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50화 (150/301)

# 150

광신도들-1

“권목사, 진행상황은?”

“앞으로 넉넉잡아 일주일 뒤면 대피시설로 이어지는 식수라인에 도달할 것입니다. 설계도가 없어 하나하나 짚으며 내려가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좋아. 그대로 진행하게. 놈들이 버티지 못하고 튀어나오면 후일 지구에서 탈환하러 오늘 놈들에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야. 서둘러서는 안돼. 이 저스틴포인트는 우리 교국의 지구 공략 전진기지가 될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삼천교국의 주교(主敎)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말미에 앉아 있던 화려한 방어구의 투박스럽게 생긴 여자가 입을 열었다.

“주교님. 전사들에게 지급할 약이 부족하여 신도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주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거야 신도들이 약에 취해서 자꾸 오크들과 시비가 벌어지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 기사단에 지급할 약들까지 도난당하는 게 문제입니다.”

약이 도난당한다는 말에 주교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말하는 약이라는 건 마약을 말하는 것이었다. 삼천교국이 용맹한 군세를 이룰 수 있는 요인 중 하나가 마약의 사용이었는데 이곳에 주둔하게 되며 마약의 양을 최대한으로 줄였다. 그 부작용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다.

“으음, 어쩔 수 없다. 약을 늘릴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이 본보기로 신도들에게 신벌을 내려야겠군.”

주교의 말에 여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여자의 얼굴에는 불만이 보인다.

“대신 본단에서 보급받는 ‘신천인’들을 더 많은 신도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신천인’ 이라는 것은 일종의 성노였다. 보통 배교하고 도망치다 잡힌 이들 중 용모가 출중한 남자나 여자를 신천인이라는 이름으로 성노를 삼는데 주교의 말대로 그것을 신도들에게까지 확대하면 잠시나마 불만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

주교가 화제를 돌릴 겸 말했다.

“그건 그렇고, 지구에서의 작전은?”

그의 말에 회의실 내에 있던 이들 중 붉은색의 화려한 성직복을 입은 이가 답했다.

“전멸로 보는 게 합당하리라 봅니다. 캐롤라인 사제가 속해 있던 미헌터사무국에 있는 비밀정보라인이 보고해 왔습니다. 또한 천군천사들은 저들의 손에 들어간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했습니다.  3기의 천군천사는 무적성에서 입수했을 거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무적성이라...”

주교가 이를 갈았다. 삼천교국에 있어서 무적성은 철천지원수와 같다. 오랜 기간 음지와 양지를 오가며 삼천교국을 가장 괴롭힌 건 역시 무적성이었으니까. 이번 작전의 실패도 무적성이 관련되었다는 선보고는 이미 받았다.

“그리고...”

“그리고?”

“무적성의 정보라인이 잘려나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무적성에 정보라인을 심는 건 거의 수십 년의 공작으로 이뤄낸 것이었다.

“후우, 열기의 천군천사를 동원했는데도 성공은 고사하고 실패. 천군천사는 포획당하고 가장 중요한 정보라인 하나가 잘렸다라... 대주교님을 보고할 면목이 없군.”

그의 혼잣말에 회의실 내에 있던 이들의 입이 모두 다물어졌다. 요즘 가장 화제가 되는 6성헌터를 납치하는 공작이 실패한 것도 문제지만 열기의 천군천사가 투입하고서도 실패했다. 게다가 무적성의 정보라인까지 잘린마당.  누군가가 책임지고 신벌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서로의 눈치만을 바라볼 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러자 눈치만 보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문을 열고 들어온 이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노호성을 내질렀다.

“누구냐! 감히 신성한 교구 회의를 방해하다니!”

그러자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몸을 움찔거리더니 이내 자리에 고개를 박고 떨리는 음색으로 말했다.

“본, 본국에서의 지급입니다. 제 25성지가 오크들에 의해 침탈당해 주둔 중이던 이단심문기사단이 공격당했습니다. 그리고 수색대에 의하면 성지를 침범한 오크들은 엔드릴 오크라고...”

“뭐라?!”

그의 말에 주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단심문 기사단들이 당한 것도 큰일이지만, 그 범인에 엔드릴오크라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지금 저스틴포인트에 있는 대부분의 군세는 엔드릴 오크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과의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하지 않았던가. 또한 이 회의장 내에 있는 이들은 이번 엔드릴 오크들과의 합동작전을 통해 삼천교국 내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인물들이었다.

오크와 갈등 관계에 선다면 가장 먼저 내쳐질 건 이들인 것이다.

“확실한가!”

주교가 재차 물었다.

“예.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삼십여 명의 상급전사들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수색대가 확인한 결과 엔드릴 오크 고유의 심볼이 새겨진 무기 한 점을 어렵사리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크으...”

엔드릴 오크의 무기라는 말에 주교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오크들은 자신의 무기를 소중히 한다. 과거 조악스러운 제련술로 인해 무기가 귀한 시절이 있었고 그 때문에 오크들은 자신의 애병을 몸에서 함부로 떼놓지 않았다. 전장에서 동료의 몸은 뜯어먹을지언정 무기는 소중히 거둬 다음 세대 전사들에게 물려준다.

그러나 전령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한 이 일을 조사하시려 수석이단심문관께서 이곳으로 출발하셨다고 합니다.”

“으으음!”

그 말에 주교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가 온다. 삼천교국의 수석이단심문관. 철저하고도 철저한 교리로 무장한 수석이단심문관은 교단 내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인물 중 하나였다. 게다가 이번 오크와의 합작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이 중 하나였으니···.

“그 믿음으로 꽉 막힌 괴물이 오면 큰일이다.”

그녀가 이곳에 오면? 카녹을 광적으로 섬기는 엔드릴오크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눈에 띄는 배교자는 일단 무조건 쳐 죽이고 본다. 자신 또한 삼위일신을 믿지만, 그녀는 그 정도가 과한 한마디로 광신도 그 자체였다.

“지금 당장 대주교님께 연락을 넣어라.”

“알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믿을 건 자신의 주인이자 삼천교국의 두명 밖에 없는 대주교 밖에 없다.

“지금부터 모든 작전을 중지하고 이번 사건의 해결에 총력을 다하도록... 오크로드는 어디 있지?”

“최근 이주일 거리에 있는 남북 쪽 대수림 인근으로 소규모 부족 흡수와 함께 몬스터 레이드를...”

“음. 불행 중 다행이군. 그가 이곳에 없을 때 최대한 빨리 이번 일을 해결해야 한다.”

주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크로드 헬칸은 자존심이 강하다. 만약 수석이단심문관과 부딪친다면···. 그것만은 상상도 하기 싫은 주교였다.

“시간이 없다!”

“알겠습니다.”

주교의 말에 회의실 내에 있는 모든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 분노에 찬 오크로드가 모든 레이드를 중단하고 저스틴포인트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제황이 일으킨 그다지 크지 않은 날갯짓은 삼천교국에 거대한 폭풍을 예고하기 시작했다.

물론 제황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며칠 후 삼천교국의 교단 마크가 새겨진 무장버스 수 대가 저스틴포인트에 도착했다.

“삼위일신의 영광이!”

“찬양 받으소서!”

“삼위일신의 제일 검이여!”

수백의 군중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무장버스가 멈춰 서자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무장버스의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내려섰다.

갑옷 각 부위가 둥글게 처리된 붉은색의 중갑을 걸친 이십 대 후반의 여성이다. 바람에 머릿결이 휘날리자 그녀의 근처에 있던 신도들의 입이 벌어졌다. 무려 수석이단심문관이라는 무시무시한 직함을 지닌 교국최강자로 알려진 그녀였기에 어떤 사람일까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드러난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본래 러시아인이라는 것을 말해주듯이 화려하게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과 천사의 얼굴을 조각해 놓은 듯한 그 미모에 몇몇이 침을 질질 흘리며 나아가다가 동료에게 붙잡힌다. 땅에 내려선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작게 기도를 올린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붉은 중갑을 입은 열두 명의 남녀가 내려섰다.

“수석이단심문관님을 따르는 십이사도”

그들이 등장하자 신도들이 두려움의 찬 눈으로 행여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고개를 떨구었다. 저들의 흉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자신들도 배교자들에게 혹독하지만, 저들은 같은 삼천교 신도들 사이에서도 치를 떨게 만들었다..

믿음을 시험하는 방법도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시험에 든 이들을 분류한다. 부부라면 남편과 부인, 가족이라면 부모와 아이, 친구라면 친구끼리 연인이라면 남녀를 나눠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칼을 쥐어준다. 그리고 믿음을 증명하려면 상대를 죽이라 한다. 만약 죽이지 못하거나 그 행동에 일절 망설임이라도 있으면 가차 없이 가혹한 고문을 시작한다.

지금 저렇게 천사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녀의 실제 나이는 50세가 넘었다.

듣기로는 같은 헌터의 이능을 빨아들여 자신의 젊음을 유지한다는 소문까지 드는 여자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에게 그것을 추궁하지 못한다. 수석이단심문관인 소피아는 무려 7성헌터였으니까.

“저스틴포인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소피아 심문관님”

그녀의 곁으로 걸어온 주교가 고개를 조아렸다. 지위상으로 둘은 동급이지만, 순수한 파워와 현재 상황의 불리함으로 주교가 먼저 고개를 조아렸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피아 또한 주교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항상 삼위일신의 돌보심을 받으시는 수석이단심문관의 방문으로 이곳 저스틴포인트에 은혜가 충만해지는 느낌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주교의 말에 소피아는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그렸다. 그 미소가 성스럽기 그지 없다. 물론 주교는 그녀의 그런 미소에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별명은 ‘엑스큐셔너’ 말그대로 참수인 이니까. 물론 그녀의 앞에서 그런 별명을 말할 간 큰 이는 없을 것이다.

그때 후위의 무장버스 쪽에 있던 군중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히익!”

신도들은 안이 비치도록 설계된 무장버스 하나를 보고는 모두 얼굴이 파랗게 변해 고개를 분분히 떨구었다.

하필 가장 중요한 순간에 군중들이 웅성거리자 주교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무장버스의 안을 보고는 그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버스 안은 한마디로 말하면 머리보관함이었다. 수십? 아니 수백 개의 머리가 투명한 유리판 안에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머리의 주인들은 다양했다. 노인에서부터 이제 갓 젖을 떼었을 법한 갓난아기의 머리까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바닥 쪽으로 갈수록 피부의 상태가 안 좋은 걸 보면 마치 수집품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

“교단으로 돌아가 번제(燔祭)를 통해 저들은 영세천국으로 보내주기 위해 가져가는 겁니다.”

소피아가 한껏 미소 머금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 자신의 만행에

단 일 점의 가책도 없는 얼굴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이 여자의 실체였다.

“삼위일신의 제일검이신 소피아님께서 불신지옥을 택한 이들이라도 마지막 기회를 주고자하는 그 자비로움이 감명 깊을 뿐입니다.”

주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흐뭇한 표정으로 마주 목례를 한 소피아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엔드릴오크들은 어디에 있지요?”

그녀의 말에 주교가 긴장했다. 이때부터가 진짜다.

“이 근방에 있는 오크들의 숫자는 추산으로 20만입니다. 또한 엔드릴오크의 오버로드는 꾸준히 이 근방의 몬스터들을 소탕하며 소규모 오크부락들을 합병하며 그 세력을 키우고 있지요. 그 수가 워낙 많아 대부분 이 근방에 넓게 퍼져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인간인 저희와 같은 공간을 쓰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죠.”

“그런가요. 흠. 이거 냄새나는 오크들의 진지를 하나하나 훑으며 다녀야 하는 건가요.”

소피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주교는 지금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는 중이었다.

끝내 심판을 하겠다는 말이가.

그녀의 말뜻대로라면 어떻게든 엔드릴오크들을 한 번 들어 엎겠다는 뜻 아닌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하게 놔둘 수는 없는 법이다.

“이번에 교국에서 벌어진 사건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엔드릴오크들과 오랜 기간 통교했던 제 관점에서 보자면 저들은 이번 일에 절대 관련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주교가 말했다. 그는 수석이단심문관 소피아를 상대로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 만약 이게 통하지 않으면 그는 두 번째 수단을 기다릴 것이다. 이미 대주교에게 연락을 마친 상태이고 두 번째 수단이 교단에서 출발한 상태다. 그러나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그 두 번째 수단을 쓰지 않기를 바랐다.

“그 말뜻은 주교님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엔드릴오크의 결백을 보증한다는 말인가요?”

소피아가 반문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교를 이단 심문이라도 하겠다는 뜻, 그러나 그는 확고했다.

“제 모든 것을 걸고서 확신합니다.”

그러자 주교를 빤히 쳐다보던 소피아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호!”

식은땀을 흘리며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를 말을 내뱉은 주교의 입장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듯 깔깔거리던 소피아가 말했다.

“어머! 죄송해요. 제가 너무 장난이 심했죠? 호호호. 사실 이곳에 온 이유는 반 정도는 도망치기 위해 온 것이랍니다. 아시다시피 교단은 너무 심심하잖아요?”

‘빌어먹을 년이...:

그녀의 말에 속으로 쌍욕을 가득 담아 돌려준 주교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하하하! 그렇지요.”

“네, 호호호. 그러니 무례한 부탁이지만 좀 쉬었다 가겠어요. 저스틴포인트의 최신위락시설들에 기대가 많답니다.”

“아, 예. 심려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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