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10화 (210/301)

# 210

위기의백린-2

#1

“금적령술! 심연의 암막! 잔영의 거울! 추혼혈령! 비명횡사의 장!”

백린은 즉시발동이 가능한 술법들을 모조리 동원했다. 추혼혈령과 금적령술을 통해 제황의 위치를 확인하고 심연의 암막과 잔영의 거울로 그의 눈을 흐린 뒤 비명횡사의 장으로 반격에 들어간다.

몸상태도 아직 괜찮고 계획도 좋았다. 상대가 공격을 시작한 이상 추혼혈령과 금적령술은 적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상대가 제황이라는 것이었다. 술사에게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궁기의 조언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다.

퍼펑! 퍼퍼퍼펑!

“크아악!”

펼쳐낸 술법들은 단 1초도 제황의 공격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건물을 뚫고 나타난 화살들에 의해 벌집이 되어버린 백린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커억...쿨럭쿨럭...재생! 회복! 강화!”

무한고에서 꺼낸 부적을 붙이는 순간 백린의 몸은 재생에 가까운 회복으로 피해를 복구해 갔지만, 문제는 쉴 틈 없이 날아오는 화살들이었다.

“천방진!”

위해를 가하는 모든 공격을 차단하는 방어막을 꺼내 막아내지만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가슴이 진탕이 되는 느낌이다.

-아, 죽겠네요.

-두억시니라도 꺼내!

-두억시니 꺼내려면 피 뽑고 그림 그리고 수인 맺을 시간이 필요한데 그걸 저놈이 기다려 주겠습니까?

-그럼 차라리 걔들이라도 부르던가!

-그건 절대 안 됩니다!

백일기가 말한 그들을 부른다면 분명 죽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제황을 죽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죽어도 부르기 싫다. 그들을 부르는 순간부터 자신은 그곳에 끌려가야 하니까.

파칭!

천방진이 깨져버리고 화살이 날아든다.

-이놈아! 네가 죽겠는데 무슨 상관이야!

-아! 시끄러워요!

머릿속을 왕왕 울리는 백일기의 목소리를 치운 백린이 가슴을 노리며 날아드는 화살을 태도로 쳐냈다. 손이 울린다. 화살에 담긴 거력으로 인해 몇 대만 더 막으면 아마 도를 쥘 수도 없으리라. 완벽한 함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면초가에 몰린 건 오히려 자신이다. 실소가 터져 나오려 했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지금은 웃을 틈도 없다.

파가가가각!!!

“크악!”

지반을 뚫고 튀어나온 빛줄기가 백린의 발바닥을 관통하며 그대로 턱을 향해 돌진한다.

몸을 뒤로 던지며 간신히 피해냈지만, 직각으로 꺾이다시피 하며 날아온 화살이 머리를 노린다. 정말 질리도록 강력하면서 예측불허의 위치에서 날아와 목숨을 노린다.

“죽을까 보냐!”

퍼어어엉!!!

백린의 도에서 뿜어진 푸른 강기가 화살을 반으로 쪼개 버렸다.

“큭!”

몸을 과도하게 움직인 대가로 회복되어 가던 상처 부위가 다시금 터져나갔지만, 백린은 그에 굴하지 않고 검을 비켜 든 채 몸을 최대한 낮췄다. 어느새 수십 개의 붉은 강기가 전후좌우 위를 모조리 점한 채 날아들고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

“창궁십이격!”

파파파파파팡!!

“컥!”

백린의 몸을 중심으로 터져나간 여덞 줄기의 강기가 제황의 붉은강기들을 모조리 조각조각 내버렸다. 그러나 십이격 중 제 팔격을 가하던 백린의 복부가 무리한 움직임으로 터지자 끝내 후속타를 잇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하, 씨발, 진짜 뒈지겠네.”

차라리 금적령술을 펼치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그의 감각기로 싱싱한 고깃덩이를 향해 날아드는 피라냐 같은 화살 공격들이 생생히 느껴지고 있었다. 도저히 저항할 마음이 안 든다.

백일기의 말대로 진짜 ‘그들’을 부를까 하고 고민하던 찰나...

신덕의 한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정말 한심하기 이를 데 없군.

“하하, 큭···. 그, 그러게요.”

-웃어? 내가 널 그렇게 가르치더냐.

-죄송합니다.

백일기에게 술법을 배우기는 했지만, 진짜 그의 첫 번째 사부는 신덕이었다.

사실 그가 첫 각성을 했을 때 백린은 근접딜러에 가까운 자연각성을 이루었고 배우기 어려운 술법보다는 검을 먼저 휘둘러야 했다. 천주백가를 뿌리 깊이 증오하고 있던 신덕이었지만 백린을 죽이기보다는 그를 이용할 목적을 지니고 있던 신덕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배운 검술 한 가닥만으로도 그는 과거 엘어스로 건너가 초토화를 시키고 헬칸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네놈이 뒈지는 건 상관없다. 그렇지만 이대로 가기는 좀 억울하군.

백린의 어깨 위로 푸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거칠게 끼어드는 신덕, 백린은 반항할 수 없다.

-내가 한번 붙어보자.

-앗! 설마 지금 그걸 쓰시려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신덕이 마음먹은 이상 그는 몸의 주도권은 신덕의 것이다.

백린이 평소 신덕의 영혼을 봉인해 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그 영혼이 너무나 강하여 그가 몸을 차지하려고 마음먹으면 백린으로서는 버틸 수가 없다.

백린을 밀어낸 신덕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이따위 것...”

신덕은 손에 들려 있던 태도를 던져버리고는 등에서 창궁룡검을 뽑아들었다.

몇 대의 화살이 날아들었지만 신덕은 창궁룡검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 그것들을 가뿐하게 쳐내 버렸다. 백린이 그리도 힘겹게 쳐내던 것을 그는 장난스럽게 휘두르는 것만으로 처리해 버린다.

-멍청한 놈! 잘 봐라.

창궁룡검을 늘어뜨린 신덕이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수십 대의 화살이 날아들었지만 신덕은 창궁룡검을 여전히 무성의하게 휘두를 뿐이다.

두 번의 칼질은 필요하지 않다. 화살을 정면으로 막아내는 것도 아니다. 검면으로 툭툭 쳐서 화살을 날려버릴 뿐이다.

뚜벅뚜벅 걷던 신덕의 고개가 하늘을 향했다. 한 대의 화살이 내리꽂히고 있는데 내재한 거력이 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을 따끔따끔하게 만든다.

“흐음, 정말 멋지구나. 저 아름다운 것을 다시 볼 수 있을 줄이야. ”

신덕은 순수하게 찬탄했다. 이 몸의 주인인 백린은 수십 년 동안 그가 가진 힘의 정수를 십 분지 일도 가져가지 못했지만 지금 이 화살의 주인은 왕년의 무련천가의 가주를 보는 것 같다.

“정말 완벽하게 이었군.”

아마 상대가 눈앞에 있었으면 신덕은 장하다며 어깨를 두들기고 칭찬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적으로 만난 상태... 안타깝게도 신덕은 마냥 칭찬만 해줄 수 없는 입장이다.

창궁룡검을 비켜든 신덕의 몸이 살짝 굽어졌다.

“창궁십이격...”

파카캉!!!

창궁룡검이 휘둘러지며 푸른 기운이 번쩍인 순간 하늘로부터 내리꽂히던 화살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창궁십이격 중 첫 일격일 뿐이지만 그의 동작은 이격이 필요치 않다.

사케노오스케조차도 단 한방에 침묵시켰던 공격이 그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역시 더럽게 강하구나. 창궁신가.

-대가리로 노는 천주백가 놈들이 발악해봤자 거기서 거기지.

-뭐야?!

백일기가 발끈하며 외쳤다.

-크크큭 왜 내가 틀린 말 했느냐? 천주백가 따위가 어딜 감히 무련천가에게 정면으로 덤비느냐. 우리 창궁신가 정도는 돼야지.

-크흐...

신덕의 말을 백일기는 반박할 수 없었다.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그의 말이 맞다.

창궁룡검을 어깨에 맨 신덕이 말했다.

-백린, 이번에는 넘어가 주지만 다음에는 없다. 어서 빨리 창궁신가의 핏줄을 찾아라. 알겠느냐?

-예. 어르신...

“그건 그렇고...”

신덕의 고개가 돌아갔다. 보이지는 않지만 찾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백린이 시전해 놓은 탐지술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수법은 그보다 훨씬 고절한 방법이다. 신덕이 손을 뻗어 허공을 쥐었다. 그리고 빙긋이 웃었다.

“거기군.”

#2

-기세가 달라졌어!

-그래.

제황은 시위를 당기던 손을 멈췄다.

꺼림칙한 기분이다. 궁기안으로 보이는 백린이 들고 있던 무기를 버리고 등에 매고 있던 또다른 무기를 꺼내든 후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이전까지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막기에 급급했지만, 지금의 그는 별 힘도 들이지 않고 그것을 쳐내고 있었다. 마치 사방에 눈이 달린 것 같다. 제황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저렇게 감각적으로 할 자신은 없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마나를 사용하는 테크닉 조차도 달라졌다.. 마치 단숨에 몇 단계를 뛰어넘은 초강자를 보는 느낌이다. 비천격과 애기살을 꺼낸 제황이 공중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무음시”

‘비상하며 춤추며 꿰뚫는 강기의 화살’

슉...팡!

단 1인의 한해 제황이 낼 수 있는 최고의 공격력을 머금은 화살이 하늘로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암혼보를 시전해 위치를 이동하며 궁기안을 통해 상대의 대응을 관찰한다.

치솟은 화살이 소리 없이 내리꽂힌다. 바뀌기 전의 그라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공격...그러나 그는 내리꽂히는 화살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피하지도 않는다. 단지 손에 든 태도를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그것을 박살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제황이 상상하는 범주를 훨씬 뛰어넘은 공격을 감행했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무기가 사라졌다.

촤아아악!

-위험해!

궁기의 경고와 함께 푸른 번쩍임이 제황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콰가가가강!!!

스치고 지나간 후에야 맹렬한 소음이 귀를 진동시켰다. 초음속으로 움직이는 뭔가가 제황의 가슴 어림을 찢고 지나간 것이다.

-이기어검이야!

-무협지냐!

파아아앙!

너무 빨라서 흐릿한 그 흔적만을 뒤쫓을 뿐이다.

아니 그 궤적 자체가 제황의 화살에 버금갈 지경이다.

-이건 분명 창궁신가의 창궁무한검! 아니 이 무슨 개 뜬금없는 전개야!

-그게 무슨 말이야!

-창궁신가의 절기가 나타났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창궁신가?”

무한하게 쓸 수는 없는지 12번의 공격을 끝으로 푸른 섬광이 잠시 멈췄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이미 제황의 몸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마지막에 훑고 지나간 그것은 제황의 허벅지를 깊게 베어 버린 것...

무릎을 꿇은 제황이 허벅지를 짚었다.

불에 덴 듯 화끈거린다. 빠른 재생을 펼치지만, 치유는 더디기만 하다.

-강기에 당해서 세포 자체가 소멸해 버렸어.

굳이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보통 상처가 아니라는 건 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암혼보를 어떻게 파훼한 거지?”

지금껏 그 어느 상황에서도 믿었던 암혼보가 간파당해 꽤나 당황한 제황이다.

-만약 지금 네 상대가 창궁신가라면 가능해.

-뭐?

-창궁신가의 비기 중 하나인 창천신공은 무련천가의 용혈신공에 맞먹는 고절한 무공이야. 용혈신공이 공격계의 최강이라면 창천신공은 모든 마나를... 조심해!

퍼어어엉!

-지배해!

-선문답 같은 이야기 말고 좀 더 명확할 수는 없는 거냐?

-겪어보고 깨달아.

-어쩔 수 없지.

상대의 공격이 다시금 재개되었다.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상대의 공격은 제황의 그것처럼 음속 따위는 아득이 돌파하기에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제황은 공격보다는 회피 위주로 전략을 수정했다. 예상하지 못한 적이 나타났으니 최대한 상대의 능력치를 파악한 후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만 나만 당할 수는 없지.”

가만히 피하기에는 배알이 꼴린다. 제황은 헤드셋의 버튼을 눌렀다.

“이루미 새로운 좌표 갑니다.”

-알겠습니다!

“몬스터가 아닌 대인공격에 특화된 포격 가능할까요?”

눈치빠른 이루미가 패널을 조작하며 답했다.

-고폭소이탄과 철갑파편탄이 준비 중입니다.

“좋습니다.”

-자주포 10문으로 TOT 사격을 가하겠습니다. 폭격반경 200미터이나 안전을 위해 최대한 떨어지셔야 합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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