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83화 (183/301)

# 183

9티어몬스터? 어쩌라고 -4

#1

암혼보 0.3초···. 무릎을 딛고 한 발, 등허리 쪽을 밟고 이동하며 다시 한발, 몸을 돌리는 베히모스의 시선 안에서 움직이며 공격이 시작할 때까지 기다려 준다. 그 후 앞발공격에 대한 회피동작, 밑으로 내려와 공격 시작 전에 다시금 암혼보 0.2초... 시야의 사각지대로 들어가 다시 한 방...앞발을 밟고 머리까지 날아가 뒤통수를 두들겨 준 뒤 고개가 위로 올라가면 다시 반대쪽으로 타고 내려가며 한 방... 암혼보 0.1초... 시선 회피 후 다시 한 방!

단 1초 사이에 베히모스와 나눈 공방이다.

초근거리이기 때문에 마나의 망실 없이 쑤셔 박히는 강기의 화살은 베히모스의 껍질을 후벼파고 피분수를 쏟게 만든다. 7티어 몬스터도 한 방에 침묵시킬 치명타. 그렇지만 베히모스 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기껏 벌려놓은 상처가 금세 아물어 버리니 상처 부위에 퍼붓는 일 점발사격을 통해 공격의 극대화를 꾀할 수 없다.

-힘내라! 힘! 힘내라 힘!

자신은 생사를 걸고 싸우고 있는데 궁기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좀 조용히 해줄래? 집중 좀 하자.

-벅차? 도와줄까?

-아니!

제황은 궁기의 제안을 일언지하 거절했다.

지금은 궁기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이건 오로지 자신만의 싸움이다.

‘해내야 해!’

몸이 비명을 지르지만, 제황의 의지는 단호했다. 해내야 한다.

마나의 양은 충분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몸에 가중되는 피로도가 상당했다. 전력을 다해 움직이니 관절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한계에 다다른 속도는 그걸 지탱해야 하는 척추에 무리를 강요하고 있다.

그렇지만 해야 한다.

백린과 싸우며 마지막에 출현했던 그 놈...

‘두억시니’

제황은 그 거인에게서 궁기 못지않은 강력함을 느꼈었다.

제황 또한 헬칸에게 신벌의 화살을 사용한 후였지만 상대가 얼마나 많은 ‘비장의 수’를 숨겼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신벌의 화살 없이도 그 정도 되는 놈을 상대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신벌의 화살로 두억시니라는 그 거인을 퇴치했는데 놈이 또 다른 것을 꺼낸다면 그야말로 외통수에 걸리는 것이다. 물론 제황도 숨겨둔 비장의 한 수는 있었다.

‘무련천궁단’

유지시간은 짧지만,확실히 단기결전용으로 그보다 좋은 스킬은 없다.

그러나 제황의 자신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다.

‘그 둘이 빠지면 내 공격력은 삼분에 일이 떨어진다.’

제황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바로 강력한 스킬에 의지하게 되는 것...

그래서는 안 된다. 스킬이 없어도 공격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제황이 이 9티어몬스터 레이드에 자원한 이유 중 하나였다.

화르르르륵!!!

그 때 베히모스가 자신이 서 있는 땅을 향해 불을 뿜었다. 얼핏 자폭같이 보이겠지만 베히모스는 충분히 영리했고 또 노련했다. 확실한 노림수! 바닥을 타고 흐른 백열 하는 화염이 사방 50미터를 화염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타탁! 지이이익!

불덩어리 하나가 베히모스에게서 떨어져 나와 땅을 굴렀다. 간신히 몸을 바로 세운 제황이 망토를 떨쳐 몸에 옮겨붙은 불씨를 떨쳐냈다. 피해는 있었다.

“아프네.”

온몸이 2도 화상이라도 당한 듯 화끈거린다. 피부가 시뻘겋다. 당장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압도자 세트’  의 속성방어력 20프로의 힘으로 치명타는 피했지만, 피해를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제황은 멈추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도 냉정한 이성 한줄기를 붙잡고 차근차근 몸에 빠른재생을 시전하며 다시금 베히모스에게 달려들었다.

한 방 맞았으니 한 방 갚아줘야 한다.

제황은 베히모스와 싸우며 자신에게 걸었던 제약 하나를 풀기로 마음 먹었다.

“날 원망하지 마라!”

초를 나누어 끊어치는 암혼보로 베히모스의 시선을 현혹하며 제황은 빠르게 베히모스의 머리 쪽으로 이동했다. 베히모스가 잔머리를 썼으니 자신도 써야 하지 않겠는가.

턱밑까지 도달한 제황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베히모스의 아랫입술을 밟고 솟구쳤다. 찰나지만 베히모스의 두 눈앞에 제황이 나타났다.

“춤추는 강기의 소나기!!!”

슈슈슉! 콰콰콰쾅!!!

“캬아아아아악!!!”

두 눈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베히모스가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분수처럼 뿜어지는 피분수! 잔인하게 파고든 강기의 화살이 자체 회전하며 안구를 갈아버렸다.

“크아아아앙!”

그 어느 때보다 거센 몸부림에 베히모스의 주위는 초토화가 되었다. 피륙의 상처는 곧바로 회복할 수 있었지만, 눈과 같은 미세한 기관은 틀렸다. 외부로 드러난 급소 중 가장 치명적인 곳. 평소라면 단순히 눈감는 것 하나로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눈을 감는 순간 두꺼운 얼굴 근육이 삼중으로 덮어주며 눈을 확실히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눈을 허락한 것은 적이 쫓기 힘든 속도로 움직여대다가 찰나 간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고 공격과 방어를 잠시나마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망설임의 대가는 컸다.

퍼펑! 펑!

베히모스는 마구 난동을 부렸다. 두 눈을 회복할 때까지라도 놈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다. 베히모스는 놈이 두려워졌다. 그렇다. 9티어 몬스터 베히모스는 지금 적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다.

“다시 공평하게 되었군.”

몸부림치는 베히모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서서 몸을 회복시키는 제황이다.

-난이도를 너무 낮춘 것 아냐?

-자세한 건 따지지 마. 아파 죽겠어.

무한고에서 화살 한 대를 꺼냈다.

제황은 손바닥을 통해 스르륵 하고 빠져나와 자연스럽게 두 손에 잡히는 화살의 매끌매끌한 표면을 느끼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마무리 해 볼까?.”

#2

“꾸어어어어억!”

마지막 단말마의 괴성과 함께 베히모스가 그 거대한 육신을 땅에 뉘었다.

마치 회광반조를 일으키듯 마지막 3분은 정말 엄청났다. 천지사방을 휘몰아치는 화염과 번개는 둘째치고 베히모스의 괴력으로 인해 일대를 흡사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듯 만들어 버렸다.

그런 베히모스도 끝내는 숨을 거뒀다. 세상 그 어떤 금속보다도 단단한 두개골이 내부의 두뇌를 보호하고 있었지만 베히모스도 엄연한 생명체이기에 작게나마 각 뼈가 맞물리는 곳에 작디작은 틈은 존재했다. 피륙 속에 감춰진 그 틈을 알고 했는지 얻어걸린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애초에 그 미세한 틈을 노릴만한 불가능에 가까운 공격 능력을 지닌 이는 세상에 거의 유일무이하다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유일무이한 이인 제황은 지금 베히모스의 머리 위에 오만하게 버티고 서서히 의식이 꺼져가는 베히모스를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시선을 돌려 한 곳을 바라봤다.

너무나 먼 곳 평범한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지금 제황은 누군가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말은 없었다. 아니 굳이 말이 필요할까?

상대의 표정을 확인한 제황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마치 이제 볼일 끝났다는 듯이...

그리고 그런 제황을 바라보고 있던 엠페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철수.”

그는 다른 이들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일어나서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돌아서는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엠페러의 돌발적인 행동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피닉스공격대의 메인딜러 7성헌터 엘머였다.

“주군 어째서···. 그냥 가십니까”

그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그의 주군이 저 남자에 대해 얼마나 기대했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영상을 볼 때마다 꼭 자신의 공격대에 넣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으니까.

처음에는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공격대의 메인딜러는 언제나 자신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속으로는 그보다 자신이 더 내심 기대했었다.

세계 최고의 공격대라는 피닉스 공격대의 메인딜러이기는 하지만 그는 항상 그 자신의 능력이 주군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명백히 존재하는 한계의 벽은 깨지지 않았다. 누구보다 빠르게 만렙을 찍은 건 물론이고 그 자신의 스킬들을 갈고 닦는 것을 개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 벽은 더욱 선명하게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를 좌절시켰다.

그리고 오늘 확인한 그의 실력은?  질투조차 나지 않았다.

공격대 제2 딜러 제 3 딜러면 어떤가. 그와 함께한다면 9티어 몬스터는 물론이고 비공식적으로 존재만이 확인된 10티어 몬스터 드래곤 마저 레이드가 가능하리라.

그런데 그렇게 기대하던 주군이 말 한마디 붙이지 않은 채 뒤돌아선 것이다.

“녀석은 상대가 품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된 거지.”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턴 멋들어진 미중년의 사내가 말했다. 피닉스 공격대의 메인힐러 데이빗이다. 엘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엠페러와 페어를 이루었던 그는 엠페러가 세계 최강의 8성헌터라는 명예를 얻게 해준 일등 공신임과 동시에 그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렇기에 엠페러의 속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그게 무슨...”

“후우...”

엘머의 반문에 작게 한숨을 내쉰 데이빗이 작은 목소리로 그 말에 답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껴버린 거다. 마치 엠페러를 바라보는 너처럼 말이야. 도저히... 자신의 능력으로는 저 미친 데미지가 일으킬 어그로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겠지. 너처럼...”

“!!”

데이빗의 말에 엘머가 눈을 크게 떴다. 엠페러는 세계가 공인하고 인정하는 최강의 탱커였다.

그런 그가 불가능하다면 저 남자와 함께 손발을 맞출 수 있는 공격대는 세상천지에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자. 씁쓸하군.”

엠페러의 뒤를 따라 데이빗이 걸어갔다.

그가 생각하기에 애초에 저 남자에게는 공격대 따위는 필요치 않다. 하긴 9티어 몬스터를 단독 레이드 가능한 괴물에게···. 공격대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 아닌가.

‘저 괴물이 피닉스공격대에 들어오는 순간 피닉스공격대는 더 엠페러의 공격대가 아닌 저 괴물의 공격대가 되는 것도 문제겠지.’

데이빗은 차마 그 말까지는 꺼내지 못했다. 그의 친구인 엠페러의 마지막 자존심을 배려한 것이다. 아마 지금 엠페러는 마음 속에 몰아치는 자괴감과 싸우고 있으리라. 그 자신이 그릇으로는 절대 담아내지 못할 이를 태어나 처음으로 목도했으니까.

그렇게 쓸쓸히 세 남자가 사라져갔다.

#2

쑤우우우욱!

거대한 몬스터의 사체가 검은 블랙홀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간다.

“더럽게도 크네.”

그 크기가 워낙 커서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도 없다.

체고 20m 체장 80m, 몸무게 100톤에 달하는 거대한 몬스터사체가 서서히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기 때문인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절반을 집어넣는데 벌써 2분이나 지났다.

“으아! 공간의 압박!”

쑥하고 밖으로 튀어나온 궁기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몬스터사체를 노려본다.

“공간이 모자라? 예전에 독각룡은 일곱 여덞마리씩 집어넣었잖아.”

“으으···. 그때는 차곡차곡 우겨 넣은 거지. 그리고 상황이 좀...”

제황의 말에 답하며 궁기가 초조한 얼굴로 손톱을 잘근잘근 깨문다.

이제 삼분에 이가량이 사라졌다. 이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끝나는 일. 그러나 잠시 후 제황은 베히모스의 뒷다리 일부분이 들어가지 않은 채 꿈지럭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궁기를 돌아봤다.

“다 찼어?”

“그... 다 찼다기 보다는 이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으으으 그래. 다 찼어. 히이이잉!”

“하...”

궁기의 말에 제황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아직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베히모스의 뒷다리를 바라봤다.

평소 사용할 때는 거의 무한이라는 느낌으로 사용했다. 화살 수십만 발을 마구잡이로 쏟아 넣어도 끄떡없는 무한고였다. 거기에 제황의 물건과 궁기의 간식창고까지 겸하는 무한고였다. 이름도 ‘무한고’ 가 아닌가.

“으으, 얼마나 꺼내야 하지.”

울상의 궁기가 손바닥을 뒤집자 그녀의 손바닥으로부터 갖가지 간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와르르르...

그런데 양이...? 장난이 아니다?

“대체 언제부터 얼마나 사서 집어넣은 거냐.”

“우물우물... 마...말 시키지 마! 바쁘니까. 흑흑”

마치 모 캠페인의 문구처럼 전부 먹어서 없애버리겠다는 듯 입안에 와구와구 쑤셔 넣는 궁기다. 그러나 그녀의 입안에 집어넣는 것보다 쏟아져 나오는 게 더 많기에 금세 산더미처럼 쌓인 간식들이 엘어스의 뜨거운 태양에 녹아버리거나 아니면 다른 간식들에 짓뭉개져 쓰레기가 되어 갔다.

“이러니···. 공간이 모자랄 수밖에.”

잠시 후 베히모스의 뒷다리까지 완전히 사라지자 드디어 무한고의 입구가 닫혔다. 그리고 궁기의 주위로는 이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변한 그것들과 그게 아까운지 입안으로 쳐덕쳐덕 쑤셔넣고 있는 궁기가 있을 뿐이다.

제황은 산처럼 쌓인 온갖 음식물쓰레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쓰레기 무단 투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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