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열성팬-2
#1
본래로라면 리아가 정신을 차렸으니 그냥 나와야 정상이지만···.
-쟤들이 다 모여서 신위스킬의 사상력이 되는 거야. 좀 참아봐.
-끙.
예전에 궁기와 신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막연히 이럴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담담히 넘겼지만, 막상 그 숭배의 대상이 되니 귀찮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한편으로는 오전에 대외업무팀장이 그에게 했던 말도 떠올랐다.
“그녀들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
“저렇게 열광적으로 제황님에게 미치는 것도 저는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는 소리죠. 저들에게 있어서 제황님은 이 세상에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왕자님과 같습니다.”
“왕자요?”
“예. 저분들을 보시죠. 모두 어린 나이에 국가를 대표하는 위치에 오른 이들입니다. 모두의 우러름을 받는 존재들이며 떠받들어지는 이들입니다. 단순히 얼굴이 예뻐서 그 위치에 오른 게 아닙니다. 저들도 그들의 국가 내에서는 단순한 천재를 뛰어넘어 불가사의한 존재들입니다.”
말을 하던 대외업무팀장이 매고 있던 넥타이를 조금 풀었다.
“후우,아직도 제황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이렇게 긴장되는군요.”
그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갸웃했다.
“혹, 제게 압박감 같은 것을 느끼십니까?”
평소 철저히 자신의 마나를 관리하는 제황이기에 혹 자신이 무심결에 기운을 풀어놨는지 물었다. 그러나 피식 웃은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황님의 통제는 언제나 완벽하십니다. 아마 제황님의 얼굴을 모르는 이들 사이에 계신다면 그 누구도 제황님을 의식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느끼는 것을 예로 들자면 음... 아, 과거에 일했던 곳의 최고책임자와 독대를 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군요. 그건 마나라던가 스킬의 힘이 아닙니다. 그냥 거인의 존재감이라고 해두죠.”
“그렇군요.”
제황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과거 그런 비슷한 것을 몇 번 느꼈다. 가장 처음 느꼈던 것은 바로 권제 그리고 무련천가의 마지막 가주이신 천강에게서 그가 말한 비슷한 것을 느꼈었다.
“말이 샜군요. 아무튼, 각 국가에서 그런 떠받듦을 받는 그녀들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녀들에게는 갈증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지요. 바로 환상에 대한 갈증”
“환상에 대한 갈증이요?”
“네. 갈증입니다. 그녀들도 헌터이기 이전에 소녀이며 아직은 여성입니다. 어리지요. 그런데 그녀들에게는 꿈꿀 대상이 없습니다. 내면에 지닌 고민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환상이 필요한데 그녀들에게는 그런 대상이 지금껏 없었습니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별을 보며 의지하듯 바라볼 그런 존재 말입니다”
“환상이라···.”
“보통 평범한 이들은 아이돌 가수나 혹은 잘생기고 유능해서 매스컴에 출현하는 헌터들을 환상의 대상으로 삼지요. 그들에 숭배하고 그들에 대한 하나라도 더 알려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되어 현실로 돌아오면 환상에서 깨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녀들에게는 지금껏 그럴만한 대상이 없었습니다. 뭐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그것을 해소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오히려 환상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힘듭니다. 그녀들은 너무나 우월하니까요. 외모요? 능력이요? 그녀들은 이미 다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녀들보다 강한 이들이야 많지요. 그렇지만 그들은 환상의 대상이 되기 힘듭니다. 그 환상의 존재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그런 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연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나이여야 합니다. 문제는 그녀들보다 강한 이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지요.”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단순히 재능과 훈련을 통해 오를 수 있는 한계는 5성입니다. 그 이후로는 아무리 날고뛰어도 레벨과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것들은 그만큼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지금껏 나타난 최연소 7성은 40대 초반이었습니다. 8성의 엠페러와 엠페러스의 나이는 지금 50대가 넘었습니다. 세계 최강자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아무래도 부족하지요. 그런데 제황님이 나타났습니다.”
“아...”
“나이는 그녀들과 불과 네다섯 살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능력이요? 후···.”
능력이라는 대목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는 팀장이다. 굳이 말하면 입만 아프다.
“외모···.”
제황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본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에 한 명 나타날까 말까 하다는 엄친아? 아니 그냥 간단히 말해서 외모와 능력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독보적이다.
“흠흠, 그녀들이 꿈꾸던 왕자님이 나타난 겁니다. 너무나 완벽한 왕자님이지요.”
“무척 잘 아시는군요.”
“예전에 심심해서 헌터 심리학을 공부했었는데 어쩌다보니 박사 자격까지 땄습니다. 모르면 모를까 알게 되니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은근히 자신의 박사자격을 어필하는 대외업무팀장이다.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들을 너무 차갑게 대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그녀들을 잘만 보듬어 주신다면...”
#2
“...였어요.”
“그렇군요.”
“네네. 처음 그 영상을 봤을 때 저는 제 평생 따라가야 할 길을 봤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런 충격이었달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한동안 고생하고···. 또···.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그랬더니 어느 틈에 6성이 되어 있더라고요. 비록 아직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조금 슬픈 눈으로 자신의 활을 쓰다듬는 리아다.
그녀의 슈팅 글러브는 제황이 쓰는 것보다 상당히 두터웠다. 손등 부분은 완전히 새것과 같다. 그런데 손바닥 부분을 펴보니 금속으로 만들어진 부분이 닳고 닳아 광이 날 지경이다. 제황 저것이 어떤 흔적인지 안다.
지금이야. 수십 수백 발을 쏴도 까딱없지만, 과거에는 그렇게 생겨난 손가락의 굳은살을 깎아내는 게 평범한 일상 중 하나였다.
“그리고 베히모스 레이드 영상을 보면서 저는 너무나 행복했어요. 아! 내가 잘못된 길을 간 게 아니구나. 그분은 뛰어넘고 뛰어넘어···. 저 하늘에···.”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리아를 보니 차마 ‘별 것 아닙니다.’ 따위의 말은 할 수가 없다.
카페에 앉은 지 벌써 2시간이 넘었다.
만약 평소 궁기의 수다에 단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면 제황은 골백번은 자리에서 일어났으리라. 카페 벽에 붙은 시계를 확인한 제황이 아직도 꿈에 빠져 있는 리아에게 말했다.
이제 서비스타임은 어느 정도 된 것 같다고 생각한 제황이었다.
“이만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아! 저 조금만···. 어맛! 벌써 시간이···.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제 이야기만···.”
“오늘 즐거웠습니다.”
제황의 말에 꿈에서 깨어난 아마테라스 리아가 물기 어린 눈을 훔치다가 빙긋 웃는다.
“하아”
어디선가 땅이 꺼질듯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어디서 났는지는 찾을 필요 없다. 그 소리의 주인들은 모두 창밖에 서 있는 아마테라스 리아가 거느린 일본헌터사무국의 헌터 부대원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근 두 시간 동안 리아가 생전 처음 보여준 모습에 경악하고 있었다.
“나가시죠.”
카페 문 깨에 선 제황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리아 또한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였다.
“절대자님과 함께한 꿈같은 시간 소녀 죽어서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그럼 이만...”
제황이 뒤돌아설 때였다.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우물쭈물하던 리아가 제황의 소매를 붙잡았다. 제황이 뒤돌아서 그녀의 눈을 바라보자 떨리는 눈망울로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이를 질끈 깨물고는 말했다.
“저, 저저... 혹시 사귀시는 분이 계신가요?”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익은 사과처럼 되었다. 아마 그녀 딴에는 엄청나게 고민을 하고 내뱉은 말이리라. 그녀의 물음에 조금 곤란한 표정이 된 제황이 주변을 훑었다. 차라리 카페에서 물어봐 줬으면 좋았을 것을 상황이 너무 안 좋다. 아마 그녀로서도 경우가 아닌 줄 알면서도 꼭 알고 싶었기에 이렇게 물은 것일 터였다.
대외업무팀장은 이런 물음이 있으면 행여 있더라도 없다고 하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래야 편하다고 했다.
“후.”
제황이 작게 한숨을 내쉬자 리아가 말했다.
“저, 저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카페를 지키던 일본헌터들을 물론이고 숨어서 이곳을 보고 있을 수십의 눈과 귀를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물며 계산대에 서 있는 카페주인마저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지금 제황이 이 물음에 어떤 대답을 하든 그것은 제황에게 좋을 게 없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싶었다. 왠지 지금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을 거라는 묘한 직감이 그녀를 용기내게 만든 것이다.
“아니요. 말씀드리죠.”
가볍게 웃으며 제황이 대답했다.
“있습니다.”
“아.”
제황의 대답에 아마테라스 리아의 눈이 사정없이 떨린다.
“그, 그분을 사랑하시나요?”
쥐어 짜낸 듯한 목소리···. 그녀는 오늘 그녀가 사용할 일 년 치 분의 용기를 다 쓴 듯하다. 그 용기에 답례하듯 제황이 말했다.
“사랑은 모르겠지만 영혼으로 묶인 평생 함께할 동반자라고 할까요?”
“그렇군요.”
리아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마 그 어떤 남자라도 지금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리아의 눈물을 그치게 해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황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봤다. 물론 그것은 제황이 특별히 다른 뜻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리아가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럼”
제황이 뒤돌아 걸었다.
뒤통수가 좀 따끔거리기는 하지만 제황은 그냥 무시했다.
-그 팀장이라는 인간은 그렇게 대답하지 말라고 했잖아.
궁기가 제황에게 툭 던졌다. 그렇다. 대외관리팀장은 제황에게 이렇게 말했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사랑을 나눠준다면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녀들의 지원을 얻을 수 있다면 세상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고... 그 권력은 국경조차 초월하고 이해관계조차 무시할 수 있는 그런 힘이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제황은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굳이 타인에게 자신의 꾸민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얻은 권력은 필요 없다. 물론 궁기도 이미 제황의 이런 생각은 알고 있었으리라.
-뭐,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흠, 흠흠... 그 그렇지. 그래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흠
-쿡, 귀엽네.
-뭬! 뭬야! 가, 감히! 나 소호씨의 자손이며 서방을 지키는 사방신의...!
그녀와 함께한 지 벌써 근 8년···. 만으로는 7년이 되어 간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뭔가 당황하거나 할 말이 없을 때 버릇처럼 말하는 저것은 이제 너무나 친숙한 레파토리가 되어 버렸다.
-아, 알아. 귀에 딱지 앉겠다.
-이잇! 이잇!!
뭔가 분하다는 듯 버럭거리지만, 제황은 피식피식 웃으며 걷기 시작했다.
#2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단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제황에게 벌어진 일들은 세계로 뻗어나 가는 전파를 탔다. 알아서 제황의 눈치를 봐야 하는 그들이기에 아무리 특종에 목마르고 용기백배한 그들이라도 차마 그 일에 대해 제황에게 불리한 내용을 내보내는 간 큰 곳은 없었다. 함께 거리를 걷던 정체불명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없다. 아니 오히려 사쿠라 클랜과 야마다라는 고위 헌터를 쓰레기 중의 쓰레기로 만들어 제황을 정의를 수호하고 약자를 지키는 그런 영웅으로 만들어 놨다.
“이런 이미지로 고정시켜야 자신들이 편해서겠지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이루미가 딱딱한 어투로 기사에 대해 평했다.
“그렇지만 그다지 좋지 않은 기사들도 있군요. 이것들을 그냥 둘 수...”
일본의 헌터거리에서 제황이 벌인 활극 밑으로 대문짝만하게 찍힌 건 아마테라스 리아를 안고 있는 제황의 사진이었다. 물론 그 밑으로 써진 깨알 같은 내용 중에는 저런 사진이 찍힌 배경과 동영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지만, 그 사진 밑으로 달린 수만 개의 리플들은 그것이 얼마나 큰 파장을 선사했는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 중에는 제황이 사귀고 있는 여성이 있다고 쓰여 있었다. 물론 그것은 아마테라스 리아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근처에 있던 귀가 몇 개였는지 제황은 잘 안다.
“제황님.”
“네. 이루미님.”
“그, 그...”
“말씀하시죠.”
“사귀시는 분이 계셨나요?”
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의 이루미가 제황에게 물었다.
“네.”
“아...”
아주 찰나지만 그녀의 눈가에 스친 슬픔이 보였지만 제황은 그것을 애써 무시했다.
-나쁜 남자야아~ 나쁜 남자야아~
-시끄러.
-호호호호.
“계속 제황님을 수행했지만 그런 분은...아! 혹시 그럼?”
궁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루미가 놀란 눈으로 제황을 바라봤다. 그녀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는 이 세상에 제황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지만, 제황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이가 그녀였기에 아주 가끔씩 제황이 함께하는 묘령의 미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뭐, 그건 프라이버시로 해 주시죠.”
“그렇지만 이 일은 그분에게 단순히 제황님과 사귄다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분을 통해 제황을 겁박하거나 혹 제황님을 조종하려는 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분에 대한 적절한 보호가...”
“괜찮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강하거든요. 지금도 열심히 먹으면서 강해지고 있고 먹는 게 워낙 천문학적이니 강함은 제가 보장하죠.”
-뭐! 내가 뭘 얼마나 먹는다고!
-너 지금까지 먹은 게 대략 15조 정도 한다.
-그, 그게 아까워!?
-아깝다고는 안했어. 먹는만큼 강해진다고 했지.
-칫...칫칫! 제길! 나 자꾸 말리는 느낌인데.
어느 정도 현대생활에 익숙해진 궁기이기에 그녀도 15조가 얼마만큼의 크기를 지녔는지는 아는 눈치다. 저렇게 목소리가 잦아드는 걸 보면...
“휴우,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