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66화 (166/301)

# 166

언노운헌터-2

#1

무려 6성 헌터로 알려진... 연평균 수입이 몇백억에서 많게는 몇천억에 가깝다고 알려진 6성 헌터가 왜 이런 식당에서 배식을 받고 있냐고 묻는다면 제황은 간단히 대답할 것이다.

-귀찮으니까.

-응. 인정... 이 인생의 낙을 모르는 인간아.

-기각

무적성에 식당이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무적성은 상당히 도심에서 후미진 곳에 있었다. 물론 무적성 자체가 무지막지하게 넓은 것도 있었지만 결론은 좀 특이한 걸 먹고 싶으면 나가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황은 그것이 귀찮을 뿐이다.

물론 가끔 궁기가 칭얼거릴 때나 밖으로 나서거나 하루 날 잡아 맛집 순례를 다니기는 하지만 먹는 것이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인 궁기는 항상 맛있는 것에 굶주려 있다.

-제과점을 입주시키라고!

-기각.

-이놈에 훈련벌레들! 위락시설이라는 게 없어!

-그건 인정

무적성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클랜들도 밥 먹는 것만큼은 정말 상다리 부러지게 먹지만 무적성의 지배자인 권제는 맛보다는 영양과 양에 신경 쓰는 저렴한 입맛의 소유자였다. 그런고로 권제는 심심찮게 이런 일반 식당을 이용했고 당연히 그 밑으로 있는 이들 또한 식당을 이용하는 게 전통이 되어 버렸다.

식사를 받아 든 제황은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을 택했다.

웬 왕따 같은 짓이냐고 하겠지만 가뜩이나 말수가 적은데 평소에 궁기와 이러저러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벌어진 현상이다.

식판을 가지고 자리에 앉아 궁기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식당 한편에 마련된 티브이에서 속 영상이 눈에 띄었다.

이미 한동안 방송이 진행되었는지 다른 해설 없이 화면이 나오는 중이다.

화면 안에는 수많은 오크들이 연신 후퇴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몰아붙이는 건 군의 화력을 등에 업은 조직화한 헌터 군단이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군소속헌터들이 오크들을 학살하며 전진하고 있다.

[어제 낮 극적으로 평양 게이트를 수복한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헌터들은... 그 가운데 현재 오크들의 40프로를 괴멸시킨 우리 군과 각 클랜의 헌터들은 오크들의 전선을 저스틴포인트 서남쪽 20㎞까지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이번 작전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미군의 도움 없이 모든 작전이 진행되었는데요. 이번 대한민국 단독작전을 통해 연합기지였던 저스틴포인트의 소유권의 향방이...]

한껏 들뜬 아나운서가 화면에 전선을 그리며 해설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번 작전의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한 무적성은 선행된 비밀작전에서 저스틴포인트에 억류되어 있던 이들을 모두 무사히 구해내는 한편 저스틴포인트를 불법 점거하고 있던 사이비종교괴뢰국 삼천교국의 빌런과 오크들을 모두 몰아냈습니다. 11시경 무적성 대변인 발표에 따르면 무적성 정보부 추산 삼천교 빌런 3000명과 오크 군단 10여개를 괴멸시켰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울러 이번 비밀작전에 대해 유감표시를 한 미군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뿐 아니라 미군 내에도 암약하는 삼천교의...]

“아, 하루종일 이것만 하네.”

티브이를 보던 헌터들 중 하나가 짜증을 내며 리모콘을 쿡쿡 누르지만 거의 모든 채널이  비슷한 영상만 다루고 있기에 한숨을 내쉬며 밥먹기에 열중한다.

워낙 비밀스럽고 전격적으로 시작된 대한민국의 저스틴포인트 탈환으로 인해 각 언론사는 이 엄청난 특종에 사활을 건 듯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다. 근래 정치권을 제외하면 딱히 새로울 것 없는 요즘이었기에 일반 채널에서도 일제히 보도하는 중이다.

물론 제황은 전혀 관심이 없다. 저 작전이 이루어지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그지만 그 작전 기저에 깔린 수많은 이해관계 따위에 신경 쓰기에는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천주세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차피 그가 할 일은 끝났기에 제황은 티브이에서 나오는 일과 무관하다는 듯 연신 수저를 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모든 뒤처리는 무적성에서 해줄 것이다. 작전의 시작부터 끝까지 제황은 나타나지 않기로 했기에 걱정하지 않던 바다. 그러나 한참 반찬으로 젓가락을 가져가던 제황의 손이 멈췄다.

누군가가 다시금 리모컨을 조작해 채널을 바꿨는데 그 채널에서 나온 말들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티브이 안 커다란 스튜디오 테이블에는 다섯 명의 앵커와 기자가 앉아 심각한 어조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사회 곳곳에서 무적성의 행보에 대해 말이 많은데요. 대한민국이 무적성공화국이 아니냐 하는 말들이 슬슬 농담만은 아닌 듯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무적성에서는 이틀 전 무려 한미연합기지인 저스틴포인트에 대한 비밀작전을 동맹국이자 최우방인 미국에도  알리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실행했는데요. 이에 대해 저희 종선일보에 익명을 요구한 군고위관계자의 제보가 있었다고요? 김제이기자]

[네. 이것은 저희 종선 일보가 보도하는 최초 단독보도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군 고위 관계자가 이번 무적성의 특수비밀작전은 무적성에 소속된 비밀첩보단체 밀령에 소속된 단 일인의 헌터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믿기 힘든 제보를 했는데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무적성은 세계적으로 약속된 헌터 전력공유협정에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 됩니다. 그와 아울러 이런 폐쇄적인 병력 운용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과 그들이 숨긴 가공할 전력 마지막으로 실제 전력의 공개 및 감사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사회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건 국내에서의 문제일 뿐 더 큰 ...]

-저거, 네 이야기지?

-응.

궁기의 말에 답한 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갑자기 입맛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사실 저스틴포인트에 억류된 이들 중 상당수가 국가에 소속된 군소속헌터들과 군인들이었다. 본래라면 그들이 더욱 발 벗고 나서서 저들을 구출했어야 했는데 몇 달이 지나도록 손도 대지 않고 지지부진 끌다가 기껏 자신과 밀령이 힘들게 침투해서 구해낸 것이다.

군의 잘못은 정부의 무능과 같다.

그러니 저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나오면 부끄러워서라도 그들이 나서서 자제시켜야 하는데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분노가 제황 혼자뿐만이 아닌 듯 보도를 듣던 헌터들이 뜨고 있던 수저를 놓고 하나둘 험상궂은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탕!

“저게 말이야 방귀야!”

한 헌터가 들고 있던 수저를 내던지며 외쳤다.

“그러게. 종선일보 미쳤네. 비공개 전력에 대한 공개? 아니 비밀작전이 괜히 비밀작전이야? 저 새끼들이 돌았나.”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무적성 소속이라는 명예에 사는 이들이었다.

단순한 실력을 떠나서 인성과 능력 모두를 철저히 검증되어 영입된 인재들이었기에 그 자부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런데 저 종선일보는 그런 무적성을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반사회 단체처럼 보도하고 있었다.

물론 무적성이 과거부터 정부정책에 그다지 얌전히 따라오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건 클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언제는 친정부적단체가 있는반면 중립적인 위치의 단체도 있는게 이치 아닌가. 그렇지만 지금 나오고 있는 보도 내용을 보면 마치 무적성이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를 무시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시끄러. 원래 언론이라는 게 저래. 저러다 말겠지. 그러니까 괜히 머리에 열 내지 말고 신경들 끊어.”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밀령 쪽에서 보면 얼마나 분통 터지겠어. 나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구출 인원이 몇백 단위라는데···. 목숨 걸고 좋은 일 했는데 무슨 음모단체 격으로 몰아가니...”

“이 기회에 우리 무적성을 길들여보고 싶은가 보지. 어디 하루 이틀이냐. 휴, 진짜 진절머리난다. 내부총질 하는 새끼들···. 내가 무적성에서 영입제안만 오지 않았으면 진작에 국적 변경했을 거야. 미국 쪽 스카우트가 지도 쫙 보여주면서 손가락으로 찍기만 하면 거기다가 성을 지어준다고 했었는데···.”

“킥킥! 야.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안 그런 사람 있냐. 난 아랍 기름 부자 아저씨가 친하게 지내자고 페라리 보내 줬었다.”

“쯧, 그래. 말해서 뭐하냐. 그건 그렇고 총관님이나 밀령들은 속 좀 쓰리겠다.”

모두 한마디씩 하는 가운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제황이 먹던 것을 그냥 버리고는 그대로 식당을 나섰다.

아무리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티브이를 보고 있노라니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절로 정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평소 그런 것에 대해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크게 다가온다.

본래라면 식사 후 훈련을 하려고 했지만, 의욕도 나지 않아 그대로 숙소로 가려던 제황은 숙소 앞을 지키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아, 제황군.”

제황의 숙소 앞에 서 있던 이는 무적성의 문상 조용기였다.

제황을 발견한 조용기가 밝은 표정으로 손을 든다.

“잘 있었나?”

“아. 예. 안녕하셨습니까. 그런데 어찌한 일로···.”

제황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척 보면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조용기 정도 되는 위치의 인물이 자신의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게 쉬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시켜 따로 불러도 아무 불만 없이 찾아갔을 것이다.

“하하, 겸사겸사라고 말하면 거짓말인 게 들통나겠고 사실 자네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 하나 있어서 왔다네.”

“사과요?”

“그렇지. 그보다 우선 자네 방 좀 구경해도 되겠나? 하하.”

“아. 예. 들어오시죠.”

조용기의 말에 정신을 차린 제황이 그를 숙소로 안내했다. 대접할 것도 없어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내밀자 조용기가 사람좋은 얼굴로 허허 웃는다.

“허, 정말 아무것도 없군. 이거 참, 클랜 놈들이 우리 무적성보고 언제까지 명예팔이나 할꺼냐고 욕하는 게 그 말이 이해가 가는군. 쯧쯔. 혹 서운한 게 있었다면 내 미리 사과함세.”

“아닙니다.”

“아니긴, 내가 자네 능력을 귀동냥으로나 파악하고 있지만 자네 정도면 사실 클랜 하나 세운다고 해도 누가 말 못하지. 아니 귀찮게 그럴 필요 없이 그냥 세계 어느 국가를 가도 자네 정도면 특급귀빈 대우일 걸세.”

“과찬이십니다. 그렇지만 저는 무적성의 대우에 아무 불만 없습니다.”

“하하, 그런가. 말이나마 고맙군.”

“아닙니다.”

말뿐인 게 아니라 제황은 진짜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

숙소가 검소한 건 제황의 성격상일 뿐이다. 그리고 무적성의 헌터들 또한 제황과 비슷하다. 즐기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자기발전을 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조용기의 말처럼 무적성이 명예팔이만 하는 건 아니었다.

헌터들이 온전히 자기발전을 꽤하도록 최고의 지원을 해주는 것과 동시에 레이드에 대한 가장 투명하고 공정한 정산을 해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휴,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말하기 편하겠군.”

“경청하겠습니다.”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기가 말했다.

“자네도 지금 언론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알고 있겠지?”

“예.”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적성이 워낙 거대하니 갖가지 사소한 사회적 잡음이 이는 것은 이해하지만 조금 전 티브이에서 본 것은 좀 심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아니 까놓고 억울한 것을 떠나서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들은 무적성의 눈치를 보던 이들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조용기가 기침 한 번 크게 하면 모두 고개를 숙이던 이들이 갑자기 들고일어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제황은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어 조용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문상님께서 어찌할 수 없는 조직적인 압력입니까?”

“음. 그게 맞네.”

조용기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제황이 재차 묻는다.

“미국이군요?”

그의 말에 조용기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음, 눈치가 빠르군.”

“아닙니다.”

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문상 조용기는 권왕 황정민의 입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건 권왕을 무시한다는 것과 같은데 제황이 알기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단체는 우리나라에 없었다.

그렇다는 건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라는 건데 그들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건 역시 미국과 중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황의 말에 조용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이 자네를 노리고 있다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네를 손에 쥐고 싶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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