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9티어몬스터? 어쩌라고 -1
“유인한다!”
지금 지형에서는 도저히 싸울 수 없다 판단한 그가 외쳤다. 그의 오더에 따라 신속하게 몸을 움직이는 헌터들... 그러나 문제가 터졌다. 무장버스가 실수로 브레스가 휩쓴 곳으로 밀려들어서 무장버스를 지탱하던 여덟 개의 타이어가 동시에 터져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용암에 주저앉은 무장버스는 남아있는 휠을 돌려서라도 그곳을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지만 질척한 바닥은 무장버스를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 무장버스가 있는 쪽을 향해 베히모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아악! 온다! 맙소사!”
“살려줘!”
“도망쳐!”
용암 한가운데 고립된 무장버스에 탑승해 있던 헌터들이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주의를 끌었는지 베이모스는 이제 그 무장버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접근하는 중이다.
“안돼!”
이동하려던 엠페러가 베히모스의 전면을 막아섰다.
“거울의 성채!”
처처처처척!!!
그가 손에 쥔 방패가 커지며 흡사 방벽 마냥 베히모스를 둘러쌌다. 그가 지닌 슈페리얼 세트 아티펙트 이지스에 내재한 비장의 스킬이다.
쾅! 쾅! 콰쾅! 쾅! 쾅!
벽에 둘러싸인 베히모스가 마구 발광하기 시작했고 한 번 요동칠 때마다 방벽이 흔들렸다.
“흐으읍!”
엠페러는 이를 악물고는 스킬을 유지했다. 한 번씩 두들길 때마다 보유마나가 쭉쭉 빠져나가지만 어쩔 수 없다. 다행이라고 할 건 거울의 성채는 내부의 충격을 되돌려주는 성격이 있으므로 가만히 둬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히모스도 단순히 강력하기만 한 몬스터는 아닌지 공격하는 와중에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그걸 보는 엠페러의 표정이 신중해진다.
‘조금만 더!’
충분한 어그로를 끈 상태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그의 뒤에 있는 무장버스가 공격당할 것이다.
한동안 대치상태가 지속되었다.
마침내 베히모스가 공중을 향해 머리를 치켜 올리며 포효하기 시작했다.
“꾸어어어어어어엉!”
초대형 몬스터 베히모스의 피어가 작렬했다.
오우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강대한 피어가 사방을 휩쓸고 그로 인해 엠페러의 정신집중이 잠시나마 풀렸다. 그리고 그 잠시의 순간이 이 대결의 승자를 결정지었다.
퍼어어엉!
“흡! 안돼!”
베히모스의 박치기에 속절없이 날아가며 엠페러가 외쳤다. 거울의 성채를 떨쳐낸 베히모스의 머리가 여전히 무장버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베히모스는 교활했다. 상대가 뭘 지키려고 하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지키려는 것은 적의 취약점, 취약점을 먼저 공격하는 건 야생동물의 본능이다.
쿵...쿵
이제 저 무장버스는 무려 120톤에 달하는 베히모스에 의해 짓밟히거나 혹 그 강력한 박치기 공격에 걸레가 되리라.
저항하려는지 무장버스에 있던 헌터들이 맹렬히 공격을 날려대지만, 그것이 오히려 베히모스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물들어갔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곳에 있는 모두가 베히모스의 다음 움직임을 숨죽여 바라본다. 엠페러를 제외하고 말이다.
“놓치지 않는다!”
엠페러의 몸에서 황금빛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그의 몸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의 슈페리얼 세트 아티펙트 갑옷에 내재한 스킬.
[허큘리스의 강림]
이것은 지닌바 모든 능력치를 200프로 폭발시키는 능력이다.
그 힘이 워낙 강력하기에 그가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단 5분이다.
그는 슈페리어급 아공간인 키비시스에 이지스를 집어넣고는 두 주먹을 맹렬히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두 주먹에는 어느 틈에 두 개의 너클이 빛나고 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그의 몸에서 발생한 토네이도가 작은 용권풍을 일으켰다.
“크어어엉!”
이때만큼은 베히모스도 감히 그를 무시할 수 없는지 엠페러에게 고개를 돌렸다.
둘의 정면 격돌! 둘 사이에 물러섬은 없다. 아니 오히려 엠페러가 베히모스를 밀기 시작했다. 무려 120톤의 몸을 말이다.
콰콰쾅!
“으아아!”
용권풍에 무장버스가 이리저리 밀려났고 그 때마다 안에 타고 있던 헌터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둘의 격돌에서 발생하는 작은 파편들이 무장버스를 마구 때리기 시작한다.
“숙여라!”
퍼어엉!
베히모스의 콧잔등에 주먹이 작렬하자 베히모스의 머리가 땅에 처박혔다.
펑! 펑! 퍼 퍽! 퍽!
엠페러는 베히모스의 머리를 아주 땅에 심어버릴 기세로 두들겨 댔다.
자욱한 먼지 속 엠페러가 아공간에서 둥글게 휜 1.5미터의 대검을 꺼내 들었다. 그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지만. 큰 공격을 쓸 때만 사용하는 검..하르페다.
‘아레스의 분노’
후우웅
퍼어어어어엉!!!
대기를 진동하는 요란한 충격음과 함께 베히모스의 머리 위로 마치 폭탄이 터진 듯한 폭음이 울려 퍼지며 베히모스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크레이터가 생겨 버렸다.
“후욱...후욱...”
가쁜 숨을 몰아쉬던 엠페러는 잠시 쉴 틈도 없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9티어 몬스터가 이렇게 쉽게 죽을 리 만무하다. ‘허큘리스의 강림’ 이 끝나기 전 다시 한번 강력한 공격을 가하려는 속셈이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엠페러의 손이 밝게 빛났다. 모든 마나를 끌어모아 거대한 오러스피어를 만들어 낸 그가 곧장 베히모스의 다시금 머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끝이다!”
엠페러가 베히모스의 정수리 한복판을 노려보며 그것을 사정없이 내리꽂았다.
콰쾅!쾅!쾅!
“와아아!”
파괴력의 정점이라는 오러가 긴 빛의 장검이 되어 쑤셔박혔다.
엠페러의 부하들도 버스에 타고 있던 헌터들도 이제 저 베히모스가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환호성을 올렸다. 지금껏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9티어몬스터 단독레이드의 업적인 것이다. 그러나 굳은 엠페러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마주보고 있었다.
흙먼지 속에서 빛나는 베히모스의 눈이 그를 마주 노려본다.
“대장 위험해!”
다른 이들보다 눈썰미가 좋은 힐러 데이빗이 외쳤다.
베히모스의 몸에서 뭉클거리며 피어나는 마나의 기운을 알아차린 것이다.
엠페러는 방어를 위해 몸을 움츠렸고 동시에 베히모스의 세 개의 뿔이 불타오르듯 빛나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지지직!!!
본디 벼락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힌다. 그렇지만 그곳에 있는 이들은 목도했다. 벼락이 땅에서 하늘로 솟구칠 수도 있다는 것을...
엠페러는 벼락에 직격당하다 못해 그냥 벼락의 기둥에 휩싸여 버렸다.
저 정도 되는 벼락이 대체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을까.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닿는 모든 생명체에게는 무조건 즉사 라는 게 현명한 답이리라.
쿠쿵!
벼락에 직격당한 엠페러가 땅에 떨어졌다. 온몸에서 파지직 거리는 스파크가 튀며 여기저기서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렇지만...
“Fuc...”
그는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전의를 불태운다.
엠페러는 욕설을 내뱉으며 눈앞의 베히모스를 노려봤다.
당장은 움직이기가 힘들다. 베히모스의 저 전격 공격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었다.
현재 엠페러의 속성방어 스킬이 몸을 파고드는 전격의 에너지를 방어해 내고는 있지만, 완전히 해소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엠페러를 향해 산과 같이 거대한 베히모스가 돌격해 들어왔다.
콰아아앙!
엠페러는 그대로 베히모스에게 받쳐 뒤로 주우욱 밀려났다.
120톤의 초대형급 몬스터의 돌격이다. 그것이 탱크라도 단숨에 박살이 날 충격이지만 오히려 엠페러의 눈은 더 생기있게 변했다.
“하하하, 아주 좋군.”
그는 오히려 몸이 풀린다는 듯 광소를 터뜨렸다.
그가 가진 본신의 스킬인 ‘검은심장’ 이다. 유니크급의 이 스킬은 받는 모든 데미지를 회복력으로 치환시키는 스킬로써 그가 8성헌터가 되게 만들어 준 가장 강력한 능력이었다.
투툭..툭
타버린 전자장비들을 몸에서 털어낸 엠페러가 팔을 휘휘 돌렸다.
그리고는 하르페를 곧추세운 채 베히모스를 노려봤다.
2차전이 시작되려 한다.
#2
“안 좋은데...”
피닉스공격대의 메인딜러이자 엠페러를 주군으로 모시는 엘머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기의 대결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딱히 엠페러가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수천 마리의 고위 몬스터를 레이드 해온 엠페러는 몬스터레이드의 스페셜리스트였다.
아무리 베히모스가 가진 힘이 강력하다고 해도 엠페러는 베히모스의 공격을 깨끗이 받아 넘기며 공격을 성공시키고 있었다. 피할 건 피하고 넘길 건 넘긴다. 아무리 움직임이 기민해도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위험해.’
문제는 베히모스의 방어력이 너무 강력하다는 것이었다. 엠페러의 공격은 베히모스의 방어막도 뚫지 못하고 있다.
본래는 엠페러가 저렇게 탱킹을 하고 있을 때 딜링을 해야 하는 건 자신의 몫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무기마저도 저 방어막은 뚫지 못했다.
게이트를 통해 지원해 오는 고위 각성자들이 합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 전에 엠페러가 번아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쿵!
“빌어 드실!”
단 한 번이었다. 베히모스가 땅을 크게 구르는 순간 대지가 요동쳤고 덕분에 엠페러의 하체가 삐끗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그 거대한 몸이 공중을 날아 엠페러를 그대로 덮쳐 버렸다.
퍼어어억!
“크아악!”
처음으로 엠페러가 제대로 비명을 내질렀다. 몸을 튕겨 피해내기는 했지만, 워낙 그 충격량이 많아서 완전히 해소해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베히모스는 이참에 완전히 끝장을 내려는지 곧장 엠페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엠페러는 신속히 몸을 옆으로 날렸다. 베히모스의 거대한 몸이 그를 스치고 지나가는데 아주 약간의 스침 뿐이지만 엠페러는 그 충격만으로도 마치 포탄이 튀어나가듯 옆으로 날아가 바위에 꽂혀 버렸다. 위기의 시작!
“크흐...”
아찔한 충격에 엠페러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엘머가 우려하던 사태···. 베히모스는 수십 번 공격당해도 끄떡없지만 엠페러는 한 번 치명적 공격을 허용하면 손해가 크다는 것이다.
“하아압!”
엠페러가 공격당한 동시에 엘머가 튀어 나갔다. 그의 손에 들린 대검에서는 오러가 줄기줄기 뿜어지고 있다. 힐러인 데이빗이 엠페러를 치유할 동안 시간을 벌려는 것! 그러나 그는 돌격해 들어간 것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피분수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크악!”
“안돼!”
엠페러가 뒤늦게 외쳤지만 이미 그의 부하인 엘머는 치명적인 공격을 당해 버렸다. 베히모스는 노리고 있었다. 엘머가 대검으로 베히모스의 목덜미를 노리려는 순간 그 거구를 빙글 돌리더니 꼬리로 맹렬히 후려쳐 버렸다. 데이빗이 있기에 죽지는 않겠지만 문제는 베히모스가 다음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부우우우웅!
베히모스가 다시금 공중을 날았다. 그리고 그 거체가 떨어져 내리는 목적지에는 땅에 쓰러진 엘머가 있다. 엠페러는 피할 수 있었지만 지금 엘머는 충격과 고통으로 인해 베히모스의 거대한 그림자가 자신을 덮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대로 떡이 되는 것만 남은 그 순간...
퍼어어어어엉!!!
“어?”
엠페러는 지금 자신이 헛것을 봤나 하고 눈을 비볐다.
귀를 찢는 충돌음이 울림과 동시에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던 120톤의 베히모스가 그 궤도를 바꿔 옆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베히모스에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공중이동기가 있는가 하고 머릿속을 뒤져 봐도 단연코 저런 건 없다.
“꾸어어어억!”
그리고 베히모스가 처음으로 제대로 내지른 비명은 저 움직임이 베히모스의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콰아아앙!
“크라라라락!”
땅에 처박힌 베히모스가 광포한 포효를 내지르며 몸을 바로 세웠다.
베히모스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 자신을 아프게 한 것을 찾으려는 듯 보인다. 고개를 돌리던 베히모스의 시선이 순간 공중에서 멈췄다.
“꾸우웅?”
베히모스가 처음으로 신음을 내질렀다.
그 큼지막한 동공에 보이는 것은... 까마득한 하늘을 가득 채우며 떨어져 내리고 있는 수십 개의 붉은 섬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