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52화 (152/301)

# 152

학살자-1

주교는 현재 상황에 대해 쿠켈에게 말했다.

물론 교내의 일들을 조목조목 가르쳐 줄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의 난관을 이겨내려면 쿠켈의 협조가 필요했다. 엔드릴오크와 삼천교가 힘을 합칠 수 있었던 가장 큰 접점이 쿠켈이었으니까.

“크륵,제가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네.”

“이 일을 꾸밀 만한 단체가 어디입니까.”

“십중팔구 무적성입니다.”

주교의 말에 쿠켈이 탁자를 톡톡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강합니까?”

“만약 후일 지구로 건너가신다면 오크의 앞을 가로막는 가장 큰 세력 중 하나일 겁니다.”

이 근방의 게이트는 거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있다.

“주교님 말씀대로 그들이 이번 일을 공작했다면 지금의 상황 또한 그들이 원하는 시나리오일 겁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게 뭔지 생각해 봅시다. 놈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일 테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인간인 당신은 저희보다 많은 정보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주교가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 삼천교와 엔드릴 오크가 영원히 결별하거나 혹은 서로 상잔하도록 하는 것이겠지요.”

답은 간단하다. 그렇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것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그것은 우리 둘이 만남으로 해결되었군요. 제가 헬칸님을 설득할 테니···.”

쿠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주교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쿠켈은 헬칸의 심복이고 자신은 저스틴포인트의 지배자다. 적들이 자신들을 이간질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속아 줄 위인들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큰 고비는 넘겼다고 할 수 있다.

“제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오, 어떤?”

주교가 반색하며 말했다. 그가 아는 쿠켈은 천재 중의 천재였다. 오크 중에서 배척받아 마땅한 하프오크지만 그 머리 하나만으로 헬칸의 오른팔이 된 이가 쿠켈이다.

“제가 헬칸님께 간언하여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단을 따로 편성하겠습니다. 최대한 제 심복들로 구성하여 삼천교와 평화적으로 해결되도록 해야지요. 주교님께서 해주셔야 할 건 이번 일을 꾸민 놈들에 대한 증거입니다. 진짜 찾으시든지 만드시든지 상관은 없습니다.”

“음, 수석이단심문관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저희 쪽에서도 증거를 만들지요. 정 원하면 이번 원정에서 합류한 오크 사오십 정도 던져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극적인 화해를 하면 이번 갈등을 꾸민 놈들이 뭔가 움직임이 있을 겁니다. 사방에 눈과 귀를 열고 있으면 분명 걸려들 겁니다. 그때 삼천교에서 놈들을 소탕하는 겁니다. 그 때 저희 오크들은 이 근방을 완전히 감싸겠습니다. 아무리 날고 기는 놈들이라도 빠져나갈 수 없게 말입니다.”

“좋습니다.”

주교는 지금 자신의 맞은편에 있는 게 헬칸의 심복인 쿠켈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한결 놓인다.

그러나, 그 둘 또한 간과한 것이 있었다.

무적성은 그리 허술하지 않았다.

“이래서 머리 좋은 애들은 골치 아프다니까요.”

“음?”

“취익”

허공중에서 울린 낯선 이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둘이 이승에서 들은 마지막 목소리가 되었다.

츠컥... 푹...

“으읍!”

“커억!”

갑자기 주교와 쿠켈이 동시에 심장 부위를 움켜쥐었다.

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지만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붙잡고 있는 것처럼 온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다. 미증유의 기운을 둘을 속박하고 있다.

터턱...턱

둘이 동시에 테이블에 머리를 박자 둘의 뒤로 두 명의 인영이 일렁거리며 나타났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 1호”

“그러게 말입니다. 2호”

둘은 죽은 둘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무장버스의 창밖을 살폈다.

“특급밀령 5인이 전원 동원된 이유가 있었군요.”

“네. 저도 정보탐색에 특화된 5호의 이야기가 없었으면 지나칠 뻔 했죠.”

곤충의 키틴질처럼 번들거리는 검은색 전신 슈트를 입은 둘은 입으로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빠르게 흔적을 지우고 있다.

“이걸 어떻게 스토리를 짜지요?”

1호라고 불린 이가 주교의 머리를 탁치며 말했다.

“글쎄, 이 늙은 놈이 오크 녀석의 몸을 노린 스토리는 어떨까요? 이 늙은 놈 알아본 바로는 암컷수컷 암가리는 잡식성이던데.”

“농담은 적당히 하죠. 그런 허황된 스토리를 누가 믿겠습니까. 일단 이 주교는 평범한 3성 헌터로 알려져 있으니 권총을 사용한 것으로 하죠.”

“음. 이 오크 놈은 정보가 거의 없는데 잠시 몸 좀 살펴봐야겠군요.”

1호가 쓰러진 오크의 몸을 세심하게 살핀다. 옷을 들추고 근육의 한올 한올을 매만지던 그가 손을 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에 특정 무기를 사용하는 흔적도 없고 상처도 별로 없군요. 오크답지 않게 머리를 쓰는 타입인 것 같네요. 골치 아프군요. 대충 지니고 있던 단검으로 반격하던 것으로 꾸미겠습니다.”

“좋습니다. 시작하지요.”

마침내 합의점을 도출한 둘이 이내 현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교는 한 손을 가슴에 넣은 채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권총을 움켜쥐게 만들고 오크는 손에 호신용 단검을 쥐여준다.

“사후 경직을 생각해야 하니, 이제 슬슬 시작하죠.”

“그러죠. 시작은 제가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2호가 손바닥을 슬그머니 쥐었다. 그러자 주교의 시체가 덜컹거리며 일어나 손에 든 총을 쭉 내민다. 동시에 쿠켈이 오크제 단검으로 주교의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

“스톱!”

2호의 말에 둘의 행동이 시간을 정지한 것처럼 멈췄다.

“현장은 잘 만들었고, 이제 터뜨려 볼까요?”

“그러죠. 그가 잘해주고 있으니 어쩌면 고립된 이들을 더 빨리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죠.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후 무장 버스 안에서 단발마의 외침과 함께 권총소리가 울리자 버스를 호위하고 있던 오크라이더들은 황급히 버스 내부로 진입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서 본 건 쓰러져 있는 인간과 오크의 시체, 특히 그들의 주인인 쿠켈의 가슴에는 동그란 총알구멍이 뚫려 있다. 상황을 확인한 오크들은 분노에 차 무기를 꺼내 들었고 무장버스 주변에 서 있던 인간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경보를 울려 사람들이 저스틴포인트에서 쏟아져 나오자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쿠켈의 시체도 챙기지 못한 채 늑대에 올라타 도망치기 시작했다.

#2

철컥..철컥..

십이사도의 호위를 받으며 소피아가 무장 버스를 걸어 올라갔다.

무장버스 위로 올라선 그녀는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채 엎드려 있는 주교와 오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냉랭한 그녀의 목소리에 주교의 비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약 1시간 전 비밀경비초소로부터 올라온 보고를 받으신 주교님께서는...”

“보고?”

“예. 현재 저스틴포인트 외곽에 오크로드 헬칸과 그 군세가...”

비서는 소피아에게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낱낱이 고했다.

“그러니까. 오크들의 사자가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습을 받아 이 꼴이 되었다는 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비서의 말에 소피아가 오크의 머리카락을 쥐어 얼굴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흥, 더러운 피가 섞인 하프군요. 후. 주교는 생명을 걸고 오크들의 결백을 보증했으니 자업자득입니다. 이단을 믿더니 이꼴이 되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 예! 맞습니다.”

비서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쩔 수 없군요. 주교가 죽었으니 이제부터 이 저스틴포인트는 제가 지휘합니다.”

“옙!”

주교가 없어진 지금 저스틴포인트에서 가장 지휘가 높은 건 그녀뿐이다.

“일단 이 냄새 나는 시체들은 고이 치우세요. 나중에 교단으로 가져가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오크들이 본색을 드러낸 거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아마 저들은 저스틴포인트의 최고 지휘자를 암살하면 저스틴포인트가 혼란에 빠질 거로 생각했겠지만, 제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은 생각 못했을 겁니다.”

소피아의 천사 같은 미소에 처음으로 색다른 표정이 그어졌다. 그 표정은 마치 뭔가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것 같다. 아마 그것은 앞으로 대지를 적실 피에 대한 갈망이리라.

“저스틴포인트에 최고비상경계령을 발령합니다. 지금 당장 오크들이 쳐들어온다는 가정하에 모든 전투 인원을 배치시키세요.”

“알겠습니다!”

비서가 헐레벌떡 뛰어나가자 소피아는 냉소 어린 눈으로 주교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삼위일신께서는 더러운 이교도 따위들과 소통한 죄인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나 또한 그것을 용서할 생각은 없습니다. 안드레!”

“네! 마스터!”

소피아의 말에 그녀의 뒤에 마네킨처럼 시립해 있던 십이사도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주교는 오크들과 내통하여 삼천교국 내에서 테러를 자행했다. 증거를 찾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린 이번 테러를 일으킨 오크들을 내일 아침 삼위일신의 이름 아래 모조리 처단합니다.”

#3

-아, 귀 간지러워. 누가 내 이야기 하나.

궁기와 함께 하늘을 날던 제황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귀지 따위가 나올 리는 없지만, 제황은 그것을 머리 위쪽에 있던 깃털에 쓱쓱 문질렀다.

-악! 더러워!

-안 나왔어!

-그럼 왜 닦는 거야!

-혹시나 해서···.

-에잇! 에잇! 확 떨어뜨린다!

-깃털 하나만 뽑을게.

묻기는 하지만 이미 제황은 깃털 하나를 뽑아들었다. 그러더니 그 끝으로 귀를 휘적휘적 후비기 시작했다.

-아 시원하다.

-이이잇!

불만 어린 궁기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넘기며 제황은 멀리 지평선 끝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거대한 성벽을 응시했다. 한때는 제황에게 안락한 보금자리였던 그곳, 그러나 지금은 삼천교가 점령하고 있는 저스틴포인트가 보인다. 그 때 궁기가 제황에게 말했다.

-제황? 뭔가 이상해.

-무슨 말이야.

-남서쪽에 감지되는 오크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아.

-궁기안으로 보여줘.

궁기가 제황의 궁기안으로 그녀가 감지한 것들을 공유하기 시작하자 동시에 제황의 궁기안에 엄청난 양의 붉은 점이 무수하게 찍히기 시작했다.

-정말 뭔가 이상하군.

저스틴포인트가 함락당했으니 주변에 오크들이 있을 거라는 건 예상하였다. 문제는 오크들의 움직임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전쟁을 준비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들킬 수 있으니 슬슬, 내려가자. 정보가 부족해.

-그래. 알았어.

제황의 말에 궁기가 빠르게 고도를 낮췄다.

타탁

땅에 내려선 제황은  주변을 꼼꼼히 살핀 후 무한고에서 테블릿을 꺼냈다.

무전기를 사용하고 싶지만 저스틴포인트의 통신시설은 거의 모든 무전을 감청 가능했기에

무적성에서는 저스틴포인트가 사용하는 주파수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통신방법을 제공했다.

앱을 활성화하자 잠시 후 태블릿에 채팅방 하나가 나타났다.

[1호- 채팅방에 입장하셨습니다.]

[5호- 채팅방에 입장하셨습니다.]

“적지에서 채팅이라니...”

게다가 채팅 상대는 밀령 최대의 비밀무기 특급밀령들이다.

웃기는 일이지만 이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니 따를 수밖에···.

1호:솔로원?

S1:네. 솔로원입니다.

1호:오!!! 딱 맞춰 오셨군요!

S1:네? 무슨···.

제황은 1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5호:1호님 솔로원은 아직 현재 상황에 대해 잘 모를 겁니다.

1호:아. 그런가요. 그럼 5호님이 좀 수고해 주시죠. 난 설명은 소질이 없어서...

5호-그러죠. 솔로원 지금 상황에 관해 설명할게요.

S1-부탁드립니다.

5호- 네. 그러니까 일이 어떻게 된 거냐 하면···.

5호는 제황에게 차근차근 현 상황에 대해 브리핑해주기 시작했다. 잠시 후 브리핑을 모두 들은 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오크들의 상태가 왜 저런지 이해가 간 것이다.

-카녹의 제단에 장난친 게 효과가 컸나 보네?

-그러게. 역시 광신도들이라서 그런가.

솔직히 지금 상황이 그다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제황이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단순했다. 오크 쪽에서는 카녹의 제단을 삼천교 쪽에서는 성지 하나에 장난을 친 것뿐이다. 물론 그 장난이 꽤 지독해서 카녹의 제단에서는 대제사장이 진군을 시작했고, 삼천교 쪽에서는 무려 수석이단심문관이 직접행차를 했다지만 그 사이에 있었던 자잘한 정치적 사정들을 모르는 제황이었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오크들의 우두머리인 오크로드를 저격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물론 성공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냥 둘 사이를 오가며 꾸준히 테러를 저지를 생각이었는데 특급밀령들의 활약으로 그럴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1호: 사실 S1을 이렇게 반기는 건 돌발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S1: 말씀하시죠.

1호: 우리가 구조해야 할 이들이 모여있는 대피시설 안으로 잠입한 3호와 4호의 전언에 의하면 갇힌 이들이 오랜 지하 생활로 모두 몸이 약해졌다고 합니다. 식량도 얼마 남지 않아 만약 저 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 이들을 탈출시키기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S1: 그 말씀은···.

1호: 둘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면 곧바로 탈출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S1: 제가 할 일은 뭡니까.

1호: 탈출 시 삼천교와 오크 둘 모두 정신을 못 차리도록 해주시면 됩니다.

-미친 것 아니야?

궁기가 화난 듯 말했다. 지금 1호가 말하는 것은 아군 하나 없는 적진에서 홀로 움직이라는 뜻과 같다. 어찌 보면 죽으라고 등 떠미는 것과 같은 부탁... 그러나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제황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S1: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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