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51화 (151/301)

# 151

광신도들-2

그날 밤 저스틴포인트에서는 수석이단심문관 소피아를 맞이하는 환영연을 열었다. 주교는 정말 최선을 다해 소피아를 대접하려 노력했다. 환영연이 끝난 후 성대한 특별기도회도 마련했다. 그뿐이랴. 양성애자라고 알려진 그녀의 식성에 맞춰 선별하고 선별한 남녀 신천인들을 그녀의 숙소에 대기시키고 그녀가 먹고 마실 것들을 그동안 아껴왔던 기지 내 사치품들로 가득 채웠다.

소피아를 환영하는 특별기도회 내내 그녀의 앞에서 열심히 재롱잔치를 한 주교는 그녀가 흐뭇한 표정으로 침실로 사라진 뒤에야 자신의 집무실에서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느라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일단 그의 지상과제는 소피아를 얼른 내보내는 것이었다. 다른 오크들은 몰라도 지휘관 오크 즉 우르크하이나 오크히어로들은 저스틴포인트로 자주 왕래를 한다. 그렇기에 소피아와 어떻게든 마주치게 될 터인데 저들은 건들지만 않으면 가만히 있지만, 만약 삼위일신으로 개종을 강요하거나 카녹을 욕하기라도 한다면 가만히 있을 이들이 아니다.

“게이트 경비 인원을 차출하자는 말씀입니까?”

“그래. 어차피 저쪽에서 폐쇄한 마당 아닌가. 이때까지 잠잠했는데 절반 정도만 줄여야겠네.”

“그건 안됩니다. 물론 지금껏 조용하기는 했지만, 지구에서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 안에 폐쇄했던 게이트를 복구할 수 있습니다.”

주교의 말을 들은 여자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나도 알아.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를 두자는 걸세. 만약 저 미친년이 오크들을 개종시키겠다고 날뛰다가 불상사가 일어나는 꼴을 바라지는 않겠지.”

“그, 그건 그렇지만···.”

“일부만 차출하자는 거야. 물론 지구로 통하는 게이트를 빼앗기는 것도 최악의 가정이기는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우환덩어리를 먼저 처리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미헌터사무국의 정보라인에서도 딱히 새로운 동향이 나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모두 일을 진행하지.”

“알겠습니다. 삼위일신의 영광이...”

수뇌부들이 집무실을 나가자 주교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주일만 버티면 된다.”

일주일 뒤면 대주교님이 보내주신 지원이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온다면 아무리 소피아라도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은 오크의 힘이 더 필요하다. 아니 앞으로 더욱 많이 필요하게 될 거야.”

어찌 보면 오크들은 단순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정복과 전투다. 그리고 정복할 땅은 엘어스건 다크어스건 넘치고도 넘친다.

물론 후일 헬칸이 오크로드를 뛰어넘어 오크킹이 되고 수많은 오크로드들을 거느리게 된다면 그때는 오크들이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지금은 오크들과의 연합이 있어야 지구와의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이제 좀 쉬어 볼까.”

슬슬 밀려오는 피곤함에 잘 준비를 하는 주교였다. 오늘은 매일 끼고 자던 신천인 또한 물려 버렸다. 내일을 위해서 최대한 쓸데없는 곳에 정력을 소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잠자리에 들기 직전 울린 긴급을 알리는 호출이 그의 노곤해져 오는 정신을 깨워버렸다.

-주교님 급보입니다!

-무슨 일인가?

-오크로드가 저스틴포인트로 진군 중입니다!

-음?

오크로드라는 말에 주교의 눈이 번쩍 커졌다. 오크로드가 왜? 지금 한창 이 근방을 순회하며 정복 활동 중이지 않았던가.

-무슨 일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군세의 크기가 대단합니다.

-으음. 숫자는?

-10만이 넘는답니다.

-크음.

오크로드 헬칸은 가급적 저스틴포인트에는 오지 않는 양반이었다. 그를 위해 저스틴포인트의 건물 하나를 따로 빼서 가장 화려하고 편안하게 꾸미려 했지만 헬칸은 그것을 거절했다.

자신의 무리와 함께 야전에서 먹고 자는 것을 즐긴다. 편안함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무리가 더욱 충성심으로 자신을 따른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제황적 기질을 가진 것이 바로 오크로드 헬칸이었다.

그런데 그런 오크로드 헬칸이 왜 이런 오밤중에 저스틴포인트로 찾아온단 말인가.

그런 대군세를 이끌고...

-소피아는!

주교는 가장 먼저 암덩어리의 위치를 챙겼다.

-수석이단심문관님께서는 신천인들과 함께 침소에 드셨습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군. 오크로드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 남서쪽 10킬로미터 방향에 있는 비밀감시초소를 지나쳤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대체 왜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어쩌면 진짜로 헬칸이?

-난 헬칸을 맞이할 준비를 하겠다.

-예!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주교는 침중한 얼굴로 재차 말했다.

-혹시 모르니 지휘부는 지금부터 경계 3에 들어간다. 최대한 수석이단심문관이 눈치 못 채도록 해야 하니 만전을 가하도록

-경계 3이라면... 알겠습니다.

경계 3이라는 것은 요새 외부에 강력한 적이 나타났을 경우를 대비한 준비단계를 말한다.

그리고 지금 상정된 강력한 적은 바로 오크로드 헬칸이다.

‘만약 헬칸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그동안 그가 힘쓴 일 중 하나가 저스틴포인트의 망가진 방어체계를 다시 복구하는 것이었다. 저스틴포인트가 수십만 오크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버텼던 이유는 바로 저스틴포인트 내에 있는 갖가지 최신방어시설들 때문이었다.

특히 저번 공격에서 온전히 노획한 지대지미사일포트와 수십 발의 대몬스터용 클러스터탄, 그리고 전투드론들이라면 아무리 대군세라도...

‘최악의 경우 헬칸을 죽이고 우리가 새로운 오크로드를 옹립해야 할 수도 있다.’

정말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것이지만 주교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아무리 오크들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최악의 상황이 되면 자신은 삼천교를 택해야 한다.

“일단 그리되지 않기를 바라야겠지. 삼위일신이시여.”

짧은 기도를 끝마친 주교가 몸에 두를 벨벳과 예복을 갖춰 입은 채 문밖을 나섰다.

대체 뭐에 열이 받았는지 저스틴포인트까지 달려온 오크로드 헬칸을 맞이하기 위해 말이다.

#2

“멈추라 전해라!”

“멈춰라!”

밤길을 따라 들판을 가득 채우고 걷던 오크들이 자리에 멈춰섰다.

아무리 야행성의 오크라지만 며칠간 계속된 행군으로 인해 많이 지친 기색이 보인다.

“쿠룩, 로드시여! 숙영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크히어로의 간언에 헬칸이 고삐를 잡아당겨 타고 있던 거대늑대의 걸음을 늦췄다.

“그보다 군령들은?”

“근방의 모든 오크 군막에 전쟁준비의 군령들을 보낸 상태입니다. 준비가 끝나는 즉시 출진할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군세는 어디쯤 왔을까?”

“어제 따라붙은 전령에 따르면 이틀 거리일 겁니다.”

오크히어로의 말에 헬칸은 생각에 잠겼다. 그때 그의 곁으로 쿠켈이 다가와 말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숙영한 뒤 내일 아침 가시지요. 인간들이 좋지 못한 시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퍽!

그 말이 나옴과 동시에 헬칸의 발이 쿠켈을 걷어찼다.

헬칸의 행동에 그의 주변에 있던 오크히어로들이 모두 놀라 헬칸을 바라봤다. 쿠켈은 헬칸의 오른팔과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쿠루룩! 우리가 어째서 신성한 카녹의 제단을 더럽힌 인간들의 눈치를 봐야 한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취익.”

서둘러 무릎걸음으로 기어온 쿠켈이 고개를 조아린다.

“취익! 제장들은 들으라! 군세를 엄중히 다스리고 군율을 어기는 오크는 지위를 막론하고 목을 칠 것이다! 아울러 이번에 새롭게 하나된 오크들은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오크히어로들이 우렁차게 복창을 한 뒤 자신의 군단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헬칸이 쿠켈에게 넌지시 말했다.

“아프냐?”

“안 아프게 차셔서 괜찮습니다.”

“넌 내가 네게 왜 그러는지 알 것이다.”

“예.”

쿠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군세를 이끌고 저스틴포인트로 가고 있지만 그의 왕인 헬칸은 인간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물론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분노했었다. 아니 분노를 과장해야 했다. 그 이유는 소식을 가져온 전령과 수많은 오크히어로들이 곁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제단이 더럽혀졌다는 것에 대제사장이 꼭지가 돌아 군세를 이끌고 온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빨리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삼천교와 오크들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골이 생길 수도 있었다. 아직 오크에게는 우호적인 인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렇게 대군세를 이끌고 가시는 것 아닙니까. 인간들에게 반항할 여지를 주지 않고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지.”

헬칸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에 진짜 삼천교가 관련되었는가 아닌가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수십만의 엔드릴 오크들을 다스리는 오크로드다. 불행하게도 카녹의 제단이 더럽혀진 소식은 퍼진 상태.

가장 중요한 건 이 일의 범인이 인간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일반 오크들의 처지에서 보면 그놈이 그놈인 상황. 그러니 삼천교가 있는 저스틴포인트로 가서 주교에게 적당한 피가 포함된 사과와 재발 방지 그리고 보상을 얻어내야 한다.

“이 짓도 못 해 먹겠군.”

“크르륵, 현명하신 헬칸이시여. 카녹께서는 헬칸님의 고초를 아실 겁니다.”

“당연하지. 만약 알아주시지 않는다면 나중에 전사의 홀에 갔을 때 바닥에 누워 땡깡이라도 부릴 거다.”

“크르륵”

헬칸의 익살에 쿠켈은 크게 웃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키득거릴 뿐이다.

“자아, 쿠켈. 네가 먼저 출발해라. 주교 놈도 생각이 있다면 거절하지는 못하겠지.”

“알겠습니다. 위대한 오크로드시여.”

#2

쿠켈은 자신의 심복인 오크들만을 이끌고 저스틴포인트로 먼저 출발했다.

오크라이더와 함께 움직였기에 도착은 금방이다. 곧 멀리 저스틴포인트의 웅장한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쿠켈은 걸음을 멈췄다. 더 나아갈 필요가 없이 저스틴포인트의 문이 열리며 거대한 무장버스와 함께 일단의 무리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음, 역시 빠르군.”

쿠켈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만한 군세가 움직였는데 삼천교에서 모를 수 없다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늑대에서 내려선 쿠켈이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을 마중 나온 이를 보고는 놀랐다.

자신의 신분이 오크로드의 오른팔이기는 하지만 주교 정도 되는 이가 직접 자신을 마중하러 나왔을 줄은 몰랐다. 쿠켈은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주교는 머리나 무척 뛰어난 인간이니 그와 이번 일을 상의하는 게 가장 빠를 것이다.

저스틴포인트의 지배자인 주교가 먼저 마중을 나와 줬으니 쿠켈 자신도 정중히 나가는 게 옳다.

“크륵, 카녹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쿠켈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긴장한 빛을 감추고 있던 주교의 얼굴에 안도가 스쳤다. 쿠켈이 먼저 왔다는 건 그것이 어떤 일이든 간에 대화의 여지는 있다는 뜻이니까.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둘이 서로 정중히 인사를 했다. 놀라운 것은 쿠켈이 인간의 언어에 아주 능숙하다는 것이다. 오크의 구강구조는 인간의 언어를 따라 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쿠켈은 그것을 무척이나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쿠켈이 일반적인 오크가 아닌 하프오크이기 때문이다.

“오르시지요.”

“예.”

주교는 쿠켈을 무장버스 안으로 안내했다. 내부가 매우 고급스럽게 꾸며진 무장버스에 마주앉자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 쿠켈의 말이 끝나고...

“...렇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함입니다!”

주교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도 삼천교가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 중입니다.”

“흠흠,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아닙니다. 그보다 헬칸님의 입장이 곤란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까놓고 말씀드리면 헬칸님과 저는 인간에 대한 무조건 적인 배척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부족의 원로 오크들은 저희와 생각이 다릅니다. 이번 사건은 그들의 생각과 명분에 거대한 힘을 실어줘 버린 것이지요.”

“그렇지만 오크로드는 헬칸님 아니십니까.”

주교가 말했다. 그가 알기로 오크들은 철저한 상명하복이라고 알고 있었다.

아무리 원로 오크들이 경험과 지식을 통해 존경을 받는다 해도 헬칸이 한마디 하면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맞습니다. 그렇지만 헬칸님께서는 과거의 오크로드들과 같은 전철을 밟길 원하지 않으시죠. 힘만으로는 왕국을 건설할 수 없습니다.”

“음. 그렇군요.”

주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어느 정도 헬칸의 성격을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오크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힘을 내세우기보다는 여우와 같은 모습도 보여주는 헬칸에 대해 탄복과 함께 두려움도 함께 느꼈다.

차후 그가 삼천교를 뛰어넘을 무력을 지니게 된다면 지금의 평행선이 달라질 수도 있다.

“사실 제가 이렇게 나왔던 이유는...”

주교는 사심없이 쿠켈에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쿠켈의 얼굴이 굳어갔다.

“음, 그런 일이...”

“예. 저 또한 무척 난처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쿠켈님의 말씀을 들으니 누군가 엔드릴 오크와 우리 삼천교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공교롭게도 비슷한 성격의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눈 둘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누군가가 둘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굳이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 생각에는 지구에서 슬슬 저희 삼천교를 견제하려는 속셈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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