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9성헌터-1
#1
제황이 무적성으로 돌아오는 길은 꽤 피곤하지만 생소한 경험이었다. 무적성에서는 제황에게 전용기를 보내 줬는데 뉴포트 공항 옆에 붙은 자가용 비행기 공항까지 이동하는 사이 7대의 방탄차들이 제황의 앞뒤를 호위했다. 웃기는 것은 이 중 3대는 무적성에 소속된 차량이었고 2대는 국토 방위국 그리고 2대는 버지니아 주지사가 보낸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호의가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항에 도착하니 그것이 아니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말 그대로 수천에 육박하는 인파의 물결이었다. 그를 환호하는 이들만으로 공항이 마비될 지경에 기자들의 숫자만으로도 기백이 넘어가니 저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제황이었지만 발 빠른 미국은 제황의 성격을 이미 파악하기라고 했는지 그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논스톱으로 전용기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물론 삼엄한 경비 속의 VVIP 통로라도 특종이 미친 기자들은 모두 막지 못했다.
로열라운지에 대기 중이던 스튜디어스로 변장한 미모의 여기자 3명과 조종사로 위장한 한 명의 기자가 제황에게 접근하다가 제황을 지키던 ‘요원’ 들에게 제지당하고 쫓겨났다.
그뿐일까?
전용기에 오른 뒤에도 제황의 양옆으로 전투기 네 대가 영공을 빠져나가기까지 호위를 해주었다. 떠나기 전 호위해준 이들에게 사인 한 장씩 해주니까 집안에 가보라도 생긴 듯 기뻐하더라.
“제황님.”
“네?”
“저 미국 잭 린튼 대통령의 격려전화가...”
“부상치료 중이라고 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든 채 뒷걸음질 치는 스튜어디스가 조금 안쓰러운 제황이었다. 하긴 저 여자는 지금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 그리고 발음하기도 힘들 몇몇 국가의 대통령들과 직접 전화를 하는 영광을 누리고 또 그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곧 제황님의 모든 일을 보좌할 비서진이 마련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무적성에서 보낸 전용기에는 과거 제황을 보좌했던 무영의 대장인 이루미가 따라왔는데 그녀는 이전과는 다르게 제황에게 무척이나 공손하게 말했다. 아니 제황의 존대가 부담스러운 기색까지 보인다.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이게 편합니다.”
“아...네.”
제황의 대답에 이루미의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그려진 건 착각일까?
예전의 이루미는 제황에게 좀 차갑게 대하는 구석이 있었다. 공적인 부분으로 철저하게 대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 그녀가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랄 것을 보이니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하다.
“많은 사람이 제황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이루미가 천장에 부착된 모니터를 내려 제황의 시야에 맞췄다.
딸깍
방송을 켜니 온통 제황의 이야기로만 도배되어 있었는데 그 어떤 채널을 돌려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곳 버즈니아에서 그는 신입니다. 특히 그의 활약을 목격한 제 22 콜로니의 이주민들의 반응이 열광적인데요! 이곳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제황’ 이라는 낯선 이름의 이방인에게 기도를 드릴 것 같습니다.
-이곳 버지니아 센토맥의 중앙광장에 위치한 전광판에는 하루 종일 그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지겨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광판 밑으로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그를 연호하거나 혹은 광고판에 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써서 붙인 종이들이 벌써 수천 개입니다.
-대단합니다! 헌터계의 혁명 그 이상이라고 할 만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반신을 보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에게 축복을....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활의 종주국 대한민국에서 온 활의 신! 그 자체입니다.
-세계 최초 9티어 몬스터 베히모스가 단 1인의 헌터에 의해 레이드 되는 순간의 영상입니다.
맙소사! 저는 지금 기절할 지경입니다. 세상에!! 어메이징! 그레이트! 엑설런트! 그는 진정한 신입니다! 신! 과거 수백 명의 헌터들의 희생과 군의 천문학적인 무기를 쏟아부어 레이드 했던 베히모스가 오늘날 단 1인의 헌터에게 무릎 꿇었습니다.
이로써 전 세계 헌터 역사가 바뀌었으며 그 최상단의 자리에는 대한민국 출신의 헌터 ‘천제황’ 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9성헌터입니다! 9성헌터!
모든 채널에서 입에 거품을 물며 그를 찬양하는 중이다.
제황이 베히모스를 레이드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건 셋뿐만이 아니었다. 콜로니에서 운영하는 드론들은 22콜로니를 위기에서 구해낸 제황을 집중적으로 촬영했고 제황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미국은 그 영상들을 가감 없이 전 세계에 공개했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그에 대한 새로운 영상물들이 하나둘 올라와 시청자들이 티브이를 떠나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확대 재생산된 그에 관한 이야기는 인터넷이든 티브이든 모두 점령해 버렸다.
예전 그를 ‘필살’이라는 이명으로 알고 있던 이들까지 가세하자 유명세는 들불 번지듯 커져만 간다.
“제황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최소 일만여 명이 사망했을 것입니다.”
이루미가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이것이 제황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이유였다. 제황이 예전에 듣기로 그녀의 부모님들은 모두 몬스터에게 희생되었다고 한다. 22콜로니와 비슷한 경우였는데 웜홀이 열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7티어 몬스터의 공격에 그녀가 살던 작은 소도시는 단 하루 만에 쑥대밭이 되었다.
부모를 잃고 보육원을 전전하던 중 각성을 했고 두각을 드러내 권제의 눈에 들었다. 몬스터에 대한 증오심으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여성. 그래서 그녀는 매달 버는 돈 대부분을 몬스터로 인해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기부한다.
그런 그녀이기에 무려 일만의 가까운 사람들을 구해낸 제황을 마치 숭배하는 듯한 눈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리라. 물론 그 대상인 제황은 곤란하기 이를 데 없다.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즐겨. 눈빛이 보통이 아닌데? 네가 아마 벗으라면 그냥 벗을걸?
-쓸데없이 왜 벗기냐.
-재미없기는... 신 놀이도 중독되면 꽤 재미있어.
-그래서 착한 놈은 코도 베어 보고?
-캬악! 그건 내 이야기가 와전된 거라니까. 뭐 심심해서 비슷한 짓을 해보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런 광신 따위 줘도 사양이야.
-너도 이미 알고서 행한 거 아니야?
-후우, 그건 그렇지.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어.
고개를 끄덕이는 제황이다. 어설프게 보여주면 귀찮은 것들이 더 달라붙기 마련이다. 그래서 차라리 그 자신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어설픈 놈들은 꺼지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물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놈을 잡기 위해서는...’
제황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백린이었다. 제황이 분석한 결과 백린은 제황보다 최소 수십 년은 먼저 각성한 이였다. 그리고 그의 진정한 힘은 아직 미지수다. 궁기의 경험을 토대로 유추해 만약 그가 천주백가의 모든 힘을 가졌다고 가정한다면 지금까지 드러난 그의 힘은 딱 절반 정도 경험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제황은 다른 쪽으로도 힘을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세계 유일의 9성헌터,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했다는 위업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제황의 말을 허투루 듣지 못할 것이다. 9성헌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다. 그리고 그 명예에서 오는 힘 또한 무시못한다. 권제가 은근히 무적성이라는 권력을 가지라며 유혹하는 중이지만 무적성은 얽매이는 게 더 많아 아주 정중히 사절했다.
아무튼 제황은 그것을 이용해 백린을 압박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선행해야 할 것이 있다.
“좀 쉬죠.”
“조치하겠습니다.”
드르르륵... 철컥..철컥...
제황이 말하자 이루미는 군소리 없이 뒤로 물러났다. 20인승의 중형 제트여객기지만 내부 시설은 항공기의 퍼스트 클래스 뺨치는 좌석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라지자 편안하게 등을 기댄 제황이 상태창을 열었다.
스킬목록을 주르륵 내려서 하나의 스킬을 주목했다.
-신위 (유니크 등급)
지정된 신위:천제황
효과
현재능력활성화효과-모든 능력치 30프로 상승
사상력:
1단계:1,000명
2단계:10,000명
3단계:100,000명-적용 중
4단계:???
(마나석이 부족하여 다음 단계를 개방할 수 없습니다.)
4단계: 개방조건: 5티어마나석: 500개-500개 부족
신위는 정말 독특한 스킬이다.
이것은 세이브가 부여해 준 스킬이 아닌 궁기가 만든 주술이 세이브에 인식이 되면서 등록이 된 경우였는데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어디서도 들은 바 없었다.
스킬의 효과는 말 그대로 모든 능력의 상승이다. 신체 능력치를 포함해 모든 힘을 퍼센트로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것.
궁기의 말로는 워낙 사기적인 주술이기에 ‘제약’을 많이 걸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떠나서라도 효과는 무시무시했다. 만약 그 제약 중 하나인 천문학적인 마나석의 숫자만 아니라면 제황은 지금보다 몇 달은 더 빨리 지금의 무력에 근접했으리라.
-돈이 문제야.
금전감각이 둔한 제황도 5티어 마나석 500개가 얼마인지는 안다. 5티어 마나석 한 개는 국제시세로 약 3억의 가격으로 거래된다. 금액적으로만 따져도 1500억이다. 물론 1500억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 특이 이번 사태를 해결해준 보상금으로 버지니아 주정부에서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약속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신위의 단계가 올라갈수록 필요 마나석의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6티어는 20억... 7티어 마나석은 150억이지.
6티어 마나석 500개면 1조원이다. 그리고 7티어 마나석 500개면? 7조 5천억이다.
-그래그래. 얼른 벌어. 내가 지금 느끼기에는 이미 4단계를 지나 5단계도 갈아치울 태세인데 마나석이 없어서 다음 단계가 막혀 있는 거니까. 버는 겸 아예 미슐랭 스타 세 개 짜리 ...
-네가 먹어치우는... 아니다.
-내가 뭐! 뭐! 어쨌다고!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목소리를 높이는 궁기였다.
#2
“다녀왔습니다.”
“그래. 고생했구나.”
둘만의 공간, 마주 자리에 앉은 권제가 흐뭇한 표정으로 제황을 바라보고 있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지만 제황은 안다. 아니 느끼고 있었다. 권제는 지금 웃는 와중에도 제황의 몸을 마나를 이용해 꼼꼼히 훑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제황은 그것을 굳이 막지 않았다. 아니 예전부터 그러했다.
피식 웃으며 제황이 말했다.
“이제 제가 조금 더 강합니다.”
제황의 말에 권제의 하얀 눈썹이 꿈틀한다.
“끙, 고얀 놈···. 어느 틈에 이렇게···. 나도 빨리 무적성을 다른 놈에게 넘기고 제대로 수련을 해야지 원...”
불퉁한 표정이지만 목소리는 그다지 기분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제황에게 넌지시 말했다.
“어떠냐. 이제 이 할애비를 뛰어넘는 세.계.최.강의 9성헌터가 되었는데 본격적으로 이 무적성을 운영해 보는 것은 말이다.”
유독 세계최강을 강조하는 권제다.
“제 대답을 뻔히 아시면서 물으십니까.”
“에잉, 약은 놈···.”
“할아버지도 하기 싫으신 걸 저한테 떠넘기시면 안 되죠.”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무적성의 주인 정도 되면 나쁜 놈 서넛 정도는 카메라 앞에서 때려죽여도 아무 말 못 한다. 이게 바로 진정한 권력이고 힘이지. 무적성이 가진 무력과 금력 그리고 9성 헌터인 네가 합쳐진다면 세계를 아우르는···.”
평소 쓸데없는 말은 굳이 입에 올리지 않는 권제치고는 장황한 설명이다.
마치 무적성이라는 만병통치약을 팔기 위해 안달이 난 약장수 같은 느낌마저 든다.
“왜 굳이 사람을 티브이 앞에서 때려죽입니까. 안 보이는 데서 두들겨 패면 되죠.”
“쳇...”
제황의 대답에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권제는 애꿎은 잔만 만지작거린다.
“오랜만에 한 판 어떠냐?”
“9티어 몬스터랑 붙느라 몸이 많이 상해서...”
“에잉...”
뻔히 몸이 정상이라는 걸 알지만 이렇게 대결을 회피하니 억지로 붙기도 뭐하다.
“베히모스의 사체는 어쩔 생각이냐?”
더 채근해 봤자 입만 아플 것 같은 권제가 화제를 돌린다.
“일단 일차적으로는 무적성의 공방에 조금 양도할 생각입니다. 좋은 장비를 많이 마련해주시니 어르신들이 무척 좋아하실 겁니다. 나머지는 국내외의 몬스터 가공업체들을 통해 경매를 통해 판매할 생각입니다.”
“흠. 그건 잘 생각했다. 받은 게 있으면 넘치도록 돌려주는 게 도리지. 그것이 은혜든 원한이든 말이다. 장씨 늙은이가 제일 신나겠군. 9티어 몬스터 사체라면 아마 네게 손녀딸이라도 팔려고 들 텐데···.”
“그건 별로···.”
장씨 늙은이는 무적성 공방의 장으로 있는 꼬장꼬장한 표정의 노인이었다. 장인 특유의 까칠함과 외골수의 성격으로 유명한 노인이지만 무적성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세 사람이 있다. 바로 권제와 제황 그리고 노인의 손녀다.
뭐 제황에게 그 까칠함을 보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손녀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라도 9티어 몬스터를 사용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를 제황에게...
“라고 하면서 네게 은근히 떠넘기려고 할 거다.”
“가급적 피해야겠군요.”
“으하하하”
제황의 대답에 파안대소하는 권제다. 그와 몇 배에 달하는 나이 차이가 있지만, 제황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 어쩌면 그것은 평생 독신으로 지낸 그에게는 제황이 손자와 같이 느껴지는 것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전력을 다해 붙어도 까딱없는 강자임과 동시에 강자들만이 교감할 수 있는 무에 관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나눌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