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95화 (195/301)

# 195

도쿄멸망-3

제황을 태운 타이타니아 MV-1 이 무적성에 내려서고 있을 때 중국으로부터 시작된 수십 개의 기사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궁신(弓神) 출현]

[장웨이안 국가주석 ‘활의 종주국이 낳은 활의 신이다’]

[경이로움을 뛰어넘어 경악할 정도의 각성자! 궁신!]

[미사일로도 흠집조차 내지 못하는 8티어 몬스터가 그의 화살에 죽어 나가는 이유를 밝혀라.]

[고작 2시간동안 8티어 몬스터 여 덞 마리 레이드 성공]

9성헌터의 이명을 한자로 선점하려 한다는 중국의 의도가 짙게 깔렸다고 비판받을 중국발 기사가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왔다. 특히 이례적으로 거의 생중계되다시피 한 레이드 영상은 모든 동영상 사이트의 1위에서 10위까지를 점령해 버리면서 전 세계가 9성헌터 궁신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낯간지럽네요. 궁신이라.”

“가장 적당한 이명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들으면 들을수록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명에 제황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이루미는 천연덕스럽게 그 말에 답하며 제황의 맞은편에 식판을 내려놨다.

“간부 식당이 있는데 굳이 여기서 먹을 필요가 있나요.”

“제황님은 왜 여기서 드십니까?”

지금 이곳은 제황이 애용하는 근처의 구내식당이었다.

“가까우니까요.”

“제황님이 애용하시는 곳이니 저도 이곳에 입맛을 맞춰보려고 합니다.”

“흠”

9성헌터가 되었든 그가 ’궁신‘ 이라는 어떻게 보면 ’권제‘ 보다도 훨씬 격이 높은 이명이 생겼어도 제황은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여전히 구내식당을 고수했다. 물론 제황이 앉은 테이블 근처에서 밥을 먹을 간 큰 용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제는 모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제황을 훔쳐보기 바쁘다.

“그건 그렇고 메뉴가 좋네요.”

식판 위에 반찬들을 본 제황이 말했다.

“제황님께서 이용하시는 구내식당이니만큼 요리사를 좀 더 고용했습니다.”

주방 쪽을 힐끔 바라보니 상당히 글레머스한 중년의 여인이 요리를 하고 있는데 자꾸 제황 쪽을 힐끔거리며 눈웃음치고 있다.

“뭐, 그건 그렇고 권제님은 성내에 안 계시군요?”

“네. 이번 일본에 발생한 게이트 건으로 헌터사무국에 계십니다.”

“음.”

그녀의 말에 제황이 숟가락을 물고 생각에 잠기자 금세 제황의 생각을 알아차린 이루미가 말했다.

“어차피 사무국장은 권제님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권제님의 면을 봐서 지금이라도 참가하겠다고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군요.”

그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권제가 사무국과 불편해지는 게 싫은 제황이었다.

어쨌건 그 자신은 무적성의 사람이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십니다. 권제님께서는 이보다 더한 상황을 수십 번은 더 겪으시고 또 헤쳐나오신 분입니다. 아니 저는 오히려 사무국장이 걱정 되는데요?”

그다지 걱정 없어 보이는 이루미의 표정에 제황도 피식 웃고는 수저를 들며 말했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식사를 마치고 함께 제황의 전담부서가 들어설 부지로 향했다. 한창 거대한 바위 하나가 세워지는 중인데 그곳에는 ‘무련천가’ 라는 이름과 함께 활과 화살로 이루어진 문장이 음각되어 있었다.

-하아, 역시 부서 이름을 무련천가라고 짓는 건 이상해.

-이상하기는 뭐가 이상해.

-가문의 이름을 회사 상호명처럼 이용하는 거잖아.

-나중에 결과를 보면 그런 소리는 못 할걸. 그리고 저기에 쓰인 네 가문의 문장이 자랑스럽지 않아?

그 말에 제황은 활문양의 문장을 바라봤다.

그의 오른쪽 가슴 부분에 새겨져 있는 그림과 같은 문장이다.

무련천가의 직계들에게 새겨지는 문신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이용될 줄은 몰랐다.

-오그라들어. 그리고 역시 마음에 안 들어.

-적응해.

투덜거리며 제황이 상태창을 열었다.

[가문의 문장] 스페셜스킬 [패시브]

-소속된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높인다.

-소속된 구성원들의 활력을 높여준다.

-가주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소속된 구성원들의 능력이 증폭된다.

궁기가 새롭게 건 술법이다. 이전의 것과는 다르게 제황의 개인적인 능력이 아닌 제황의 주변사람들의 능력을 높여주는 특이한 스킬인데, 그 스킬 내용에 미심쩍은 반응을 보이는 제황에게 궁기는 이렇게 말했다.

-이 스킬은 [신위]를 염두에 둔 스킬이야. 둘이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키게 되면 나에게 고마워해야 할걸

-휴, 알았어.

어깨를 으쓱인 제황은 잠시 후 밝은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각팀장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삼켰다. 이게 스킬의 힘인지 마음에서 우러러 나와서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분명한 건 자신을 바라보는 저들의 눈 속에 보이는 기이한 열의가 딱히 싫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2

제황이 중국의 레이드를 끝내고 이틀 뒤 전 세계 모든 이들은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소식에 경악했다.

[도쿄 멸망!]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도쿄는 말 그대로 대융합 초기에 벌어졌던 대학살의 현장이 되었고 게이트를 봉쇄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이들은 모두 몬스터의 먹이가 되었다. 300여 미터까지 확장됐던 게이트가 안정화 되고 약 3시간이 지나 슬슬 폐쇄작업이 절반 정도 지났을 무렵 게이트 내부에서 보라색 액체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처음 그것이 다크어스에 있는 흔한 액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뚝이 터진 저수지에서 쏟아지는 물보다 두려운 것은 그 액체와 함께 나온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저 바다에 사는 대왕고래와 비슷한 형체를 지녔다. 다른 것은 입에는 촘촘한 수천 개의 이빨이 나 있다는 것과 양쪽으로 여 덞 개의 다리가 달렸다는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덩치만 보면 이미 6티어나 7티어 몬스터다.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자위대가 각종 화기로 몬스터를 공격했지만 처치한 것은 고작 몇 마리가 다였다. 게다가 그것들은 보라색 액체 속을 마치 제집이라도 되는 듯 드나들었는데 문제는 그 액체 속에 있을 때는 화기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고래들이 출현하고 한 시간 뒤에야 느릿느릿 나타났다. 마치 연극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부우우우우우...

어디서부터 들려오는지도 감이 안 잡히는 소리를 내는 그것은 일단 그 크기는 너무나 거대했다. 역대 최고라고 떠들던 그 게이트에 어울리는 거대한 생명체랄까. 단순히 표현하자면 거대한 애벌레와 같았다. 체고 100미터에 그 끝은 게이트에 걸쳐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끔찍한 것은 그애벌레의 표면에 거대한 구멍 수십 개가 뚫려 있었는데 그곳으로부터 뿜어지는 보라색 액체는 쉴새 없이 바닥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도망쳐!”

“으아악!”

보라색 액체에 휩쓸려 익사한 이들은 차라리 편한 죽음이었다.

그 거대한 고래 모양의 몬스터는 마치 누군가의 조종이라도 받는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학살해 나갔는데 수천 개의 이빨이 장식이 아니라는 듯 그 입에 걸리는 모든 게 조각조각 분쇄되었다.

“일제 공격!”

소집되어 있던 수천 명의 일본헌터들이 분전했지만, 그들조차도 고작 몇 시간을 버틴 것이 다였다. 절반이 넘는 헌터들이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고 일제히 후퇴했을 때 이미 일본이 보유한 7성 헌터 다섯 중 셋이 몬스터들의 아가리 속에서 걸레가 되어 사라졌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도망쳤다. 게이트를 통해 끊임없이 쏟아지는 몬스터들의 숫자는 이미 수십을 넘어 수백에 달했고 사람들은 저것들을 기존의 평범한 방법으로는 처치할 수 없다는 것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아니 단지 그것을 깨닫기 위한 희생이었다면 그것은 너무나 비싼 대가이리라.

그 후 공자대를 비롯해 주일미군의 항공전력이 거의 폭격하다시피 폭탄을 쏟아부었지만, 문제는 보라색 액체였다. 액체의 주범인 거대한 애벌레에 대한 집중투하가 이루어졌지만, 애벌레를 감싼 방어막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지게 했다.

사람들은 도쿄에 나타난 신종 다크어스 몬스터를 전통적인 명명법에 의거 초거대 애벌레는 오오가무시, 고래모양의 몬스터는 사케노오스케로 명명했다.

[몬스터에 점령당한 도쿄, 사케노오스케 7티어로 추정... 오오가무시는 측정 불가]

[아비규환의 일본... 해외도피 속출]

[민심안정을 위해 긴급기자회견까지 했던 내각... 그러나 가장 먼저 일본을 떠난 것은 일본의 주요정치인?]

[일본이 자랑하는 초동대응 매뉴얼을 뛰어넘는 멸망급 몬스터 웨이브]

도쿄 내에 인류의 종적이 사라지는 건 단 하루면 충분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도쿄는 온갖 폭탄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일본 정부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몬스터용으로 개발된 미사일 들이었다. 마나석을 에너지로 한 램제트 엔진으로 가속하는 극초음속 미사일들은 그 하나하나가 거대한 창이었다. 실제로 그것들은 수십 마리의 사케노오스케를 레이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은 언 발의 오줌 누기와 같았다. 쏟아져 나온 숫자가 수백이 넘는 순간부터 미사일 공격도 멈췄다.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일본 내각의 결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발표된 일본 정부의 긴급기자회견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임시 내각 일본 자국영토에 대한 핵공격 긍정적 검토]

근 백여 년 만에 다시금 일본영토 내에 핵을 투입한다는 것은 이제 몬스터의 공포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이들을 패닉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로 인하여 세계 헌터사무국에는 긴급회의가 소집되었고 회의를 통해 도쿄에 나타난 몬스터의 레이드를 위한 7성급 이상으로 구성된 연합공격대 소집을 논의하는데 이르렀다.

#3

[각국의 7성 이상 헌터들이 세계헌터사무국이 있는 이곳 제네바에 속속들이 모여드는 가운데 이번 도쿄 게이트 사태의 책임에 대한 ...]

[무책임한 일본 정부를 성토하는 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영토에 핵을 투하하는 방안에 연일 회의를 가지고...]

이번 연합공격대 구성에 대한 뒷말들이 기사를 통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근래 가장 화제의 인물인 제황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 법이다.

[궁신! 일본레이드 불참선언?]

[인류의 위기를 수수방관하는 9성헌터]

[세계헌터사무국 9성헌터 궁신에 대한 레이드 참여 요청 보냈는가?]

공식발표조차 하지 않았건만 한국언론을 시작으로 제황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세계 언론들도 처음에는 매우 객관적으로 사실을 적어나갔지만, 한국언론이 전격적으로 똥을 싸는 묘기를 부리기 시작하자 그 기사를 받아 적으며 함께 똥을 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한민국헌터사무국의 참여 요청에 9성헌터가 거절했다는 사무국 내 고위인사의 이야 이야기는 그것들을 더욱 신빙성 있게 만들어줬다.

어디서부터 말이 샜는지는 뻔하다. 그러나 무적성이든 무련천가든 그 언론에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연일 갖가지 뇌피셜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제황과 무적성을 음해하는 기사들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9성 헌터가 출현하자 기다렸다는 듯 발생한 세계최대 규모의 게이트? 연관성은? 게이트연구의 권위자 ‘오타니 신타로 박사가 조심스럽게 밝히는 충격 증언!]

[인류를 수호해야 하는 9성 헌터의 직무유기 이대로 좋은가. 새롭게 대두되는 헌터들의 윤리의식 결여]

-궁신이라고 물고 빨고 한 지 하루도 안 돼서 물어뜯는 우리나라 언론 인성 오지고요 지리고요.

ㄴ누가 보면 9성헌터가 게이트 일으켰는지 알겠다. XX

ㄴ일본이야기보다 9성헌터 이야기가 더 많아. zzzzzzzz

-XX 일본 몬스터 출현 때문에 내 주식 전부 X 닦개 되었다. 궁신! 뭐하냐! 얼른 가서 안 치우냐.

ㄴ미친 이제 하다 하다 주식충도 궁신 탓하네.

ㄴX박! 중국 몬스터 처리한 것 때문에 주가 널뛰기 할 때 샀다고! 보증금 빼서 주식에 꼴아박았는데 이제 어쩌냐. ㅠㅠ

ㄴX닦개 입에 물고 한강 가는 건 네 사정이니까 닥치고 꺼져.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제황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 현상을 이루미 또한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루미는 그런 기사들에 부화뇌동하지 않았다. 약 삼일 가량이 지났을 무렵에서야 제황에게 넌지시 말했다.

“슬슬 죽일 놈들과 밟을 놈들의 윤곽이 드러났으니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이루미의 살기 어린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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