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블랙사이클롭스 레이드 -2
#1
“닥치고! 5분 내 우리 측에서 레이드 시작합니다! 엉덩이 무거운 양반들은 무섭고 우리 쪽은 편해 보입니까? 내가 중국 쪽 레이드 캔슬 시킬 때마다 당신 이름 거론할거요! 그건 그쪽 사정이고! 따지고 싶으면 당신 윗선한테 따져! 이제 4분이군! 음...알겠습니다. 좋아요! 6분 드리죠! 끊습니다.”
딸깍
통화를 마친 대외업무팀장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으며 제황에게 말했다.
“5분 후부터 레이드 시작하시면 됩니다.”
“좋습니다.”
“레이드 캔슬 여부에 대해서 제 독단으로 말한 건 죄송합니다.”
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그것은 엄청난 권력이 되기도 한다. 만약 그가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레이드 여부를 수락하거나 캔슬시킨다면 그는 그것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도 있는 권력자가 되는 것이었다.
무려 9티어 몬스터를 레이드하는 팀이지 않은가.
그러나 제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일임하는 건 아니지만 대외업무팀장님이 일차적으로 판단내리셔야 하는 건 맞습니다. 이차로는 이루미씨가 최종적으로 제가 승인하겠지만요.”
“네? 그, 그래도 됩니까?”
놀란 대외업무팀장이 되물었다. 이런 커다란 권력을 준다는 게 그의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저는 여러분들이 활동하시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의 권한을 부여할 생각입니다. 필요하시다면 제 이름을 가져다 얼마든지 쓰셔도 됩니다.”
꿀꺽...
세계최강 9성헌터의 이름을 가져다 쓴다면 못할 게 뭐가 있을까? 아마 일국의 대통령도 움직일 힘이리라. 제황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은 전부 자발적으로 협조를 할 것이다. 말 그대로 그 이름 하나면 온갖 초법적인 짓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런 권한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그 권한을 남용하거나 오용할 경우에는 사무장인 이루미씨가 철저히 조사해 낱낱이 밝힐 겁니다. 참고로 이루미씨는 권제님의 최측근으로 무적성 내에 모든 암행감사단체들과 매우 긴밀한 사이지요. 그리고 그 처벌은 무적성의 방식이 될 겁니다. 이루미씨는 법을 그리 좋아하지 않죠?”
“네. 저는 법에 의한 처벌보다 무적성의 처벌원칙을 더 선호합니다.”
그녀의 담담한 말에 장내 이들의 등골이 싸늘하게 움츠러든다.
고개를 끄덕인 제황이 이루미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최종 면접은 네 분 다 합격입니다. 뭐 경호팀장님의 실력을 보기 위해서는 제가 위험해 져야 하는데 그럴 일이 지금은 없군요.”
“예. 알겠습니다.”
제황의 말에 이루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이것이 모두 자신들의 최종면접이었다는 깨달은 넷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 실제 레이드에 들어가면 여기 계신 분들은 저와 같이 움직이기 힘드실 겁니다. 지금 하신 일들도 모두 아랫사람에게 시키고 보고만 받는 형식이 될 수도 있지요. 또한 전혀 생각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로 이 체계가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최소한 여러분들이 하실 일들에 대해서는 알고 계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
제황에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제가 여러분께 최종면접을 볼 차례군요.”
씨익 웃은 제황이 무한고에서 비천궁을 꺼내 들자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강한 경호팀장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가 무기를 꺼내는 순간 그의 몸에서 느껴지던 기파가 급변한 것이다. 차분하고 고요하고 웅장하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산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까마득한 높이의 거대한 산맥을 마주하는 기분에 저도 모르게 위축이 되는 것이다.
“저격창 열어주세요.”
제황의 말과 함께 바닥으로부터 이중으로 된 큼지막한 금속판이 올라왔다.
져격창은 원거리딜러이 헬기에 탑승한 상태에서 공격이 가능하도록 고안된 장치였는데 주로 공중몬스터를 상대할 시 이용한다. 참고로 이 초거대헬기에는 총 3문의 저격창이 설치되어 있다.
안에 들어선 제황이 이루미에게 말했다.
“거리가 15킬로미터 가량 되면 현재고도에서 호버링 해 주시고요. 사격시에 반동이 무척 심할 겁니다. 지금부터 조종사들 옆에 대기하시면서 당황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혹 반동제어가 힘들 것 같으면 알려주시고요. 적당히 조절할테니...”
“예!”
베테랑 헬기조종사들이 들으면 대체 이륙중량 30톤에 이르는 초거대 헬리콥터 타이타니아MV-1 이 고작 사람이 발사하는 화살 반동에 흔들릴 것 같냐고 코웃음 치겠지만 제황이 허투루 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이루미의 표정은 심각하기 이를 데 없었다.
헤드셋 위에 방음을 위한 헤드폰 하나를 더 눌러쓴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후 저격창이 하강하기 시작한다.
철컹! 위이이잉!
밖으로 나오자마자 들이닥친 칼바람이 제황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저격창이 완전히 밖으로 노출이 되자 위쪽으로 통하는 부분이 금속판에 박히고 이제 공중에는 오롯이 제황 혼자만이 남았다.
-궁기 부탁해.
-알았어.
제황의 몸으로부터 솟구친 붉은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전에는 새의 형태를 취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궁기는 곧장 블랙사이클롭스가 있는 방향으로 기운의 형태가 되어 날아갔다.
그녀와 시야를 공유하는 제황의 궁기안으로 엄청난 속도로 뒤로 밀려나는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넓은 황무지를 걷고 있는 여덞마리의 블랙사이클롭스가 눈에 들어왔다. 만약 지금 그녀의 속도를 단순해 계산한다면?
‘마하 3에서 4?’
갈수록
“흠”
눈을 감은 제황은 궁기안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환경정보들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무련궁술의 ‘비상하는 화살’ 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을 통해 모든 환경적 요소들을 무시한 채 화살을 날릴 수 있지만 이제는 스킬의 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였다. 물론 스킬을 아예 사용하지 않을 것은 아니다. 단지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담고 호흡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헤드셋으로부터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20방향! 거리 4천! 거대비행체 출현! 색적 들어갑니다! 5티어 몬스터 칠색 그리폰! 2마리 확인!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눈을 번쩍 뜬 제황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순식간에 두 발의 화살을 발사했다.
그야말로 포착과 저격이 일순간에 이루어진다.
퍼펑!!! 씨아아아앙!
-계속 접근 중입니다! 타겟 확인 현재 그리폰에 표적이 된 것 같... 에?
급박한 목소리로 외치던 관제요원의 입이 한순간 다물어진다.
-어, 격...격추... 추락...
“블랙사이클롭스에 집중하세요.”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제황이 조용히 말하자 관제요원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설레발을 쳤다는 걸 깨달았는지 조금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제황의 말에 답했다.
-5티어 몬스터는 엑스트라도 못 되는 겁니까. 허어...
누군가의 한숨 섞인 한마디에 들려왔지만, 그 말이 모두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2
궁기안을 통해 보이는 블랙사이클롭스 무리는 한 떼의 화목한 가족을 연상케 했다. 물론 그것들 중 가장 덩치가 큰 수컷은 키가 무려 20여 미터에 달하며 검디검은 근육이 마치 중장갑으로 보일 정도로 두꺼운 몸을 자랑하기는 했지만, 허리께 정도 오는 세 마리의 새끼들을 어른들이 둘러싼 채 어디론 가로 묵묵히 걸어가는 그들은 마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걷고 있는 평범한 개척민들을 연상케 했다.
하긴 따지고 보면 그것도 맞는 게 저들의 원래 서식지는 이곳이 아닌 엘어스다.
어떤 경로로 이곳으로 건너왔는지는 모르지만 이세계에 떨어져 처음 접하는 환경들을 극복하고 새끼들을 낳으며 이곳에 적응했으니 인간 식으로 따지면 마치 미국의 그 콜로니처럼 신세계의 이주민과 같은 것이리라.
단지 그들과 인간의 차이점이라면 인간들은 자신들의 세계로 침범해 들어온 생명체에게는 그렇게 자비롭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블랙사이클롭스들이 인간과 소통할만한 지성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일단 그걸 확인하기 이전에 인간은 상대의 멸살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현재 고도 1,600미터... 목표와의 거리 14000 기체 호버링 들어갑니다.
관제요원의 목소리와 함께 얼굴을 때리던 바람이 사라졌다.
-블랙사이클롭스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감이 뛰어납니다. 또한, 신체 능력은 단순히 강력한 것을 떠나 무게 1톤의 바위를 투척해 3킬로미터 밖에 있는 건물을 타격할 정도로 정밀한 신체 제어가 가능한 몬스터입니다.
몬스터자원팀장의 설명이 들려온다. 과연 거대한 외눈을 디룩디룩 굴리던 그것들은 마치 궁기의 시선을 인식한 듯 거대한 코를 벌름거리며 공중을 두리번거리는 데 여념이 없다.
“그거 다시 좀 말씀해 주시죠. 사이클롭스의 진짜 무서운 점.”
제황이 물었다. 시작 전에 통상적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 전해 듣기는 했지만, 다시 한번 머릿속의 새기기 위해서다.
-블랙사이클롭스의 진짜 무서운 점은 바로 그 눈에 있습니다. 그 눈과 마주치는 순간 설령 그것이 7성의 헌터라도 모든 마나를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헌터에게는 치명적인데 그 신체는 모든 종류의 속성공격에 대한 방어력도 뛰어나지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제황이 무한고에서 비천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제황님은 놈들의 천적과 마찬가지입니다.
“네.”
고개를 끄덕인 제황이 애기살 한 대를 꺼내 시위에 걸었다.
“조종사들에게 발사 반동에 주의하라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가볍게 숨을 고른 제황이 곧이어 시위를 당겼다.
[화신체]
[궁기에 의하여 모든 능력치가 +5 증가합니다.]
[궁기에 의하여 마나량이 +1000 증가합니다.]
[궁기에 의하여 마나회복율이 30프로 증가합니다.]
[궁기에 의하여 스킬공격력이 50프로 증가합니다.]
궁기가 최대파워로 화신체를 사용했을 때의 버프다. 그렇지만 궁기가 강해진 만큼 이제 그녀는 이 정도 버프는 가볍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화신체가 좀 달라졌네?
전에는 알 수 없는 힘이라고 나오더니 이제는 ‘궁기’ 라고 텍스트로 달라졌다.
-후후, 이제 정식으로 네 스킬에 간섭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지. 시작할 거야?
-응.
짧게 답한 제황이 이내 두 발을 저격창 바닥에 달린 고정판에 단단히 붙이고는 잠시 후 호흡을 멈췄다.
[비상하며 춤추는 강기의 화살]
콰아아아아아앙!!!
위이이이...
-양력이 빠르게 떨어집니다!
-자동수평제어 켜고! 씨X 엔진 출력 높여!
시위를 놓는 순간 상체로부터 시작된 막대한 반탄력이 몸을 타고 양발을 통해 두다리로 흩어져 나갔다. 덕분에 공중에서 고요하게 호버링하고 있던 헬기가 뒤로 기우뚱하며 동체가 흐트러지고 곧이어 급박한 헬기조종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차례 욕설이 나오는가 싶더니 통신이 잠잠해진다. 제황이 물었다.
-계속 해도 되겠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최대한 붙잡을테니 속행하셔도 됩니다.
조금 떨리는 헬기조종사의 목소리에 피식 웃은 제황이 다시금 시위를 당겼다.
처음이기에 정신 좀 차리라는 의미에서 좀 강하게 마나를 응축했더니 반발력이 예상보다 심했던 모양이다.
-이루미님 좀 더 큰 헬기 하나 주문해 주세요. 이대로는 더 강한 공격은 무리일 것 같네요.
-예...예? 더 강한 공격이요? 아... 알겠습니다.
더 강한 공격이라는 말에 이루미도 놀랬는지 목소리에 기합이 가득하다. 고개를 끄덕인 제황이 다시금 시위를 당겼다.
콰아아아앙!!!
다시금 맹렬한 소닉붐이 일으킨 난기류가 초거대 헬리콥터 타이타니아의 동체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