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절대자-2
#1
-더럽게 크네.
-그러게 말이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10티어 몬스터 오오가무시를 앞에 두고서도 제황의 목소리는 한점의 떨림도 없었다. 건물 옥상에 엎드려 있던 제황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듯 몸을 쭉 펼쳤다. 허리도 두어 번 돌리고 팔을 빙빙 돌리며 몸을 푼다.
이제 완전히 변태를 끝내가는 오오가무시를 바라보며 제황은 습관적으로 바람과 거리를 확인했다.
-궁기
-왜?
-저거 잡아서 네가 마나석을 흡수하면 최전성기의 네가 되는 건가?
-아마?
대답하는 궁기의 목소리가 묘하게 즐겁다. 최전성기의 궁기의 힘이라는 건 무려 반신의 경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제황조차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경지. 몬스터로 따지면 10티어에서 11티어 가량 될 것이다.
궁기 말로는 자기가 왕년에는 번개도 좀 날려주고 산도 들었다 놨다 했다 했다더라.
-그럼 계속해서 마나석을 흡수하면 종국에는 신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어?
-그건 아니야. 지닌바 기운이 좀 많아질 수는 있지만, 반신과 신의 차이는 어마어마해. 마치 가짜 초콜렛맛 사탕과 최고급 수제 초콜렛의 차이라고나 할까? 가짜 초콜렛맛 사탕을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최고급 수제 초콜렛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물론 길이 없는 건 아니지만...
-흠, 그렇군.
-뜬금없이 그건 왜 물어?
-그냥, 네가 나와 맺어진 맹약을 완수하면 반신이 된 넌 혼자 뭘 하면서 살까하는 의문이 들어서... 난 분명 죽고 없겠지.
-글쎄, 그때의 내가 혼자라는 보장은 없지.
-그게 무슨 말이야?
-흐흥, 네가 죽기 전에 술법으로 시간을 굳혀서···. 널 가지고 음후후후후...
-그만...
왠지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궁기의 기상천외한 계획을 슬쩍 엿들은 제황은 그녀를 이해하기를 포기하고는 고개를 돌려 오오가무시를 바라봤다. 지금은 일단은 레이드에 신경 쓸 때다.
지이이잉
무한고에서 한 대의 애기살이 튀어나와 비천격으로 들어갔고 그것을 비천궁의 시위에 걸었다. 이미 수십만 번을 했던 한결같은 동작이다.
시위를 당기기 전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한 제황이 눈을 감았다.
‘신벌의 화살이 죽이지 못할 건 없다.’
여의보주를 넘기며 선조인 천강이 한 말이다. 그리고 제황은 그 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는다.
“널 죽이겠다.”
단전의 여의용혈신공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심장에 박혀 잠들어 있던 여의보주도 함께 눈을 떴다.
두근...두근...두근...
깨어난 여의보주는 마치 기지개를 켜듯 여의용혈신공과 함께 제황의 몸을 순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제황이 보고 있는 오오가무시를 적으로 인식하기라도 했는지 그것에 대해 맹렬한 적의를 보이며 빠르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츠츳...츠츠츳...
웅혼한 힘이 단전을 시작으로 사지백해를 맹렬히 흐르기 시작했다. 이틀간에 걸쳐 사케노오스케를 레이드하기는 했지만 마나소모를 적절히 조절했고 몸의 피로도 거의 없다.
여의보주는 신의 힘. 그 힘을 몸에 가두게 되자 세상 만물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졌다.
-여의보주에 먹히지 마. 그 힘은 네 것이 될 수 없어.
여의보주의 힘에 심취하려던 제황의 정신을 궁기가 건져 올렸다.
-고마워.
-흥. 잘해.
-그래.
궁기의 까칠한 반응에 심호흡을 한 제황은 다시금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제황의 심장어림에서 출발한 붉은 광휘가 제황의 양팔을 타고 비천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 방에 보내야 하니까 강렬하게 한방 가보자.
[화신체]
[궁기에 의하여 모든 능력치가 +10 증가합니다.]
[궁기에 의하여 마나량이 +5000 증가합니다.]
[궁기에 의하여 마나회복율이 90프로 증가합니다.]
[궁기에 의하여 스킬공격력이 100프로 증가합니다.]
“흐으읍!”
제황은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꾹 눌러 참았다. 강렬하게 한 번 가자고 하더니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버프다. 부하가 걸린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거의 삼분에 일 이상 늘어난 능력치가 몸을 보조하지만, 그마저도 부족한지 여의용혈신공과 여의보주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미···. 미친!
-호호호, 집중! 집중!
궁기의 웃음소리 속에 제황은 정신이 모았다.
신벌의화살이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예전 엘어스에서는 마나가 부족해 중간에 멈춰야 했지만, 지금은 소모되는 양을 궁기의 화신체 스킬이 어느 정도 보조를 해주고 있어 버틸 수 있다.
파칙···. 파지직...파칙···.
제황의 마나와 여의보주의 신비한 기운이 뭉쳐 비천궁과 비천격 애기살에 주입되기 시작되었고 이전에 보았던 그 문양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위이이이...
뭉치고 뭉친 기운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고 주위의 바람이 제황을 향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황은 깨달았다. 예전에 그가 엘어스에서 사용했던 신벌의화살은 진짜가 아니었다. 그때는 부족한 힘을 박박 긁어 간신히 초현해 낸 것이지만 지금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벌의화살이라고 할 수 있다.
우우우웅...
그리고 크립의 바다 한가운데 웅크리고 있던 오오가무시가 그 거대한 머리를 제황을 향해 돌렸다. 제황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다.
“그르르르....”
13개의 눈으로 제황을 노려보던 오오가무시의 입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동굴에서 짐승의 목울음이 흘러나왔다. 폭발적인 살기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순간...
콰아아아아!!!
예비동작도 없다.
맹렬한 폭음과 함께 전장 200미터의 거대한 몬스터 오오가무시가 제황을 향해 날아왔다. 그 거대한 몸의 구현했다고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역동적인 움직임이다. 무려 2km 가량이지만 오오가무시에게는 고작 2km 였다.
쾅! 콰쾅! 콰콰쾅! 쾅쾅!
오오가무시가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지면이 움푹 들어가고 그 진동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거대한 동체가 지나가고 뒤이어 들이닥친 폭풍이 남아있는 모든 것을 박살내 버렸다. 고작 손톱만하게나마 보일 거리에서 순식간에 제황의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후우...”
그러나 제황은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죽음의 사자가 지척이건만 오히려 너무나 평온하다. 작은 호흡을 내뱉으며...
투우웅
비천궁의 시위가 놓아지고 ...
파아아아앙!
기분 좋은 탄궁음과 함께 신벌의화살이 오오가무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달리던 오오가무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작은 점을 발견했다. 너무나도 빠르기에 피하기는 늦었지만, 오오가무시는 굳이 그것을 피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 자신의 거대한 신체에 비해 너무나도 미미하다. 부딪히기만 해도 허망하게 부서져 흩어질 듯한 그런 점이다.
저것이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사케노오스케들이 죽어가며 자신들을 죽인 이에 대해 알려줬다. 그 원수가 바로 눈앞에 있다.
“크라라라락!”
오오가무시는 공격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은 사케노오스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콰쾅! 쾅!쾅!!!
강력한 뒷발로 땅을 박차며 몸을 한층 가속했다.
저 작디작은 미물을 단숨에 박살 내 버릴 것이다. 그래서 감히 자신을 건드린 씻을 수 없는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크허어어엉!”
오오가무시는 그 작은 점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대로 정면돌파할 요량...
부딪히는 순간 뭔가 머리속으로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무시했다.
그런 작은 것 따위는 박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시 한 발을 내디디고 이제 지척에 보이는 미물을 향해 그 거대한 주둥이를 벌릴 때였다.
“크릉?”
오오가무시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그 생각을 끝으로 오오가무시의 시간은 단절되었다.
#2
신벌의화살과 오오가무시가 부딪히는 순간, 제황은 신기한 것을 목격했다. 오오가무시에 부딪힌 그것은 파고든다거나 폭발하지 않았다. 오오가무시를 이루고 있던 수천수만 개의 촉수들이 알아서 신벌의 화살에게 길을 내주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입이 파먹고 들어가는 것처럼 오오가무시의 몸에 거대한 터널을 만들어내며 신벌의 화살은 사라져 버렸다.
타탁!
제황이 공중으로 날아오르자 그의 발밑으로 오오가무시의 거대한 신체가 그가 서 있던 건물을 그야말로 가루로 만들어 버리며 지나쳤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건물의 파편을 밟고 옆 건물로 내려앉은 제황은 새로운 화살을 준비하지 않았다. 공격은 이것으로 끝이다.
콰쾅! 쾅쾅! 쾅!
땅에 머리를 처박은 오오가무시가 거대한 고랑을 만들어내며 주욱 미끌어져 갔다. 마지막 순간 뿔이 땅에 걸려 물경 2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동체가 공중을 한 바퀴 돌아 땅에 내팽개쳐졌다.
그리고...침묵...
더 이상 오오가무시에게서 생명반응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레이드를 바라보는 모든 이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10티어 몬스터의 죽음치고는 너무나 허망한 최후였다.
-저... 저게...
백린은 입을 벌린 채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을 가득 채울 것 같은 보기만 해도 압도당할 거대한 동체가 공중을 회전하는 영화에서 볼 법한 장면이 눈앞에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다.
쿠우우우우웅!!!
산이 바닥에 내리꽂혔고 그곳에서 발생한 바람이 폭풍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밀려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미친 듯이 휘날리지만, 백린은 눈 하나 깜짝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리는 지금 그의 눈앞에서 벌어진 이 비현실적인 광경에 생각하는 것을 멈춘 상태였다.
이미 시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처리하기도 벅차다.
그리고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에 깃들어있는 선조도 함께 체감하고 있었다.
10티어 몬스터 오오가무시가 쓰러졌다.
-선조님.
-...
-아, 역시 이건 꿈이구나. 선조님이 안계시네.
-현실도피하지마라! 이놈아!
찰싹!
백린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지려는 찰나 어디선가 나타난 손바닥이 백린의 뺨을 후려갈겼다.
-제가 지금 뭘 본겁니까.
-저 정도로 강했었나....
-저게, 신벌의화살입니까?
-맞기는 한데... 제길 계산착오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놈에게 내가 모르는 힘이 있다는 소리다. 신벌의 화살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그것을 다루는 것은 인간이기에 명백히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선조님이 모르는 힘입니까?
-모른다. 빌어먹을... 아니 그걸 떠나서 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예?
-놈이 널 봤다!
-헉!
깜짝 놀란 백린이 천리안을 통해 제황을 바라봤고 그 순간 백린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제황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럴 리가 없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은 아예 건물 안에 숨어서 술법을 통해 지켜보던 중이다. 그뿐일까. 평범한 이들에게는 깨알같이나 보일 거리에 온갖 술법을 중첩해 자신을 숨겼다.
절대 들킬 리 없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어째서 저 괴물이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는 것일까. 등에서 오싹하고 소름이 올라온다.
-궁기 확실하지?
-그래. 저거야.
궁기의 말과 함께 사방천지에 흩어져 있던 추적의인들이 하나하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단 한 개의 추적의 인만이 남았다.
숨바꼭질의 술래를 잡았으니 이제 이 숨바꼭질을 시작한 놈을 잡을 차례다.
-거기 숨어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