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90화 (190/301)

# 190

블랙사이클롭스 레이드-1

#1

다음 날 새벽 무적성의 헬기장에서 한 대의 중형헬기가 날아올랐다. 무적성에서 운용하는 헬기들 중 초대형급에 속하는 이 헬기는 최대 이륙중량 30톤에 최대승무원 수 40여명이 탑승할 수 있는 타이타니아MV-1 이라는 놈이었는데 현재 이 거대한 헬기에 올라탄 건 꼴랑 열 명 그것도 조종사 두 명과 관제요원 두 명을 제외하면 고작 여섯 명이 탔다.

물론 그 여섯은 제황과 이루미 그리고 각 팀의 팀장들이다.

“정말 이렇게만 가도 됩니까?”

“네.”

“아니···. 저 보조 요원들과 현지 캠프라던가. 장비 운용 요원이라던가. 최소한 20여 명은···.”

“이동 시에는 요원이 최소 10명은 동승해야 합니다. 제황님의 수발을 들 사람도···.”

대외업무팀장과 운영지원팀장은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계속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 중이다.

“이대로는 절대 제황님의 경호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헬기를 호위할 호위기체도 없이 가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평소 말이 많지 않은 경호팀장도 한마디 했다.

유일하게 조용한 것은 이루미와 몬스터자원팀장이었는데 그는 오히려 이 상황이 흥미로운지 연신 지금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중이다. 어깨를 으쓱한 제황이 맞은편에 앉은 이루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루미님은 대충 이해하신 것 같은데 대신 설명 좀 해주시죠···.”

“후우, 죄송합니다.”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이루미의 눈길이 네 명을 훑자 자원팀장을 제외한 셋은 뱀을 만난 생쥐처럼 목이 움츠러들었다.

“지금까지 당신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레이드 상식을 버리세요. 오늘 우리는 제황님만의 레이드 방식을 보고 모든 체계를 새롭게 만드시는 겁니다. 잠시 후면 8티어몬스터 레이드에 들어가야 하는 제황님이 뭘 얼마나 더 바라시는 겁니까. 밥을 떠서 입에 넣어드리려고 하는데 대신 씹어드리기라도 할까요?”

“아, 알겠습니다.”

가장 눈치가 빠른 대외업무팀장이 가장 빨리 입을 다물었다.

“보고 느끼세요. 지금 이 자리는 초등학교 견학 자리가 아닙니다.

각자 가지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제황님을 보좌할 자신이 없으면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비우세요. 이번 레이드는 여러분들의 역량을 시험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시험은 저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됩니다.”

싸늘한 그녀의 말에 곰같이 생긴 경호팀장마저도 눈을 회피했다.

“쯧쯔...”

들고 있는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는 자원팀장만이 유일하게 의연한 표정이다.

이번에 뽑힌 자원팀장은 초반에 잡음이 있었음에도 상당한 거물이 영입되었다.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몬스터학계의 거두였는데 팀장 중 가장 나이가 많음에도 책상보다는 현장에서 뛰는 것을 선호하는 괴짜였다.

제황의 급작스러운 결정에도 오히려 껄껄거리며 노트북을 챙기는 인물

“책상물림 버릇은 버리시게. 우린 지금 레이드계의 신천지를 밟는 거야.”

“예.”

괴물자원팀장의 말에 운영지원팀장과 대외업무팀장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직급은 같지만, 그 둘은 몬스터자원팀장과 과거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의 신분으로 있었다.

어느 정도 의견정리가 되는 것을 보며 제황이 쓰게 웃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발밑으로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서해가 보인다.

조용기로부터 선물 받은 헬기보다는 로터 음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육중한 맛이 있어 탈 만하다. 노곤하게 느껴지는 진동이 슬슬 익숙해질 무렵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평소에 듣던 그녀의 목소리보다는 살짝 들뜬 듯한 음색이다.

-드디어 다 먹었다!

-오래 걸렸군.

-전에 먹던 거랑 똑같이 생각했다가 큰코다칠 뻔했어.

어제 궁기는 9티어몬스터 베히모스의 마나석 흡수를 시도했다. 이미 두 개의 9티어 마나석을 흡수한 경험이 있으므로 이번에도 무난하게 넘어갈 거로 생각했는데 베히모스의 마나석은 좀 특별한 구석이 있었는지 궁기는 제황과의 연결들 끊고 마나석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차이가 있나?

-응, 뭐 길게 설명하기는 그렇고 알고 보니 예전에 흡수했던 건 마나가 많이 날아간 상태였어. 게다가 본래 몬스터의 마나 성질도 거의 사라진 순수한 마나석이었지. 지금 것은 무척 날뛰더라. 마치 그 베히모스라는 녀석처럼 강하고 끈질겼어. 뭐 그래도 전부 내 것으로 녹여냈으니까. 호호호

묵은 것과 날것의 차이다.

-아무튼, 빨리 끝나서 다행이다. 흡수는 완벽한 건가?

-그래. 이제 본래 내 힘의 80프로야.

80프로라는 그녀의 말에 제황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에 대체 얼마나 강했었다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녀 말로는 한때 신 노릇도 했다는데 알 길은 없다. 역사에 남은 기록에는 온갖 악행들만···.

-그럼 앞으로 두어 개만 더 먹으면 되는 건가?

-응. 이제 고작 두 개!

-9티어 마나석을 고작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신위 스킬에도 마나석이 잔뜩 들어가는데 거기에 9티어 마나석도 구해야 한다. 다행이라고 할 건 마나석의 대한 외부의 간섭은 차단한 상태라는 것이다. 여기에 제황은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주변에 퍼뜨렸다.

‘내가 가진 강함의 비밀은 마나석의 힘을 뽑아 쓰는 스킬 때문이다.’

제황은 그가 마나석을 소유해야 하는 이유를 그런 식으로 정당화시켰다.

지금의 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마나석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내가 단독으로 레이드한 몬스터의 마나석은 내가 가지겠다.

백 프로 거짓말은 아니다. 신위는 실제로 마나석을 흡수해야 하는 스킬이니까. 단지 그렇게 얻은 마나석을 궁기에게 투자한다는 게 다를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사실을 접한 사람들이 오히려 좋아했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강함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 당황하던 그들은 무지에서 오는 공포를 해소시켜 줌과 동시에 제황이 약점 아닌 약점을 슬쩍 보여주자 안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딱히 약점이라고 할 건 없지만 그것은 마치 DG의 히어로인 슈퍼맨의 유일한 대비책이 크립토나이트인 것처럼 9성헌터를 제어할 실마리를 얻었다는 것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오해해주면 좋지.’

자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퍼질수록 오히려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제황이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그것을 백린도 믿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가 단 한 번이라도 잘못된 판단으로 덤벼서 실수하는 순간 제황은 곧장 그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궁기에게 아낌없이 마나석을 투자하고 있다.

-지금 백린과 술법으로 붙는다면 어때?

-다양성에서는 내가 밀리지만 대부분의 술법은 파해 시켜 줄 수 있어. 주먹으로 붙으면 젓갈을 담가 버리지. 후후후

-두억시니는?

궁기의 능력은 굳이 표현하자면 만능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느 한 부분에 강점을 가진 건 아니지만 두루 할 줄 아는 것이다.

-두억시니라... 그건 아직 좀 무리야. 그렇지만 시간만 끌어야 한다면 놈이 지칠 때까지 가능해.

-좋아.

궁기의 대답에 제황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궁기는 백린의 주무기인 술법에 대항할 카운터펀치다. 만약 그와 다시 붙게 된다면 궁기는 백린의 술법들을 막아 줄 것이고 그 틈을 타 제황은 백린의 허점을 노리는 게 제황이 생각하는 기본 전략이다.

“어서 와라.”

제황은 지금 백린의 심장에 박아넣을 화살촉을 날카롭게 갈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2

제황을 태운 헬기는 중간에 있는 중국의 공군기지에서 한번 재급유를 한 후 곧장 충칭으로 날아갔다.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곳이기에 상당한 거리지만 타이탄은 항속거리가 좀 짧은 대신 순항속도가 빨랐기에 이동에는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중국은 대한민국에서부터 충칭까지의 항공로를 몬스터점유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황에게 개방했기에 새벽에 출발한 헬기는 이른 정오가 되었을 때 충칭의 경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방송을 한 번 보죠.”

“쩝쩝. 알겠습니다.”

제황의 말에 운영지원팀장이 무적성에서 싸온 점심 도시락에 남은 마지막 갈비 한 조각을 입에 쑤셔 넣었다.

재급유를 위해 잠시 멈추고 약 30분간 화장실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곧장 날아오는 강행군을 했다. 고작해야 반나절이라고 하겠지만 지금 그들이 타고 있는 헬기에는 편안함을 위한 편이 설비가 구비되지 않은 군용 헬기다.

운영지원팀장이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며 헬기 안에 있는 스크린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모두 무적성에 남겨둔 채 팀장들만 탑승한 이 요상한 일행 내에서 가장 어린 게 죄다.

뭐, 실제로 따지면 제황이 가장 어리지만, 그에게 이런 잡일을 시키는 미친 짓을 생각한 이는 이 헬기 안에 아무도 없었다.

“헤드셋 좀 주시겠어요?”

“여기 있습니다.”

경호팀장이 새 번역기능이 있는 헤드셋을 제황에게 건넸다.

“죄송합니다. 흠흠.”

아마 헤드셋에 찍힌 지저분한 고기기름 묻은 손자국 때문이리라.

“괜찮습니다.”

제황은 그다지 상관없다는 듯 옷으로 대충 닦고는 그걸 가져다가 귀에 걸었다.

가끔 까다로운 헌터들 중에는 그런 것에 무척 민감한 이들도 있었지만, 제황의 마인드는 ‘전투에 도움 되지도 않는 부분으로 왜 상대를 피곤하게 만드는가.’ 였다.

철저한 능률주의자이며 효율적인 전투를 추구하는 제황이었다.

방송이 켜지자 곧이어 충칭의 뉴스채널이 화면에 떴다.

마침 이분할된 화면의 한쪽에는 블랙사이클롭스가 반대쪽에는 심각한 표정의 남성 앵커가 보도를 하고 있었다. 화면 한쪽에 LIVE 라는 글씨가 보인다.

[제 4차 유인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가운데...]

[이번 레이드를 주도한 적성클랜에서는... 최근 들어... 현재까지 집계된 사상자는 레이드에 참가한 헌터를 제외하고서도 백여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중국몬스터관리부’ 발표가.. 잠시 후 최종방어선의 구축을 위한 ... 실무진 협의를 위해 각 클랜마스터들이 속속들이 이곳 중앙지휘소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한 시간 전이랑 그다지 달라진 건 없네요.”

“네.”

조금 우스운 부분이지만 가끔은 뉴스방송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이번 레이드 의뢰의 주체인 중국몬스터관리부에서도 실시간으로 자료를 전송받고 있기는 하지만 방송에서 전해주는 정보와 별 차이 없어 보인다.

“적성클랜에 대해 아시는 분?”

제황의 물음에 대외업무팀장이 답했다.

“적성클랜은 충칭 내에 있는 클랜들 중 과거 공산 사회주의자들 후손들이 주축이 되어 연합한 곳입니다. 약 1만 가량의 헌터들을 보유 중이며 7성 헌터 셋이 연합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대융합 이후 30년이 지나고 중국이 사회주의체제를 모두 벗어던졌다고 하던데 아니군요.”

“권력이 곧 돈인 곳이 중국이었으니까요. 발 빠르게 신분전환을 꾀한 이들이 있죠.”

“뭐, 그건 이번 레이드에서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군요. 현재 직선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제황의 물음에 관제요원이 답했다.

“블랙사이클롭스들의 탐지범위를 피하기 위해 저공으로 하강해야 하니 거리 40킬로미터! 도착 예정 시간 10분입니다.”

그 말을 들은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리 15킬로미터 부근부터 레이드를 시작할테니 모두 준비하세요.”

제황의 말에 헬기 안에 있던 이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삼분이 채 되지 않아 운영지원팀장이 스크린에 몇 개의 지도를 띄우며 말했다.

“현재 블랙사이클롭스들이 있는 곳의 지도입니다! 저격 시작 시 예상 접근 경로 체크 완료되었습니다!”

그의 외침에 제황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운영지원팀장이 제황의 의도를 가장 빠르게 알아챈 것이다. 그러자 급해진 것은 대외업무팀장이다.

“중국몬스터관리부와 레이드 개시 시간을 조율해야 합니다! 아무리 빨리 조율해도 30분 이상 걸립니다.”

만만디라고 하여 중국은 아무리 급해도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뭐 나쁜 말로는 굼뜨다고 하지만... 이루미가 날카롭게 외친다.

“당신이 지금 누구와 함께 일하는지 또 까먹은 겁니까! 9성 헌터와 한팀입니다! 당신이 9성 헌터라는 마음으로 의견을 조율하세요! 레이드 시작 전까지 모든 조율을 마치세요!”

이루미가 말에 대외업무팀장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전화기를 붙잡았다.

“몬스터자원팀장님. 블랙사이클롭스의 약점이 있을까요?”

제황이 한창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머리를 긁적이던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초장부터 8티어 몬스터의 약점을 파악하라는 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의견을 물은 겁니다.”

제황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노트북을 몇 번 두들기던 그가 말했다.

“딱히 약점이랄 건 없습니다. 일단은 엘어스계 이족보행몬스터 중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블랙사이클롭스이니만큼 모든 면에서 우수하지요. 연구 초반에야 사이클롭스가 눈이 하나인 줄 알고 그것을 약점이라고 주장하던 학자들이 있었지만 레이드 된 후 확인한 결과 큰 눈 주위에 작은 눈 네 개가 더 감춰져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음, 그런가요.”

제황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황도 크게 대단한 걸 바라지는 않았다. 어쨌건 적은 8티어 몬스터 아닌가.

“뭐 그렇지만 굳이 약점을 꼽으라면 종족보호본능이 있습니다.”

“종족보호본능이요?”

“네. 이게 약점이기도 하고 장점이기도 한 건데... 일단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감정은 항상 양면의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제황님이 7티어몬스터로 평가받는 블랙사이클롭스 새끼들을 이동 불능으로 만드실 수 있다면 성체들의 전투능력을 약 30프로 가량 깎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동이 불가능한 새끼를 보호하며 싸워야 하니까요. 단지 이것을 하기 힘든 이유는 7티어 몬스터인 새끼들은 성체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 견제를 뚫고 새끼를 이동 불능으로 만들만한 공격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겠지요.”

“훌륭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제황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몬스터자원팀장은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휴우, 이거 돌발질문을 받는 제 학생들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겠군요.”

“지금이라도 아셔서 다행입니다. 그 질문 하나 대답 못하면 곧바로 전체 리포트 써오라고 윽박지르셨었지요?”

“하하하”

몬스터자원팀장의 밑에서 수학했던 대외관리팀장의 말에 헬기 안에 웃음이 한차례 돌았다.

첫 레이드라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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