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81화 (181/301)

# 181

9티어몬스터? 어쩌라고 -2

#1

콰콰콰쾅! 쾅쾅! 콰콰콰쾅!

“꾸어어억! 꾸억! 꾸어어억!”

붉은 섬광에 얻어맞을 때마다 베히모스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지금껏 끄떡도 하지 않던 오러가 실린 공격이지만, 내리꽂히는 붉은 섬광들은 베히모스의 방어막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베히모스의 본신을 무차별적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물론 그 자세한 사정을 보자면 지금 이 섬광을 쏘아대고 있는 제황의 무기인 ‘비천궁’ 에 있는 특수능력인 S급 옵션의 힘일 것이다.

가속 (S)

관통 (S)

방어 무시 (S)

슈페리얼 세트아이템인 비천궁의 특수능력들은 적의 강력한 방어를 파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게다가 레전드 스킬인 여의용혈신공이 뿜어내는 마나는 같은 양의 마나라도 차원이 다른 순도를 자랑한다. 그렇기에 베히모스의 방어막은 지금 제황의 공격에 저항하지 못한 너덜너덜한 누더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

기가 막힌 엠페러는 입도 떼지 못한 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공격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베히모스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더 기막힌 것은···.

“대체 어디서 쏘고 있는 거야.”

공격은 보이는데 막상 그 공격의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붉은 섬광 속에 언 듯 보이는 것은 분명 화살이었다.

‘그구나.’

엠페러는 직감적으로 지금 공격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에 대한 얼마 되지 않는 동영상을 엠페러는 수 번을 돌려 봤고 볼 때마다 경탄했다.

테크닉, 파워, 스킬, 전략, 위치선정 모든 것이 완벽하다. 무결점 헌터? 상위 0.0000001프로? 무엇으로 표현해도 과하지 않은 그였다. 그렇기에 그가 미국에 나타났을 때 그는 곧장 서부에서 동부의 버지니아까지 날아갈 생각을 했던 것.

“꾸어어억!”

분노한 베히모스의 머리가 한 방향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무언가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파악한 것. 괴성을 내지른 베히모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자!”

엠페러 또한 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엘머에게 힐을 쏟아붓던 데이빗이 엠페러를 바라보며 말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엘머 또한 의아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주군! 어딜 갑니까”

“어디긴 어디야! 베히모스 스틸 당했잖아! 따지러 가야지!”

엠페러의 말에 둘은 데이빗은 뜨악 하는 표정으로 엘머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상천지 누가 있어 9티어 몬스터를 스틸 당했다고 거기를 쫓아간단 말인가. 게다가 사실 엠페러의 말에는 억지가 다분했다.

조금 전 그 공격이 아니었다면 아마 엘머 헨리는 저승 편도 티켓을 손에 들고 스틱스강 건너기 위해 저승의 뱃사공 카론과 눈싸움 중이었으리라.

“빨리 따라와! 아! 그리고 저 짐 덩어리들은 꺼지라고 해!”

“알겠습니다.”

“얼마 멀지 않을 것이다! 가자!”

“네!”

엠페러의 눈에 기쁨이 가득하다.

#2

피리리릿...콰아아앙!

“크어어엉!”

분노한 베히모스가 애꿎은 바위산을 두들기며 화풀이를 했다. 덕분에 수억 년의 시간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바위산은 산산이 박살 나며 자리에 흩어진다.

피리릿···. 콰아앙!

“크아아악!”

수직으로 떨어진 붉은 섬광이 다시금 머리를 때리자 베히모스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360도 회전시켰다. 기세 좋게 달리던 베히모스는 방향 자체를 잃어버렸다.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화살이 날아온지 벌써 30분이 지났다. 줄기차게 두들겨 맞으며 방황하듯 적을 쫓던 베히모스의 눈에는 고통과 당황스러움이 가득하다.

“따분하군요.”

그리고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엎드려 그 꼴을 바라보고 있는 엠페러와 그 똘마니 둘은 팔자 좋게도 손에 팝콘을 들고 그것을 관람하고 있다.

“가지고 노네. 아직 위치파악 안 된건가?”

엠페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든 것이 그의 예상에서 벗어나 있다. 그는 본래 상대가 그래도 3~4키로 안에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워낙 장거리저격을 잘한다고 하지만 그가 목격한 정도의 정확도를 위해서라면 그래도 인간적으로 그 정도 거리는 뒀을 거라 생각했다. 답은? 아니었다. 단순히 삼사 키로미터가 아니다.

알 수가 없다. 적을 향해 맹렬히 달리던 베히모스는 어느 순간 우뚝 멈춰서서 ‘이 산이 아난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금 다른 방향으로 맹렬히 뛰어갔다. 그 와중에도 신나게 두들겨 맞지만, 원체 본신의 방어력이 좋아 껍데기가 넝마가 되어 감에도 베히모스는 끈기 있게 적을 추적했다.

그렇지만 그 추적이 세 번이 지나고 네 번이 지났을 때 그리고 총 십여 번가량 허탕을 치기 시작하자 저 강하고 노련한 9티어 몬스터는 평정심을 잃은 채 이곳저곳에 화풀이하기 시작했다.

그뿐일까?

“또 시작이군. 이 동네 몬스터를 싹쓸이할 생각인가.”

상대는 화살 하나로 단순히 교란만 시키는 게 아니었다.

달리던 와중 걸린 애꿎은 4티어 몬스터 무리 하나가 베히모스에게 짓밟혀 그대로 공중분해 되어 버렸다. 칭찬의 의미로 힌트를 준다는 것인지 붉은 오러에로우가 비처럼 쏟아지며 베히모스의 온몸을 샤워시켜 버린다.

“크아아악!”

화르르르륵!

꼭지가 돌아버렸는지 베히모스는 화염과 번개를 사방을 향해 난사하며 지랄발광했다. 마치 저 포효를 인간 말로 번역하면 ‘이 개XX 대체 어디야!’ 라고 하지 않을까? 물론 뭐 그 화살의 주인공은 방향을 가르쳐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화살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베히모스를 타격했다.

“거리를 좀 더 벌리는 게 좋겠다. 광포화 상태야.”

“그래. 주위에도 연락해서 절대 접근하지 말라고 해.”

데이빗의 말에 엠페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조했다.

9티어 몬스터의 광포화···. 되도록 이럴 때는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레이드가 절대 게임처럼 흘러가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 하나는 바로 어그로다.

몬스터가 뇌가 없지 않고서야 탱커가 아무리 많은 어그로를 끌었다고 해도 탱커 하나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전체 어그로 점유율로 분석을 하면 탱커가 압도적으로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헌터들은 아직도 전통적인 역할론에 따른 스쿼드 구성을 따른다. 그런데 여기에 ‘광포화’ 라는 게 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광포화... 말 그대로 몬스터가 완전히 열 받아 버린 상태다. 이때는 그냥 ‘쟤 미쳤어. 가까이 가지 마’ 라고 하는 게 상책이다.

레이드 중에 몬스터가 광포화에 빠졌다면? 그 몬스터를 최우선적으로 레이드해야 한다. 광포화에 빠진 몬스터는 적아 구분 따위 없다. 주변에 적이 보이지 않으면 그 화풀이를 사방으로 쏟아내는 것이다.

지금 저 베히모스처럼...

“크어어어어엉!”

콰쾅! 콰콰쾅!!!

베히모스가 또다시 지랄발광을 시작하고...

씨아아아앙! 콰콰쾅!

화살은 여지없이 날아와 머리에 꽂힌다. 그렇게 약 십여분이 지나자 베히모스의 광포화는 싱거울 정도로 어이없게 풀려버렸다.

“꾸우우웅!...”

온몸에 성한 곳이 없는 베히모스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려 뜨렷다.

적에 대한 저항 의지가 서서히 꺾여가고 있다. 쫓고 있기는 하지만 처음처럼 맹렬하지 않다. 이제는 쫓기보다는 적의 공격을 피하는 움직임이 섞여 있다. 아무리 방어력에 있어서 9티어 으뜸이라는 베히모스라도 누적된 데미지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씨이잉! 콰아앙!

상쾌한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오러에로우가 꼬리에 떨어지며 베히모스의 꼬리가 잘려 버렸다. 데미지가 제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꾸어어엉!”

이제는 명백히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불안한 듯 몸을 이리저리 돌리는 베히모스다.

꼬리가 잘렸다는 건? 방어막에 쏟아부을 마나도 간당간당한다는 소리다.

“제가 살다 살다 9티어몬스터다 앓는 소리를 내는 건 또 처음 듣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하···. 이런 희귀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데이빗 잘 녹화하고 있지?”

“큭큭, 유튭에 올리면 당장 1억뷰 각 나오겠다.”

소형 액션캠을 들고 베히모스 단독 주연 드라마를 찍고 있던 힐러 데이빗이 키들거리며 대답한다. 그의 말마따나 9티어 몬스터가 겁에 질린 영상은 세계 최초였다.

“어허, 그런 건 공개하는 게 아니야. 우리 공격대의 차기 메인 딜러님 영상이신데 허락 맡아야지. 아, 엘머. 차기 메인 딜러라는 말에 실망한 건 아니지? 네 자리 뺏는 건 아니야.”

본래 피닉스공격대의 메인 딜러는 엘머였다. 그렇지만 만약 저 공격의 주인이 피닉스공격대에 들어온다면 엘머는 세계최강 공격대의 메인 딜러라는 명함을 그에게 양보해야 할 것이다.

엠페러의 말에 엘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주군. 저도 보는 눈이 있습니다. 저런 이가 우리 공격대에 들어와 주기만 한다면 저는 당당히 포지션 변경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이참에 힐이나 배워서 데이빗님 새끼힐러로 들어가면 어떨까요?”

전위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근접딜러 엘머의 말에 엠페러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었다.

“힐러가 부러웠냐?”

“아니라면 거짓말이죠. 아무래도 전위보다는 덜 다치니까.”

“난 탱커야.”

“주군은. 그것밖에 못 하시잖아요.”

“뭐야?”

그때 세계 최강이라는 8성헌터와 대한민국도 공식적으로 세 명밖에 보유하지 못했다는 7성헌터가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촬영에 집중하던 데이빗의 입이 열렸다.

“도망치려고 한다.”

“뭐?!”

그의 말에 엠페러와 엘머의 머리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베히모스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을 말이다. 저것은 저항 의지가 완전히 꺾였다는 뜻이다.

“살다 살다 단 한 사람에게 베히모스가 도망치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이대로 계속 진행된다면 분명 이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었다. 생각은 했지만 설마라는 마음이 앞섰다. 그렇지만 막상 베히모스가 죽는 소리를 내니 기가 차는 것이다. 자신도 하지 못한 일이다. 앞 전에 싸울 때도 베히모스를 레이드 하기보다는 쫓아 보낸다는 심정으로 싸웠다. 레이드 하기에는 공격력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베히모스가 완전히 난공불락이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과거에 공식, 비공식을 따지면 두어 번가량 레이드가 된 적이 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수백의 헌터들이 레이드에 임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뿐이랴. 쏟아부은 미사일과 포탄의 양은 말 그대로 베히모스를 파묻어버릴 만큼 투입했다.

그렇게 레이드를 성공했었다. 공표하기에 부끄럽고 또한 전세계 헌터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칠 거라는 말에 비공식에 붙여진 레이드 기록은 이처럼 꽤 많다.

그런 베히모스를 홀로 쫓아낸 것이다.

“도망치는군.”

꽁무니를 빼는 베히모스를 바라보며 엠페러가 말했다.

드디어 길고 긴 레이드가 끝났고 셋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까딱했으면 콜로니 하나가 지워질 뻔했다. 그대로 방치되었다면 발생했을 사상자와 재산피해는 생각하기도 끔찍할 것이다. 비록 베히모스를 레이드하지는 못했지만, 이곳에 있는 누구도 이것을 실패라 말하지 않으리라.

9티어 몬스터를 홀로 레이드 한다?

“9성 헌터...”

엠페러가 독백처럼 읊조렸다. 6성 이후부터는 따로 정의된 강함의 기준이 없다. 그 이유는 그것을 판단할 이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7성부터는 동등한 강함을 지닌 강자들이 상대를 평가하는 것으로 별을 붙인다.

다른 방법도 있다. 딜러계열만 가능한 것이었는데 동일한 티어 그러니까 7성은 7티어, 8성은 8티어 몬스터를 홀로 레이드 했을 경우 그 사람을 해당 등급으로 인정해 준다. 만약 그가 베히모스를 홀로 레이드 한다면... 그는 9성 헌터가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헌터라는 명예를 손에 쥔다.

“훗, 내가 무슨 헛생각을...”

고개를 흔들며 상념을 떨친 엠페러가 고개를 들어 베히모스를 바라봤다. 그런데...

슈슈슈슈슈슉.... 퍼어어어어어엉!!!

아무래도 화살 주인은 9성헌터의 자리에 욕심이 있는 모양이다.

마치 사냥감의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베히모스가 도망치기 시작하자 더욱 강력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베히모스는 피부를 찢고 살을 가르며 파고드는 고통 속에서도 도망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엠페러는 깨달았다. 저 화살의 주인은 쫓기도 어렵지만 도망치는 것은 더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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