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79화 (179/301)

# 179

9티어몬스터 -3

#1

“우지직!”

2층짜리 건물들 사이로 머리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번들거리는 대머리의 그것은 푸른 피부를 지니고 있었는데 머리를 이리저리 돌릴 때마다 흉측하게 솟아오른 승모근이 꿈틀거렸다. 주먹으로 보이는 거대한 살덩어리가 올라오고 그것이 휘둘러지자 건물들이 마치 비스킷처럼 바스러졌다.

“오우거다! 도망쳐!”

“22콜로니 5구역 민병대장 루스가 알린다! 6티어 오우거 출현! 오우거 출현!”

“사격! 사격!”

파파파팍! 팍팍! 파파팡!

공포에 질린 비명과 고함이 한 대 섞인다.

콜로니 내로 침투한 6티어 몬스터는 말 그대로 재앙이다. 평소에도 콜로니를 지키는 정예 공격대가 출동해서 레이드 해야 하는 놈이었다. 아니 콜로니에 접근하기 전 격퇴하는 게 기본 대응방침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

그나마 게이트를 통해 지원인력이 계속해서 충원되고 있지만 6티어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허접한 화기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공격은 오우거의 흉성을 자극할 뿐이었다.

퉁퉁퉁!

“꾸어어어어억!”

주변에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는 오우거의 고함소리가 사위를 찢어발기자 그 고함소리와 함께 뿜어진 대형종 몬스터의 공통스킬인 피어로 인해 근처에 모든 이들이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으, 어어어...”

“도, 도망...”

사람들은 오우거에게 대응할 의지도 없이 어떻게든 오우거에게서 멀어지려고 뒤로 기어갔다. 일부 헌터들은 그나마 정신력으로 버텼지만, 그들도 딱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크르릉...”

오우거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콧김을 내뿜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귀엽게 반항하던 먹음직스러운 고기들이 주위에 널려 있다. 싱싱한 피를 씹어 삼킬 것을 생각하니 입가에 침이 감도는 것 같다. 오우거는 느긋한 표정으로 바닥을 구르고 있는 인간들 중 하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안돼.”

재수 없게 오우거의 첫 식사로 간택 당한 남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은 그냥 고개만 젓는 것뿐이다. 당장에 뭐라고 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생존의 본능만이 남아 어떻게든 몸을 옥죄는 알 수 없는 힘에 저항해 보지만 오우거의 피어는 4티어 헌터들도 두려워하는 강력한 능력이었다.

오우거의 거대한 손이 남자의 몸을 단숨에 쥐려는 순간이었다.

씨이잉! 퍼어어어어엉!!!

맹렬한 폭발이 일어남과 동시에 10여 톤에 이른다는 오우거의 거대한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공중으로 날아올랐지만 오우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아니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머리가 없었으니까.

콰콰쾅! 콰르르르...

두 채의 건물을 박살 내며 뒤로 굴러간 오우거의 사체가 힘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조금 전까지 오우거에게 잡아먹힐 뻔한 남자는 입을 떡하니 벌린 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붉은 홍운이 망멸한 순간 죽음의 사신과도 같았던 오우거가 참으로 어이없이 쓰러져 버렸다.

#2

“후우...”

사격을 끝마친 제황은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가장 강해 보이는 오우거를 마지막으로 궁기안에는 이제 붉은 점이 보이지 않는다.

-저놈은 처음 보는 놈이야. 저 녀석 마나석은 어떤 맛일까?

궁기가 탐욕스럽게 말했다. 그 목소리가 마치 남편의 월급날 계좌를 확인한 마누라 같은 느낌인 건 단지 착각일까?

-나중에 가져오겠지.

제황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한 후 비천궁을 무한고에 집어넣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가 레이드한 게 분명한 6티어 몬스터를 꿀꺽할 놈은 없다.

-A랭크로 오르니까 레벨이 너무 안 오르네. 몇 마리 잡았지?

-361마리... 더 강력한 몬스터를 잡으라는 거겠지. 티어가 올라갈수록 주는 경험치가 많잖아?

-음. 그건 맞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이제 가봐야겠군.

궁기안에 잡힌 대부분의 몬스터는 처치했다. 나머지는 이제 남은 이들이 해야 할 일

그때 밑에서부터 거대한 함성이 들려왔다. 수많은 사람이 제황을 바라보며 열광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땅에 엎드려 제황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두 손을 마주 잡고 제황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마치 신을 맞이하는 광신도들처럼...

그리고 제황은 그것을 쓸쓸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네가 말하던 게 이거구나.

-그래.

궁기가 담담히 답했다.

-명예, 명성, 기대, 관심, 추종...흠모...시기...질투...

한때 제황이 고민하던 화두의 하나였다.

-시작된 건가.

긍정적인 건 하나 있다.

-신위는 쭉쭉 오를걸?

-그렇기야 하지만...

그가 가진 신위라는 스킬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강해지는 특성을 지녔다. 궁기의 말에 제황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신위가 높아짐에 따라 그 자신도 강해지겠지만 반대급부로 얻는 것은 지금 지상에서 그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내뿜고 있는 저 눈빛이리라.

-정말 부담스럽군.

예전 제황은 그것들에 대한 생각을 권제에게 물었었다.

그리고 돌아온 권제의 대답은 간단했다.

“난 더 강해지려 노력했다. 강해지고 강해져서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말이다.”

참으로 권제 다운 대답이었달까.

제황 또한 당시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막상 이렇게 닥치고 보니 그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대답이라는 걸 깨달았다.

-명성은 타오르는 불꽃에서 뿜어지는 한낱 불티일 뿐이야.

-응. 알아.

한창 유망주로 날렸을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환호 속에 자만이 싹튼다. 아버지는 항상 흔들리지 말 것을 말했지만 어린 날의 그에게 그것은 마치 속세 구도자의 길을 강요하는 것과 같았다.

일찍이 어려서부터 가문의 비전을 배우며 정기신을 닦지 않았다면 제황도 거기에 휩쓸렸을 것이다.

-지금부터 호연지기라도 길러야 하나.

-그런 것에 정의하려 하지 마. 그런 것에 얽매이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넌 더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하는 사람이야.

-그래. 고마워.

-흔들리지 마. 아무리 네가 가진 여의용혈신공이 네 정신을 보호한다고 해도 근본적 가치는 네가 세우는 거야. 명성에 안주하는 순간 넌 멈추게 될 거야. 항상 경계해. 명성은 악명보다 못하다는 걸.

-알았어.

마누라에서 이번에는 인생을 가르치는 선생과 같다.

항상 다채로운 모습을 보이는 궁기다.

-그보다 가야 하지 않아? 5분이라고 큰소리쳤잖아.

시간을 보니 대략 6분 정도 걸린 것 같다. 1분 오버했다.

-설마 딴지 걸지는 않겠지.

-죽여버리지 뭐.

-그냥 예쁘장할 뿐이라니까.

-흥!

궁기의 콧소리를 들으며 제황은 탑을 가볍게 뛰며 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사람들이 제황을 향해 몰려들었지만, 제황은 그들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무장버스에 올라탔다.

“안 급합니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제인 모리스를 향해 툭 던지니 마치 시간에 멈춰진 듯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는 서둘러 무장버스에 올라탔다.

“추...출발하겠습니다.”

출발을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마구 떨린다. 아까 전까지는 시비 걸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지금은 아주 얌전하고 공손해졌다. 지금 그녀는 제황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이건 편하네.

#2

“데이빗! 그쪽 어서 빠지라고 해!”

“알았어! 이봐! 어차피 공격은 박히지 않으니까 열 내지 말고 뒤로 빠져! 우리 탱커가 힘들어하잖아!”

“온다! 대비!”

파앗!

퍼어어어엉!

맹렬히 뿜어져 나간 푸른 오러가 거대한 산과 맞부딪혔다.

“흡! 제길 어쩔 수 없이 밀려야 하니 자꾸 큰 공격을 허용하잖아! 엘머! 한 대 갈겨!”

“쳇! 알겠습니다! 엠페러시여! ”

번개처럼 튀어나간 한 남자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쥐고 있던 대검을 산을 향해 힘차게 내리꽂았다.

그의 대검 끝으로부터 뿜어나온 오러가 산을 내리찍어가지만, 일순간 대검은 마치 벽에 막힌 듯 더 전진하지 못했다. 방어막이다.

“아직입니다!”

“제길 좀 더 고생해야겠군. mother f···!”

엘머라는 남자의 말에 거대한 방패를 쥔 흑인 남자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세를 낮춘다.

“더럽게 걸렸어.”

그는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산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전체적인 모습은 초고도비만의 소와 같다. 아니 소라고 하기에는 전면에 큼지막한 뿔이 세 개 솟아 있으니 코뿔소 같다고 할까?

쏴솨솨솨솨솩!

터터터터터텅!!!

“큿!”

물론 공격수단이 그 하나뿐이라면 지금 눈앞에 있는 산이 괜히 9티어 몬스터가 아닐 것이다. 목 주위에 돋아난 마치 수사자의 갈기와 같은 그것은 하나하나가 모두 기다란 촉수들이었다. 개별적인 공격은 우습지만 한 번 공격에 수십 개가 쏟아져 내린다. 게다가 그 촉수들은 공격뿐만 아니라 잡아당기기에서부터 견제까지 수많은 기능을 수행한다.

몸이라도 느리면 옆이나 뒤를 공략해 보겠지만 덩치에 반비례라고 할 정도로 속도도 기민했다. 뒤에 달린 그리 길지 않은 꼬리 또한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저것에 한 번 휩쓸리면 웬만한 헌터는 그대로 피떡으로 만드는데 베히모스는 그 외에도 수많은 공격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아직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8성헌터 에릭 루카스 일명 엠페러라 불리는 이 흑인사내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어! 좀 더 버티다가 후퇴한다!”

“데이빗! 사람들을 최대한 물려!”

“알았어!”

“조심!”

우지지직!

엠페러를 단숨에 삼킬만한 거대한 입이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공간을 요란하게 물어 찢었다. 만약 0.1초만 늦었어도 아마 신체 하나는 내놓아야 했을 것이다.

“집중해야겠군.”

엠페러는 투구를 고쳐 쓰고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최소한 피닉스 공격대만 있었어도···.’

정기 레이드 때가 아니면 거의 소집하지 않는 공격대였기에 이번에는 굳이 부르지 않았다. 호출하면야 즉각 달려올 이들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 세계 최초의 8성 원거리 데미지 딜러로 유력한 헌터의 출현에 공격대 내에서 절친한 둘을 끌고 전용기에 올랐다.

엠페러는 어떻게 해서든 그를 자신의 공격대에 합류시킬 작정이었다.

7성 근접 딜러 엘머 헨리가 공격대의 메인딜러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항상 더 강력한 딜러의 합류를 간절히 바랐다.

그 자신은 세계 최고의 탱커다. 그리고 힐러 데이빗 브룩스는 7성의 버퍼이자 힐러... 여기에 8성의 원거리딜러 하나만 더 낀다면 환상의 스쿼드가 완성되는 것이다. 듣기로는 은신 능력도 뛰어나다고 하니 자신들에게 부족한 면을 모두 채워 줄 유용한 인재이다.

퍼어어엉! 꾸우웅

슈페리얼급 아티펙트인 그의 이지스가 찌그러지는 느낌이다.

“흐아아압!”

퍼어엉!

그는 있는 힘껏 방패를 휘둘러 베히모스를 떨쳐냈다. 7티어의 몬스터도 날려버리는 공격이지만 베히모스는 고작 목만 까딱 움직이는 정도다.

“새끼···. 더럽게 단단하네.”

엄청난 방어력의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자니 데미지 딜러에 대한 필요 욕구가 잡생각이 되어 자꾸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퍼퍼펑! 펑펑! 드르르르륵!

베히모스의 측면을 강타하는 요란한 폭발음. 저들 딴에는 엠페러를 지원한다는 사명감에 내지른 공격이겠지만 막상 저들의 지원을 받는 엠페러는 욕지거리만 나온다.

“mother f..! 좀 꺼지라고 해!”

베히모스의 방어막도 뚫지 못하는 기관포 공격은 오히려 엠페러의 방어스텐스만 흐트러뜨릴 뿐이다. 유인 중 발생할 다른 몬스터의 어그로를 해소할 목적으로 데려오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그르르르...”

목깊은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위험을 감지하는 그의 스킬이 그에게 피할 것을 종용했다.

“브레스다!”

크게 외친 그가 방패를 빼며 몸을 옆으로 날렸다. 베히모스의 브레스는 정면으로 맞으면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

화아아아악!

크게 벌린 베히모스의 입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고 잠시 후 그것에 닿은 모든 것은 지글지글 끓어오르며 녹아버렸다. 베히모스의 브레스는 바위마저도 녹이는 지독하게도 뜨거운 화염이다. 단숨에 베히모스의 브레스가 휩쓴 반경 50미터가량이 불바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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