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아들의실수-1
#1
차원의 대융합이 일어나는 둥 당장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 옆 동네에 어여쁜 몬스터가 입주해 자신을 아침 브런치 대신으로 삼으려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에 느긋하게 바비큐를 즐기는 게 미국인들이다. 그렇지만 꽤 포용적인 사상을 지닌 제황은 이 가족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장버스 안은 마치 평범한 가정집처럼 꾸며져 있었다. 물론 차에서 많이 생활하게 되면 캠핑카처럼 이것저것 갖춰 꾸미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하지만 몬스터 사냥을 주업으로 삼는 헌터들의 무장버스 안에서 일가족이 산다는 건 쉬이 공감 가지 않았다. 특히나 지금 제황의 무릎에 앉아 제황에게 방글방글 미소를 보이는 6살짜리 꼬마 여자아이까지 같이 생활한다는 건 말이다.
제황이 처음 암혼보를 풀었을 때 캠핑카에 있던 이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이유는 상대가 전혀 헌터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장을 입고 있는 건 둘째치고 그 나이도 너무 어려 보였다. 피부는 하얗고 멀쑥하다. 노인은 처음에 상대가 꽤 나이 많은 빌런이라고 생각했다. 천재적인 유망주라는 건 어디에나 있지만, 레벨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타난 이는 잘해야 이십 대 후반 정도이다. 물론 그것도 제황이 그렇게 보이도록 꾸몄기에 조금 나이 있어 보이는 것이지만 말이다.
“저쪽에 운전하는 건 내 아들 클락, 그 옆은 딸인 제니 이쪽은 며느리 엘리... 그리고 손녀인 썬이고 난 티모시일세.”
제황은 그들의 소개에 굳이 이름은 이야기하지 않은 채 고개를 꾸벅 숙였다.
며느리라고 소개받은 히스페닉여인이 얼음이 담긴 오렌지쥬스를 건넨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것을 받아든 제황은 오렌지 쥬스에 입을 가져다 대며 주위를 둘러봤다.
무장버스에는 티모시의 두 자식과 며느리 그리고 딸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좁을 듯 보이지만 본래 몬스터 사체를 싣는 곳까지 생활공간으로 확장해 꽤 넓다.
몬스터 사체는 따로 컨테이너를 하나 더 달아서 그곳에 싣는다고 들었다.
가족들 중 헌터는 아들과 딸이었는데 둘 다 평범한 재능을 지닌 강제각성자로 3성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가족들은 제황에게 말을 신중히 하려 노력했다.
노인에게 미리 상대가 초고위급 빌런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최대한 묻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었는데 행여 나중에 그에 대해 추궁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센티넬의 등장으로 일반인이 사는 곳에는 무등록자이거나 혹 범죄자로 등록된 빌런들은 발붙일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그들이라고 살 곳이 없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발붙이기 힘든 곳에 자신들의 마을이나 소도시를 형성한 채 살아간다. 사설로 운영되는 몬스터 사체 처리소도 있고 발전소도 자체적으로 갖추고 살아가는 미국 속에 그들만의 나라를 세우고 사는 무정부주의자들이다.
주정부에서도 그들이 뭉쳐 사는 곳은 될 수 있는 대로 터치하지 않는 편이었다. 과거에는 몇 번 토벌 시도가 있었지만, 헌터라는 것들이 잘못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몇 번 피 터지게 싸우고 경험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그들은 빌런들이 사람들이 주거하는 곳에 나타나지만 않으면 건드리지 않는다.
물론 고립된 곳에서 살기에는 부족한 것들이 많기에 몇몇 은신 능력을 가진 빌런들이 침투해 들어왔다. 지금의 제황처럼...
문제는 그들의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는 그런 배려가 전혀 없었다.
“이름이 뭐예요? 저는 썬이에요!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어요. 우리 아빠는 갑옷 입는데 오빠는 왜 갑옷 안 입어요? 무기는 어디 있어요? 아저씨도 아공간 가지고 있어요? 이모가 오빠한테 말 걸지 말라고 했는데 혹시 화난 거 아니죠? 눈이 왜 그렇게 날카로워요? 그래도 잘생겼어요. 우리 이모 남자친구는 고릴라처럼 생겼어요. 냄새도 심해서 난 도망쳐요. 오빠는 냄새가 안나요!”
잠시도 입을 가만두지 않고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다.
엄마인 엘리가 제황에게서 그녀의 딸을 떼어내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바락바락 울며 떼를 써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놔둔 상태다.
“썬, 손님이 불편해하지 않으시냐.”
티모시가 고리눈을 뜨고 노려보지만, 워낙 오냐오냐 키워서 그런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
“오빠가 괜찮다고 했어!”
제황은 괜찮다고 한 적 없다.
“미안하네.”
“아닙니다.”
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 만약 그대로 택시를 기다렸다면 출동한 헌터들에게 주목받을 수도 있었다. 나길환이 챙겨준 카드가 클린한 것이기는 하지만 택시에다가 정보를 노출하는 것보다는 이것이 낫다. 사람을 섣불리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지만 노인에게서 읽힌 그의 마음은 순수한 호의만 비쳤다.
“뉴포트의 헌팅턴 공원이라고 했던가?”
“예.”
“알겠네. 그보다 이것 받게나. 세금을 제한 평균가격일세.”
티모시는 백 달러짜리 묶음 여섯 개를 꺼내 제황에게 건넸다. 간혹 이렇게 현금으로 분배를 나눠야 할 때가 있어 버스에 현금을 넉넉히 들고 다닌다. 제황이 레이드한 하피들은 모두 트레일러에 실은 상태였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그의 아들인 클락이 돈이 아까운지 뒤를 힐끔거렸지만 이내 동생의 타박을 받으며 앞을 바라본다.
“아닙니다.”
제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을 도운 건 굳이 돈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무고한 일반인들이 몬스터에게 죽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무적성에서 운용하는 제황의 자산은 노인이 가진 상상의 범주를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나다. 그러나 티모시의 고집 또한 완고했다.
“나도 그냥 받을 수는 없네. 저런 것을 그냥 꿀꺽하면 우리가족은 앞으로 헌터질하기 힘들어져. 정당하게 사냥한 게 아닌 것을 공짜로 받아버릇하면 은연중 또다시 이런 일확천금을 바라게 되지. 그러니 어서 받게나.”
비록 나이가 너무 많아 강제각성시술을 받지는 못했지만 티모시는 이 스쿼드의 리더이자 가족들의 가장이었다. 그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그건 가족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노인이 고집을 부리자 제황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이것만 받겠습니다. 나머지는 비밀을 지켜주시는 조건으로 다시 드리죠. 거절하지 마시고요.”
제황은 백 달러 뭉치 중 두 개만 골라낸 뒤 나머지를 슥 밀었다.
제황의 단호한 대답에 노인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는 걸 보면 다시 권해도 절대 받지 않을 거라는 걸 느낀 것이다.
‘아깝구나.’
물욕이 없으며 정의롭고 결단력 있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안타까웠다. 저런 능력 있는 바른 청년이 빌런이라는 것이 말이다. 저런 청년이 주정부의 편에서 몬스터 사냥에 앞장서야 하는데 현실은 이런 친구보다 훨씬 함량미달의 놈들의 주방위군 헌터가 돼서 거들먹 거린다.
티모시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황은 옆에 앉아있는 썬에게 ‘마마의사탕계단’에서 사 온 초콜릿을 몇 개 꺼내 줬다. 중간에 궁기가 으르렁거리며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제황은 깔끔히 무시했다. 지금 이 사태가 벌어진 건 그녀의 책임도 있었으니까.
제황에게서 초콜릿을 받은 썬은 곱게 싸인 은박지를 까서 초콜릿 하나를 입에 집어넣고는 눈이 반짝반짝하더니 엄마의 눈치를 보며 초콜릿을 서둘러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평소 군것질거리를 사주지 않기도 하지만 궁기의 엄선된 입맛에서 최상급으로 평가된 초콜릿 맛을 보는 순간 그녀가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머릿속에서 싹 사라져 버렸다.
“허허.”
티모시는 제황이 아공간에서 초콜릿을 꺼내 손녀에게 주자 얼굴 한가득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저 초콜릿 포장에 써진 ‘마마의 캔디계단’ 은 슬럼가의 위치한 제과점이었는데 거기서 만드는 초콜릿은 상당한 고가를 자랑했다. 그런 것을 아공간에서 꺼냈다는 건 이 빌런청년이 저 초콜릿을 사기 위해 이 위험한 곳에 왔다는 오해를 주기에 충분했다. 아마 그들의 주거지에서는 저런 고급초콜릿을 구하기 힘드니 이곳까지 온 것이리라하고 착각하는 티모시였다.
그때 운전을 하던 아들이 심각한 목소리가 말했다.
“아버지 주방위군 검문입니다.”
아들의 말에 티모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은 지역경찰이 검문하지 주방위군이 검문하지 않는다. 주방위군이 동원되었다는 건 몬스터 혹은 경찰들이 해결할 수 없을 수준의 빌런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어째서 검문을 하지?”
“모르겠네요. 주방위군소속 헌터들도 있고 모두 무장들이 상당합니다.”
아들의 말에 슬쩍 앞을 바라보니 과연 수 대의 무장 버스들이 차 벽을 친 채 지나는 차량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하늘 위에는 센티넬들이 돌아다니는 게 뭔가 중대한 일이 터진 것 같다. 티모시는 저것이 지금 이 무장버스에 숨어있는 저 동양인 청년과 관계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자네는...음?”
제황에게 버스 뒤편에 있는 비밀공간에 숨으라 말하려던 그는 막상 제황이 보이지 않자 눈을 꿈뻑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썬의 손이 허공중에 뭔가를 움켜쥐고 있다.
“자네 거기 있나?”
“예.”
“세상에...”
티모시는 다시 한번 놀랐다. 세상에 저런 은신스킬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의 은신이라도 외부와 접촉을 하게 되면 풀린다는 게 정석이고 상식이었다. 그런데 저 은신은 손녀가 붙잡고 있음에도 전혀 풀리지 않는 것이다.
“흠흠, 그래도 센티넬들의 센서는 피할 수 없을 걸세. 저 뒤편에 비밀공간이 있으니 저리로 숨게나. 엘리 도와주렴.”
“예. 아버님.”
티모시의 말에 뒤로 걸어간 엘리가 좌석 하나를 밀었는데 그 밑으로 커다란 빈공간이 나타났다.
“감당하지 못할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대피하는 곳일세. 좀 갑갑하겠지만 검문을 지나면 열어주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센티넬의 센서가 두렵지는 않았지만, 노인의 불안을 해소해주려 제황은 순순히 승낙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뿐더러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 모르니까.
“됐습니다.”
“알겠네.”
제황이 대답하자 엘 리가 좌석을 본래대로 옮겼다.
잠시 후 바리케이트 앞에 무장버스가 멈춰섰다. 티모시의 아들 클락이 운전석으로 다가서는 군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코드 MH9 상황입니다. 헌터라이센스와 차량등록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코드 MH9이라는 말에 클락이 놀라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준비해 뒀던 헌터라이센스와 차량등록증을 내밀었다. 코드 MH9라는 것은 최고로 위험한 최정상급의 빌런이 이 근방에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치이익
무장버스의 문이 열리고 무장한 군인 둘이 들어와 이곳저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무장버스 뒤편에 있는 트레일러 위에 올라선 헌터차림의 남자들이 외쳤다.
“와우, 하피 다섯?”
트레일러의 위편에 있는 뚜껑을 열어본 붉은 피부의 중년의 백인남성이 외쳤다.
“이건 대장급이잖아?!”
다른 하피보다 좀 더 큰 이 하피는 같은 3티어 중에서도 좀 더 고가로 통한다.
“건드리지 마라!”
티모시가 외쳤지만, 그 백인남성은 건들거리며 그 말에 대꾸했다.
“검문 중이야. 노인. 그보다 이거 우리한테 파는 건 어때? 사체 매집소까지 가기도 귀찮을 텐데”
“웃기는군. 헛수작 하지 말고 꺼져.”
“쳇, 일반인 주제에...”
티모시가 눈을 부라리자 의외로 그는 순순히 포기했다. 괜한 말썽은 그도 사양이니까.
그리고 버스 뒤편에서 티모시가 주방위군 헌터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티모시의 아들 클란은 군인과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사람이 죽었습니까?”
“저 남쪽 강 건너 슬럼가 쪽에서 일반인 여덟 명이 죽었습니다.”
“허···.”
여덟이 죽었다는 말에 클락은 깜짝 놀랐다. 슬럼가라면 그 초콜릿과 연관성이 있다. 그렇다면 그 동양인 빌런이 범인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자신들이 속은 것일까? 그렇지만 아까 잠시 겪은 바로는 전혀 그런 티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설마 본성을 숨긴 잔혹한 빌런이 아닐까 두려움이 드는 클락이었다.
티모시에 비해 빌런에 대해 부정적인 클락이었다. 그 동양인 빌런이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자신들 앞에서 가면을 쓴 것으로 생각하니 소름이 쭉 끼쳤다.
“저...”
클락이 주방위군 군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뭡니까.”
“사실은 그 빌런이 지금 이 버스에 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