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아들의실수-2
#1
그의 말에 군인이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물선 그가 어깨에 부착하고 있던 무전기의 무음 버튼을 몇 번 누르자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신속하게 무장버스 주위로 접근한다. 클락의 조수석에 앉아있던 여동생이 눈을 부릅뜬 채 그의 오빠를 노려봤지만 클락에게는 지금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이 버스에는 지금 그의 가족들이 전부 타고 있다.
버스에 위험요소를 태우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재빨리 일어나 버스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아버지는 트레일러에 붙은 주방위군헌터와 실랑이 중이라 이쪽 상황을 아직 모른다.
그는 아버지의 뒤로 다가가 입을 틀어막고는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읍읍!”
“아버지! 그 녀석 일반인 여덞 명을 죽인 빌런이래요! 저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행여 그의 아버지가 큰소리를 내서 그 빌런을 자극할까 입을 막았다. 지금 티모시의 눈에 어린 당황과 분노를 애써 무시하며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셔도 어쩔 수 없어요. 이번만 제발 제 말을 믿고 따라주세요.”
티모시는 아들의 말에 몸부림쳤다. 머리가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썬에게는 좋은 아빠이며 그럭저럭 순종하던 착한 아들이다.
티모시가 거칠게 반항했지만, 애초의 그의 아들은 헌터였다. 용을 쓰던 그가 풀이 꺾이자 그를 안아 든 채 아내인 엘리에게 속삭였다.
“썬 데리고 나와.”
“이래서는 안 돼! 클락!”
“시끄러! 우리 가족을 위한 거야!”
클락이 말하자 그녀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깨닫고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바르르 떨고 있는 썬을 안아 들었다. 그렇게 가족들이 모두 무장버스에서 내리자 주방위군과 주방위군소속 헌터들이 무장버스를 물 샐 틈 없이 포위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군인이 옆에 서 있는 책임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잠시 고심하더니 이내 이를 질끈 물고는 말했다.
“코드 MH9 급의 빌런을 처치할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 실력으로는 붙잡을 수 없는 놈이야. 버스 자체로 박살 내 버린다. 폭약 준비해.”
“옛!”
지휘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가 버스를 둘러싼 이들에게 무전기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몇몇이 버스 주위에 폭탄을 부착했다. 그것도 부족한지 각자 보유한 모든 화기들을 일제히 장전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저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클락이 목소리를 높이려 했지만, 그의 입은 이미 주방위군소속 헌터들에게 가로막힌 상태다.
폭파 반경에서 모두가 물러나자 지휘관의 손이 올라간다.
“폭파!”
콰콰콰콰쾅!!!
책임자가 폭파를 명령한 순간 버스 주위에 붙여놓은 플라스틱폭약이 일제히 터졌고 티모시 일가의 삶의 터전이었던 버스가 불꽃에 휩싸이며 공중으로 10여미터를 치솟았다. 그리고 버스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잔혹한 명령이 뒤따랐다.
“일제사격!”
투타타타타타타탕!!! 쾅쾅쾅!
온갖 화기가 작렬하는 가운데 무장버스는 서서히 형체를 잃어갔다. 무장버스는 자체 방어력이 있었지만, 폭탄으로 인해 장갑들이 박살 났고 드러난 부분을 그대로 중화기들로 난사하자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고철이 되어 버렸다.
“허, 허허...”`
티모시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지금 저 안에서 불타고 있는 것은 그들 가족과 마을의 은인이었다. 그가 나타나 막아주지 않았으면 그들 가족은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마을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그가 설령 여덟을 죽인 빌런이라도 합당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그런데 바보같은 자신의 아들이 저지른 실수로 그가 죽어가고 있었다.
“으아앙!”
썬이 엄마의 품에서 난리를 쳤다.
그녀의 집이 불타오르고 있다. 그녀가 태어나 자란 그녀에게는 또 하나의 가족이기도 했던 무장버스다. 그런 가족이 지금 불꽃에 휩싸여 죽어가고 있었다. 불꽃을 눈에 담고 있던 썬은 그대로 혼절했고 엘리 또한 딸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넋을 놓고는 버스를 바라보았다.
“가족을 위한 거야. 어쩔 수 없어. 모두 그놈 때문이야.”
땅바닥에 주저앉은 클락이 넋두리하듯 말했다.
그는 지금 책임회피 중이었다. 그는 순진하게도 군인들이 그 빌런을 체포해서 데리고 나올 줄 알았다. 주헌터법에는 빌런이라고 즉각처형 하지 않는다. 변호사도 선임할 수 있으며 그 능력이 뛰어나면 일반헌터로 전향시켜주기도 한다. 세상을 너무 우습게 본 대가다.
티모시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한참 부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는 티모시를 바라보며 딱 잘라 말했다.
“빌런을 숨기고 있었는지에 대한 차후 심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MH9 급의 빌런을 처치하는데 결정적인 제보를 했으니 최대한의 선처와 재산손실에 대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노력하지.”
우습지도 않은 입에 발린 말이지만 티모시가 지금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가...그가 진짜 무고한 일반인 여덞을 죽였소?”
티모시가 물었다. 그러자 책임자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 말에 답했다.
“일반인은 맞는데 근처 갱단 중 하나인 핵터 패거리였지. 일반인이기는 하지만 죽어 싼 놈들이야 병신같은 놈들 하필 빌런을 건드려서...”
“허!허허”
책임자의 무성의한 대답에 티모시는 머릿속이 띵하고 울리는 걸 느꼈다.
차라리 아들의 말대로 그가 잔혹한 빌런이었다면 그것으로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래도 아들이니까. 그렇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슬럼가, ‘마마의 사탕 계단’, 그 근처에서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르는 갱단···. 이야기는 아주 간단 심플 명료했다.
“이! 멍청한 새끼!”
몸을 획 돌린 티모시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불타오르고 있는 무장버스를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는 클락을 힘껏 걷어차 버렸다.
“억!”
“죽어버려! 이 병신 같은 자식아!”
퍽! 퍽!
“아...아버지!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세요!”
클락이 항변하듯 외쳤다. 그는 가족을 위해 결단을 내린 것밖에 없다.
“이 멍청한 자식아! 제대로 확인이라도 했어야지! 내가 평소에 경솔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더냐!!”
퍽! 퍽!
클락을 마구 걷어차던 티모시가 무장버스에서 떨어져 나온 쇠파이프를 집어 들어 아들을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버지! 제발! 우리 가족을 위해서였다고요!”
클락이 억울하다는 듯 항변하자 티모시가 허허하고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떨어뜨렸다.
“이놈아. 이 어리석은 놈아! 이 미친놈아! 무고한 일반인? 마약질에 인신매매에 노상강도질하는 핵터 패거리란다. 그놈들 여덞 이다! 이놈아! 이 멍청한 놈아!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라!”
“예에?”
아버지의 말에 클락이 어안이벙벙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이 미친 새끼!”
그 때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그의 동생인 제니가 그대로 날아올라 오빠의 얼굴을 돌려차 버렸다.
“죽어버려!”
“크헉!”
일반인인 아버지가 때리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통증이 얼굴에 느껴지자 그는 그대로 땅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그때 며느리인 엘리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꺄아악! 얘! 썬! 썬! 아버님! 얘가 얘가!! 이상해요!”
“뭐라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엘리는 품 안에 안고 있던 썬이 의식이 없는 걸 깨닫고는 비명을 질렀다. 아버지와 동생이 그의 아내에게 뛰어가는 걸 땅에 쓰러진 채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그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깨달았다.
자신의 한순간 바보 같은 판단으로 은인을 죽이고 삶의 터전인 무장버스는 파괴되었고 딸은 그대로 의식불명이 되었다.
“후우”
그리고 그들에게서 한참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제황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티모시를 바라봤다. 스쳐 지나갈 인연이었지만 꽤 좋은 첫인상을 줬던 이였다. 비록 그 아들의 멍청한 판단으로 인해 자신을 팔아넘겼지만, 굳이 그것을 노인에게까지 책임 전가하고 싶지 않았다.
-저것들을 그냥 둬?
-내버려 둬. 사실 저 사람들도 피해자야.
-피해자는 무슨! 너 아니었으면 몇 명이 죽었을 텐데! 은혜를 모르는 것들은!
궁기가 광분했지만, 제황은 침착했다. 높은 정신 수치가 심적 변화를 알아서 조절해준다.
-상관없어.
제황이 얼굴을 문지르자 20대 중반의 날카로운 동양인 남자의 얼굴은 사라지고 조금은 선한 듯한 눈매의 20대 초반인 본래의 얼굴이 나타났다.
궁기의 술법으로 얼굴을 변형한 상태다. 될 수 있는 한 얼굴이나 모습을 찍히지 않으려 했던 건 모든 부분에서 상대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 했던 것뿐이지 굳이 노출되어도 상관없다.
조금 걸리는 것은 저들에게 능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만약 저들이 그 사실을 주방위군에 알린다면 조금 골치 아파질 수도 있겠지만 돌아가는 걸 보면 그럴 것 같지 않다.
오늘 저들 가족들은 많은 것을 잃었다. 가장 가깝게는 그들의 삶이 터전인 버스를 잃었다는 것이다. 주방위군이 한 짓이니만큼 보상을 해주기는 하겠지만 보상을 해준다고 해서 이전의 살던 곳만큼 좋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티모시의 아들인 클락은 가족들에게 큰 믿음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썬은... 사실 그게 가장 안타깝다.
-돌아가자.
-쳇, 넌 너무 물러졌어.
-착한 사람들이야.
제황이 뒤돌아 걸었다. 저들과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그때였다. 그의 뒤쪽에서 고함과 비명이 들려온 것.
“이게 무슨 짓이야!”
클락과 제니가 주방위군헌터들에게 포위당해 있었다.
“상부의 지시다. 코드 MH9 급의 빌런과 연계된 만큼 버즈니아주헌터법에 의거 모든 증거물을 압수하겠다.”
그 말을 하는 것은 주방위군소속헌터들의 리더였는데 트레일러에 실려있던 하피 사체를 탐내던 이다. 군책임자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이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마 헌터들에게만 따로 적용되는 법이 있는 것 같다.
“아버지!”
클락이 티모시에게 외쳤지만 티모시는 손녀인 썬을 돌보는데 정신이 없다.
“저 새끼들이...”
제황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저 가족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특히 정신을 놓고 있는 썬이 안쓰럽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저들 가족에게 벌어진 일에 자신 또한 연관되어 있다.
-관여해야겠어.
-뭐? 어떻게?
-그냥 계획을 좀 수정해야지.
-뭐, 마음대로 해. 어차피 놀러왔던 건데...
-고마워.
-쳇, 됐어.
궁기와 이야기를 마친 제황은 조용히 움직여 발버둥 치는 클락을 지나쳐 티모시에게 다가갔다. 암혼보와 용혈무가 극성으로 펼쳐져 있기에 그를 보거나 감지할 수 있는 건 이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제황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썬을 바라보고 있는 티모시의 귀에 속삭였다.
“제가 도와 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황의 목소리에 티모시의 눈이 커졌다.
“자, 자네.”
“쉿, 저는 안전합니다.”
제황의 작은 속삭임에 티모시의 얼굴에 안도가 어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 부탁하네.”
허공중에 울리는 차분한 제황의 목소리에 자그맣게 답하는 티모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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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겼군요. 죄송합니다.”
“다, 당치 않으십니다!”
제황이 살짝 고개를 숙이자 그의 앞에 선 중년남자는 감히 그것을 받지 못하겠다는 듯 허리를 90도로 깊숙이 숙였다.
“제황님께서 지금까지 이루신 위업들은 이미 저희에게 살아있는 전설이십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은 제발 거두어 주십시오.”
“흠흠. 네.”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극존칭을 하는데 마치 그를 총관이자 밀령들의 수장인 나길환 급으로 바라보는 눈치다. 하긴 무려 나길환이 일개 밀령대 하나를 책임지는 밀령대주인 그에게 직접 연락하여 임무를 지시했다.
“그는 장차 우리 무적성을 이끌어 나갈 분이네. 그를 나나 권제님이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무려 무적성 모두의 우상과 같은 권제님과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보라는 나길환의 말에 그는 제황이 당장 누군가의 목을 가져오라 시킨다 해도 아무 의심 없이 실행할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그와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지금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
“앞으로 이곳에 계시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럼 제가 뭐라고 불러 드려야할까요?”
“코드네임은 해외팀 제2밀령대주지만 이곳에서는 편하게 데릭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네. 데릭님.”
“제발,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냥 데릭이라고 편히 불러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일단. 모시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간 모습으로 앞서 달려간 데릭이 최고급 호화 세단의 뒷문을 열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고 제황은 쓴웃음을 지었다.
되도록 이런 과례는 사양하고 싶지만, 그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라는 걸 알기에 제황은 어쩔 수 없이 뒷자리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