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86화 (186/301)

# 186

천황클랜 멸망의 날-2

#1

무적성에 인류 최초 9성헌터의 지원을 담당할 부서가 구성되었다. 부서는 총 네 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그의 전투와 관련하여 모든 것을 지원하는 운영지원팀과 몬스터사체의 연구와 판매 등을 담당할 자원팀, 국내외의 레이드 관련된 제반 업무를 담당할 대외업무팀 마지막으로 그를 경호할 경호팀 이렇게 네 개다.

총인원 70여 명으로 9성 헌터라는 이름값에 비교하면 간소하기 짝이 없는 구성이지만, 쓸데없이 덩치가 큰 것을 싫어하는 그의 취향에 맞춰 소수정예의 형식으로 최고의 엘리트들을 모았다. 물론 그들의 고용은 9성 헌터의 최종 재가가 필요한 문제였지만 그런 것을 떠나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벅찬 감동에 휩싸여 있었다.

무려 9성 헌터와 한팀을 이룬다는 기쁨으로 말이다.

특히나 몬스터사체의 연구와 판매를 담당하는 자원팀은 20여 명으로 숫자가 기형적으로 많았는데 그 이유는 9성헌터가 레이드 할 몬스터를 연구할 마음에 국내외 수많은 유수의 학자들이 벌떼같이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살벌했다.

월급이고 뭐고 연구만 시켜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어중이떠중이를 모두 받아들일 수 없기에 추천을 통해 받은 이들 중 고르고 골라 선발된 이들이 20여 명이다.

어떤 이는 고작 스무 명이냐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철저한 기밀유지를 계약조건으로 넣어 국내에서만 채용을 진행했기에 그들은 아무런 불평도 할 수 없었다. 만약 그 범위를 해외 유수의 석학들에게도 개방했다면 자신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오늘은 부서의 구성원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다. 무적성 내 으리으리한 홀에 모인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박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 정박사님도! 이거 국내 인재라는 인재는 모두 모인 무적성이라지만, 정박사님까지 영입되셨을지는 몰랐습니다.”

“하하, 무려 세계최초의 9성헌터가 레이드 해오는 몬스터를 만질 수 있는 일인데 학교 연구소장이 대수입니까.”

“역시 국내 몬스터 생태에 권위자 다운 생각이시군요. 각성자와 헌터에 관해 연구 중인 저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어제 밤새도록 그의 기록들을 돌려봤지만 보면 볼수록 진정이 되지 않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이드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온 그를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뜁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먼저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이거 선수를 치시는군요.”

“하하···. 그런가요. 아무튼 잘해 봅시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말끝을 흘리며 정박사라는 이가 홀 한쪽에 모여있는 이들을 눈짓하며 말했다.

“저것들은 어떻게 뽑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정박사의 음색이 좋지 못하다.

“그러게 말입니다. K대나 S대는 아니더라도 수도권에 있는 연구소에도 인재는 차고 넘칠 텐데 저런 지방대학출신 박사들이 추천되었다니...”

“아무렴요. 무적성이 채용기준을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저희 대학교의 우수한 인재들을 놔두고....”

“맞습니다. 그러니 우리 같은 진골들이 협력해서 얼른 자리를 잡고 후학들을 이끌어줘야 합니다. 그럼 무적성도 저희의 뜻을 알아 주겠지요.”

“맞습니다. 허허”

자화자찬하는 둘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커져 주변 사람들이 불편한 기색을 보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박사와 최박사는 각자 국내의 한국몬스터연구학회와 헌터연구학회의 실세들이었다. 한마디로 저 둘이 마음먹고 찍어내면 국내의 학회에는 명함도 못 내밀 게 할 힘을 지녔다.

게다가 이들은 각자 S대와 K대 학연 라인의 중추와 같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대우가 좋은 연구직 같은 경우에는 같은 대학교의 후배 출신이 아니면 출세하기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또닥또각...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이들 중 한 여인이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이는 대략 30대 초반으로 차가워보이는 검은색 오피스복을 입은 젊은 여인이 새침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정찬진 박사님. 최도원 박사님. J그룹 연구소의 이소민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인사를 본체만체한 둘의 고개가 까딱하고 움직였다.

그들은 이 여자를 잘 안다. J그룹 몬스터연구소의 수석연구원으로 이쪽 바닥에서는 꽤 유명한 여자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까지 씹었던 변변찮은 지방대 출신이기에 마치 마지못해 인사를 받는 뉘앙스다.

그들도 눈치가 있기에 이 여인이 그다지 좋지 못한 의도로 접근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안방이 아닌 무적성이기에 그나마 아는 체라도 했다. 아마 다른 곳에서 인사를 왔다면 그냥 공기처럼 취급했으리라.

그러나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은 이미 이런 반응도 예상했는지 한점 흔들림 없이 정박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혹시 정박사님 혹시 황필영 박사 못보셨나요? 먼저 도착해 있겠다고 했는데 도통 보이지 않네요?”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둘의 냉대에도 목소리 한 점 떨리지 않는다.

“음, 황필영이라... 난 그런 사람을 모르는데”

“네? 이상하다. 황박사님께서 예전에 정박사님을 모셨었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었는데 말이죠. 기억 안 나세요? 고졸인데 학점은행제로 대학원에 들어왔던 어리숙하게 생긴 겉늙은...”

그녀가 황필영에 대한 기억을 일깨워주자 정박사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허험, 그,그러고보니 생각이 나는군. 고졸임에도 아주 열의가 대단한 친구였지. 설마 이번에 그 친구도 뽑혔는가?”

“네. 황박사님이야 이북과 중국 쪽의 다크어스게이트 몬스터에 권위자니까요.”

“그런가? 허허. 제자들이 워낙 많아서 내가 그렇게 꼼꼼히 챙기지는 못한다네. 아무튼 잘...”

인사치레로 말을 얼버무리고 자리를 뜨려는데 그녀가 정박사의 말을 툭 끊어먹고는 치고 들어온다.

“그러신가요? 그렇지만 황박사가 들으면 참 서운할 소리네요. 무려 3년간 함께 연구한 내용을 가로채 정박사님은 그 논문으로 상도 받으셨잖아요? 물론 혼자서... 황박사님은 대학원에서도 쫓겨나는 바람에 연구를 그만두셨지만···.”

그녀의 말에 정박사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곳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주제가 입 밖으로 꺼내어졌다. 물론 그것이 완전한 비밀은 아니다. 같은 계통에서는 알음알음 다 퍼진 소문이지만 그녀처럼 대놓고 이야기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흠흠, 자네. 보자보자하니까 못하는 소리가 없군. 자네는 위아래도 없나?”

“정박사님이 참으십시오. 철모르는 애송이입니다.”

최박사가 정박사를 말리려 했지만 정박사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고졸 주제에 한심한 몽상이나 하는 그딴 녀석을!”

“그걸 모티브로 시작된 제자 논문 가져다가 상 타신 분한테는 그다지 차리고 싶지 않군요!”

“뭐야?!”

소란이 일었고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 박사의 곁에서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최 박사가 정 박사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그의 주위를 환기했다. 그러자 정 박사는 헛기침하더니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조용히 속삭인다.

“오늘 이후로 이 바닥 뜰 생각이나 하게.”

“호호, 그게 마음대로 되시겠어요?”

“흥,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본데 그 믿는 구석까지 철저히 박살 내주지. 황 박사 그 친구가 말하지 않던가? 내가 얼마나 잔인한지···.”

“와,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아, 마침 제가 믿는 구석이 오는군요.”

그 말과 함께 다정은 손을 들어 휘적휘적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시선에 따라 고개를 돌리던 정박사와 최박사의 시선이 호랑이를 만난 토끼처럼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이 부서를 총괄 지휘한다고 알려진 한 무적성의 여인이 그 휘하들을 거느린 채 당당히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모든 이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멈춘 채 분분히 물러서 그녀에게 길을 만들어 준다.

“총괄부서장 이루미...”

무적성의 지배자 권제의 최측근임과 동시에 9성헌터인 천제황을 오래전부터 곁에서 보좌했다는 그녀다. 그뿐일까. 그녀 자신의 능력도 무려 6성헌터이며 국내 뿐이기는 하지만 헌터들 사이에서 그녀의 위상은 무시무시했다. 무려 권제의 호위대 중 하나인 무영의 대장을 맡고 있는 건 물론이고 같은 6성 세 명 정도는 가볍게 찜쪄먹을 정도로 대인전에 무시무시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런 그녀를 향해 이소민이라는 여자가 빙그레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그것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정박사와 최박사는 솔직히 설마설마했다.

어딜 감히 나선단 말인가. 자신들처럼 선택받은 진골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그녀가 거침없이 저지르고 있다.

그렇기에 그냥 자신들을 겁주기 위해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를 본 이루미가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온다.

“언니, 못 온다고 하지 않았어?”

이루미의 첫마디...

무려 이소민에게 언니란다.

“필영씨가 까먹고 있던 선약이 있다고 대신 나가 달라잖니. 나야 아직 J그룹이랑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아서 당장 들어오지는 못하지만 겸사 겸사 네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왔지.”

“필영오빠는 그 고지식한 성격이 문제야.”

“누가 아니라니... 1차 서류면접에서 붙었다고 방방 뛰면서 좋아하더니 깜빡한 약속 생각났다고 울먹거리면서 나한테 부탁하는 것 있지?”

“안봐도 선하네. 그 오빠는 보육원때도 그러더니... 아무튼 끝나고 한번 봐. 당장 내일부터는 눈 코 뜰새 없이 바빠지니까.”

이루미가 몸을 돌려 걸어가자 잠시 후 이소민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리고...

얼굴이 하얗게 탈색된 장 박사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부들거리며 이소민을 노려보고 있었다.

“과, 과연 믿는 구석이 있었구먼.”

사실 마음 같아서는 고개를 숙여서라도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무려 9성헌터가 레이드한 몬스터를 연구할 절호의 기회다. 몬스터의 사체는 비싸다. 특히 티어가 올라갈수록 그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6티어몬스터까지는 연구소라는 간판을 붙인 곳이라면 정기적인 공급이 가능하지만, 그것이 7티어 8티어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억 수십억을 쏟아부어야 간신히 한 마리를 얻을 수 있다. 아무리 그가 능력이 좋다고 해도 그 정도 가격의 몬스터는 일 년에 세 네 번 건드려볼까 말까 한다. 그뿐인가. 몬스터도 유기물이니만큼 시간이 지나고 부패가 시작되면 사체 연구결과의 오차가 심해진다.

6티어 몬스터가 이런데 7티어? 8티어 몬스터는?

또한 9성헌터 천제황만이 잡을 수 있는 9티어 몬스터는...

“흥. 기고만장한 이유가 있었군.”

그는 끝내 고개를 숙여 사과하지 않았다.

지금껏 수많은 이들의 머리위에 군림해 온 그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지 않고 있다. 놓치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기회기는 하지만 이 여자의 말을 들으니 그녀의 신랑은 과거 그가 연구의 공을 가로챘던 황필영이리라.

이미 글러 먹었다고 생각한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와 같은 S대 출신의 학자 몇몇이 행여 그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분분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던 최박사는 어느 틈에 사라져 있다.

‘내가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을까 봐!’

그는 맹세했다.

지금 당장은 이렇게 치욕을 겪으며 물러나지만, 다음에는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겠노라고···.

돌아서며 악담 한마디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깟 고졸놈과 어울리는 년이니... 그 쓰레기에 어울리는 쓰레기군”

문제는 이 말 한마디가 오늘 그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라는 것이다.

“어라, 제황이랑 나는 고등학교 중퇴인데... 뭐? 쓰레기? 하...씨발...뜨신밥 먹고 돌았나.”

장박사를 완전히 덮어버릴 거대한 그림자가 그의 뒤로 다가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