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77화 (177/301)

# 177

9티어몬스터 -1

#1

닐 국장은 피곤함에 쇼파에 몸을 파묻었다.

대체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면서까지 자신을 이곳으로 오도록 만들었는지 이해가 간 것이다. 자신들 때문이다.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바로 자신들 내부에 있는 삼천교의 눈을 피해서다.

“할 말이 없군요.”

결론만 먼저 말하면 모든 건 애초에 미국의 책임이었다. 국토방위국 아니 그 최상단에 위치한 자신의 책임이기도 했다.

들은바 상대는 믿었던 우방의 인물들에게 치명적인 기습을 당했다. 만약 그가 막지 못했다면? 아마 그 병원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살인멸구 당했으리라. 그야말로 대참사. 그 책임은 대한민국이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방을 신뢰할 수 있을까?

자신이라도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무적성이 미국에 사실을 숨긴 채 저스틴포인트에 비밀작전을 수행한 것도 이해가 갔다.

미국은 저들에게 의논의 대상이 아닌 경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만약 정보가 새서 무적성이 저스틴포인트를 노리는 것을 삼천교에서 미리 알았다면 무적성은 저스틴포인트의 탈환은커녕 역공으로 큰 피해를 봤을 것이다. 저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을 거로 생각하니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또한 무적성에서 지금 눈앞에 있는 그들의 ‘비밀병기’를 자신에게 보냈다. 그건 그들 나름대로의 의리라는 뜻이 된다.

미국 내에 암약하는 이들의 눈을 피함과 동시에 미국의 정보라인 최정상에 있는 자신을 불러들일 정도의 먹음직한 미끼가 바로 그였다. 정보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지금까지 숨기고 숨겼던 ‘비밀병기’까지 파견한 것이다.

미국의 그들의 위기를 알려 위해...

지금 들은 말의 진위 여부를 굳이 따지고 들어갈 필요도 없다. 무적성이 삼천교와 손을 잡지 않은 이상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들은 굳이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미국을 대표하여 무적성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알아주신다니 다행입니다.”

제황 역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게 미안할 뿐입니다.”

정보부국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꾸벅 숙였고 그걸 본 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본심이 제대로 전해져서 다행이라는 듯, 그리고 슬슬 진짜 본론을 꺼낼 시기가 왔다.

“닐 국장님.”

“네.”

“이제부터 제 말을 잘 들어주십시오.”

“말씀하시죠.”

제황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정중하다.

신뢰를 잃은 우방을 도우려고 일부러 정체를 드러낸 상대이다.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의 표정이 신중하다.

“아시다시피 미국의 사회보안을 책임지는 오라클시스템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출중하고 우수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보부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황으로 인해 잠시 혼선을 빚기는 했지만 그건 상대에 대한 오판으로 인한 초보적인 실수였을 뿐이다. 오라클시스템은 단 하루 만에 그것을 파악해 냈지 않은가.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상대가 그것을 말하니 절로 어깨가 으쓱하는 그들이었다.

“혹시 ‘백린’ 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아십니까?”

“백린...이요?”

제황의 말에 둘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가 누구입니까.”

“지금 이 모든 사태를 막후에서 조종하는 테러리스트입니다.”

제황이 단언하듯 말했다. 그러자 닐 국장의 눈이 독수리처럼 날카로워졌다. 미국인들은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것을 알기에 굳이 그것을 테러리스트에 비유했다.

닐 국장이 정보부국장에게 말했다.

“검색해봐.”

“예.”

닐국장의 말에 정보부국장이 품에서 스마트패드를 꺼내 들었다.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오라클 시스템에 접근권한이 부여된 몇안되는 제품이다. 잠시 검색을 하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정보부 국장이 고개를 젓자 닐 국장이 실망의 한숨을 내쉰다.

-진짜 모르는 것 같아.

둘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궁기가 판단해 줬다.

저들이라면 어느 정도 실마리라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제황이다. 그러나 실망하지는 않았다. 몰랐다면 자신이 노출시켜 주면 그만이다. 단서만 던져주면 자신을 대신해 그를 추적해 줄 것이다.

“그는...”

제황은 천천히 백린에 대해 입을 열었다.

사실 제황이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꽤 단편적이었다. 그러나 제황이 목격한 것과 단편적인 지식들만 이야기해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잠시 후 제황의 말을 모두 들은 둘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외쳤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럴 수가···. 삼천교와 오크 뿐만 아니라 일본의 천황클랜 까지의 접점을 지닌 인물이라니... 그 캐롤라인이 분명 그의 그 술법이라는 걸 쓴 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도저히 우군과 적을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삼천교의 스파이였던 그녀는 미헌터사무국의 정예들의 수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사용하는 술법들은 일본의 천황클랜과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모든 술법들의 주인은 백린 그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크들은 그의 명을 고스란히 수행했죠.”

“미, 믿기 어렵군요. 제황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백린이라는 이는 삼천교 뿐만 아니라 오크들까지도 아우른다는...”

그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격한 것만 그 정도이니 그의 힘을 판단하는 최소한의 출발점이 그 정도입니다.”

“허어...”

최소한만 따져도 그가 가진 힘은 역대급이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제황의 이야기 속에 나온 오크들은 그들도 잘 안다. 고도로 훈련되었으며 제대로 된 장비를 지닌 현대 무기에도 노련하게 대응하는 전사들이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그의 명을 따랐다면 오크로드 헬칸이 죽었다고 해도 엔드릴 오크는 그리 큰 타격을 입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가 새로운 오크로드를 추대할 수도 있는 거니까.

“저라도 믿기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굳이 믿어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백린에 대한 추적에 미국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분명 그는 오랜 기간 활동해 왔습니다. 그러니 미국에도 들어왔을 것이고 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위장 신분쯤은 가지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렇군요.”

장내에 있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부터 제황은 그가 알고 있는 백린에 인상착의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 대화를 마친 제황이 남은 커피를 들이켜며 말했다.

“비록 드릴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뿐이지만, 어떤 수를 쓰더라도 밝혀내야 합니다.”

“예. 당연합니다.”

닐 국장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황이 지금까지 말한 것을 종합해 보면 백린이라는 자가 가진 위험도는 사상 최악이었다.

향후 엘어스로의 진출 및 이주가 시작되었을 때 가장 거대한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고 지금이라고 얼른 뿌리 뽑지 않으면 장차 미국의 앞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때 제황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의 시선이 정보부국장에게서 멈춘다.

“정보부국장님.”

“예? 예!”

설명을 모두 들은 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그가 제황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다.

“혹 그가 가진 술법이라는 것이 탐이 나셔서 그와 협력하거나 거래가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시고 계십니까?”

“아, 아닙니다.”

제황의 물음에 부인하기는 했지만 미미하게 떨리는 그의 동공과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그것이 바르다고 전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정보부국장의 눈이 뒤집히더니 쇼파에 추욱 늘어졌다. 그러나 제황은 놀라지 않았다. 그것이 누구의 짓인지 아는 것. 정보부 국장의 무릎에 올렸던 손을 치우며 닐 국장이 말했다.

“어차피 이 친구는 이제부터 이 일에서 배제될 것이니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가진 바 능력보다 욕심과 야망이 큰 친구였는데 오늘 더 두고 볼 수 없는 실수를 했군요.”

닐 국장이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름 데리고 키우던 이였는데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해버렸다.

호의를 가지고 온 상대의 앞에서 적과 작당할 생각을 하다니...

“예.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제황이 말했다. 아마 저 사람은 오늘 이후로 아주 먼 곳으로 떠나 영영 중앙으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제황은 그것을 굳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다시금 백린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오는 닐 국장을 바라보며 제황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계획은 비밀스럽게 들어와 국토방위국에서 정보를 빼낸 후 그것을 백린의 짓으로 꾸밀 생각이었다. 주술은 백린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궁기가 도와준다면 제황도 충분히 가능했다.

비록 방법이 좀 달라지기는 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닐 국장의 신임을 얻는 것과 동시에 미국의 오라클시스템과 세계에 뻗어있는 정보력을 통해 백린을 추적하는 일거양득을 취했으니까. 그럼에도 한숨이 나오는 것은 무련천가와 천주백가의 일에 미국의 손을 빌린다는 것이었다.

본래는 되도록 이 일은 무련천가의 가주인 자신의 힘만으로 끝마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현재는 백린에 대한 추적이 요원한 상태다. 그가 스스로 몸을 드러내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 몸을 드러냈다는 건 사냥꾼에 대항할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고 굳이 자존심 때문에 사냥감을 기다려 주는 건 제황의 성격이 아니다.

그렇기에 고집을 꺾었다. 함정을 팜과 동시에 능력 좋은 추적자를 얻기 위해말이다.

그때였다. 사령관실의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닐 국장의 부하가 뛰어 들어온 것은...

“국장님!”

“무슨 일인가.”

나름 중요한 인물과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기 때문에 닐 국장은 노기를 지울 수 없었다. 제황에 대한 결례이기도 하니까.

“크, 큰일났습니다. 이곳으로 오던 엠페러가 노스캐롤라이나 스토니힐에 있는 게이트내의 제22콜로니에 긴급 투입되었습니다.”

“음? 그게 무슨 말인가!?”

닐 국장이 반문했다.

8성 헌터가 긴급투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8성 헌터 자체가 보유하는 것만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8성 헌터가 움직이면 대부분 그에 걸맞은 최고의 공격대가 따라붙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가 알기로 엠페러는 이번에 그의 친구 둘만을 데리고 움직이던 중이었다.

“보고된 내용으로는···! 22콜로니에 9티어 몬스터 베히모스가 출현했답니다.”

“뭐야?!!”

그의 보고에 닐국장의 눈이 커졌다.

베히모스는 무려 9티어 몬스터다. 분류상으로 따지면 국가재난급의 몬스터다.

“확실한가?”

“예!”

그의 대답에 닐 국장의 입이 꾸욱 다물어졌다. 콜로니에 베히모스가 나타났다. 콜로니의 폐쇄는 이미 기정사실. 어서 이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콜로니를 보호하면서까지 베히모스라는 몬스터와 싸울 수는 없으니까. 다행이라고 할 건 베히모스가 엘어스에 나타난 것이다. 만약 지구쪽에 나타났다면 준전시상황이다.

그가 제황을 돌아보며 차후 만남에 대해 말하려 할 때였다. 제황이 먼저 물었다.

“9티어 몬스터를 민간인의 피해 없이 레이드 가능합니까?”

“힘듭니다.”

닐 국장이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콜로니에는 헌터보다 민간인이 훨씬 많다.

“큰일이군요.”

콜로니라는 것은 일종의 민과 군이 합작하여 만든 개척촌이었다. 순수 국가가 나서 군인들로만 운용하는 대한민국과는 다르게 미국은 자본을 유치해 엘어스를 개척하는 길을 택했다. 엘어스는 노다지와 같은 땅이니만큼 충분한 자본을 가진 재벌이라면 말 그대로 돈을 쓸어 담는 것이 가능했다. 게다가 향후 토지의 소유권 주장을 위해서라도 돈 좀 있다는 이들은 모두 엘어스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상태였고 그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각종 매체에서는 엘어스로의 이주에 장밋빛 색을 칠하며 권장하는 추세였다.

자칫 대량의 민간인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제가 돕겠습니다.”

제황이 나섰다. 그러자 닐 국장의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하다. 오히려 청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알기로 제황은 극강의 공격력을 지닌 원거리 딜러였다. 공격력 하나만큼은 8성에 버금간다고 알려졌다. 비록 그것이 과장되었다고 해도 그는 무적성의 소중한 재원이었다. 나서서 청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참가 의사를 밝혀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기지에서 최정예 팀이 꾸려지는 데로···.”

“아닙니다. 저 혼자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국장의 말에 제황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베히모스는 9티어 몬스터입니다.”

베히모스... 지금까지 약 네 번가량밖에 레이드 되지 않았을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다.

지금까지 밝혀진 정보로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거대 탱크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리라. 사족보행임에도 그 체고는 무려 20여 미터, 무게 100에서 150톤에 달하는 분류상 초대형종으로 분류되는 몬스터였는데 단순히 무거운 것만이 아닌 모두 몸에 두른 장갑임과 동시에 근육들의 무게다. 게다가 보유한 특수능력들 또한 방어에 치중되어 있어 공격력이 부족한 헌터는 말 그대로 짐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혼자 가려는 겁니다.”

제황의 단호한 대답에 닐 국장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9티어 몬스터이기 때문에 타격을 줄만한 능력이 없는 헌터는 오히려 방해만 된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서포트 계열이 하나라도 붙으면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9티어 몬스터의 레이드는 그런 것들과는 궤 자체를 달리한다.

“곧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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