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
2차 대결 -2
#1
대융합이 있고 60년 인류의 역사에서 인류를 가장 많이 죽인 몬스터는 어떤 것일까? 오크? 오우거? 혹은 7티어 8티어 9티어의 어마어마한 몬스터? 몬스터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는 정말 뜻밖이었다.
그것은 바로 고블린이었다.
그렇다. 인류를 가장 많이 죽인 몬스터는 바로 고블린이었다. 고작해야 1티어 몬스터로 건장한 성인이 무기 하나 들면 때려죽일 수 있는 몬스터다. 그런데 그 고블린이 인간을 가장 많이 죽였다.
왜일까?
그 이유는 첫째 고블린은 겁이 많다는 것이다.
겁이 많기에 야생의 본능에서 생존에 좀 더 특화되어 있었고 강자를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지녔다. 고블린은 철저히 약한 인간만 노린다. 늙었거나 다쳤거나 혹은 너무 어리거나 말이다.
두 번째로는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게 고블린들에게 가장 많은 인간이 죽어나간 이유이기도 하다. 너무 약하기에 숨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일단 어디든 숨고 거점을 마련한 뒤 개체수가 늘면 천천히 사냥을 시작한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일반인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냥한 식량은 아주 남김없이 먹어치운다. 흔적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세 번째는 약하기 때문에 번식이 뛰어나고 대단위협동공격을 한다. 그렇게 몬스터에게 협동공격이라는 옵션은 무섭다. 굳이 그것은 예를 들어 설명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그 협동공격의 습성이 최악의 경우로 발전할 때가 왕왕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 그 경우 중 하나가 펼쳐지고 있었다.
꾸어어어어엉!!!
쿵쿵쿵쿵...
크립을 벗어나 도쿄 시내를 내달리는 수십 마리의 사케노오스케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일제히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 주둥이로부터 뿜어지는 엄청난 양의 크립이 전방에 모든 것을 휩쓸고 박살내며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저들 딴에야 최선의 공격이겠지만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며 공격하고 있는 제황의 입장에서는 허공에 하는 삽질이 좀 더 건설적으로 보일 것이었다. 브레스로 인해 건물들이 무너져 사케노오스케들을 덮친다.
꾸어어억! 꾸악! 콰악!
무너진 건물을 밟고 다시금 수십 마리의 사케노오스케가 몰려들었다. 바로 건물 위를 날아다니며 밉살스럽게 자신들을 공격하는 제황을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좋네.”
건물의 무너짐으로 십여 마리의 사케노오스케가 죽은 것을 확인 한 제황이 짧게 감상을 말하고는 다시금 시위를 당겼다.
크립을 뚫기 위해 필요한 마나량은 의외로 상당하다. 물론 평범한 헌터들이 보자면 쉽게 날리는 것 같지만 관통의 화살로 인해 소모되는 마나량을 따지면 평범한 헌터들은 채 10발도 날리지 못하고 그대로 방전되리라.
처음 사냥을 시작하고 약 30분이 지났을 무렵 사케노오스케들로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적극적 공격을 위해 크립을 벗어난 것이다.
크립을 벗어나지 않는 그들에게 제황을 얄미운 습격자였다. 놈들은 육지에서도 엄청난 속도를 냈으며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수십 마리가 일시에 달려들었다. 초반에는 너무나 빠른 속도에 살짝 당황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저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십여 분이 지났을 무렵부터는 제황의 입가에 자그만 미소까지 드리워 있었다. 크립을 빠져나오자 화살에 투입하는 마나의 양은 획기적으로 줄이고 이후로 매우 경제적인 사냥이 가능해졌다.
무련천가에서 짚어 준 사케노오스케의 어이없는 약점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횡재했네.
-그러게 말이야.
마리당 거의 17000에서 20000 정도의 경험치를 얻고 있는데 이것은 거의 7티어 몬스터를 레이드 했을 때나 얻을 수 있는 수치였다. 3시간이 지난 지금 그런 숫자를 벌써 백여 마리 가량 사냥 했으니 만약 이대로 계속 레이드를 지속할 수 있다면 아마 며칠 안에 A랭크를 돌파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전에 사냥했던 9티어 몬스터 베히모스나 블랙사이클롭스 등으로 인해 상당한 경험치를 얻었더라도 단발성으로 얻는 그런 대량의 경험치보다 이런 식으로 얻는 경험치가 훨씬 짭짤한 건 부정할 수 없으리라.
-슬슬 옮겨야겠군.
몰려든 사케노오스케로 인해 또다시 그가 서 있던 건물이 휘청이기 시작했고 제황은 서둘러 다른 건물의 옥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금 시위를 당긴다.
파아아앙!
슈슉!
스킬을 머금은 애기살이 사케노오스케 한 마리의 머릿속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고 다른 놈들은 그에 분노하듯 일제히 머리를 들어 제황을 향해 브레스를 발사했다.
콰콰콰칵!
그러나 그런 브레스 따위는 어차피 건물이 대신 맞아주고 있는 참이다.
-건물이 정말 튼튼하네.
-일본의 건물들은 내진설계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하니까.
궁기와 잡담을 나누면서도 제황은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다.
콰쾅! 쾅! 콰콰쾅!
꾸아악! 꾸악!
사케노오스케는 발성기관이 없는지 쥐어짜내는 특유의 비명을 지르며 하나하나 죽어 나갔다.
투우우우웅!
오오가무시로부터 시작된 강렬한 충격파가 온 사방을 휩쓸었고 그 충격파를 느낀 사케노오스케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마구잡이로 박치기를 하며 건물을 물어뜯었다.
-이놈들이 저 큰놈의 명령을 듣는 다는 것도 확실한 것 같네.
제황이 몸을 날리며 멀리 오오가무시 쪽을 바라봤다. 아직까지도 게이트에 몸의 절반을 걸치고 있는 오오가무시의 표면이 꿈틀거리며 더욱 많은 양의 크립들을 뱉어냈다.
“어라?”
특이한 걸 발견한 제황은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입을 벌렸다.
오오가무시와 게이트의 사이로 수십 마리의 사케노오스케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투우우웅! 투우웅!
-널 죽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아.
-뭐 덤벼주면 고맙지.
그것을 본 제황은 오히려 얼굴이 미소를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너무 싱겁다 싶었다.
오오가무시가 내뿜는 크립의 양이 많아지자 크립의 바다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면 지금 제황이 있는 곳도 크립에 덥히리라. 다음 건물을 향해 몸을 날리면서도 제황은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다.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를 지은 채...
#2
제황을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다.
-어떻게 할 거냐. 후손아.
-...
-저게 진짜 네가 계획하는 모습이냐?
-아니요.
백린은 씁쓸한 표정으로 제황을 바라봤다.
제황이 사냥을 시작하고 이틀이 지났다. 이틀 동안 백린은 제황을 관찰하면서 참 많은 감정을 느껴야 했다. 질투하기도 하고 경원하기도 했으며 지금에 이르러서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만약 저런 친구가 저와 함께 해줬었다면 희생은 필요 없었을지 모릅니다.
-동감한다.
강하다. 다른 이들은 단지 9티어몬스터를 레이드 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9성 헌터라고 칭송하지만 백린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자신이 이틀간 본 것의 반에 반도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지독하게 강했다.
게다가 지금도 계속 강해지는 중이다.
신화속의 인물에 비견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물의 입에 성장의 물을 쏟아부어준 격이다.
-제가 폭렙을 시켜버렸네요. 엔드릴의 파편도 다썼는데.
이 게이트를 만들기 위해 엘어스에서 챙겨온 엔드릴의 파편도 다 갈아넣었다.
-미친놈
-지금이라도 나가서 ‘사실은 내가 너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런 일을 꾸몄다 해볼까요?’
-흠.
백린의 약한 소리에 선조 또한 처음으로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그들의 적으로 상정된 제황은 심각하게 강해져 있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키가 반 뼘 정도 더 커졌다. 몸의 크기도 조금 더 커졌다.
제황의 성장기가 끝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A랭크 6레벨이네.”
혼잣말을 한 제황의 몸에 힘을 줬다.
두드드득...
입고 있던 것들이 모두 작아져 버렸다. 옷이 작아진 것이 아닌 제황이 커진 것. 제황은 이곳에서 무려 6개의 레벨을 올릴 수 있었고 조금 전 얻은 보너스 스텟을 모두 근력에 투자한 제황은 팽팽하게 당겨오는 방어구들을 느슨하게 조정했다.
근력: 18
제황이 가진 본래 힘의 18배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에 왔을 때 제황의 근력이 16.5배였으니 고작 제황 한명 반분 강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었다.
근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힘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속도는 더 빨라지고 공격은 더 무겁고 매섭게 변하며 방어는 더욱 단단해진다. 육체적인 모든 것이 다시 한 번 한계를 돌파했다.
우드드득... 투툭...
손에 끼고 있던 슈팅글러브의 이음새가 힘을 준 것 만으로 끊어져 버렸다.
“바꿔야 겠군.”
제황은 무한고에서 새 슈팅글러브를 빼서 손에 끼웠다. 벨크로를 다시금 조종하며 전방에 보이는 오오가무시를 바라본다.
“설마 끝인거냐?”
제황은 오오가무시가 친구라도 되는 듯 물었다. 아니 어설픈 친구보다 나은 게 오오가무시다. 오오가무시는 제황에게 경험치라는 것을 선물해 줬으니까. 물론 그 뒤에는 백린이 있었지만 어차피 진짜 고마워서 꺼낸 말은 아니다.
푸쉬이이이...
등에 난 구멍으로 크립 대신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왔다. 크립의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사케노오스케들의 시체 뿐만 아니라 오오가무시의 밑으로도 사케노오스케의 사체가 산처럼 쌓여져 있었다.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사케노오스케는 없다. 이틀간 추가로 쏟아져 나온 사케노오스케는 물경 수백 마리... 그렇지만 지금 남은 것은 오오가무시와 제황 뿐이다. 만약 이것이 영화나 소설이라면 주인공인 제황은 비장한 표정으로 오오가무시를 향해 화살을 날려야 했을 테지만 제황은 오오가무시를 공격하지 않았다.
“좀 더 쏟아내봐.”
“쉬이이익...”
“흠.”
침묵하는 오오가무시를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린 제황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무한고에서 에너지바를 꺼내 씹기 시작했다.
-뭐해?
궁기가 물었다.
-아깝잖아. 시간이 지나면 좀 더 나올지도 모르지.
오오가무시를 욕실 다 쓴 치약 짜내듯 할 기세다.
-아! 그 생각을 못했네. 역시 우리 제황이는 살림도 잘할 것 같아.
-뭐 이정도야 당연하지.
둘의 만담을 듣자하면 마치 마트 신선코너에서 50% DC 상품을 번개할인 시간에 90% DC로 사온 신랑을 칭찬하는 새댁 같다. 물론 실상을 까보면 무려 천여마리가 넘는 7티어급의 몬스터를 때려잡고서도 배가 고프다는 듯 티어측정불가의 몬스터를 계속 짜내려는 미친 인간이 하나 있을 뿐이다.
-쟤 뭐하는 걸까요.
-힘이 다 떨어진 게 아닐까? 오오가무시 레이드를 앞두고 부족한 마나를 채우려는 거겠지.
-아. 그렇군요.
워낙 인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던 제황이었기에 잠시 착각 해버린 백린이었다. 그렇다 상대는 지금 모든 힘을 소모하고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감히 정면에서 덤빌 엄두가 나지 않는 괴물 중에 괴물이다.
-그럼 저 표정도 모두 저를 혼동시키기 위한 미끼군요.
너무나도 여유로운 표정이다. 무려 ‘왕의씨앗’을 앞에 두고서도 저렇게 태연히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건 강함을 떠나 그 대담함 마저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후, 아깝네요.
-뭐가 말이냐.
-하필이면 저런 녀석과 원수지간이라니... 으아! 억울해! 아니 솔직히 저놈이랑 저는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는데 왜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겁니까.
-숙명이다.
-뭔 숙명이요. 어차피 천년간 아웅다웅하며 지랄맞게 놀았으면 이제 후련하게 풀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 나라고 그러고 싶지 않겠냐. 왜 네가 가서 한번 말해보지?
-뭘 이야기해요. 어차피 이제 죽게 될 텐데...
손을 모으는 백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왕의 분노가 천지를 덮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