀 보겠군. 역시 광증에는 맴매가 약이지.

-아악! 이게 무슨! 악! 악! 으아아아!

-오호호호호호!

신덕의 비명소리와 궁기의 웃음소리가 들린 후 잠시 후 둘의 기운이 사라졌다.

아마 궁기가 신덕의 광증을 치료하기 위한 특수요법을 시행하려 하는 것 같다.

-뭐, 조용해서 좋네.

둘의 기운이 사라지자 제황은 오랜만에 느껴지는 홀가분함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2

어스름한 노을이 내려앉을 무렵 제황은 무적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켜자 상쾌한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운다.

제황은 눈을 감고 공기의 맛을 음미했다. 그다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공기가 새롭다.

우우우웅! 철컹

후방 화물칸이 열리며 피곤에 절은 무련천가의 지원팀원들이 짐을 들고 내리기 시작했다.

제황도 투툼한 철제박스 하나를 손에 들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요원들이 질색한 얼굴로 제황에게 다가왔다.

제황이 손을 들어 만류했지만 그들은 끝내 제황의 손에 들린 가방을 빼앗아간다.

“제황님이 그런 일을 하시면 저들은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어느 틈에 제황의 곁에 다가선 운영지원팀장이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가요?”

“당연합니다.”

그 말을 하며 그는 헬기에서 먼저 내려 몬스터자원팀장과 대외업무팀장에게 업무지시를 내리고 있는 이루미를 힐끔거렸다. 제황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오오가무시가 껍질을 벗는 순간 패닉에 빠져 철수준비를 하려던 팀장들의 목에 칼을 겨누며 명령이라고 포장한 살해협박을 했었다. 그 살기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는 제황보다 이루미가 더욱 무섭다.

“무적성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후우, 제황님은 제황님의 위상을 잘 모르실지 모르지만 사실 지금 제황님의 행보 하나하나에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바로 오신다고 고집만 부리지 않으셨으면 아마 공항에서 카퍼레이드라도 했을 겁니다.”

“바로 오길 다행이네요.”

제황이 무적성에서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외부의 소식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구도자와 같은 이들이 모인 곳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물론 아무리 무관심하다고 해도 ‘무적’ 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세계최강의 헌터를 배출한 곳이라는 자부심은 어쩔 수 없기에 모두가 제황을 알아보고 조심하지만, 최소한 그들은 강자에 대한 예우가 어때야 하는지는 아는 이들이다.

“결론은 제황님이 자꾸 이런 일을 하시면 저희가 많이 곤란해진다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예.”

운영지원팀장이 물러가자 제황은 전면에서 걸어오고 있는 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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