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57화 (157/301)

# 157

줏어먹기-1

#1

저스틴포인트의 외성벽 한 축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비록 일부일 뿐이지만 단 한 번의 공격이 일으킨 그것은 재앙이라고 부르기 충분했다.

“쿠아아악! 놈들을 카녹의 제단에 바쳐라!”

“헬칸이시여!”

“가라! 인간들을 죽여라! 놈들의 피를 마시자! ”

오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들의 주군이 친히 나서서 저 저주스러운 성벽을 박살 낸 것이다.

오크들은 더욱 맹렬히 달려들었고 기어코 첫 물결이 외성벽에 도달했다.

쿵!쿵!쿵!

오크들에게는 공성무기가 없었다. 아니 이전에는 있었지만, 이 이 세계의 인간들과의 싸움에서는 그다지 효용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과감히 버렸다. 그리고 매우 무식하지만 쓸모있는 방법을 택했다.

벽 가장 밑에 오크들이 달라붙어 버티면 그 위로 다른 오크들이 달라붙는다. 마치 피라미드를 쌓듯이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점점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외성벽 위에 있던 삼천교도들이 아래를 향해 마구 총화기를 갈겼지만 떨어지는 숫자보다 기어오르는 숫자가 더욱 많다.

헬칸에 의해 파괴된 성벽 쪽은 이미 일부의 오크들이 내부로 진입하는 중이다. 너무나 근접했기에 중화기들은 쓸모가 없다. 그나마 화염방사기가 있어 한 번에 수십 마리의 오크들을 불태우지만 태워도 태워도 달라붙고 그마저도 화염방사기에 달라붙어 하나하나 박살 내기 시작했다.

저스틴포인트의 위기···.

그때 외성벽 위쪽으로 인영들이 우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내부에서 예비대로 대기 중이던 각성자들이다. 현재 저스틴포인트 내에 있는 삼천교의 총인원은 4000명 남짓 되었다. 그중 헌터는 천여 명가량이었는데 그중 절반이 외성벽에 동원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저스틴포인트의 방어시설에 의존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진짜 방어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가장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수석이단심문관 소피아였다.

그녀의 뒤로는 그녀의 십이사도 중 다섯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린 채 소피아를 향해 반대편 손을 뻗고 있었다. 이들은 특별히 소피아만을 위한 버퍼들이었는데 마나 회복률과 스킬극대화, 마나 전이 등의 스킬을 지닌 이들이었다.

타탁..타타탁...

내뻗은 소피아의 손으로부터 작은 스파크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너무나 미약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의 몸으로부터 뿜어진 스파크가 일순 훅하고 사방으로 퍼지더니 성벽 아래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소피아의 입이 열렸다.

“터져라.”

파파파파파파팍!!!

소피아의 손으로부터 발사된 뇌전이 성벽 아래에서 올라오던 오크들을 덮쳤다.

“쿠에에엑!”

퍼억!

단순히 감전되는 것이 아닌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몸 자체가 내부에서 폭발해 버렸다. 그런 폭발이 그녀의 몸에서 뿜어진 스파크가 뒤덮은 공간 전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퍼퍼퍼펑퍼퍼펑!

단숨에 삼백여 마리의 오크가 떼 몰살을 당했고 그녀가 있던 곳 반경 50미터는 완전히 공백 지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모조리 불타올라라!”

파파파파팍!

소피아의 손으로부터 대단위의 번개가 브레스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번개브레스의 사정거리는 거의 근 50미터가량이었는데 그것에 닿는 모든 오크들은 모조리 통구이가 되어 버렸다.

다른 삼천교의 각성자들 또한 각자 자신의 이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마법계열 헌터들은 각자 상성에 맞게 화염과 바람 혹은 물과 번개 등으로 대형을 이루어 오크들을 격살하기 시작했다. 물리계열이나 원거리 공격수들은 성벽을 기어오르는 오크들을 쳐내기 바쁘다. 오크와 인간의 고함과 비명이 저스틴포인트의 대기를 어지럽혔다.

퍼퍼퍼펑!

묵직한 120미리박격포에서 백린연막탄이 하늘을 날았다. 긴 포물선을 그린 백린연막탄이 오크들의 머리 이십여 미터 위에서 폭발과 함께 오렌지빛 섬광을 바닥으로 흩뿌렸고 그것에 휩싸인 오크들은 비명을 지르며 불꽃에 휩싸여 버렸다.

씨이잉!

콰콰콱! 화아아악!

대지로 떨어지는 수많은 화염 덩어리들···. 간혹 땅으로 떨어져 폭발하는 것들도 있지만 그때마다 많게는 수십 마리의 오크들이 죽어 나갔다.

콰콰콰쾅!

그러나 역시 가장 강력한 전장의 주인공은 미사일들이었다.

미사일 포트들 또한 이제 숨길 것 없다는 듯 마구 클러스터 탄두를 쏘아대기 시작했고 공중으로 치솟은 미사일들이 분리되어 땅을 마구잡이로 할퀴면 그곳에 있던 오크 중 성한 시체는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박살 내 버렸다.

미사일은 상급의 오크들에도 큰 피해를 줬는데 그들은 헬칸과 같은 재주가 없기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그러나 그들에 맞서는 오크들도 만만치 않다.

일반오크들은 계속해서 성벽에 달라붙고 성벽 근처에 도달한 헬칸의 정예 아투르칸들도 공격을 시작했다.

그들은 마갑의 옆에 부착된 투창을 일제히 뽑아 들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성벽 위를 향해 그것을 날렸다.

콰쾅! 쾅쾅! 콰콰쾅!

“우아악!”

“삼위일신이시여!”

“살려줘!”

맹렬한 폭발과 함께 수십 명의 삼천교도가 떼몰살을 당했다.

튼튼한 성벽을 방패 삼아 공격 중이었는데 아투르칸들의 마나를 머금은 투창공격은 그것들을 박살 내며 적들을 죽여 나갔다. 아투르칸들이 성벽을 돌며 원거리 공격을 해대자 삼천교 쪽에서도 단숨에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까드득

소피아는 이를 질끈 깨물었다.

미사일에 너무 큰 기대를 한 게 실수였다. 아니 헬칸의 역량을 너무 가볍게 봤다는 게 더 큰 실수이리라. 그러나 이대로 질 수는 없다. 기세가 오크들에게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 기세를 빼앗아 오기만 하면 버틸 수 있다.

“생화학 무기 살포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녀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수백 대의 드론이 공중으로 일제히 날아올랐다.

전용의 특수 알고리즘을 통해 비행경로를 설정하면 자율적으로 날아다니며 생화학무기를 살포하는 이 드론들은 빠르게 날아 오크들을 향해 광범위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때 그건가.”

전장 한 편에 유유히 서서 그것을 발견한 헬칸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 기분 나쁜 날벌레들이 뿌리는 독가루의 성능을 이전에 체험한 바 있었다.

자신이나 오크히어로 혹은 전사계급인 우르크하이 들이라면 그럭저럭 버틸 만하지만 일반오크에는 쥐약이었다.

“제길, 그렇지만 딱히 방법이 없군.”

예전에도 저것을 직접 땅에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실패했었다.

당시 검은이빨투사단이 중간에 제압하여 피해를 줄이기는 했지만 지금 검은이빨투사단은 그 놈을 향해 계속해서 위력사격을 하는 중이다.

“빌어먹을···. 이럴 때는 안 좋군.”

만약 자신이 옥좌에 있었다면 빠르게 명령을 하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전장 한복판이었다. 딱히 명령할 수단이 없는 것, 본디라면 쿠켈이 그 공백을 막겠지만 쿠켈은 죽었다.

“음?”

그때 헬칸의 눈에 이상한 것이 포착되었다.

검은이빨투사단이 집중사격을 하고있는 그곳은 이미 건물 따위는 없었다.

너무나 많은 화살공격에 당했기에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남은 것은 건물의 뼈대가 되는 앙상한 철골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꼭대기에 인간으로 보이는 형체가 아주 여유롭게 서 있다. 믿지 못할 모습이다.

여전히 수백 대의 화살이 그곳을 노리고 날아가고는 있다. 얼마나 많은 화살을 쏟아부었는지 검은이빨투사단으로 이어지는 수백의 일꾼 오크들이 연신 화살을 나르는 중이다.

문제는 계속해서 화살을 날려대고 있지만, 그 인간을 전혀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2

쉬쉬쉬쉭!

수대의 화살이 제황의 몸을 향해 날아온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대로 꿰뚫릴 상황 그렇지만 그 화살들은 제황을 모두 지나쳐 갔다.

콰콰콰쾅! 휘청 휘청

중량화살에 얻어맞은 철골이 요란한 비명을 지으며 흔들리지만, 제황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그걸 슬쩍슬쩍 피해내는 중이다. 큰 걸음도 아니다. 아무리 많은 화살이 자신을 노려도 사뿐사뿐 움직이는 내에서 피해내고 있었다. 그가 지닌 회피스킬 용혈무의 힘이다.

“이번 건 봐줄 만 하네.”

피할 위치를 계산해 발사한 마나를 머금은 화살을 고개를 까딱 숙여 피한 제황이 그것을 품평했다. 아마 검은이빨투사단의 우두머리 이리라.

검은이빨투사단이 화살을 못쏘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들은 지금 혼신을 다해 화살을 날리는 중이었다.

실제로 평범한 오크들은 아무리 힘이 강하고 또 그 힘을 100프로 소화할 활이 있더라도 고작해야 1.5km 정도나 화살을 날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3km를 격하여 발사하고 있는 검은이빨투사단이었다.

활의 재능이 있음은 물론 그만큼의 노력이 뒤따라야 가능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명중률도 좋고 힘도 좋은데 속도가 평범하네.

-그러게. 이렇게 하품 나는 걸 누가 맞아줄까?

화살은 태생적으로 속도가 느리다. 그렇기에 초근접이 아니면 원거리에서는 제황조차도 스킬의 힘으로 보정을 받는다. 속도가 느린 만큼 크고 무거우므로 파괴력은 대구경 화기에 근접한다고 하지만 느린 건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런데 저 오크들은 얼마나 멀리 또 정확히 맞출 수 있느냐만 고민한 것 같다. 뭐 그것만 고민하고 내놓은 해답이 이것이라면 정답이라고 해줄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중형의 몬스터는 절대 잡지 못한다.

물론 그것은 저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저들도 중형의 못스터를 잡으려면 화살에 마나를 실고 목표물까지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쯤은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선행되어야 하는 게 있다.

일단 속도가 받쳐줘야 하지 않겠는가.

“슬슬 지겨워지는군.”

제황은 검은이빨투사단의 공격을 받는 와중에도 슬쩍슬쩍 화살을 날려 꾸준히 오크들을 죽이고 있었다. 단지 이전과 같은 ‘소나기’를 쓰지 않았기에 티나 가지 않을 뿐이다. 활의 좋은 점이 무었인가. 바로 정숙성이다.

그렇지만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헬칸은 제황이 생각하는 것보다 신중한 성격인 것 같다.

그때 헬칸이 갑자기 앞으로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목표는 수석이단심문관이 있는 방향이다. 본격적으로 우두머리끼리 붙으려고 마음먹은 것 같다. 제황이 기다리던 순간이다.

따당! 끼기기깅

그때 수발의 화살이 다시금 철골을 두들겼다.

철골 한쪽이 박살 나며 무너지고 제황이 딛고 있던 철골들의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 남은 건 거의 T 자형으로 아슬아슬하게 남은 하나이고 제황은 그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오래도 버텼네.”

속도가 느릴 뿐이지 파괴력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수천 발의 화살을 맞으면서도 서 있던 게 용하다. 그러나 이제 상관없다. 헬칸이 시선을 돌렸으니 이제 제황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다.

-궁기?

-응?

-슬슬 놀아야지?

-오호호! 그래!

목소리가 참으로 밝다.

-목표는 아까 말한 그곳 방식도 동일해.

-준비완료!

궁기의 말이 끝나자 제황이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간다?

-응!

‘비상하며 춤추는 화살’

풋슝!

한껏 추어올려 하늘을 향해 겨냥한 제황이 시위를 놓았다. 그리고 동시에 작은 몸으로 실체화된 궁기가 화살에 딱 달라붙어 빠른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 제황이 ‘춤추는’ 인첸트로 속도를 최대한 늦췄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궁기만이 할 수 있는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이다.

끝을 모른 채 하늘 높이 뻗어 오르던 화살이 잠시 후 떨어지기 시작했고,

화살을 붙잡은 채 날아오른 궁기는 이내 화살을 놓고 그대로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그녀의 목적지는 바로 검은이빨투사단이었다. 몇몇 오크들이 그녀의 존재를 발견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공중에서 번뜩하고 회전하는 순간 궁기의 몸이 성인의 전투형으로 바뀌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날아내리는 건강미 넘치는 몸을 뽐내며 나타난 궁기의 두 주먹에 붉은 강기가 줄기줄기 맺히기 시작했다. 카녹의 제단에서 9티어마나석을 흡수함으로 이제 궁기는 이전보다 훨씬 오래 강기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과거에 사용하던 몇 가지의 수법 또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취이이익! 막아! 떨어뜨려라!”

거대한 방패들이 촘촘히 모여들기 시작한다.

인간들의 투사무기나 제황과 같은 이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한 오크들이다.

“호호호! 막아보렴! 돼지들아!”

그녀의 두 손으로부터 1미터가량 되는 붉은 발톱 여섯 개가 뽑혀 나왔다.

이전 대현클랜의 파티장에서 선보였던 그 강기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때와 다르다.

그때는 가급적 살육을 피하라는 제황의 당부가 있었기에 최대한 약하게 했다.

“일천년만에 써보는구나!”

‘십육절참살강’

쫘아아아악!

양손에 맺힌 세 개의 발톱을 교차하여 내리긋는 순간 그녀의 양손으로 시작된 강기가 섬전처럼 튀어나가 바닥을 찢어발겼다.

“꾸어어어어억! 꾸어억! 꾸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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