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00화 (200/301)

# 200

열성팬-1 (이벤트 공지) (약간의 수정점도 공지;;)

#1

그들이 나타나자 사쿠라 클랜은 물론이고 반요 클랜까지 모두 그 자리에 경직되었다. 저들은 일본헌터사무국에 소속되어 있는 헌터 부대로써 모두 최하 5성에 이르는 헌터들로만 구성된 정예 중의 정예 들이었다. 게다가 같은 헌터에 대한 신변구속과 나아가 즉결처분의 권리까지 지닌 이들이기에 저들에게 반항하겠다는 것은 오늘 자신들의 클랜이 지워질 각오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제황은 오늘 보인 모습 중 가장 낭패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피곤하군.”

제황이 이곳에 와서 가장 피곤했던 이유 중 하나가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났다.

“궁기, 넌 들어... 벌써 들어갔군.”

-아아, 고생해.

-사건의 원인은 너잖아.

-몰라. 몰라.

-끙.

상대는 궁기마저도 질리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존재가 지금 헌터들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또각또각또각...

긴 흑발을 드리운 한 소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짧은 플렛 스커트 위로 일본헌터사무국 제식 방어구를 걸치고 등으로는 일본의 전통궁을 매고있다. 일본헌터사무국의 제식 전투복은 상당히 매니악하게 생겼는데 특히 여성용 제식 전투복은 얼핏 보면 고등학교교복과 같이 보인다. 그리고 그 매니악한 옷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찬탄 어린 눈으로 말했다.

“아마테라스님이다.”

“아마테라스 리아님을 여기서 볼 줄은...”

21살의 비교적 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6성 헌터라는 지고한 능력을 지닌 일본이 자랑하는 헌터 중 한 명이다. 그 미모 또한 워낙 출중하여 그 팬덤 조차도 일본을 뛰어넘어 전 세계에 있는 헌터계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이명조차도 일본 신화에 나오는 여왕의 이름을 가져다 쓰지 않던가.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성스럽기까지 한 그녀다.

‘아마테라스 리아’

오죽했으면 이 자리에서 가장 뒤가 구린 사쿠라클랜의 클랜마스터 유키오마저도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쓰레기들...”

도도하게 선 그녀의 입가에 경멸의 기운이 감돈다.

“감히, 일본을 구원하시려 절대자 제황님께서 친히 도쿄에 왕림하신 이때 이런 사단을 벌이다니.”

-와씨, 소름

-...

저런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다. 제황은 절로 암혼보가 시전 되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되도록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암혼보의 사용을 자제하는 편인데 암혼보는 ‘모두 입을 닫을 필요’ 가 있을 때만 사용한다. 그런데 오늘 참으로 불가피하게 그 룰을 깼다.

-떠야겠다.

-그래.

이왕지사 쓴 마당에 그냥 벗어나려는 제황이었다. 그때였다. 박살이 난 벽 구멍 속에서 한 인영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크으으”

그것은 한 손에 대검을 늘어뜨린 야마다였다.

온통 피와 흙먼지투성이가 된 그가 뭔가를 찾는 듯 사방을 둘러본다.

“이, 이 새끼 어디 있어.”

누굴 찾는지는 뻔하지만, 그를 위해 제황이 나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꼼짝 마!”

“이 새끼 어디 있어!”

“불응 시 손을 쓰겠다!”

“어디 있냐고!”

“허억!”

다가서는 사무국헌터들을 향해 발작적으로 소리친 그의 몸으로부터 마나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과연 6성 헌터. 줄기줄기 뿜어지는 마나가 뭉쳐 그의 대검에 완성된 오러가 생성되었다.

“다 죽여버린다!”

그가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건물 벽을 박차고 공중으로 치솟은 그의 몸으로부터 뿜어진 마나가 사방을 잠식해 나간다.

“미, 미쳤어! 여기서 저걸! 모두 피해요!”

야마다가 지금 쓰려는 스킬이 어떤 것인지 눈치챈 츠카사가 외쳤다. 광역기인 것은 둘째치고 6성 헌터가 눈이 돌아간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이니 발동하는 순간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헌터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건물에는 일반인들이 숨죽인 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전부 뒈져라!”

뒤늦게 상황을 눈치챈 아마테라스 리아가 서둘러 등에서 활을 잡아 들었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야마다의 대검이 바닥을 향해 휘둘러질 찰나...

한 인영이 솟구쳤다.

그것은 바로 제황이었다. 그마저도 이번만은 조금 늦었다. 온통 아마테라스 리아 에게만 정신이 팔린 상태였었기에 솟구쳐 오른 야마다를 뒤늦게 발견했다. 뛰어오르기는 했지만, 그것도 조금 늦은 상태다.

“쳇.”

혀를 찬 제황이 손을 뻗자 무한고로부터 애기살 한 대가 빠져나와 손에 잡혔고 그는 그것을 곧장 던졌다.

쌔에엑!

마나를 실을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찰나지만 그 정도 시간 만으로도 충분하다.

푹!

“큭!”

쏘아진 애기살이 야마다의 손목을 꿰뚫었다. 그와 함께  강기를 머금은 대검 또한 공중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가 움찔하는 순간 이미 제황은 그의 옆에 떠 있다.

퍼억!

“크아악!”

솟구치는 힘을 그대로 무릎에 실어 야마다의 복부에 쑤셔 넣었다. 야마다가 고통으로 인해 공중에서 몸을 웅크릴 때 자연스럽게 회전에 들어간 제황의 반대편 다리가 공중에서 곧장 야마다의 등판을 내리찍어 버렸다.

퍼어어어억!

우드드득

“크아악!”

척추가 절단나는 살벌한 기음과 함께 야마다는 그대로 바닥에 꽂혀 버렸다.

퍼어엉

요란한 충격음이 사방에 퍼졌지만, 사람들은 야마다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수십 명의 시선 속에 공중에서 한번 몸을 회전시킨 제황이 가볍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을 한 제황은 바닥에 거꾸로 처박혀 있는 야마다를 경멸하듯 내려다봤다.

“죽진 않았군.”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건지 아니면 안타깝다는 건지 모호한 소리를 뱉는 제황의 곁으로 사무국헌터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저, 저... 통제에 따라주셔야···.”

“뭐?”

제황은 그를 사납게 노려봤다. 조금 전 벌어질 뻔한 참상을 막아낸 강기를 사용하는 헌터를 단숨에 묵사발 내버리고도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이에게 말을 거는 상대의 용기도 참 가상할 지경이다.

“저, 그게...”

그러나 제황이 후드를 슬쩍 들어 그를 노려보자 그는 마치 뱀을 만난 개구리처럼 그대로 굳어 버렸다. 후드의 음영 속에 드러난 그 눈이 말하고 있었다. 한 번만 더 자신의 길을 막아서면 지금 바닥에 심어버린 놈 옆에 나란히 심어버리겠다고...

순간 그의 실낯같은 용기도 그대로 사그라버렸다. 5성이든 6성이든 그 눈을 바라본 이라면 모두 그와 같으리라.

집업후드에 손을 찔러넣은 제황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제 그냥 가면 된다. 그러면 깨끗이 끝나는 것이다.

휘익!

그러나 제황의 그런 시도는 현장으로 날아들 듯 뛰어든 한 소녀로 인해 무산되어 버리고 말았다.

“호...혹시! 제황님?!”

“빌어먹을...”

날아든 이는 굳이 누군지 확인할 필요도 없다.

“이건 분명 제황님이 아끼시는 옷 레트르사의 가을 콜렉션...호랑이로고 블랙 후드집업!”

제황조차도 신경 쓰지 않는 옷의 이름까지 잘 아는 그녀

털썩...

엄청난 속도로 제황의 옷을 스캔한 아마테라스 리아가 그대로 바닥에 무릎 꿇었다. 보는 이가 다 아플 정도다.

“활의 절대자이시며 세계 최강의 9성헌터! 필살! 궁신! 제황님을 뵙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그 외침에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말이다.

‘9성헌터’

까마득? 그런 단순한 한마디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지다.

“어버버...”

아마테라스 리아의 그 외침에 유키오는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 단 한 단어만이 그의 머릿속을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끝장...”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남자. 지닌 바 힘? 의심할 바가 없다. 그 자신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초강자. 9티어 베히모스를 솔로 레이드 해버리고 8티어 블랙사이클롭스들을 장난감처럼 짓밟는 괴물 중에 괴물이다. 꿈에라도 적으로 돌리기 싫은 아니 그전에 만날 일도 없다고 생각하던 이에게 조금 전까지 온갖 모욕을 퍼붓고 공격했다. 차라리 지금 빨리 자신을 잡아가 달라고 옆에 서 있는 헌터에게 사정하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제황은 유키오 따위에게 신경 쓸 겨를 따위 없었다.

공군기지에 도착하고서 제황을 가장 피곤하게 했던 여자들 중 하나다.

숫자는 고작 수십이었지만 그녀들의 힘은 막강했다.

공군기지이기에 기자 따위는 출입하지 못했지만, 합법적인 출입허가를 받은 일단의 여성헌터들은 막아주지 못했다.

“꺅! 제황님!”

“사랑해요!!!”

“제...제황님이 날 쳐다봤···. 꼬르륵”

나잇대는 10대에서 20대까지 다양했지만, 그녀들은 단 하나의 존재를 두고 한마음이 되었다. 평범한 열성 팬이 아니다. 아니 평범한 헌터들도 아니다. 제황이 머물 공군기지에 들어올 수 있는 헌터들이 평범한 3성 헌터 따위가 아니었다.

단독작전권을 가지는 고위 헌터로 구분되는 최소 5성 이상의 여성들이다.

그녀들이 스킬까지 써가며 제황을 스캔해 대는데 그 대상이 되는 제황에게는 가시방석도 이보다 불편하지 않으리라. 제황이 일본의 오오가무시를 레이드하러 온다는 소식을 어떻게 그리 빨리 파악했는지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공군기지로 몰려들었다.

그녀들을 제지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의 6성 헌터 아마테라스 리아, 미국의 6성 헌터 블러드스파이럴 메리제인, 중국의 6성 헌터 검후 린린 까지... 무시 못 할 배경과 능력을 지닌 여성들이 그녀들의 친위대를 데리고 오오가무시 레이드에 친히 지원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셋 중 하나가 지금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일어서세요.”

떨떠름을 한가득 담아 말했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다.

“제가 어찌 감히 절대자님과 같은 눈높이에 서겠습니까!”

“제발...”

제황의 입에서 권제조차도 들어보지 못했던 ‘제발’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워...원하신다면...”

그러자 아마테라스 리아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여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아아...”

그러나 이내 다리가 풀렸는지 그대로 쓰러졌다. 하필 그것도 제황의 품 안으로...

덥썩...

엉겁결에 그녀를 안아버린 제황이었다.

“내...내가 제황님의 품에···. 꼬르륵”

제황의 품에 안겼다는 감격 때문인지 눈이 돌아가버린 그녀는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폭포수 같은 그녀의 흑발이 흘러내렸지만, 제황은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파팍! 팍! 팍! 팍!!

대체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났는지 수십 개의 플래시가 제황의 눈을 눈부시게 했다.

-이년···. 노리고 한 거 아닐까?

궁기의 목소리에 가시가 돋쳐 있다.

지끈...

두통이 도진다.

#2

크다면 꽤 큰 사건이 아주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현장에 있던 사쿠라 클랜은 모두 사무국에 소속된 헌터들에게 순순히 잡혀갔다. 본래라면 반요클랜도 참고인 자격으로 함께 가야 하지만 그녀들은 궁신 제황님을 지키려 했다는 갸륵함을 참고한 누군가의 입김 한 번에 그대로 풀려났다. 어차피 사쿠라 클랜이 저지른 짓에 대한 증인은 많고 많았기에 굳이 그녀의 결정에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아니 그곳에 있던 이들은 그런 것에 토를 달 경황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오늘 9성헌터를 직접 영접했다는 기쁨에 취해 모두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죄, 죄송합니다. 홀로 조용히 움직이시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아마테라스 리아, 아니 짧게 리아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을 듯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담담히 대답한 제황은 눈앞에 놓인 아이스아메리카노로 입을 축였다.

자신 때문에 정신을 잃은 리아를 차마 현장에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어 그녀를 데리고 근처의 카페로 들어왔다. 당연하게도 카페 안에는 아무도 없다. 무슨 수를 썼는지 제황이 리아와 들어갈 때 카페의 손님들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썰물 빠지듯 빠져나왔고 이렇게 둘만이 카페 안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창밖에서 이쪽만을 주목하고 있는 이들의 이목을 발견한 제황은 저도 모르게 아메리카노를 그대로 원샷해 버렸다.

“아, 아메리카노를 좋아하시나 봐요?”

리아는 놀랍게도 한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고 있었다.

“아뇨.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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