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55화 (155/301)

# 155

방어전-1

“좋지. 어울려주마. 마락스”

“크윽, 예! 로드시여!”

비교적 멀쩡한 오크히어로 하나가 무릎을 꿇으며 우렁차게 외쳤다.

“새롭게 충원된 군단부터 일제 돌격을 시작한다. 카논의 축복을 최대로... 아울러 동족포식을 허용하라.”

“크륵!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드는 오크히어로의 눈가에 비장함이 감돈다.

드디어 본격적인 공성의 시작이다.

뿌우우우...

수십 개의 뿔피리소리와 함께 수십만의 오크들은 진군을 시작했다.

둥...둥...둥...둥

느릿한 북소리와 함께 검은 물결이 천천히 저스틴포인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크들 또한 전투의 흥분감으로 고조되기 시작했다.

“테르다 카녹 녹타... 테르다 카녹 녹타...”

오크제사장들과 오크주술사들의 주술이 발동했다.

위이잉

그들의 손에서 줄기줄기 피어난 녹광이 서서히 그 범위를 넓혀간다.

둥..둥..둥..둥..둥

북소리가 조금씩 빨라지고 그와 함께 오크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카녹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크아악! 카녹을 위하여!”

“카녹 녹타!”

그들은 쓰나미와 같이 저스틴포인트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선두의 선 오크들은 멈추지 못한다. 멈추는 순간 후위의 물결에 짓밟혀 죽는다. 자연스레 목숨을 각오하게 만드는 오크 특유의 진군이 시작되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오크들이 몰려온다!”

“전투배치! 전투배치!”

저스틴포인트 또한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크들의 첫 공격을 무사히 버텨냈기에 사기가 조금 오르기는 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감돌았다. 이들은 이곳의 무기들에 대해 미숙했는데 그 이유는 이곳의 무기들이 짧은 교육만으로 사용 가능한 단순한 화기류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들이 이렇게 버티는 이유는 저스틴포인트 점령 당시 잡아 들인 기간요원들을 통해 기본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저스틴포인트가 막강한 화력의 무기들로 채워진 요새라도 그 운용 주체인 삼천교의 신도들로는 오크들을 상대할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지긋지긋한 오크놈들...”

한 남자신도가 창문을 통해 밀려오는 오크들을 바라보며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들은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배를 탄 동지 정도로는 생각했었다.

아무리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지만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뀌었을 줄이야. 공포를 달래려 눈을 질끈 감고 연신 ‘삼위일신’을 중얼거리던 그가 떨리는 손으로 포켓에서 자동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팔에 꽂자 내부의 주사제가 빠르게 몸에 주입된다.

“하아.”

약물이 주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뇌를 하얗게 물들이는 충만감에 그는 나른하게 풀어진 표정으로 눈을 감았고 잠시 후 맹렬히 고양되는 전투의지를 느끼며 눈을 떴다. 단순히 전투의지 뿐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 중 공포와 관련된 것만 뇌에서 제거된 기분. 이것이 삼천교국에서 전사들에게 나눠주는 마약의 효능다.

중독이나 금단증상 따위는 고려하지 않기에 효과 또한 뛰어나다.

“우리 구주 삼위일신! 영세천국을...”

그는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그가 맡은 30 미리 기관포의 사수 좌석에 올랐다.

그 어떤 것이라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용솟음친다. 그 때 그의 머리 위로 한줄기 십여 개의 빛줄기가 붉은 궤적을 잔상처럼 남기며 날아갔다.

씨아아아앙

날아간 그것이 수십 갈래로 나눠지더니 달려오는 오크들을 덮친다.

“우어억!”

“커억!”

수십 갈래로 나뉘었건만 그 공격 하나하나가 모두 유효타다. 일격에 절명하거나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행동 불능을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땅에 쓰러진 오크는 뒤이어 달려오는 오크들에 짓밟혀 죽어버린다. 효율의 극에 달한 그 공격은 오크들의 물결 곳곳에 떨어지며 오크들을 학살하고 있다.

“삼위일신의 사자가 우리와 함께 한다!”

“와아아아!”

삼천교도들의 기세가 올랐다.

#2

쫘아아악!

사위를 찢으며 날아가는 화살들은 오크들의 근처에 도달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단숨에 수 마리의 오크를 피떡으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화살을 발사하는 제황은 단 한 번의 쉼도 없이 기계처럼 비천궁의 시위를 당겼다. 상태창의 경험치는 쉴 틈 없이 쭉쭉 차오르더니 어느새 한 개의 레벨을 뛰어넘었다. 기쁘기도 하련만 제황은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냉막한 눈으로 다음 목표물을 찾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깜찍하고 귀여운 붉은머리의 꼬마가 다소곳이 앉아 테블릿에 독수리 타법으로 주섬주섬 타이핑을 하고 있다.

“주의...사항...이... 있...습니까. 엔터.”

공들여 완성한 문장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꼬마가 엔터를 누르자 잠시 후 채팅창에 주르륵하고 장문의 대답이 올라왔다.

“제황님에 대한 의심은 일단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몇몇이 의심하는 것 같아 잘 처리 했습니다. 제황님의 이명은 ‘필살’ 로 했으니 차후 혼동하지 않으시길 빕니다. 아 이! 지지배 무슨 타이핑이 이렇게 빨라!”

글을 읽은 꼬마가 짜증난다는 듯 외쳤다. 그러자 한참 화살을 날리던 제황이 화살을 날리는 동작은 그대로 고개만을 돌려 말했다.

“그 필살이라는 거 지구에서는 꽤 퍼진 건데 그냥 써도 되냐고 물어봐. 그리고 미사일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알려달라고도 하고”

그러자 꼬마의 이맛살이 와락 구겨지더니 입이 닷 발이 나온다.

“너무 길어. 끙. 필...살...이라는... 말...은...지구... 아 왜 이렇게 안 써지는 거야. 테블릿이 나빠! 고물! 싸구려!”

움찔거리는 폼이 화면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은 듯한 눈치인데 또 그것이 자신의 애장품 중 하나라는 걸 알기에 그녀는 그것을 애써 눌러 참고는 다시 진땀을 흘리며 타이핑을 시작한다.

그렇게 한참을 고심해서 글을 완성해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이 주르륵 올라오자 궁기는 이전보다 볼이 좀 더 불룩 튀어나온다. 아마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발전이 없는 이 타이핑이라는 걸 저 5호라는 여자는 너무 잘하니 불만이 쌓이는 것이리라. 궁기는 주먹과 몸으로 하는 건 정말 잘하는데 이런 세심한 작업 같은 것은 완전 쥐약이다.

“상관없다네. 네가 하도 매스컴을 피한 탓에 그렇게 크게 알려지지도 않았고 너 납치하려는 소행은 주교가 비밀리에 진행한 거라서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래. 그리고 어차피 얼마 쓰지도 않을 거니 상관없지 않냐고 하는데?”

“뭐, 그렇긴 하지.”

고개를 끄덕인 제황은 다시 고개를 돌려 밀려오는 오크떼를 향해 시선을 맞췄다.

‘폭발하는 소나기’

퍼어엉!

지금 제황은 단 두 가지의 인첸트만을 건 화살을 연달아 쏘고 있었다.

오크 한 마리를 완전히 침묵시키는 데는 조금 부족한 파괴력이지만 지금 제황에게 필요한 것은 물량과 화력의 유지였다.

마나화복율이 받쳐주는 선과 소모하는 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선에서 끊임없이 스킬을 사용하기에 마나양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무한정 발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강화된 그의 신체 능력과 ‘악몽의 군주’ 가 신체 능력을 보정해 주기는 하지만 현재 사용한 화살이 거의 1000발가량 되기에 손가락이 조금씩 아려온다. 그렇지만 그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그리고 지금 제황이 공세를 쏟아붓고 있는 전장에는 수 천마리의 오크들이 죽어 나자빠져 있다. 기계적으로 손을 놀리던 제황이 잠시 멈칫한다. 상당히 강한 개체가 포착되었다.

‘비상하며 춤추는 강기의 화살!’

퍼어어엉!

강기의 화살과 소나기는 후반부에 있는 인첸트이니만큼 소모하는 마나와 반발력이 상당하다. 스킬의 반발력을 몸을 한 바퀴 돌리는 것으로 해소한 제황이 다시금 기계적으로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크라하타!”

다른 오크보다 거의 2배가량 거대한 오크가 제 몸만한 방패를 든 채 달리고 있다. 무려 30밀리 기관포 두 문이 오크의 진격을 막아보려 하지만 그 오크는 그 몸집과 어울리지 않는 유연한 움직임으로 그것들을 적당히 막거나 피해가며 달리는 중이다.

아니 실제로 수십 발의 30밀리 탄을 맞았지만, 그것은 피부를 감싸고 있는 녹광에 의해 튕겨 나가기 바쁘다.

“크아악! 엔드릴오크 3군단의 사천왕 나 타록가에게 이따위 것은 통하지 않는다! 크하하하”

그 오크는 제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두들기며 광소했다.

그러자 타록가라는 오크의 뒤를 따르는 오크들의 눈에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타록가는 그 타고난 힘과 단단함으로 일찍이 오크로드 헬칸님에게도 인정받은 강력한 대전사였다. 비록 머리가 떨어져 군을 지휘하는 오크히어로의 위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 신체 능력까지는 떨어지지 않는다.

“내 저 성문을 뚫고···.”

퍼어엉!

저스틴포인트의 입구를 거대한 글레이브로 가리키던 타록가가 순간 말을 멈췄다. 몸을 부르르 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본다.

그곳에는 족히 오크한마리는 드나들 법한 터널이 개통되어 있었다. 고개를 좀 더 숙이니 자신의 가슴을 통해 뒤가 보이는 신기한 경험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본 마지막 장면이 되었다. 가슴이 뚫려 척추가 날아간 몸이 더 서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황망한 표정으로 타록가를 바라보던 오크들의 머리 위로 수십 줄기의 빛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곧 타록가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신인 카녹의 품으로 가버렸다.

“흠, 검은이빨투사단의 위치는 어디지?”

옥좌에서 일어나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헬칸이 말했다.

“크륵, 예비대로 후위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크륵”

부하의 보고에 헬칸은 붉은 빛줄기가 쉴 틈 없이 쏟아져 내려오는 저스틴포인트 한 곳을 죽일 듯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검은이빨투사단에 중갑방패 군단을 하나를 붙여 진군시켜라. 목표는 저곳이다. 격살하든 못하든 상관없으니 최대한 공격을 늦추게 하도록···. 그리고...”

말을 잠시 끊은 헬칸이 입가를 사납게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아투르칸들을 준비시켜라..내가 출진한다.”

“크르륵! 옛! 알겠습니다.”

헬칸의 명을 받은 그 오크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얼마 후 전장에는 거대한 늑대들을 올라탄 수천의 오크라이더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섰다. 날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특화된 평범한 오크라이더들과 다르게 늑대며 기수며 중갑을 갖춰입은 그 오크들의 온몸은 움직이는 무기고로 보일 정도로 수 많은 무기들이 거치되어 있었다. 특히 한쪽에 끼워놓은 묵직한 글레이브는 일반 오크는 감히 들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했다.

쿵...쿵...쿵...

그때 그들의 사이를 뚫 한 기의 오크라이더가 나타났다. 다른 오크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그 오크는 다른 늑대들보다 월등히 거대한 늑대의 등에 타고 있었다. 그 오크는 다른 오크들과는 다르게 별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단지 월등히 거대한 글레이브를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그 글레이브는 여타 글레이브들과 다르게 하나의 예술품과 같이 생겼고 겉으로는 은은한 초록빛이 감돌고 있었다.

오크로드의 상징과도 같은 엔드릴오크족 최강의 무기 ‘엔드릴’이 그 모습을 전장에 드러냈다.

“크르륵, 가자.”

뒤를 슥 돌아본 헬칸이 산보라도 나온 듯 가볍게 한마디 한 후 늑대의 옆구리를 찼다.

헬칸을 등에 태운 그 오크는 마치 주인을 닮은 듯 거만하게 고개를 한 번 흔든 후 천천히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엔드릴오크들이 자랑하는 최강의 기병군단인 아투르칸들이 일제히 무기를 머리 위로 치켜 든 뒤 헬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각 모습을 포착한 관제사의 숨가쁜 외침이 지휘부를 울리고 있다.

“아투르칸들이 발진했습니다.”

그 한마디에 지휘부 모두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들도 엘어스의 주민이고 엔드릴오크들과 교류가 있었기에 아투르칸들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적의 최정예 부대 아투르칸들이 출현했다.

아투르칸들의 숫자는 딱 1만이다.

부족의 숫자가 지금보다 적었을 때도 1만을 유지했던 아투르칸은 지금도 1만을 유지하고 있는 엔드릴 오크들의 정예들이다.

1만의 중갑오크라이더

인간들로 치면 대군이지만 오크들의 군세로 치면 그다지 큰 편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는 저 아투르칸들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하나하나가 인간으로 치면 모두 5성헌터급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마나를 사용할 줄 알며 그것을 외부로 표출하여 유형화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오크들이라는 뜻.

거기에 오크들 전통의 기승전투술에 달인이며 1만이 마치 한 몸과 같이 움직이도록 오랫동안 단련된 역전의 전사들로만 이루어졌다.

“선두는... 헬칸! 오크로드입니다!”

아투르칸들의 출현소식에도 가만히 앉아있던 소피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미사일운용센터에 알린다. 전 미사일포트를 가동하라!”

“미사일운용센터! 전 미사일포트 가동!”

미사일포트를 운용하는 기간요원들이 빠르게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저스틴포인트 곳곳에 있던 미사일포트들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지휘부 내에 붉은 등이 켜졌다. 그것은 바로 미사일포트가 가동완료 되었다는 뜻이다.

“미사일포트 준비되었습니다!”

미사일포트가 가동을 시작하자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인 후 스크린에 나타난 일만의 아투르칸과 그 선두에 선 헬칸을 노려봤다. 지금 오크군단의 쓰나미는 저스틴포인트의 화력과 백중세를 이루고 있었다.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건 ‘필살’ 의 압도적인 공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7성 헌터라고 삼천교국에 알려졌지만 자신은 절대 흉내조차 내지 못할 힘으로 오크들을 물리치는 그가 없었다면 이렇게 절호의 순간에 미사일을 사용할 수도 없었으리라.

처음에는 강자에 대한 시기심이 일기는 했지만, 그것은 이내 금세 사그라들었다. 지금 그녀의 마음 한켠에는 ‘필살’ 의 대한 소유욕이 자리해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필살이 아니다.

“모조리 쏟아부어 헬칸만 잡아내도 우리의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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