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위기의백린-3
#1
빠르게 위치를 이탈하며 제황은 다시금 공격을 재개했다.
그러나 지금 가하는 공격은 치명상을 입히기보다는 백린의 주의를 돌리려는 것이다
지끈거리던 허벅지의 상처는 이미 다 아물었다.
포격이 시작되면 반격을 시작한다.
-이제 공격보다는 방어에 좀 신경 쓰는 거 어때?
제황이 다친 게 마음에 안 드는지 궁기가 투덜거렸고 그녀의 말에 제황이 피식 웃었다.
그녀의 말대로 제황의 능력은 대부분 공격에 치중되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방어력을 암혼보와 용혈무로 보조하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둘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다음 랭크업 때 받는 특전으로 방어계열 스킬을 얻어볼 생각이야.
제황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생각은 없다.
-정말?
-그래.
사케노오스케와 오오가무시를 레이드하며 얻은 경험치로 A랭크 6레벨까지 상승시킨 상태였다. 몇 군데 돌아다니며 빠르게 사냥을 하면 곧 S랭크에 들어가게 되고 S랭크에 올라서면 예전에 한번 써봤었던 신규스킬획득권한이 생긴다. S랭크 특전이기 때문에 스킬은 최대 유니크까지 가능하다. 물론 그건 나중 일이기에 일단 한쪽에 고이 묻어둘 생각이다.
지금은 백린의 처치가 중요하다.
“궁기!”
-그래.
“포격이 시작되면 최대출력으로 ‘화신체’를 시작해줘.”
-최대출력? 할 수는 있지만 괜찮겠어? 네 여의용혈신공에 무리가 갈 수도 있어.
궁기가 걱정스럽다는 어조로 답했다. 이전에 사용했던 강도는 제황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의 적정선을 지킨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궁기가 할 수 있는 최대출력을 내면 제황의 몸이 궁기의 마나를 감당하지 못할 수 있었다. 지금 궁기는 예전의 궁기가 아니었다. 제황이 꽁꽁 싸매고 꺼내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킬 정도의 충분한 역량이 그녀에게 있었다.
“용혈신공과 여의보주를 믿어봐야지.”
-휴, 알았어.
궁기와의 대화를 끝낸 제황은 궁기의 시선을 통해 백린을 바라봤다. 여유 없는 모습을 보이기에 숨긴 패는 다 꺼낸 건가 싶었는데 뜬금없이 창궁신가의 무공이라는 새로운 패를 꺼내들었다. 성산을 지켰다는 삼신가 중 하나다. 족보가 꽤 복잡해진다.
마치 백린이라는 이의 프로필을 모조리 지우고 새롭게 창궁신가라는 것을 적어야 할 판이다.
“뭐 나도 가진 걸 좀 더 보여주지.”
상대가 그에게 패 하나를 보였으니 제황도 하나를 더 보일 차례다.
#2
뚜벅...뚜벅
비록 육신은 없지만 내리쬐는 햇볕은 따사롭기만 하다.
“이 얼마만인가.”
수호 가문으로써의 숙명을 지키지 못한 자책으로 창궁룡검에 영혼을 봉인하였다. 천년을 버텼기에 원한만이 남은 악령이 되고도 충분한 시간이지만 그의 강인한 영혼은 그 세월을 꿋꿋이 버텨냈다. 그러나 사무치는 원한도 세월의 힘은 이기지 못했다. 과거 백일기와 백린을 죽이려 했던 적도 수 차례...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살게 되자 이제 그에게 남은 희망은 후손을 찾는 것뿐인 신덕이었다.
챙! 채챙!
“오랜만에 맡는 사바세계의 향기로군.”
신덕은 느긋하게 걸으며 코를 벌름거렸다. 눈을 감은 채 내리쬐는 햇볕을 만끽하고 있지만 그의 손에 들린 창궁룡검은 끊임없이 휘둘러지며 화살들을 막아내고 있다. 신기라면 신기. 그때 백린이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신덕에게 말했다.
-저, 어르신.
-왜?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백린의 말에 신덕이 피식 웃었다. 지금 상대하고 있는 무련천가의 후예에게 얼마나 당했기에 못 본 사이에 이리 간이 쪼그라들었는지 안쓰러울 뿐이다.
-크큭, 신벌의 화살이 없는 무련천가다. 감히 내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냐?
지고한 무공의 경지만큼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신덕이었다. 그가 보기에 무련천가의 후예는 무공은 완성의 단계에 도달했지만, 아직 그 경지가 스킬의 틀은 벗지 못했다는 걸 공격을 주고받으며 본능적으로 감지 할 수 있었다. 스킬의 틀이란 무엇인가.
처음 그는 세이브라는 전지적인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스킬이라는 무소불위의 힘을 부여하는 것을 보고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가르침이라는 것을 인간의 머리에 강제적으로 주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세이브가 진정한 신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후일 스킬부여라는 것의 실상을 알았을 때 그는 실소하고 말았다.
스킬부여는 깨달음이 필요한 무공들을 스킬이라는 틀에 맞춰 잘라내고 재단하여 규격화 시켜버리는 아주 몰상식하고 멍청한 짓이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세이브라는 이 미친 시스템은 절대자를 추구하기 보다는 적당히 쓸 만한
병력을 생산하는 공장과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거대한 산이 있다. 이 산을 오르는 길은 수십 가지가 있다. 그런데 세이브는 그 산의 지도에서 다른 길들은 모조리 지워버리고 단 하나의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만 그려놓은 꼴이었다. 합리적인 면에서야 옳은 판단이지만 무공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편적인 학문이 아니다.
물론 무련천가의 후예가 그보다 훨씬 심오한 경지에 있는 것은 알지만 완전히 초월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공수를 주고 받으며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공격을 막고만 있는 것은 지금 그가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의심하는 것이 아니오라...
-이놈아. 나라고 이러고 싶은 줄 아느냐. 놈 백가놈이랑 놀러 다니더니 수련을 아예 등한시 했구나.
신덕의 엄한 질책에 백린이 입을 다물었다. 그가 이렇게 시간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백린의 몸이 그의 기술을 소화하기에는 너무 약하다는 것에 있었다. 지금 그는 창천신공을 돌리며 몸상태를 최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한 당대의 무련천가의 가주 또한 나와 정면으로 대치하는 어리석은 우는 범하지 않았다.
-그게 아닙니다. 신덕님은 봉인되어 계셔서 모르시겠지만, 상대는 단순히 무공만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군대의 포격을 이용해서도 공격합니다. 그것을 주의하지 않으시면...
-흥, 그깟 대포 공격 따위 모조리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신덕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신덕 또한 백린과 세상을 여행하며 바뀐 문물들에 대해서는 잘 알았고 신문물인 각종 미사일과 대포에 대해서도 경험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 파훼 방법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니... 휴.
-됐다. 저놈은 당해봐야 안다.
-저기···. 조상님. 몸은 지금 제 것이거든요.
백린은 제발 신덕의 저 자신감이 끝까지 지속되기를 바랬다. 그만큼 아까 당했던 그 공격은 무시무시했으니까. 그리고 곧 그가 그렇게 우려하던 제황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신덕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뭔가를 감지하고는 느긋하게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부릅떴다.
“저,저게 뭐냐.”
-피하세요!
그는 대한민국 포병들을 너무 우습게 봤다.
엄선되고 엄선된 베테랑 포병들이 10대의 K9M1 전차로 가한 TOT 사격은 과거 날아오는 미사일과 포탄들을 검강으로 갈라버렸던 경험이 있는 신덕에게도 꽤나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착탄하기 전 사전에 포착한 것은 칭찬해 줄만 하다. 그렇지만 무려 50여 발의 포탄이 하늘을 빼곡히 채우며 떨어지자 신덕의 입에서는 저절로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니미!”
기껏해야 수발의 포탄이 시간차를 두고 날아오는 경험만 가지고 있던 그는 자주포 한기당 5개의 포탄으로 TOT사격을 가하는 포격의 마법사들을 겪어보지 못한 게 실수였다.
신덕은 백린의 몸이 버티던 말던 창궁검가의 비기인 천뢰보를 시전해 하늘로 솟구쳤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의 판단력은 정확했다. 동시에 솟구치는 궤적에 있는 포탄 두 개를 검강으로 쳐내버렸다. 그도 포탄의 기본적인 원리는 알기에 멍청하게 탄두를 가르는 것이 아닌 측면을 공략했다.
그렇지만 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 48개의 폭발을 막지는 못했다.
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 화르르륵! 쾅!
“크허헉!”
발밑으로 치고 올라오는 거력에 검막으로 응수하며 최대한 신형을 위로 뺐지만, 무려 반경 200미터 내에 집중된 48발의 각종 포탄들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48발중 30발은 고폭소이탄이다. 폭발하는 순간 섭씨 2000도 이상을 발생시키는 소이탄 30발이 한 장소에 떨어졌으니 그 효과로 순간온도는 거의 4000도에 달했는데 말 그대로 쇠와 바위를 높이는 초고열이 발생해 화염의 폭풍이 만들어졌다. 게다가 지금 자주포에서 발사된 두 종류의 포탄은 마구잡이로 날린 것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초고열은 포탄에서 발생하는 모든 파편들을 초고열의 투사체로 만들어 버렸다.
6티어 몬스터를 대포로 잡아내는 한국 포병들만의 특기 중 하나다.
-이게 뭐냐!
-뭐긴, 무련천가의 후예가 우리 셋이 나란히 손잡고 옥황상제 앞에서 재롱떨라고 보내준 선물이지. 참 좋아하겠다. 저승차사들도 물리친 우리 셋이 오순도순 가면...
백일기의 비아냥거림이 들려왔지만, 몸의 주인인 백린은 지금 난리가 났다. 중첩되고 중첩되어 거의 폭풍수준으로 변한 초고열의 화염지옥이 발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걸 그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터터터터터텅!
검막을 찢고 들어오는 화염과 파편들이 몸을 두들기기 시작하자 몸에 걸치고 있던 방어구들이 형편없이 박살나고 찢어지며 백린의 맨살을 불태웠다. 신덕이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백일기의 말대로 셋 모두 사이좋게 저승길이다.
“나와라! 청룡!”
창궁룡검을 지면을 향한 채 신덕이 창궁룡검에 잠들어 있는 청룡을 깨워냈다.
“크르르르...”
검신의 끝으로부터 푸른화염이 치솟아 오르며 거대한 용의 머리가 치솟아 올랐다. 홍청백의 비늘과 사슴을 닮은 뿔을 지닌 그것은 나타나자마자 백린의 몸을 감쌌다. 소유자의 몸을 일차적으로 보호하는 비장의 수다.
“저것을 막아라!”
신덕의 말을 알아듣는지 청룡이 솟구쳐 오르는 불꽃을 향해 거대한 주둥이를 벌렸고 그 입으로부터 시작된 푸른 기운이 뿜어지며 불꽃과 팽팽한 대치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공중으로 치솟은 신덕은 가빠오는 숨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2차 포격이 날아오고 있다.
“흥! 두 번 당할까!”
그는 허공을 박차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미쳐 보지 못한 진짜 위협은 이어지는 포격 속에 교묘히 숨어 그를 노렸다.
-음?
위험을 감지한 신덕이 공중에서 몸을 회전하는 순간 그는 발견할 수 있었다. 쏟아지는 포탄들과는 전혀 이질적인 그러나 그것들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강기 덩어리가 포탄 속에 숨어 그를 향해 내리꽂히는 것을 말이다.
찰나의 순간 속에서도 신덕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공격을 쏘아냈다.
‘창궁무한검’
창궁룡검이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허공을 날았다. 연이은 창천신공의 무리한 운용으로 단전이 뻐근해졌지만 날아오는 강기덩어리는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창궁룡검과 그 강기덩어리가 맞부딪히려는 순간 강기덩어리는 부챗살처럼 펼쳐지며 창궁룡검을 지나쳐 신덕을 향해 돌진했다.
“창천강기! 커억!”
콰콰콰쾅!
입으로부터 터져나온 선혈이 공중에 흩뿌려지며 솟구쳐 오른 보람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 위로 포탄의 비가 한 치의 자비도 없이 쏟아졌다.
#3
“헉...헉...”
제황은 피투성이가 된 손을 긴급재생으로 회복시키며 숨을 가다듬었다. 손가락이 간헐적으로 떨리며 방금 전 공격이 너무나 무리했다고 외치는 듯 했다.
-괜찮아?
-그럭저럭
주먹을 쥐자 피가 주르륵 쏟아진다.
‘비상하며 춤춰라. 폭발하며 관통하는 강기의 소나기’
길고도 긴 무려 여섯 개의 속성이 걸린 무련궁술은 제황이 보유한 마나의 절반을 집어먹었다. 궁기가 걸어준 특급의 ‘화신체’ 가 있기에 마나는 채워지고 있지만 스킬을 성공시키기 위해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했기에 그 여파가 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