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73화 (173/301)

# 173

제황 모습을 드러내다-2

#1

철컥...지이익

조금은 늦은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제황은 무한고에서 장비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항상 사용 후에는 말끔히 정비하기에 꺼낸 그것들은 모두 당장에라도 전투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걸로 할까?

제황이 침대 위에 높인 네 개의 장비세트 중 하나를 가리켰다.

가만히 놓여있는 것만으로도 음울한 기운을 뿜어내는 ’악몽의군주‘ 세트다. 슈페리어 아티펙트 세트아이템으로 그 격으로만 따지면 비천궁, 비천격과 동급에 있는 장비였다.

-은신이 불가능하지 않아?

-능력이 떨어질 뿐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야.

굳이 비교를 하자면 아주 약한 수준의 은신 능력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런가? 그래도 좀 불안해.

-그래? 그럼 패스하지 뭐.

궁기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 제황이 그것을 무한고에 집어넣었다.

-그럼 이거?

-그래. 그건 괜찮네.

-흠.

고개를 끄덕인 제황이 그것들을 하나하나 몸에 착용했다.

[세트 아이템 ‘그림자지옥’이 완성 되었습니다.] -아이템 슈페리어 세트 (5/5)

[세트효과]

[은신 효과가 20프로 증가합니다.]

[은신계열 스킬의 마나소모가 30프로 하락합니다.]

초기에 나길환에게 받았던 은신계열에 특화된 세트아이템이다.

제작아이템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입고 대현클랜의 비밀연구소를 활보한 경험이 있다.

머리를 깊숙이 눌러쓰고 후드를 올리자 두 눈만이 차갑게 빛난다.

-저거랑 스위치해서 쓰면 되겠네.

-이걸 입어야 하나.

제황이 난색을 표했다.

이번에 미국으로 오며 공방에서 새롭게 지급 받은 세트아이템이었다.

갈수록 장비들이 많아진다. 만약 제황에게 무한고가 없다면 꽤나 골치 아팠을 문제다.

아무리 장비라는 것이 소모성이기는 하지만 가진바 장비세트가 네 세트가 넘어가는 건 좀 오버 아닌가.

-공짜잖아.

-그거야 그렇지.

좋은 점은 공짜라는 것이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 건 아니지만 저건 꽤 값나가는 아이템이다. 나길환이 준 ‘악몽의군주’ 세트에 자극받았는지 무적성의 장인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대었다. 대융합 초기부터 이어왔던 역사를 지닌 무적성에는 당시 대한민국에서 내놓으라 하는 모든 장인들과 특수한 능력을 지닌 디바우저들이 모여들었었다.

그들은 서로의 비전과 아낌없이 내놓았고 자신의 스킬과 재능을 공유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지금껏 수십 수만개의 아이템들을 만들어가며 노하우를 축적했다.

목표는 하나였다.

‘슈페리어급 아티팩트를 초월하는 것’

‘장인이 제작할 수 있는 아이템은 아티팩트를 초월할 수 없다’라는 상식을 뒤엎는 게 그들의 진정한 목표였다. 혼이 들어간 장비를 만드는 것. 물론 그것은 그들만의 목표가 아닌 전 인류의 목표이기도 했다. 아티펙트가 가진 가장 무서운 특성은 그것을 보유하는 것만으로 각성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아티펙트의 근간은 사상력이야. 그걸 다룰 수 없으면 아티펙트를 만드는 건 요원한 길이지. 그렇지만 알려주지는 마. 그건 너무 위험한 힘이니까.

-알았어.

궁기의 말에 제황이 어깨를 으쓱했다.

만약 아이템이 아티팩트의 이 특성까지 뛰어넘을 수 있다면 어쩌면 전 인류의 각성자화가 가능할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그건 아직 인간에게는 허락되어서는 안 되는 힘이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 열정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권제에 근접한 아니 공격력 하나는 이제 권제와 비등하다고 평가받는 무적성의 새로운 피인 제황에게 가장 어울리는 최강의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들은 제작에 들어가기 직전 제황에게 원하는 능력을 물어왔다.

맞춤제작이니만큼 착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넣을 수 있는 편이성은 아티펙트보다 아이템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 완성된 그것을 제황에게 건넸다.

-그런데 너무 번쩍거리고 화려해.

-역시 그런가?

그들이 준 것은 전체적으로 모두 푸른빛이 도는 금속질의 갑피를 지닌 세트아이템이다. 이전에 보유하고 있던 아이템들 중 무게도 가장 무겁다.

본래 활 따위를 쓰는 원거리 딜러들은 근력보다는 민첩에 투자를 한다. 태생적인 공격력의 한계로 단기전보다는 지구전을 순수 딜러보다는 적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매저의 성향을 기반으로 능력을 찍기에 생긴 딜레마다. 보통은 부족한 근력은 파워드슈트로 대체한다.

그런데 제황은 근력도 웬만한 근접육체계열능력자들보다 높았다. 각성 시 몸 자체가 재구성되었기에 선천적으로 높기도 했지만 갖가지 패시브스킬이 보정을 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적성의 장인들은 모든 아이템의 재질을 금속으로 했다. 제황의 근력이라면 좀 무게가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건 그냥 예술품 같기도 하고...

입고 싸우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갑옷이 화려한 게 문제라면 문제다.

물론 쓸데없는 화려함은 아니다. 갑옷의 곡면 하나도 장인이 심혈을 기울인 게 눈으로도 보인다. 수천수만의 아이템을 만들며 어떻게 하면 더욱 적의 공격을 무효화시킬까 고민한 역사가 보이는 것 같다.

투입된 재료와 투입된 인력만으로도 웬만한 아티팩트 가격은 가뿐히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에 어울리는 세트아이템이 탄생했다.

[압도자 세트] -엘리트 등급 세트아이템

압도자의 흉갑

압도자의 투구

압도자의 견갑

압도자의 장갑

압도자의 부츠

[세트 아이템 ‘압도자세트’가 완성되었습니다.] - 세트 아이템 (5/5)

[세트효과]

[속성방어력 40프로 상승]

[방어력 무시 효과를 50프로 확률로 무시한다.]

[근력 수치가 20프로 증가합니다.]

엘리트. 지금껏 아이템 중 단 열 번 출현했다는 아이템 등급이다.

워낙 희소하여 평범한 이들은 엘리트라는 단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심혈을 들여 만든 장비라는 것인데 그 세트효과가 좀 특이하다. 원거리 딜러에게보다는 근접딜러 혹은 탱커에게나 어울리는 옵션이 붙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제황이 원해서 그리된 것이다. 지금 제황이 가진 세트아이템들에는 근접전에 유리한 아이템이 없었다. 물론 그것은 제황의 전투성향에 의한 것이지만 저번 오크들과 싸우면서 느낀 것은 근거리 전투에 대비한 아이템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굳이 장점만을 극대화 시키기보다는 단점을 상쇄하는 데 필요한 세트아이템을 이번에 마련했다.

뭐 자잘한 문제라고 하면 역시 너무 화려하고 세련되었다는 것이다.

궁기도 별로 마음에 드는 눈치는 아니다. 그녀도 마인드는 전사타입이라서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이 두 개를 돌려써야지.

-그래.

압도자세트를 무한고에 집어넣은 제황은 비천궁과 비천격의 정비까지 마친 뒤 침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데릭등과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문득 제황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스마트폰의 화면을 슬쩍 본 제황이 그것을 꺼버렸다.

“누구시길래.”

데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제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모르는 번호는 안 받는 성격이라서요.”

“아. 네.”

제황의 대답에 궁금증을 보이던 데릭 또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보다는 긴장이 많이 풀린 것 같다. 제황이 쓸데없이 위엄을 잡거나 허례허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서 생긴 변화다.

식사를 마치고 문을 열고 나가니 어제의 그 최고급세단이 현관 앞에 멈춰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특수제작된 무장버스 한대가 넓은 마당에 나란히 정차되어 있다. 오늘 하루 제황을 호위할 이들이다. 버스 앞에 도열한 이들 또한 보통의 인물들이 아니다.

밀령들의 제복과도 같은 긴 망토로 몸을 가린 이십여 명의 밀령들이 두 개의 무리로 나뉘어 서 있었다. 고작 이십여 명뿐이지만 여기 있는 이들의 무력만 모두 모아도 작은 클랜 하나 정도는 찜쪄먹을 수준이다. 아니 암살과 공작에 특화된 이십 명이니 경우에 따라 소도시 하나 정도는 아비규환으로 만들 수 있다. 고르고 고른 최정예 이십여명이 오늘 제황을 호위할 것이다.

“여기...”

데릭이 두 손에 든 곱게 접힌 망토를 제황에게 건넸다.

그리고 제황은 그것을 받아 몸에 획하고 둘렀다. 이것은 밀령들이 입고 있는 망토와 같다. 다른 점이라면 금색의 무늬가 수놓아져서 다른 이들과 차별화를 둔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제황이 밀령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황이 잠시 말을 멈추고 그들을 슥하고 둘러보자 모두의 눈에 긴장이 어렸다.

“신나게 뒤집어엎으며 노는 겁니다.”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며 제황이 말하자 옆에 선 데릭이 작게 쿡하고 웃은 뒤 외쳤다.

“전원 승차!”

“존명!”

데릭의 외침에 밀령들이 일제히 무장버스에 탑승했다.

#2

“통화는?”

“실패했습니다.”

“흠”

부하의 말에 남자가 턱을 쓸며 고민에 잠겼다.

최대한 빠른 자가용제트기를 수배해서 열심히 날아가고 있지만 애초에 그가 있던 네바다 공군기지와 버지니아는 상당한 거리에 있었다.

“때가 안좋아. 하필이면 내가 자리를 비우고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본래 그의 직장이 버지니아이고 직급이 직급인지라 굳이 타지역으로 출장을 가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일이 있어 네바다 공군기지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상대가 그걸 알고 들어온 거라면 제대로 허를 찔린 것이다.

“정보본부장..”

“예. 국장님”

“그가 우리 중앙정보국에 침투할 가능성은?”

“약 십프로 확률로 낮습니다. 그렇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게 저희 미국을 엿 먹일 작정이라면 상징적인 이유도 효율성 면에서도 중앙정보국이 안성맞춤이겠죠.”

“젠장, 냉전시대의 핵잠수함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소련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국장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현재 미국은 대한민국의 저스틴포인트 단독수복을 비판하는 처지에 서 있었다.

그리고 조금만 생각이 있는 식자라면 그것이 대한민국의 무적성을 겨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단독작전을 통해 무적성이 얻은 것들을 모두 부정하는 중이니까.

고작 변두리 나라의 작은 이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 끼치는 영향력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둘째치고 꽤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 게 미국이었다. 원래 있을 때는 잘 신경 쓰지 않다가 잃어버리고 나서야 속이 쓰린 법이다.

아무튼, 이런 정치 상황에서 무적성이 미국의 눈과 귀의 심장이 있는 버지니아에 국장의 말을 빌리면‘핵잠수함’을 대놓고 파견했다.

“작은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돼. 그가 만약 본부에 테러를 가하면 우리가 막아낼 수 있나?”

“사전 차단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본부의 진짜 중요한 건 모두 지하에 위치하며 그곳에 침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정보본부장은 단언하듯 대답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가 아무리 날고 기는 은신능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핵공격에도 버티는 지하벙커의 벽을 뚫고 들어올 능력이 있지 않은 이상은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역시 그렇겠지.”

“예. 그러니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될 겁니다.”

정보본부장의 말에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하기도 싫은 가정이기에 그는 그것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웠다. 미합중국 정보전의 심장인 중앙정보국에는 세계를 들어 엎을 수많은 정보가 가득했다. 특히 대한민국과 관련된 극비정보들은 절대 외부에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도 많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헌터전력을 견제하기 위해 공작한 내용들도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었다.

만약 그런 것들을 대한민국이 알게 된다면 자신은 그날로 파멸이었다.

아니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입국한 헌터에게 털리는 게 더 치욕일까? 저울질하기도 싫은 가정뿐이다.

“어쩌면 지금 저희가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정보본부장의 말에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저들은 목적을 달성한 것과 같다. 그 이유는 현재 대한민국에 대한 모든 비방행위는 어제부터 일시 중단했기 때문이다.

치욕스럽지만 그것이 무적성의 ‘배려’ 에 대한 그들의 보답이다.

“엠페러의 일에 집중하는 것도 좋을 겁니다. 그가 나선다면 무적성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음, 글쎄. 그럴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국장이 반대쪽 화면에 떠 있는 한 인물을 바라봤다.

“엠페러”

미국이 자랑하는 최강의 각성자. 세계 단 두 명뿐인 8성의 헌터.

최강의 탱커, 움직이는 성채, 미국의 자존심 무수한 별명을 지닌 그의 콜네임은 엠페러다.

그러나 국장의 생각은 회의적이었다.

그는 딜탱커다. 물론 그의 방어력은 인정한다. 그는 8티어의 몬스터도 무리 없이 홀로 탱킹 가능함과 동시에 레이드가 가능한 초인이었다. 그렇지만 상성이 좋지 못하다.

“어쩌면 엠페러스 그녀가 더 상대하기 적합할지 몰라.”

또 다른 8성헌터의 콜네임을 말한 국장이 한숨을 내쉰다.

“그렇지만 그녀가 저희 부탁을 들어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녀가 소속된 유럽연합헌터사무국이 그걸 용인할지도 문제고...”

미국에 엠페러가 있다면 유럽에는 엠페러스가 있다. 대체 어떤 혈통을 타고 났는지 그녀는 그 희귀하다는 마법 능력을 가지고 7성 몬스터를 홀로 쓸고 다닌다. 엠페러보다 훨씬 유틸성이 있는 그녀였다.

아직까지도 보유한 마법의 숫자가 얼마인지 다 밝혀지지 않았다고 알려진 엠페러스라면 한계가 측정되지 않은 그 은신 스킬을 잡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

“없는 건 무시하자고 일단 최대한 감시해. 어딜 가는지 분 단위로 보고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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