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93화 (193/301)

# 193

도쿄 멸망-1

#1

비록 그 능력의 기반이 마나석을 소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그 홀로 여 덞 마리의 블랙사이클롭스를 레이드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여 덞 마리 중 세 마리는 7티어의 새끼지만 나머지 다섯 마리는 성체의 사이클롭스였다. 게다가 그중 한 마리는 기존의 8티어 몬스터를 뛰어넘는 머리 하나는 더 큰 치프급이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모습을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숨죽인 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곳은 중국의 한 국영채널 스튜디오다.

“어메이징... 믿을 수 없습니다. 어...어...제, 제 아나운서 인생 10년 만에 멘트를 잊기는 처음입니다. 단순히 8티어 몬스터라고 하지만 그 숫자는 무려 여덟이었습니다. 많은 전문가가 이번에는 베히모스 때와 같은 요행을 바라기 힘들 거라고 예측했지만, 9성헌터는 그들의 입을 모조리 셧업 시켜 버렸군요. 엑설런트... 오마이갓! 그는 진정한 신입니다. 세상에... 대체 그가 가진 능력의 끝을 알 수가 없군요.”

말을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탓하지 못했다.

현장을 지휘해야 하는 PD도 그 뒤에 서서 들고 있던 일회용종이컵을 바닥에 떨어뜨린 CP도 레이드 전문가라며 객석에 앉은 배나온 늙은이들도 그리고 그 모습을 찍고 있는 카메라맨감독도 넋을 놓은 채 현장화면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흉하게 머리가 터져 나간 거대한 블랙사이클롭스들의 사체 뿐이다.

“총 레이드 시간 1시간 40분입니다. 이거... 모든 것이 레이드의 새로운 역사이며 기록입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왕룬 교수님 어떻게...보십니까?”

“어...어...”

아나운서의 물음에 레이드가 끝날 때까지 멍한 눈으로 그것을 쳐다보고만 있던 반백의 노인이 연신 ‘어..어’ 만 연발하고 있을 뿐이다. 레이드가 시작될 때만 해도 자국의 군이나 헌터들과의 협조 속에 이루어진 레이드가 아닌 9성 헌터의 독단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입에 거품을 물던 그였다.

“그러니까 이건...”

받아먹을 출연료가 있기에 뭐라고 말은 해야겠는데 너무나도 충격적인 상황에 말을 잃어 버렸다.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이 박살 나버렸다. 할 수만 있다면 저건 이단이야! 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헌터와 관련된 모든 교과서의 내용을 모두 갈아엎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흐흑...흑...”

여자 FD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과거 몬스터로 인하여 가족들을 잃은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방송계 쪽에 일하면서도 화면에 몬스터가 나올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을 애써 참았다. 그런데 오늘 그녀는 오랫동안 그녀의 몸을 지배하던 몬스터에 대한 공포가 모두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녀뿐만 아니라 화면을 보는 모든 이들이 그녀와 같은 마음이었다.

“이...이상으로 블랙사이클롭스 레이드 실황 방송 1부를 마치고 곧이어 2부에 찾아뵙겠습니다.”

CP가 하얀 종이 위에 휘갈긴 종이를 국어책 읽듯이 읽은 아나운서는 카메라의 불이 꺼지자마자 앉아있던 의자에 허물어지듯 누워버렸다.

“허억...허억...”

온몸에 진땀이 났다. 화면을 통해서 봤을 뿐이건만 그 모든 것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강력함... 특히 레이드의 정점이었던 치프급 블랙사이클롭스를 향해 날아들던 수십 발의 붉은 빛줄기에 그 단단하다던 블랙사이클롭스가 걸레가 되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이성을 유지했다는 것만으로 그는 오늘 충분히 제 몫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2

위이이이...

헬기 내에는 로터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하다.

장내에 있는 이들은 모두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뭔가 한마디 하고 싶어 하는 눈치이기는 하지만 그가 보여준 모습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중이다.

“이런 것도 되는군요.”

“아, 네. 정찰기에서 촬영된 모든 것이 슈퍼컴퓨터로 전송이 되어 자동적으로 계산이 된다고 합니다!”

그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이나 하는 게 다다. 자신들이 이동한 동선과 공격한 방향 등이 선으로 화면에 나타나는 것을 보는 제황은 흥미로움에 눈이 반짝거린다. 몬스터자원팀장은 아까부터 심상치 않은 눈으로 제황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제황을 해부라도 하고 싶어하는 듯 그 눈에는 약간의 광기마저도 엿보인다.

“정말, 신기하네요.”

제황의 한마디에 그를 보고 있는 대외업무팀장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지금 육성으로 소리치고 싶었다.

‘세상 신기한 게 다 사라졌군. 가장 신기한 건 당신이야!’

조금 전까지 8티어 몬스터 한가족을 몰살시킨 주제에 얼굴에는 한점의 감정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정도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지만, 그냥 무심하게 저격창에서 내려 자리에 앉더니 자신을 귀신 보듯 하는 눈빛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크린에 보여지는 이동경로 등을 보며 작동원리 등을 물어볼 뿐이다. 그때 용기를 낸 한 사람이 제황에게 넌지시 입을 열었다.

“중국 쪽에서 제황님을 뵙길 청하고 있습니다. 가벼운 기자회견이라도 하심이...”

“힘의 소모가 너무 커서 위급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한다고 해주세요.”

“...”

아무리 봐도 전혀 힘이 빠진 모습이 아닌데 천연덕스럽게 그리 답하는 제황을 보며 말문이 막히는 이루미였다. 그녀가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제황은 고작 아침조깅 정도 마치고 돌아온 듯한 모습이었다. 만약 그가 정말 위급상황이라면 헬기 내에 들어오자마자 마나엔진을 돌리며 부족한 마나를 보충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황의 얼굴에는 그런 위급한 감정이 한점도 보이지 않았다.

‘여력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 보이는데···.’

차마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건 그 말을 한 이가 제황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다면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아, 마나석 수거팀은 출발했나요?”

“예? 예! 아! 지금 출발시키겠습니다.”

제황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대외업무팀장이 화들짝 놀라 자신의 전화기를 꺼내 든다.

“사체는 몰라도 마나석은 중요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통화에 집중하는 대외업무팀장을 내버려 두고 제황은 궁기에게 말을 걸었다.

-궁기?

-왜?

-8티어 마나석은 왜 먹었어?

-... 처음 보는 거라...

-그걸 네가 미리 먹으면 나중에 국가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

-호, 호홋...그, 그런가. 그렇지만 8티어 마나석은 처음 보는 거라... 에이 몰라. 배 째.

-맛있냐?

-뭐, 먹을 만 하더라.

“후우...”

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대외업무팀장은 그것이 자신 때문인 줄 알고 안절부절못했다. 물론 제황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활약이 담긴 스크린을 바라보며 연신 이것저것 눌러볼 뿐이지만 말이다.

#3

제황을 태운 타이타니아가 한국 영공에 들어왔을 무렵이었다. 제황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특히 이루미는 제황이 다음 레이드부터 사용할 새로운 헬리콥터를 빠른시일 내에 구매하기 위해 유선상으로 화상 회의를 소집 중이다. 아직 예산 분배도 제대로 되지 않아 큰 예산집행을 위해서는 무적성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이루미였다.

본래는 부탁하는 입장이니 이루미가 조금은 접어주고 들어가는 게 정상이지만 그녀의 뒤에 있는 실세가 워낙 살 떨리게 쟁쟁하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물어오는 목소리가 공손하다.

“타이타니아 MV-1 보다 두 배 이상 크거나 혹은 안정성이 뛰어난 비행체입니다.”

그녀의 대답에 화상으로 보이는 모두의 얼굴에 난색이 가득하다.

가격은 둘째치고 타이타니아 MV-1 같은 헬기는 군수품이기 때문에 구매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이루미가 원하는 건 당장 다음 레이드부터 사용할 헬기를 말하고 있다. 강짜를 부리는 것 같은데 그 대상이 9성헌터니까 무조건 해야 한다.

-원하시는 모델은 현재 미군과 유럽 쪽에서 운용 중인 모델 세 개 정도가 다입니다. 그렇지만 그 국가들은 아직 그 모델들을 해외판매할 계획이 없습니다. 이루미님 말씀대로 다음 레이드부터 그 헬기들을 사용하고 싶으시다면 정부 쪽의 도움을 받아...

“이봐요.”

-예. 말씀하시죠.

“저는 지금 당장 언제부터 그걸 쓸 수 있는지 묻고 있는데요. 이해 못하셨습니까?”

이루미의 얼음장 같은 한마디에 회의장이 꽁꽁 얼어버렸다.

“최소 한 달은...”

-그만, 아무래도 내가 번지수를 잘못 택한 것 같네요. 회의는 해산합니다. 모두 물러가세요. 역시 문상 조용기님에게 직접 문의 했어야...

그녀의 마지막 말에 회의실 내에 있는 모든 이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문상 조용기는 자신들조차도 직접 얼굴을 마주하기 힘든 무적성 권력에 최상층에 있는 거물이었다. 만약 지금 그들을 소집한 이루미가 그에게 ‘문상님 밑에 계신 분들은 참 말이 많아요.’ 라고 한소리 했다가는 문상이 ‘어? 그래? 한 번 칼질 해야겠군.’ 이라고 지나가듯 한마디 하는 순간 자신들은 모두 일제히 밥숟가락을 놓아야 한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최소 일주일! 일주일 내에 대령하겠습니다!

그들을 대표하는 자리에 앉은 남자가 발작하듯 외치며 이루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화상 회의를 끊으려 버튼을 눌러가던 이루미가 잠시 손을 멈춘 채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습니다. 일주일 드리죠. 아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 모델 선정해서 올려주세요.”

-알겠습니다. 혹 좀 더 자세한 요구스펙은...

“이쪽 부서의 운영지원팀장님과 상의하세요.”

-예!

남자가 대답하는 동시에 회의실 내에 있던 몇몇 남자들이 회의실 밖으로 뛰쳐나가기 바쁘다. 당장 내일 아침까지 모델선정을 완료하고 구매 의사를 보내기 위해서는 일분일초가 부족하다. 아마 저들은 내일 아침까지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이루미는 그들의 사정을 봐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마치 갑질하기라도 하듯 저들을 몰아붙이기는 했지만 사실 그들보다 더 바쁜 건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게 헛짓거리였어.’

제황이 그들에게 보여준 레이드 모습은 단순히 네 명의 팀장에게만 보고 느끼라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많이 바뀌어야 하는 건 바로 자신이었다. 어쩌면 제황에 대한 가장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건 자신이었으리라.

그의 곁에 가장 오래 있었기에 오히려 그것이 실수였다.

9티어 몬스터 베히모스를 레이드하는 모습만 가지고 그의 모든 것을 판단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건데 그건 큰 착각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를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놔두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울려온 개인전화 벨소리에 이루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밀령 관제실의 밀령 3대의 밀령대주입니다. 지금 당장 일본XXX 방송을 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눈살을 찌푸리며 이루미가 헬기 안에 비치된 스크린을 조작했다. 그리고 나타난 건...

-지금 이곳은 사상 최대 크기의 게이트에 모두 넋을 잃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확장 중인 게이트는 현재 높이 200미터 폭도 100미터에 달합니다. 이 크기는 지금 당장 성체의 9티어 몬스터도 무리없이 통과할 크기이며 최악의 경우 아! 말씀드린 순간 게이트 판독 결과가 나왔습니다. 게이트는...! 다크어스! 다크어스로 통하는 게이트입니다. 최악에 최악이 더하는 순간입니다! 이 순간에도 확장하는 게이트의 모습에 일본 전체는 비상사태를 선포한...

게이트의 밑으로 깔린 거대한 고층 빌딩들이 마치 미니어처와 같이 보이는 장면이었다.

확장하는 게이트에 잠식당한 빌딩들이 하나둘 무너져 내리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게이트 판독 결과가 다크어스라고 뜬 순간 이미 헌터와 군을 제외한 민간인들은 이미 서로를 밀치며 도망치기 바쁘다.

우지직...우직...콰르릉

게이트에 잠식당하던 거대한 빌딩 하나가 끝내 무너져 내렸다. 이미 오래전 사람들이 대피하고 전기가 끊어져 불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 빌딩 하나가 내려앉으며 일으키는 먼지와 진동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바쁘다.

게이트의 주변에 포진해 있던 수백 대의 콘크리트 믹서 트럭들은 계속해서 후진하기 바빴다. 책임자의 비명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미친 거 아니야! 지금 어떻게 저곳에 접근하라는 말이 나와!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직접 와서 하라고!”

본래는 게이트의 확장이 끝나는 순간 모든 트럭들이 정해진 순서대로 접근해 콘크리트를 쏟아붓게 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이 예상한 최대 크기는 고작 100미터짜리였다. 그 정도 크기가 그들이 예상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물론 좀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조심스러운 의견에 준비한 양은 그보다 큰 150미터짜리 게이트도 파묻을 양의 콘크리트였다. 그러나 현재 크기 200미터 아직까지도 그 확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몇몇 콘크리트 믹서트럭의 기사들은 차를 돌려 도망치고 있다.

바리케이트로 길을 막은 자위대가 총을 정조준하고 멈추라며 소리치지만, 저들도 자신들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정부의 일이고 큰돈을 받고 하는 것이지만 지금 위약금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도쿄를 떠나는 피난 차량들로 인해 모든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을 연상케 합니다. 도로에 차량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이 문제인데요! 정부에서는 차량을 버리더라도 최소한 차키를 차에 꽂아 놓고 이동해 달라고 방송하는 중입니다. 방송을 들으시는 모든 도쿄 시민들께서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지금 이곳 나리타국제공항에는 수만에 이르는 피난민들이 몰려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공항을 지키는 자위대는 모두 실탄을 장전한 채 노선 증편과 전세기를 요구하는 사람들과 대치 중입니다. 또한 일본에 주둔 중인 주일 미군은 공군기지 내의 모든 군용기들을 징발하여...

“터질 게 터졌군.”

제황을 제외한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가운데 몬스터자원팀장만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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