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49화 (149/301)

# 149

광신도vs광신도-4

목책에서 뛰어내리며 제황이 말했다.

-궁기 시작하자.

-알았어.

궁기의 대답과 함께 제황의 몸 주위로 붉은 기운이 뻗어 나가기 시작했고 잠시 후 그것은 이내 하나하나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크아악! 케라타크!”

“바락크!”

터질듯한 근육과 덩치를 소유한 그것은 오크들이었다. 순식간에 나타난 삼십의 오크들이 제황과 함께 바닥에 착지했다. 동시에 오크들은 허리춤에 걸린 메이스를 일제히 꺼내 들었다.

“오, 오크?”

“오크들이 왜!”

광란에 빠져 배교자들을 신께 바치기 직전 나타난 오크들에 사람들이 놀라 분분히 뒤로 물러섰다.

제황은 자신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오크들을 둘러보다가 놀라 궁기에게 말했다.

-허상치고는 정말 선명한데?

-후후, 정말 허상일까?

-허상이 아니야?

-당연하지. 내가 그런 허접한 주술을 쓸 것 같아?

카녹의 제단을 벗어난 후 곧바로 9티어 마나석을 흡수한 궁기의 말 속에는 자신감이 깃들어 있다. 그녀의 말로는 이번의 마나석을 흡수함으로 최전성기의 절 반 가량 힘을 회복했다고 했다.

-슬쩍 맛을 보여주지.

그 말과 함께 오크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제황만의 감각으로 느껴질 뿐이다. 오크들 하나하나에 존재감이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뭐야?

-뭐긴, 한 뚝배기 시켜 봐야지.

그 말과 함께 가장 선두에 선 오크 하나가 다짜고짜 달려들어 손에 들린 메이스를 휘둘렀다.

빠각!

오크의 메이스에 가장 전면에 서 있던 신도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공격이다!”

“일단! 싸워!”

“밀집 포메이션!”

삼천교의 신도들이 각기 아공간과 허리춤에서 무기들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오크들을 상대하기 위한 포메이션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오크들의 움직임이 한 발 더 빨랐다. 그들은 순식간에 신도들의 틈으로 파고들어 마구잡이로 메이스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으악!”

“꺄아악! 살려줘!”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포메이션이 아닌 난전으로 들어가면 인간들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죽엇!”

한 사람이 검에 줄기줄기 마나를 뽑아내며 오크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무장을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 움직임은 더욱 빠르다. 그러나 그에게 메이스를 맞대어가는 오크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카아앙!

오크와 인간이 부딪혔다. 동시에 오크의 가슴에 깊고 깊은 골이 파였다. 인간의 명백한 승리. 그렇지만 오크를 베어낸 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어, 어떻게”

그는 놀란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바라봤다. 그의 가슴에는 양분된 메이스의 한쪽이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꾸루룩! 크라차하!”

상대의 가슴에 메이스를 박아넣은 오크가 승리의 함성을 지르더니 슬그머니 뒤쪽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암혼보로 숨어있는 제황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뭔가 나름 칭찬받고 싶어 하는 표정인데 그걸 마주 보는 제황의 얼굴은 대번에 일그러졌다.

-저거 네가 시킨 거야?

-아니, 특이한 놈이네. 애교를 떨고 있어. 야 좀 받아줘. 애 무안해한다.

-하아

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와중에도 오크들은 삼천교의 신도들을 꾸준히 제압해 나갔다.

신도들도 보통은 아니었다. 초반에 당황스러움과 장비를 갖춰 입지 않아 밀렸을 뿐 어느 정도 상황파악이 끝나자 꽤 정교한 대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너무 나빴다.

제황은 저들이 오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저들은 보통 오크들이 아니다. 무려 그들의 움직임 속에는 궁기의 기술이 녹아있는 것이다.

만약 마나를 쓰지 않은 채 순수 기술로만 저 오크들과 근접으로 붙는다면 제황도 쉽게 이기지 못하리라. 그만큼 궁기의 사용하는 근접무술은 무시무시했으니까.

게다가 저들은 죽지 않는다.

궁기가 마나를 끊지 않는 이상 말이다.

아무튼 초근접 난전에 들어가자 신도들의 뚝배기가 오크들의 메이스에 하나하나 터져 나가기 시작했고 신도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오크들이 너무 강하다.

“도! 도망쳐!”

“이 사실을 교단에 알려야 해!”

자신들이 오크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이 하나둘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크들은 자비가 없었다. 등을 돌린 그들을 따라가 하나하나 머리를 메이스를 두들겨 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남은 것은 제황과 씩씩거리는 오크 서른 명뿐이다. 몇몇이 도망치기는 했지만 그들은 일부러 놔준 것이다.

이 사실을 알릴 이들이 필요하니까.

“쩝.”

제황은 무한고에서 메이스를 꺼내 바닥에 툭 던졌다.

입맛이 씁쓸하다. 이건 마치 구경꾼이 된 기분이다.

-가자. 가자!

-그래.

왠지 모르게 신나있는 궁기의 목소리를 들으며 제황은 다음 목적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1

거대한 몬스터가 땅에 몸을 뉘었다.

푸른색의 긴 뿔을 지닌 그 몬스터의 온몸에는 수십 자루의 창이 꽂혀 있었다.

“크아아!”

“카녹 녹타!”

몬스터의 배 위로 뛰어오른 오크들이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십여 구의 시체들이 주변에 있지만, 그들은 상관하지 않은 채 기쁨을 노래하며 카녹에게 영광을 돌리기 바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사냥터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크륵, 지루하군.”

화려하게 치장된 거대한 늑대 위에 앉은 오크가 턱을 괴고는 중얼거렸다.

“전쟁이 그리우십니까?”

그의 옆에 서 있던 오크가 헬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헬칸이 피식 웃으며 밑을 내려다봤다.

“나의 충성스러운 종 쿠켈이여. 오크는 원래. 정복하기 위해 태어난 종족이다.”

헬칸의 말에 밑에 서 있던 조금 외소한 체구의 오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는 오크라고 보기에는 조금 생김새가 이상했다. 오크보다는 팔다리가 가늘고 얼굴 또한 인간의 것에 가까운 존재다.

“후일 오크들의 제국이 건설되는 날이면 하루 종일 황성에 갇혀 계셔야 할 당신께서 벌써 부터 이러시는 저희는 어쩌라는 말입니까.”

그의 말에 헬칸이 실소를 터뜨렸다.

황실이라니 감옥의 다른 말인가.

“그게 내 대에서 가능하기나 하겠나. 투쟁은 영원하지만 오크에게 허락된 시간은 짧다.”

“그러니 더욱 강한 군세를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십시오. 이 인간들이 건설한 땅에 정착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군세의 크기는 원래의 갑절 이상 커졌습니다. 종족은 부강해지고 지금 이 시각에도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라 전사로 커가고 있습니다.”

“후후, 넌 이 평화가 좋은 모양이군. 그렇게 태어난 전사들은 약하다.”

“그것은 카녹님께서 판단하실 겁니다. 언제나처럼 강한 전사는 살아남고 약한 전사는 도태하겠지요.”

“호오, 쿠켈. 넌 지금 평화를 경계하는 나를 가르치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제가 죽을 죄를...”

오크로드의 말에 쿠켈이라고 불린 오크가 고개를 푹 숙였다.

“크큭.”

부하의 말에 씁쓸한 웃음을 지은 헬칸이었다.

부족이 강해진다는 건 분명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에게 인간의 역사라는 것을 배운 헬칸으로서는 이런 식의 발전으로는 왕국 이상으로 발전하기 힘들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제국을 세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약탈하고 싸우며 영토를 늘려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헬칸 그가 움직일 수 없는 건 ‘그’ 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백린”

그는 한 인간과의 대화를 기억에서 떠올렸다.

“징기스칸?”

“그래. 난 그 징기스칸이라는 인간처럼 되고 싶다.”

“하하하, 오크가 인간을 동경한다니.”

“왜? 오크던 인간이던 무슨 상관인가. 크륵”

헬칸은 배를 잡고 웃는 눈앞의 인간을 노려봤다. 등에 거대한 외날도를 매고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회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인간.

“백린. 내가 우스운가?”

대족장인 자신의 면전에서 만약 다른 오크가 이렇게 웃었다면 당장에 목을 비틀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 넓은 땅을 가져서 어디에 쓰려고?”

“그곳을 우리 오크들로 가득 채울 거다.”

“그럼 투쟁을 모르는 오크들이 나타날 텐데?”

“상관없지. 정복은 나와 군대가 하면 되니까. 백린!”

“이기적이군. 재미있는 건 혼자 하겠다고?”

백린의 말에 헬칸이 입가에 삐죽 미소를 지었다.

이 인간은 자신의 속을 너무 잘 안다.

“내 곁에 남아라!”

“날? 무엇으로 붙잡으려고?”

“크르르륵”

백린의 그 말에 헬칸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언제나 이 대목에서 막힌다. 헬칸은 백린이 원하는 걸 줄 수 없다.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도 수만의 오크를 통솔할 수 있는 지배권도 백린은 원하지 않았다. 하도 답답해서 오크 제일의 미녀 암컷을 주겠다고 했다가 있는 쪽 없는 쪽 다 팔렸다.

“내가 전에 말한 대로 남쪽 땅이나 완전히 토벌한 후 기다리고 있어. 삼천교국 녀석들을 잘 구슬리면 좋은 기술들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거야.”

“그건 네가 해주면 되지 않는가.”

“보시다시피 난 바쁘다. 그리고 나도 전문지식은 없어.”

백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바쁘긴 뭐가 바쁜가. 매일 싸돌아다니기만 하면서...”

“거참 누가 머리 나쁜 오크 아니랄까 봐.”

“뭐야?!”

헬칸이 격분했지만, 백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헬칸은 분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백린은 자신과 같은 강자 수십이 달라붙어도 이길 수 없는 놈이니까.

저놈이 쓰는 요상한 사술도 무시무시하지만, 저 등에 있는 거대한 검은 산과 같은 바위도 일검에 잘라버린다.

“귀 닦고 잘 들어라. 인간은 강하다. 곧 지구로 통하는 게이트가 훨씬 더 많이 생겨날 거야. 그때 인간들의 진짜 힘에 놀라지 말고 지금부터 힘을 기르라는 소리다.”

“흥! 북쪽의 오크로드 놈은 이미 인간의 땅을 차지했다.”

“그거야. 중국이 오크가 돈이 되니까 풀어놓고 기르는 거고...”

“크으...”

오크를 한없이 깔아뭉개지만 헬칸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여준 그 영상기기 속에서 보여준 하늘을 나는 무기들은 정말 무시무시했으니까. 특히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거대한 불꽃의 산은 헬칸의 뇌리 속에 인간이라는 작고 힘없는 종족에 대한 선입견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세 개의 차원이 완전히 안정화되면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종족들이 패권을 걸고 싸우게 될 거다. 거기 휩쓸려 사라지기 싫으면 지금부터 열심히 싸우라고 친구...”

백린의 말에 헬칸은 부루퉁하니 불만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네 목적이 대체 뭐냐?”

그러자 백린이 조금 차분해진 어조로 대답했다.

“다크어스.”

“다크어스?”

“그래. 다크어스... 세 개 차원이 합쳐지는 것은 더 이상 막을 수 없다. 엘어스와 지구는 어느 정도 타협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다크어스는 구제 불능이야. 놈들은 그냥 먹고 먹힌다는 개념밖에 없는 놈들이지. 거기에 놈들은  아니 그 놈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으면 엘어스던 지구던 끝장이야.”

“그때까지 저 보기 싫은 이교도 놈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건가?”

“그래. 그러니까. 얼른 지긋지긋한 철기시대나 벗어나라고... 넌 내가 이 엘어스에서 만난 오크들 중 가장 머리가 깬 놈이니까.”

“빌어먹을...”

백린이라는 인간과의 대화를 떠올렸던 헬칸은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끝으로 백린은 다음날 소리 없이 사라졌다. 쫓거나 하지는 않았다. 쫓는다고 잡혀줄 놈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백린이 남기고 간 쪽지 말미에 적힌 말 때문이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활을 엄청나게 잘 쓰는 괴물 같은 인간이 나타나 나를 찾으면 절대 모른다고 해줘. 아참! 너도 한 방에 훅 갈 수 있어.’

뜻 모를 말만 남긴 채 사라진 백린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멀리서 한 떼의 오크라이더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인다.

헬칸의 앞에 당도한 오크라이더들은 땅에 내려서서 헬칸에게 다가와 땅에 엎드렸다.

“헬칸이시여.”

“무슨 일이냐.”

“큰일 났습니다.”

오크라이더의 말에 헬칸의 눈가가 실룩였다.

“말하라.”

“카녹의 제단이 침범당했습니다.”

“뭐라?!”

오크라이더의 말에 헬칸이 노호성을 내질렀다. 그의 외침에 주변에 있던 모든 오크들이 부들부들 떨며 땅에 엎드렸다. 헬칸에게서 뿜어지는 엄청난 존재감이 그들을 덮친 것이다.

“카녹의 제단이 무너지고 그곳에 이교도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또한 대지의 심장마저 강탈당했습니다.”

“이교도의 십자가?!”

이교도의 십자가라는 말에 헬칸의 눈썹이 꿈틀했다. 대지의 심장은 그렇다치지만, 이교도의 십자가라는 말에 이마가 지끈지끈해진다.

그가 말하는 이교도가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확실한가?”

헬칸의 옆에 서 있던 쿠켈이 다그쳐 물었다.

“예. 대제사장께서 주술로 확인하셨습니다.”

“으음.”

“내 이것들을...”

“고정하시지요. 헬칸이시여. 아무리 대제사장님이 확인하셨다 해도 아직 이쪽에서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그건 그렇군. 크르르”

쿠켈의 말에 가까스로 분기를 잠재운 헬칸이다.

“대제사장은?”

“크륵, 군세를 모으고 계십니다.”

오크라이더의 대답에 헬칸이 옆에 서 있는 쿠켈에게 말했다.

“어찌해야 하는가.”

헬칸의 물음에 쿠켈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일단 돌아가서 삼천교국의 주교를 소환하심이 옳은 줄 압니다. 췩!”

“그래. 그렇지. 돌아갈 준비를 하라.”

“예.”

쿠켈이 고개를 조아리자 헬칸은 저스틴포인트가 있는 서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만약 그 빌어먹을 인간 놈들이 진정 카녹의 제단을 더럽혔다면 카녹의 제단을 인간의 피로 뒤덮어 카녹께 죄를 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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