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추적-2
1#
고풍스러운 마호가니 원목 책상 옆으로는 미국을 상징하는 성조기와 승리의 여신이 그려진 주 깃발이 세워져 있고 야쪽 벽에는 갖가지 몬스터들의 머리가 박제되어 걸려 있다. 5성이나 7성 몬스터의 이빨이나 뿔로 보이는 거대한 뼈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그 이빨에 난 갖가지 상흔들이 이 뼈들의 주인들을 잡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투입되었는지 말해주는 것 같다.
“고맙소.”
사령관이 제황에게 말했고 어깨를 으쓱한 제황은 쇼파에 편하게 앉았다.
티모시의 볼일이 끝난 후 사령관이 제황에게 독대를 요청했고 제황은 그것을 수락했다.
이제부터는 진짜 본편이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낡은 오디오에서 나오는 흘러간 컨트리송을 감상하고 있자니 사령관이 손수 커피를 내왔다.
“그래. 당신 같은 괴물이 왜 이곳에 온 건지 이제 허심탄회하게 물어봐도 되겠소?”
사령관은 이미 알고 있다는 말 입을 뗐다. 그러나 제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채 말했다.
“그전에 잠시...”
사령관을 제지한 제황이 귀에 끼고 있던 이어셋을 빼냈다. 그러자 번역되지 않은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What?”
“Just moment”
그를 제지한 제황은 헤드셋 위에 무적성에서 받은 기계 하나를 더 끼웠다.
“Nothing much... but”
치칙...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새롭게 장착한 기계가 동작하기 시작했다.
“그놈에 오라클시스템을 좀 꺼주면 좋겠군요.”
제황의 말에 찔끔한 사령관이다.
“으음?”
“미국의 오라클시스템이 확실히 막히는지 실험 좀 해달라고 하던데.”
제황의 말에 사령관이 턱을 긁다가 손을 슬쩍 들었다.
이쪽에서는 상대의 허락도 없이 고유에너지파장을 얻으려 했고 상대 쪽에서는 대놓고 그것을 막겠다고 한다.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가 손을 들자 문이 열리며 한 군인이 슬그머니 들어와 집무실 테이블 위에 있는 손바닥만 한 기계를 가지고 사라진다.
“이제 진지하게 이야기할 마음이 생겼소?”
사령관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이미 상대의 고유에너지파장은 파악이 되어 있는 상태라고 들었다. 굳이 그것을 다시 한번 하려는 것은 제황이 처음 미국에 들어왔을 때 입력한 고유에너지파장이 지금 제황의 것과 맞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게 맞다면 자신들은 정말 초보적인 트릭에 걸려 지금까지 허우적거린 꼴이니까. 물론 제황에게 그들의 사정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일단 모두 모이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제황이 손가락으로 사방을 조목조목 찍자 사령관이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가진 능력의 끝이 어딘지 알 수가 없군.”
“보인 대로만 아셔도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제황이 입을 다물고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문이 열리며 네 명이 걸어 들어왔다. 셋은 나이가 지긋한 중년인데 하나는 꽤나 어려 보이는 20대 초반 정도로나 보이는 미모의 여성이다. 단순 미모로만 치면 거의 궁기급 이라고 할까? 깔끔하고 청초해 보이는 정장풍을 입지 않았다면 어디 영화에 나오는 배우로 착각하겠다.
-야! 어디 비교질이야!
궁기가 제황의 생각에 딴지를 걸고 들어온다.
-너랑 비슷한 급이라고 했을 뿐이지. 너만 한 미인이 어디 있냐.
-어, 어···. 또 그건 그렇지. 호호호
“국토방위국 국장 닐 하워드입니다. 이쪽은 정보부국장 로널드 케이드, 이쪽 둘은 내 부하들이지요.”
“제황입니다. 뭐 알고 계시겠지만···.”
“하하, 알다마다요. 당신은 우리 미국에서 꼽는 영입 0순위입니다.”
닐 국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지금 말한 것은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닌 진실이다. 사실 제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는 것도 그를 미국으로 영입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성격이 컸다.
지금 제황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렇다. 그 정도 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면 조금 고압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제황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키고 있다. 물론 제황은 그런 것에 넘어가지 않았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자 제황도 요령이 생겼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 줄 것처럼 군다.
“그래서 저에 대해 호기심이 그리 많으셨군요.”
“저같이 정보라인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궁금한 사람 1위가 당신일 겁니다.”
닐 국장의 눈이 반짝거린다.
눈부신 미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럴까. 태생적으로 정보 쪽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것 같다.
“궁금하기보다는 미워하지 않을까요? 저나... 무적성은요.”
“그렇게 이분법적인 방법으로 나누기에는 이쪽에서 다루는 국제적인 힘의 정세는 매우 복잡미묘합니다. 바로 말하면 그건 애증의 관계지요. 언제나 협력과 견제가 존재하는······. 우리도 그리고 무적성도...”
말을 많이 하는 사람답게 마치 혀에 기름을 친 것 같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때 궁기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저 여시 같은 년, 특수한 능력을 쓴다.
-뭔데?
-친화, 긍정, 매혹? 지저분하게 흘리는데?
궁기의 말에 제황은 비교적 가장자리 쪽에 앉은 여자를 힐끔 바라봤다. 자신에게 시선이 스쳤다는 걸 느꼈는지 아주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제황의 시선에 마주 응수한다. 자기 딴에는 자신의 미모가 상대에게 먹힌다고 생각하겠지만···.
-매혹? 그다지 안 끌리는데?
여의용혈신공의 마나로 보호받는 제황에게는 그런 정신계열 마나가 침투할 구석이 없다.
-그래? 이상하네? 저놈 봐봐. 대머리는 조금 영향을 받는 것 같은데?
시선을 슬쩍 돌려 사령관을 보니 궁기의 말이 맞는 듯 그녀를 힐끔거리며 바라보고 있다.
눈에는 가벼운 열기를 담은 채 말이다.
“쯧. 잠시만...”
제황이 혀를 차며 닐 국장의 말을 막았다. 그다지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이런 식의 대응이 심히 불쾌하다. 저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 감히 무련천가의 가주인 자신을 말이다. 한 번 쥐여줄 필요가 생겼다.
한참 입을 털던 닐 국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제황을 바라본다.
“적당히 하시죠.”
그 말과 함께 제황이 손을 가볍게 뿌렸다. 동시에 제황의 손에서 시작된 마나가 그녀의 몸에서 서서히 풀려나오던 마나를 찢어버렸다.
“꺅!”
제황의 마나가 스친 순간 장내에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암암리에 스킬을 사용하던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붙잡았다. 정신계열 스킬이기에 스킬을 이루는 마나 자체가 공격당하면 그 시전자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느낀다.
제황의 일수에 닐 국장의 입이 한일자로 다물어졌다.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온 겁니까. 내 인내심의 시험하러 온 겁니까. 어디 그쪽에서 문제 하나를 냈으니 이번에는 내가 낼 차례군요. 한 번 제 문제도 풀어보시죠.”
제황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경각심을 심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여의용혈신공에 적당량의 살기를 심어 장내에 흘렸고 동시에 쇼파에 앉아 있던 모두가 신음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큭...”
“컥...”
“으으윽”
실내에 있던 이들이 모두 가는 신음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그나마 버티는 것은 6성헌터인 사령관이었지만 제황이 그를 향해 살기를 집중시키자 그의 번들거리는 머리에 굵은 핏줄이 서며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제, 제발 그만...”
“그건 답이 아니군요.”
“컥!”
가뜩이나 일반인인 닐국장이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거의 미치기 직전까지의 살기가 그를 잠식해 들어간다. 훈련으로 해결될 살기의 양이 아니다. 닐 국장은 이 순간 그를 시험할 생각을 완전히 포기했다.
“부···. 부디···. 용서를···.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정보부국장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름 제황의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는지 그들을 속박하던 기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기운을 갈무리한 제황이 별것 아니라는 듯 닐 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쉬운 문제죠?”
“후욱...후욱”
그는 지금 제황의 말에 답해줄 여유가 없다.
당장이라도 토악질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와 함께 정보부국장을 노려본다. 특수스킬을 지닌 요원을 데려온 건 그의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가진 능력은 사람들 간의 친화력을 대폭 높여주는 스킬.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람들 간의 경계의 벽을 조금 빨리 허물게 해준다고나 할까? 물론 경우에 따라 그녀의 미모를 이용해 상대를 회유하거나 상대와의 협상에서 좀 더 좋은 조건으로 성사되도록 하는 게 그녀의 역할이다.
대단한 스킬은 아닐지 모르지만, 웬만큼 마나 운용에 능숙한 헌터라도 그녀가 스킬을 사용한다는 걸 감지할 수 없을뿐더러 그녀의 미모와 스킬이 함께 사용되면 남자라면 백이면 백 넘어온다.
그게 상대에게 걸렸다. 그리고 진절머리 날 정도로 두려운 경험도 했다. 물론 그것으로 알아낸 사실도 하나 있다. 상대는 마나에도 무척 민감하다는 것.
“둘 다 나가 있어.”
“예.”
닐 국장은 부하 둘을 내보냈다. 만약 또다시 그에게 거슬리는 짓을 했다가는 이번에는 ‘쉬운 문제’ 가 아닌 ‘어려운 문제’ 가 자신들의 앞에 놓일 것 같다. 둘이 나가고 이제 실내에는 넷만 남았다. 분위기가 적당히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제황이 슬슬 입을 열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가 궁금하시겠죠?”
“예.예. 그렇습니다.”
수작을 부리다가 들통이 났으니 숙이고 들어가는 닐 국장이다.
그런 그를 보며 속으로 은근히 고소를 머금은 제황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닐 국장에게 말했다.
“아마 닐국장님은 제가 이번 미국이 대한민국이나 무적성에 대한 정치 기조에 불만을 느끼고 항의 차원에서 입국했다고 생각하시겠지요?”
“뭐, 그렇습니다.”
닐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가 입국함으로 미국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저는 미국에게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미국의 위험?”
제황의 말에 장내가 싸늘하게 변한다. 특히 닐 국장의 안색이 볼만하다.
만약 제황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지금 당장 옆에 앉아 있는 정보부국장의 목을 잘라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제황의 말을 먼저 들어야 했다.
“조금 자세히 알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닐 국장이 정중히 말하자 제황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혹 미헌터사무국 인베이전팀의 케롤라인이라는 여성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제황의 말에 닐 국장은 머릿속에서 하나의 사건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는 여자다. 꽤나 중책에 있던 능력 있는 헌터와 팀 하나가 그야말로 증발해 버린 사건이었으니까.
“그 사건은 삼천교와 관련이 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닐국장이 말했다. 당시 미헌터사무국에서는 자체적인 조사 외에도 국토방위국에도 의뢰를 했었다. 미헌터사무국은 헌터의 입장에서 국토방위국은 그 외 전방위적인 방향으로 수사했었다.. 허나 조사는 그다지 진척되지 못했다. 증거가 너무나 빈약했다. 마치 누군가가 깨끗하게 정리한 것처럼...
“사실 그녀는 삼천교 소속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삼천교에서 미헌터사무국에 심어둔 스파이였죠.”
“그럴 리가!”
제황의 말에 닐 국장이 벌떡 일어났다.
조사내용을 직접 보고 받았기에 내용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스파이라고 하기에는 캐롤라인이라는 여자의 신상은 너무나 깨끗했다.
“사과드리죠. 당시 사건 현장을 정리한 건 저와 무적성이었습니다.”
어깨를 으쓱한 제황은 범인이 자신이라는 걸 순순히 실토했다.
그러자 닐 국장의 눈빛이 꿈틀한다.
“어째서 우릴 기만한 거요.”
정보라인에 있는 이답게 감정을 통제했지만, 안에 섞인 분기를 마저 감추지는 못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제황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난 그들에게 기습당했으니까. 그리고 당신들도 못 믿게 되었으니까. 미헌터사무국의 팀 하나가 모조리 삼천교였는데 그것 하나 감지 못한 당신들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제황은 비웃음을 섞어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할 말이 없는 닐국장이 허탈한 표정으로 털썩 앉았다.
“그럼 정말?”
“그렇죠.”
“그렇다면...”
기억력이 뛰어난 그는 당시 들었던 내용을 하나하나 되짚어 나갔고 곧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국 내 요인들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의 색적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설마하는 망설임이 있었지만 잠시 후 제황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대한 이야기는 닐 국장을 다시금 얌전히 제황의 말을 경청하게 만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내용들은 제황이 그녀의 입에서 손수 들었던 것이니까 말이다. 절대 항거할 수 없는 고문을 동반하기는 했지만...
제황의 말이 모두 끝난 후 닐 국장의 옆에 앉은 정보부국장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그래서 이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서 온 것이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