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줏어먹기-2
#1
오크 둘이 지탱해야 할 정도로 거대한 방패든 그 밑에서 그것을 받치고 있던 오크든 그리고 그 방패를 믿고 화살을 당기고 있던 오크든 가리지 않았다. 강기는 그 모든 것을 절단하며 여력이 남아 바닥에 굵은 고랑을 남겼다. 방패만을 믿고 있던 중갑오크부대에게는 그야말로 대참사. 그녀가 내려앉은 곳에는 팔다리가 무참히 잘린 오크들만이 널려 있었다.
“시원하네. 그렇지만 아쉽군. 조금만 더 힘을 회복하면 삼십육절참살강을 써줄 텐데.”
후폭풍으로 요란하게 휘어 올라가는 바람 속에 상쾌한 표정을 짓고 있던 궁기가 다시금 양손에 기다란 발톱 여섯 개를 뽑아 들었다.
“신명 나게 놀아볼까?”
쫘자자자작!
궁기는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무차별적으로 휩쓸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꾸어억!”
“크악! 막아라!”
“카녹이시여!”
잘려나간 팔다리가 공중으로 튀어 오르고 오크들의 비명과 피분수가 여기저기 솟구친다.
그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애초에 이들은 원거리 전투만을 상정해 구성된 군단이었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 괴물은 그들과 너무나도 치명적인 상성을 지니고 있었다.
막아낼 것이 없다. 거대한 방패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었다. 그렇다고 방패를 놓자니 괴물을 막을 변변찮은 무기도 들지 않았다.
그것은 검은이빨투사단도 마찬가지였다. 아군들 사이를 마치 양떼를 학살하는 호랑이처럼 휩쓸고 다니며 난전을 유도하니 아군들 사이에 있어 활로 공격할 수도 없다.
“크아악!”
“물러나라! 적은 하나다! 물러나서 원형진을 구성하라!”
오크히어로들이 발작적으로 외치지만 궁기는 그것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무려 일만오천 사이에 끼어든 하나이다. 그들의 명령대로 일정한 수를 포기하고 외곽부터 방패로 압박하는 게 정석이지만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수천 년을 뛰어넘는 경험을 지닌 궁기였다. 근접전에서만큼은 제황도 두손 두발 다 들어야 하는 그녀에게 난전유도는 테블릿에서 인터넷결제하는 것보다 쉬웠다.
검은이빨투사단과 오크중갑방패부대는 말그대로 천적과 같은 존재와 맞닥뜨린 것이다.
“신나게 노네.”
궁기가 뛰어든 직후부터 제황을 향해 날아오던 화살 공격을 뚝 끊겼다.
그녀를 날려 보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오크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제황은 오크들의 대응 방법을 인정했다.
자신의 화살공격을 저 거대한 방패로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효과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투사무기가 저런 방패에 약한 건 상식이니까. 그렇기에 과감히 포기했다. 저런 놈들과 싸우기보다는 눈앞에 널린 방패를 들지 않은 먹잇감들이 수두룩하다. 눈감고 화살을 당겨도 맞을 만큼 많은데 굳이 저것과 싸우는 건 효율이 떨어진다.
사냥꾼은 굳이 상성이 나쁜 사냥감과 억지로 싸우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을 때는 싸워야겠지만 굳이 효율 떨어지는 짓을 할 필요가 있는가.
그렇기에 궁기를 보냈다. 검은이빨투사단과 방패전문 부대의 천적인 스피드형 근접극데미지딜러인 궁기를 말이다. 물론 궁기가 포위되겠지만 그리 걱정스럽지는 않다. 그녀에게는 퇴각할 방법이 널리고 널렸으니까.
[3214e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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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잘 잡네.”
궁기를 통해 들어오는 막대한 경험치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이전에는 그녀를 통해 경험치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런데 9티어 마나석을 하나 더 흡수하고 몇 가지 주술을 시험한다고 깨작거리더니 대뜸 ‘주인. 내가 경험치 많이 벌어올깽~’ 이라고 부르며 장난을 치더라.
뭔 소리냐고 했더니 헌터들이 테이밍이나 소환 같은 스킬을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그걸 참고해 예전에 연구하던 주술이 있다더라.
매일 입에 초콜렛을 달고 막장드라마만 보면서 깔깔거리는 줄 알았는데 그런 기특한 짓을 하고 있는지는 제황도 몰랐다.
아무튼 그 주술의 매커니즘이야 궁기가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일단 그녀가 사냥한 것까지 그에게 경험치로 환산되니 레벨업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나도 열심히 벌어야지.”
제황이 어깨를 휘휘 돌렸다. 지금까지는 정말 자제하며 공격했다. 헬칸이나 다른 강자들에게 주목받아서는 초를 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전투가 중반에 들었으니 더는 자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으리라. 그리고 지금이 제황이 바라던 때다.
#2
우드드득!
비천궁을 만궁시킨 제황의 눈이 빛났다. 제어하고 있던 두 단계 중 하나를 풀었다.
‘폭발하는 소나기’
풋슝!
제황의 손으로부터 화살 한 대가 발사되었다. 이전에 기계처럼 쏟아내던 그 화살이다. 그렇지만 그 파괴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퓨퓨퓨퓨퓨퓻! 콰가가가가강!!!
“우어어억!”
“크어어억!”
이전의 강기가 고작(?) 사오십여 개로 갈라졌다면 이제 그 이름인 ‘소나기’ 에 걸맞게 수백개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폭발의 속성을 지녔다.
그런 화살이 마구잡이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제황이 화살 세례를 쏟아부은 곳에는 붉은 색의 둥근 원이 하나씩 생겼다. 제황은 굳이 이전처럼 전진하는 오크들을 막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성벽으로 달라붙는 건 아예 도외시한 채 경험치가 많이 뭉친 곳으로만 화살을 날려댈 뿐이다. 최선의 힘으로 최고의 효율만을 위해 사격할 뿐이다.
상태창의 경험치바가 눈에 보일 정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현재 제황의 레벨은 B급 6레벨이다. 10레벨을 채우면 다시금 랭크업을 하고 세이브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바 B급에서 A급으로 오르는데 필요한 시간은 꾸준히 레이드를 했을 시 7년에서 8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로 경험치 바가 오른다면 제황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A급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제황의 궁기안이 위험을 감지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아투르칸들이 제황이 있는 쪽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는 중이다.
제황이 나서기 전 일만의 아투르칸들은 그것을 네 개의 무리로 나뉘어 저스틴포인트 앞을 돌진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기계적으로 축차공격을 하고 있었다.
박격포와 미사일들이 아투르칸들을 잡으려 했지만, 저들은 너무나 빨랐다.
그러던 중 강자의 출현해 약 2500정도로 구성된 한 개의 무리가 제황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무려 2500의 중갑오크라이더들이 앞에 걸리적거리는 오크들을 짓밟으며 제황이 있는 방향을 향해 돌격해 들어온다.
어린진의 모양으로 50열 종대로 대형을 갖춘 채 일사불란하게 달려오는 그들의 손에는 모두 한 자루씩의 투창을 쥐고 있다. 가장 강한 제황을 단숨에 저격해 버리겠다는 것.
그렇지만 제황은 콧방귀를 뀌었다.
저들의 공격은 이미 한번 본 바 있다. 물론 저들이 강하기는 하다.
평범한 헌터공격대라면 저들의 돌격 한번 이면 지리멸절하리라. 그렇지만 제황에게는 저들의 약점이 너무나도 훤히 보였다.
“후우...”
가볍게 날숨 한번 내뱉은 제황이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는 지금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궁기를 향해 말했다.
그녀와는 영혼으로 묶여 있으므로 거리에 상관없이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
-궁기
-응?
-화신체 강렬하게 시작해줘.
-알았어!
그녀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화신체가 일어났다.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하여 모든 능력치가 +5 증가합니다.]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하여 마나량이 +1000 증가합니다.]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하여 마나회복율이 30프로 증가합니다.]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하여 스킬공격력이 50프로 증가합니다.]
궁기가 강해짐에 따라 화신체 스킬도 강력해졌다. 이전에는 능력치 상승과 마나의 보조 뿐이었다면 직접적인 공격보조 효과까지 생겼다.
무려 스킬공격력 50프로 상승!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화신체 스킬은 궁기가 영향을 준다. 궁기의 마나를 끌어다 쓰는 것이기에 심하게 쓰면 궁기의 전력이 약해진다. 그렇기에 강력한 게 필요할 때만 사용하기로 했다.
후우우욱!
노도와 같이 꿈틀거리는 여의용혈신공에서 출발한 마나가 시위를 당긴 화살로 끊임없이 주입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투르칸들의 약점을 파악했다고 하지만 그것을 깨는 데는 보통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흐으으읍!”
제황은 서서히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하는 두 팔을 버티며 자신이 겨냥한 곳을 노려봤다. 저들은 탱크와도 같다. 앞을 가로막는 건 모조리 밟고 지나가는 탱크... 탱크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것은 하늘에서 쏟아붓는 미사일 세례겠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탱크는 밟고 디딜 땅이 필요하지.”
‘춤추는 강기의 화살’
퍼어어엉!!!!!
이전에 쏘아대던 것이 붉은강기로 이루어진 창이었다면 지금 그의 활에서 발사된 것은 말 그대로 하나의 이글거리며 불타오르는 붉은 기둥이 뻗어 나갔다. 다른 인첸트는 필요 없다. 지금 필요한 건 우직하고 묵직한 한 방이다.
꽈우우우우웅! 콰콰콰쾅!
제황으로부터 쏟아져 내린 강기의 기둥이 아투르칸들에게 작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최전선에서 내달리는 어린진의 머리에 작렬했다. 빗나갔냐고? 그럴 리가 있는가. 강기의 기둥은 정확히 제황이 원하는 곳에 작렬했다. ‘춤추는 속성’ 이 있기에 강기의 기둥은 계속해서 꿈틀거리며 지반을 파괴해 나갔다.
콰콰콰쾅!!!
그것은 절대 화살 한 대로 이루어낼 공격력이 아니었다. 아마 헬칸이라도 이 공격은 가볍게 막아낼 수 없었으리라. 그만큼 강력했으니까. 폭발하듯 먼지가 피어오르고 아투르칸들을 덮쳤다.
잠시 후 먼지가 거치자 드러난 참상은 근처에 있던 오크들마저도 공격을 잊을 만큼 끔찍했다. 그곳에는 무려 폭 40미터가량의 깊은 골짜기가 패어있었다. 그리고 그 골짜기 안에는 제황의 무식한 공격을 장면으로 맞닥뜨린 아루르칸들과 돌진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린 이들이 늑대들과 함께 핏물 속에 처박혀 있었다.
“크르륵, 이럴 수가...”
“아투르칸들이...”
오크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오크주술의 힘으로 두려움 없이 달려들던 그 오크들이 제황이 일으킨 압도적인 공격에 공포를 느끼고 물러나는 것이다.
아투르칸들이 멈췄다. 무려 이천오백이라는 숫자지만 종대로 움직이기에 앞이 가로막히면 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최선두에서 방향을 지휘하던 오크히어로도 사라졌다.
“크헉!”
아투르칸들을 통솔하는 오크히어로 타르바는 비틀거리면서도 용케 핏물 속에서 일어났다. 마지막 순간 그의 늑대가 그를 덮쳐주고 또한 그가 지닌 비장의 신물인 ‘카녹의방패’ 가 그 붉은 번쩍임을 막아주지 못했다면 자신 또한 지금 그의 주위에 있는 그의 동료였던 것들과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다.
간신히 몸을 추스린 그의 머리 위로 불길함이 스친다.
“아, 안돼.”
아투르칸들이 멈췄다. 돌격을 기본으로 삼는 자신들이 멈췄다.
일만의 아투르칸들을 보호하는 단체주술인 ‘카녹의 돌격’ 이 깨진 것은 둘째다. 분명 골짜기 밖에 있는 머리를 잃은 아투르칸들이 잠시나마 혼란에 빠졌으리라.
그는 이 전장에 들어오고서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들처럼 강력한 집단은 잠시라도 틈을 보이면 바로 공격당하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을 집요하게 노리던 박격포와 미사일이 이런 호기를 그냥 기다릴리 만무하다.
“달려라!”
그가 목이 찢어져라 외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집요하게 아투르칸들을 노리던 그러나 너무나 빠르게 질주하기에 번번이 빗나가던 삼천교의 백린연막탄과 미사일들이 멈춰선 아투르칸들을 향해 집중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꾸어어어억!”
“크아악! 뜨거워!”
무려 일만의 아투르칸들을 뒤덮는 거대한 불꽃의 태풍이 저스틴포인트의 앞을 하얗게 물들여 갔다.
뒤늦게 소규모 대대로 분산하여 그것들을 피해 흩어졌지만, 그 잠시간의 공격으로 아투르칸의 절반이 그대로 공중으로 산화했다.
“흐읍!”
그리고 지금 그 엄청난 피해의 트리거를 당긴 제황은 순간적으로 치솟은 경험치창이 단숨에 한 개의 레벨을 뛰어넘는 것을 발견했다. 0.5의 포너스능력치를 보며 씨익 웃은 제황이 다시금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자고로 물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 흩어져 달리는 아루트칸들만을 노리는 제황의 잔인한 사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콰콰콰콰쾅!
“뭐지?”
저스틴포인트의 외성벽 안으로 침투해 달려드는 삼천교도들을 가벼운 창질로 툭툭 박살 내던 헬칸은 순간 요란하게 들려오는 폭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안 좋은 직감이 머리를 스친다. 그렇지만 헬칸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스틴포인트의 우두머리를 잡아야 한다.
‘빌어먹을 그 때 처리했어야 했다.’
외성벽 위에 노출되어 있을 때가 적기였는데 자신이 잠시 망설이는 틈에 아투르칸들의 투창공격에 질겁하고는 그대로 무리를 이끌고 숨어 버렸다. 그 때 망설이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지루한 술래잡기를 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삼위일신의 신벌을 받아라!”
“이교도에게 죽음을!”
오크들을 도륙하던 인간들이 헬칸을 향해 돌진해 들어온다. 눈이 반 정도 돌아간 저것들은 정말 질겼다. 팔다리가 날아감에도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지 계속해서 공격해 들어온다. 물론 그런 공격 따위 헬칸의 피부에 생채기도 낼 수 없지만, 저들은 마치 바위에 달걀을 던지는 것처럼 자신들의 몸을 내던지고 있다. 그래서 귀찮고 짜증 난다. 약하면 약한 대로 굴복해야 하는데 이 삼천교의 인간들은 정말 귀찮게 만든다.
“끄르륵, 내 앞에서···.”
엔드릴을 한껏 뒤로 제친 헬칸이 눈가가 꿈틀했다. 허리를 한계까지 돌린 그가 전신의 마나를 엔드릴을 통해 떨치는 순간 그가 베어낸 공간 자체가 삭제되는 것처럼 눈앞에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절단해 버렸다.
우르르...쿵쿵... 쾅쾅!
“우와악! 무너진다!”
“피해!”
헬칸의 엔드릴이 외성벽을 사선으로 반토막 내 버리자 균형을 잃은 통로가 무너져 내리고 그 사이에 있던 삼천교도은 모조리 매몰되어 버렸다.
잠시나마 찾아온 정적. 헬칸은 그것이 마음에 드는 듯 씨익 웃으며 다시금 걸음을 떼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엔드릴을 어깨에 들춰 맨 헬칸은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밖에는 믿음직한 1만의 아투르칸들이 있고 그보다 수배는 많은 오크들이 이미 이 외성벽에 점령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아투르칸들이 어떤 난관에 빠졌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쫓는 수석이단심문관 소피아가 얼마나 독한 인간 여자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