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9티어몬스터-2 (수정)
#1
주방위군은 제황의 레이드 참가의사를 반기며 정말 신속히 이동수단을 지원해줬다.
헬기장으로 뛰어가니 거의 동시라고 할 정도로 헬기조종사들과 항공정비사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마치 F1의 정비사들처럼 신속하게 뛰어다니며 순식간에 이륙준비를 끝마쳤고 제황이 데릭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이 서서히 로터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헬기가 막 떠오르기 직전 여자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와 헬기에 올라탔다.
특이한 정신계 스킬을 사용하던 그 미모의 국토방위국 요원이다.
“구, 국장님이 보내셨습니다.”
그녀가 제황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에게 당한 여파가 남았는지 제황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자 찔끔하며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곧이어 제황이 꺼낸 말에 그녀는 발끈하고 고개를 획 돌렸다.
“이름이?”
“제인 모리스라고 소개드렸는데요?”
“아, 제인”
고개를 끄덕인 제황이 이내 관심 없다는 듯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제인은 뭔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제황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헬기 뒤편으로 이동했다. 이륙을 마친 헬기가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날기 시작하자 부조종사석에 앉아 있던 조종사가 뒤늦게 합류한 미모의 여성을 보려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라 고개를 바로 했다.
속옷만 걸친 초절정의 미녀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헌터용 장비로 갈아입고 있다.
“흥.”
장비 착용을 끝마친 제인은 콧방귀를 뀐 후 자리에 앉았다.
헬기조종사의 반응을 보건데 자신의 미모는 여전히 든든한 그녀의 무기다. 물론 지금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이 목석같은 인간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양인 취향인가.’
닐 국장에게 친해져 보라는 밀명(?)을 받기는 했지만 반응을 보면 그건 요원한 일인 것 같다. 오기가 생긴다. 굳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그녀의 미모는 무적이었다. 가끔 일이기 때문에 스킬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게 없더라도 그녀의 작업 성공률은 99프로를 자랑했다.
‘목석이 분명해.’
그녀의 방대한 경험으로 볼 때 이 남자는 확실히 자신에게 관심이 1그램도 없었다. 물론 제황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남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둘로 나뉜다. 관심 없는 척하며 자신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얕은 수작을 부리는 것이거나 혹은 게이였을 때뿐이다. 그러나 지금 옆에 앉은 남자는 그동안 생각지 않았던 세 번째 분류를 만들었다.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어.’
접근가능성 자체가 보이지 않으니 그냥 포기하면 되는데 문제는 자신이 이 남자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초강자라는 것은 제쳐두고 그 강함에 비견될 정도로 잘생겼다.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사령관실에서 봤던 그의 얼굴의 잔영이 보이는 것 같다. 그때 갑자기 제황이 고개를 획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엉겁결에 눈이 마주친 그녀의 얼굴이 마치 훔쳐보다가 들킨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를 바라보며 제황이 말했다.
“22콜로니라는 곳의 지형정보 주세요.”
“네. 저...저도...네?”
제황의 말에 어안이벙벙한 표정을 짓던 제인은 품에서 태블릿을 꺼내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들긴 뒤 제황에게 툭 건넸고 그것을 받아든 제황은 화면에 뜬 지형들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 남자 뭐야!’
웬지 모르게 분한 미국토방위국 특수요원 제인 모리스였다.
#2
주방위군 북부기지에서 날아오른 헬기가 노스캐롤라이나 스토니힐에 있는 게이트에 도착한 것은 출발한 지 약 30 여분이 지난 후였다. 헬기착륙장 주변으로는 수 대의 오스프리가 내려앉아 있고 그곳에서는 완전무장을 한 헌터들이 우르르 내린다. 미국 헌터들 답게 각종 첨단 장비들을 지니고 있었는데 최신파워드슈트는 물론이고 대구경 연발샷건이나 자동소총등을 등에 거치한 채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쪽으로...”
제인은 제황을 이끌고 게이트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녀가 지니고 있던 카드를 내밀자 모든 게이트 출입 절차는 모두 프리패스로 이어진다.
쑤우우욱...
거울처럼 투명한 게이트를 통과하니 생소한 온도와 습도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엘어스로 건너온 것. 한국 쪽에 있는 엘어스와는 기온과 식생이 전혀 다르다. 나무가 우거지고 거대한 초원으로 이루어진 그곳과는 다르게 이곳은 대부분이 황무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미국의 그랜드캐넌과 같은 느낌이랄까.
게이트는 저스틴포인트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군사기지 내에 있었다. 제인모리스는 제황을 이끌고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차량으로 이동했다. 이미 시동을 건 채 대기하고 있던 무장버스는 그녀와 제황이 올라타자마자 거친 소음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9티어몬스터 베히모스는 엠페러가 포함된 스페셜팀에서 레이드 중입니다.”
무장버스 안에 대기하고 있던 요원이 제인에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상황은?”
“힛앤폴링(Hitting and falling) 포메이션으로 대응 중인데 공격력이 부족합니다.”
“역시...”
방어에 특화된 베히모스니 이미 예상했던 문제다.
태블릿을 조작하던 그녀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게 뭐죠?”
“베히모스의 출현에 자극받은 몬스터들이 콜로니에 침투했습니다.”
태블릿 안에는 도시를 나타내는 듯한 건물들 사이로 붉은 선들이 어지러이 그려지고 있었다.
“일이 어렵게 되었네요.”
제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가급적이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던 시나리오다. 베히모스와 같은 몬스터가 움직이면 그 주변의 몬스터 생태계는 그야말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콜로니에 사는 사람들은 약 5만 가량이다. 일거에 대피할 수 없으니 대부분 방공호나 집안에 숨는 편인데 이렇게 되면 큰 인명피해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중요하지만 가장 관건은 베히모스를 맡고 있는 엠페러였다. 물론 지원이 가면 어떻게든 격퇴는 가능하겠지만 베히모스는 8성의 엠페러라도 까딱하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몬스터다.
그때였다. 온통 붉고 검은 방어구를 걸친 남자가 무장버스 앞에 나타난 것은...
“멈춰!”
끼이이익!
다짜고짜 버스를 세운 남자가 외쳤다.
“콜로니가 위험해!”
“비켜!”
제인모리스가 외부확성기를 들어 외쳤지만 남자는 요지부동이다.
“빌어먹을! 하는 꼴을 보니 고위헌터 같은데 이쪽이 우선이라고! 어떻게 개나 소나 죄다 저 빌어먹을 소대가리한테 달려가는 거야!”
그는 쓰고 있던 헬멧을 신경질적으로 벗어 내동댕이치며 외쳤다. 40대 중후반의 짧은갈색머리카락의 백인사내다.
“공무집행 방해야! 비켜!”
“죽어도 못 비켜! 콜로니 방어에도 고위 각성자가 필요하다고! 염병! 메인 방공호에 어스크롤러들이 침투해 들어오는데 요격할 고위 각성자가 없다고!”
연신 욕을 하지만 남자의 얼굴은 간절함이 가득했다.
“그냥 밀어버려요!”
제인 모리스가 운전사에게 외쳤지만, 운전사는 안절부절하며 진땀을 흘릴 뿐이다. 지금 무장버스를 막아선 헌터는 그도 잘 아는 이였다. 지금 그가 운전하는 무장버스에 탄 여자야 한번 보고 말 인연이지만 저 친구는 이곳에 사는 한 계속 봐야 한다.
“이봐! 레이놀즈!”
“하비! 날 밀어버리기만 해봐! 이 동네 사는 한 펍 출입은 꿈도 꾸게 할 거야!”
레이놀즈라는 그 헌터가 외치자 기사가 끙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젖었다.
“비켜요!”
제인모리스가 운전기사의 멱살을 잡아 운전석에서 끄집어냈다. 그냥 밀고 갈 요량. 그러나 그녀는 그 시도를 중간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치이익
무장버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제황은 성큼성큼 걸어 버스를 막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제황을 본 그의 얼굴이 찔끔한다.
휘날리는 망토 사이로 보이는 무적성의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금속질의 세트 무장은 척 봐도 나 비싸요라고 시위하는 것처럼 번들거린다.
'강자다'
레이놀즈는 범상치 않은 기세의 인물이 다가오자 저절로 긴장했다.
그러나 다가온 남자가 꺼낸 말은 전혀 의외의 소리였다.
“건물 내에 있는 몬스터들은 힘들지만, 외부에 있는 몬스터들은 처리해 줄 수 있다.”
남자의 말에 눈치 빠른 레이놀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정도만 해줘도 우리가 내부는 정리할 수 있어!”
“좋아.”
레이놀드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제황이 비천궁을 꺼내 들고 움직이려 할 때 제인 모리스가 제황의 앞을 막아서며 외쳤다.
“우리는 엠페러를 지원하러 가야 해요!”
그녀의 말에 제황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적성의 헌터는 헌터보다 민간인의 생명을 더 우선시합니다.”
“그렇지만!”
“닥치고...”
후우욱!
제황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세가 그녀를 덮쳤다. 제황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난 내 신념대로 한다.”
제인 모리스는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상부의 명령이 우선이기는 하지만 눈앞에 있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다. 기세를 거둔 제황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5분...”
“네?”
"5분내로 다녀오지."
제황의 말에 그녀가 반박할 겨를도 없이 제황은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진 그를 쫓아 고개를 든 그녀는 잠시 후 하늘 높이 뛰어오른 제황을 바라보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그는 엄청난 속도로 건물들을 뛰어오르고 있었는데, 그 움직임은 영화에 히어로물에 나오는 거미인간 따위는 싸다귀를 후려칠 정도로 빨랐다.
제황은 콜로니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탑을 향해 뛰어 올랐다. 붙잡을 것 하나 없는 매끈한 표면을 지닌 탑이지만 마치 손발에 끈끈이라도 달린 듯 무시무시한 속도다. 이윽고 탑의 꼭대기에 도달한 제황은 휘몰아치는 바람속에 아슬아슬한 포즈로 몸을 고정한 채 지상을 바라봤다.
“많군.”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콜로니의 모양은 대략 탑을 중심으로 팔각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사방에서 갖가지 몬스터들이 몰려드는 게 보인다.
-궁기 모조리 훑어줘.
-알았어.
궁기가 보조하자 제황의 궁기안에 수많은 붉은 점들이 망멸하기 시작했다. 숫자는 어림짐작으로도 수백 개는 넘어간다. 레이놀즈라는 이가 무장버스를 막아선 것도 이해가 간다. 1티어에서 3티어 몬스터는 일반 헌터들도 레이드 가능했지만, 문제는 중간중간 섞인 4티어 몬스터들이었다.
막을 수는 있지만, 시간이 걸리니 그동안에 발생할 민간인의 피해는 피할 수 없다.
몬스터를 피해 도망치는 이들이 보인다. 그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
“좋아.”
가볍게 숨을 몰아쉰 제황이 여의용혈신공의 가동을 시작했다.
#2
“혼자 뭘 어쩌겠다는 거야!”
제인 모리스는 탑 꼭대기에 위태롭게 서 있는 제황을 신경질 적으로 노려봤다.
“5분? 흥! 꼴에 남자라고...”
그녀는 제황의 말에 믿지 못했다. 그는 마치 이 상황을 5분 안에 정리하겠다는 투로 말했지만 그녀가 아는 상식으로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조금 전 전해받은 태블릿을 통해 콜로니에 침투한 몬스터들을 확인했다. 공격은 전방위에서 밀려 들어오는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정리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이곳에 투입된 헌터들을 모두 동원하지 않는 이상 최소 반나절은 필요하다.
그런데 5분이란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 그녀는 제황이 남자의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탑으로부터 시작된 붉은 섬광의 빛줄기를 목격한 그 순간부터 그녀의 뇌리에서 날아가 버렸다.
콰콰콰콰콰쾅!!!
콜로니의 북부를 시작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붉은 빛줄기가 내리꽂히며 모든 몬스터들을 저격해 내기 시작했다. 마치 분당 6천발의 발칸처럼 쏟아져 내리지만, 그것과 차별되는 것은 지금 제황이 쏘아내고 있는 것은 그 하나하나가 화기에서 쏟아내는 총알보다 훨씬 치명적인 것과 동시에 훨씬 긴 사정거리는 지니며 그에 앞서 무시무시한 명중률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꾸에에엑! 꿰에엑!”
광포한 포효를 내지르며 도망치는 이주민들을 쫓던 몬스터들은 붉은 빛줄기가 훑고 지나가는 순간 그대로 땅에 나뒹굴렷다. 간혹 4티어 이상의 몬스터들이 그나마 빛줄기에 버티기는 했지만 그건 시간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 시간마저도 찰나와도 같다.
버티는 것의 대가는 단지 두어 발을 맞고 죽느냐 아니면 두들겨 맞고 죽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몬스터를 피해 도망치던 사람들은 그들을 쫓던 몬스터들이 모조리 죽어버리자 영문을 알지 못해 그 자리에 멈춰섰다.
“저... 저게 8성 데미지 집약형 원거리헌터!”
제인모리스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니 지금 자신이 흉하게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다행이랄 건 지금 그녀 주변에 있는 이들···. 아니 그것을 목격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은 머릿속에 그 어떤 생각도 담을 수 없었다. 경이롭다? 압도적이다? 아니다.
“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한마디가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생각들을 대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