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추적-1
#1
버지니아 북부의 주방위군 기지는 다목적의 사용 용도에 걸맞게 무수히 많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간단하게는 사설 헌터들의 세금 문제에서부터 장비의 구매나 판매 업그레이드, 레이드한 몬스터의 사체 처리까지 도맡아 하기에 말 그대로 모든 서비스가 가능한 곳이었다.
그런 북부 기지에는 헌터들의 민원을 담당하는 건물이 존재했는데 지금 그 건물 안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본디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들이 있어야 하지만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이고 반무장중인 헌터 들이 점거자들을 경계중이다. 복도에는 스무명 가량의 밀령들이 조용히 서 있었고 사무실 내에는 제황과 티모시 데릭 그리고 이곳에 오는 중 합류한 현지 변호사가 서 있었다.
“저희 고객님께서는 지금 당장 고객님의 친구분들께서 풀려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보여드리고 있는 이 문서는 대장님께서 고민할 필요 없음을 증명하고 있죠.”
“그건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오.”
반쯤 까진 머리에 길고 굵은 흉터가 인상적인 위압감 있는 덩치의 백인 중년사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헌병 대장님. 원래 이 일은 여기 계신 이분들이 제게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되시고 저는 이런 서류 한 장만 이곳에 가져오면 되는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이곳에 있다는 건? 이게 꽤 큰일이라는 뜻이지요. 저는 이일을 확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이 서류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더는 내 소중한 고객들의 시간을 빼앗을 생각하지 마시고 그들을 꺼내 주십시오.”
“후...”
헌병대장은 눈앞의 이 작은 남자를 두들겨 패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혹은 목줄을 그대로 뜯어버리거나... 그러나 자신은 자랑스러운 미합중국의 군인이다. 민간인에 대한 폭력은 이쪽도 중형에 처하는 게 일반적.
그리고 이 인간을 앞세우고 나타난 이들 또한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 서류에 있는 미헌터사무국의 의중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오. 그렇지만 주헌터법에 의거해서 신병을 구속했으니 아무 하자가 없다고 말하고 싶군”
“주 헌터법 어디에 그런 내용이 있는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없을 겁니다. 저도 못 찾았으니까요. 당시 사건에 대해 목격자의 증언을 들어보건대 그건 단지 현장 책임자의자의적 판단뿐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 제가 가져온 건 단순한 의중이 아닌 명령서입니다. 미헌터사무국에서는 이번 주방위군이 사무국에 정식으로 등록이 된 헌터에 대한 무단 감금에 대해 매우 깊은 유감을 표하며 당장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변호사를 구해왔는지 그의 속을 박박 긁어댄다.
그는 속으로 참을 인을 한 번 더 세겼다.
“이쪽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리고 코드MH9급 빌런이 관련된 만큼 이 일은 연방수사국에서...”
“뭐 연방수사국 좋죠. 좋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코드MH9급 빌런과 그들이 연관되었다는 증거를 가져오시죠.”
꾸우욱...
증거를 찾으면 할 말이 없다. 부대 내의 치안을 담당하는 자신도 증거만으로 움직이지는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을 계속해서 얄밉게 추궁하는 이 인간을 부셔 버리고 싶다.
“당시 사건의 책임자를 불러 진술을 들어보겠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답이다. 그러나 변호사는 오히려 그의 인내심을 깎아내기에 바쁘다.
“빌런의 시체라도 찾으셨습니까? 그 말을 증언한 아니 제보했다는 헌터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와우! 무려 MH9급 빌런을 사살할 결정적 제보를 한 헌터니까 표창이라도 줘야겠군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우리 미합중국의 시민이며 몬스터와의 전선의 목숨을 걸고 선봉에 서는 헌터는 왜 지금 차가운 감옥에 수감 되어 있는 겁니까! 주방위군은 영웅을 이따위로 대접하는군요.”
탕!
“뭐!!”
변호사가 테이블을 치자 동시에 헌병대장은 이성을 끈이 끊겨버렸다.
감히 어떤 놈도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나대는 놈은 없었다. 고작 헌터팀 하나의 대장 나부랭이가 한 짓이기에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지만 이건 자신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군인들의 피와 땀을 모독하는 짓이다.
그가 한 발 나아갈 때였다. 키 작은 그 변호사가 잽싸게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그의 뒤에 서 있던 한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저들이 누군지는 안다. 동양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무적성이라는 클랜의 인물들이라 했던가.
사실 그가 이곳에 내려온 것은 저들을 출입시킨 경비책임자를 문책하려 했었다.
아무리 이곳이 일반에 공개된 민원실이라 해도 주방위군 영내에 저런 위험 인물들을 들여서는 안된다. 그런데 내려와서 보니 저들을 들인 건 불가항력이었다.
경비책임자도 어쩔 수 없었다.
불법감금을 행했다며 미헌터사무국에서 받아온 종이 쪼가리로 밀고 들어오는데 그것을 가지고 법적 해석이 가능한 경비는 없었으니까. 그는 저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앞으로 성큼 나섰다.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
‘음?’
발바닥이 땅에 고정되버렸다.
우뚝... 덜덜덜...
갑자기 무릎이 주책맞게 떨리기 시작한다.
발이 더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아니 나가고 싶지만 나아갈 수 없었다.
마치 그것은 보이지 않는 막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그 막은 강제력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뇌리를 스치는 직감이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한 발만 더 다가가면 죽는다.’
마치 자신의 몸이 제 것이 아닌 것 같다.
치밀어오르던 분노도 전투 의지도 단숨에 자근자근 꺾어버린다.
발끝 손끝에서 시작된 마비가 천천히 몸을 타고 기어오른다.
비슷한 경험을 몇 번 한 적 있다.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강력한 몬스터들과 마주쳤을 때다.
턱...
그 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짚어주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대로 무릎에 힘이 풀릴 뻔 했다. 억센 손길이 그를 뒤로 물리자 몸을 옭아매던 것들이 풀려났다. 돌아본 그가 놀라 중얼거렸다.
“사령관님.”
“물러서게.”
“그렇지만...”
“쯧,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예. 그게 무슨...”
“국토방위국에서 왜 연락이 왔나 싶었는데 거물이 행차했군.”
헌병대장을 뒤로 물린 사령관이 앞으로 나섰다.
헌병대장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사령관을 바라봤다. 그가 누구길래 감히 특수사령부의 사령관이 친히 내려온단 말인가. 특수전 사령관 존 해밀턴 대령은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무려 6성의 헌터였다. 그 홀로 죽인 몬스터의 숫자만 네자릿수에 헤아린다.
그리고 그것을 떠나 버즈니아 주 7개 게이트를 모두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 헌병대장도 덩치가 크지만, 사령관은 더 거대한 덩치를 자랑했다. 번들거리는 대머리, 몸을 꽉 조이는 군복이 터질 정도로 두터운 팔뚝에는 대검 두자루가 교차하는 해골이 새겨져 있었다.
철저히 몬스터와의 전쟁으로만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역전의 용사다.그를 잠시 바라본 제황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데릭이 변호사를 뒤로 슬쩍 물렸다. 이제부터는 변호사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과거와 비교해 기형적으로 변한 미국의 군체계는 각 주의 주방위군 총사령관 밑으로 세 명의 사령관을 두고 있는 형태였다. 전투가 이전과 같이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이 아닌 몬스터들과의 전쟁이 대부분이 됨에 따라 그에 맞춰 진화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건 그 세 명 중 하나인 인물이었다.
버즈니아에 적을 뒀다면 주방위군헌터든 일반 헌터든 그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이지역 헌터들의 생존권을 손에 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 동네 헌터들을 책임지는 존 해밀턴이라고 하네. 내 친구들은 나를 댄싱소드라고 부르지.”
조금은 소탈하고 또 조금은 마음씨 좋은 옆집 배불뚝이 아저씨 같이 다가오는 그였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제황은 피식 웃었다.
-머리 좋은데? 좀 더 긁으라고 할 걸 그랬나.
-글쎄, 안먹혔을 것 같은데... 그리고 이 대머리... 생긴 것과는 다르게 머리 회전이 빨라.
만약 이 덩어리가 자신에게 앞선 곰탱이마냥 적대감을 드러낸다면 일이 꽤 재미있게 흘러갔을 것이다. 상관은 없다. 바라기도 하는 것이고... 그런데 저렇게 우호적인 분위기로 다가오니 앞선 곰탱이를 상대할 때처럼 마나로 압도해 버릴 수 없다. 척 봐도 댄싱소드가 아니라 ‘도살자’ 라고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흉험한 마나를 안에 품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무적성 소속 천제황이다.”
가볍게 손을 잡아 흔들어주니 사령관의 눈매가 가볍게 휘어졌다.
물론 속으로는 무척 놀라는 중이다. 자신의 악력을 가볍게 버티다 못해 서서히 힘으로 밀어붙인다. 3티어의 몬스터 뼈도 으스러뜨리는 자신의 악력을 뛰어넘어서 말이다.
“좋아. 가진 자만이 가질 여유군.”
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 격돌은 그의 패배
사실 그는 조금 전 그의 부하에게 가한 그것을 눈치채고 그 나름대로 상대에게 까불지 말라고 시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저 젊은 헌터는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역시 들은대로... 괴물이었다.
“그래. 무슨 용건이지?”
그가 말했다.
“어제 주 방위군소속 헌터들이 내 친구 티모시에게 벌인 불합리하고 강압적인 짓에 대한 사죄와 책임자 처벌, 이들이 당한 모든 불법적인 인에 대한 보상을 원한다.”
“흠, 그런가. 서류”
그가 옆으로 손을 내밀자 대기하고 있던 부관이 관련 서류철 한 부를 그에게 넘겼다.
슥 하고 그것을 가볍게 한 번 읽은 그는 서류를 탁 덮으며 말했다.
“내 불찰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건 이미 우리 미합중국의 헌터시스템이 만들어 낸 어쩔 수 없는 참사지. 그렇지만 우린 이에 대한 보완점 또한 많이 가지고 있네. 굳이 자네와 같은 이가 나서서 해결하려는 이유가 뭔가?”
사령관이 제황에게 물었다. 알아서 잘 해결해 줄텐데 왜 이런 하찮은 일에 너 같은 인물이 나서서 벌집을 쑤셔 놓냐는 거다. 그러나 제황은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이유를 두고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나?”
“허...”
제황의 대답은 광오했다. 내가 하고 싶다는데 무슨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호오, 굉장한 자신감이군.”
고개를 끄덕이는 사령관의 입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마침 국토방위국에서 부탁한 것도 있으니 한 번 해봐도 될 것 같다.
그는 서서히 투기가 올라올리기 시작했다. 근력으로 덤벼봤으니 마나로도 한 번 덤벼보고 싶다. 투기가 지글거리는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 재능만큼 힘이 되는가?"
보유 마나량은 그 보유한 마나엔진의 성능으로도 차이를 보이지만 더 큰 영향을 끼지는 건 그 당사자의 레벨이었다. 그의 레벨은 만렙...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고 해도 레벨에서 밀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게다가 여기는 그의 안방이다. 어디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도 계속 뻗댈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자신이 손 한번 깜짝하면 이들은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파팍! 챙!
천장의 등이 퍽하고 터져 나갔다. 사령관이 디딘 대리석이 쩌저적 갈라지기 시작했다. 만렙에 이르며 얻은 남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마나를 이곳에 풀어 공간을 장악한다.
또한 지금 은근히 제황에게 자신의 스킬을 사용했다.
‘힘의 속박’
그가 가진 비장의 스킬로써 상대방을 거미줄처럼 옭아매는 것이다.
그 자신의 근력을 뛰어넘지 못하면 절대 끊지 못한다. 그런데 상대는 매우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머리를 뒤덮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대단한 자신감이군.”
위이이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휩싸고 도는 거력의 에너지가 사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무려 레전드급의 스킬 여의용혈신공이 가동을 시작하자 그보다 하위의 마나들은 모두 힘을 잃어버렸다. 사령관의 총마나량은 980... 제황의 마나량은 1만이 넘는다.
아니 아예 차원이 다른 격을 지닌 마나엔진은 주위에 깔린 타인의 마나를 비웃었다.
헌병대장과 사령관뿐만 아니라 민원실 내에 모든 이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다. 그들이 느끼는 그것은 오로지 거칠고 거친 패도뿐이었다. 단순히 마나량이 많은 것을 시위하는 것이 아닌 지금 그가 내뿜고 있는 강력한 마나는 모든 이를 강력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제황의 뒤편에 서 있는 이십 명의 밀령들과 데릭, 티모시 그리고 일반인인 변호사밖에 없다.
가장 먼저 입을 뗀 건 사령관이었다.
“후우, 그만... 알겠소. 빌어먹을...”
사령관의 입이 공손해졌다.
사령관이 두 손을 들자마자 그와 함께 그곳을 잠식하던 마나가 씻은 듯 사라졌다. 상대는 마나의 수발이 자유로운 건 둘째치고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절대적인 무력을 잠시나마 보인 것이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쉴 때였다. 외부로 통하는 문이 벌컥 열리며 일단의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들어온 이들의 선두에 선 이를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제황이었다.
“마침 사건의 당사자가 왔군.”
제황도 현장에 있었기에 그의 얼굴을 잘 안다.
모두의 시선이 제황을 따라 문을 열고 들어온 일단의 헌터무리에 집중되었다.
“자네는 누군가.”
사령관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옛! 버지니아 주방위군 제3헌터부대의 대장인 토잇 휴먼 입니... ”
퍼어어억! 콰아아아앙!!!
그의 말에 다 끝나기도 전에 사령관의 덤프트럭 같은 주먹이 그의 안면을 함몰시키며 그를 벽에 처박아 버렸다. 비명도 없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에 모두가 어안이벙벙하여 그 주먹의 주인을 바라볼 뿐이다.
“아, 미안하네. 이거 손이 먼저 나가는 버릇이 있어서...”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피로 물든 주먹을 닦으며 사령관이 말했다.
“부관...”
“예. 사령관님.”
“저들이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도록”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