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광신도vs광신도-3 (수정)
“삼위일신 아드님의 말씀 듣고 영세천당 누리세~ 믿지 않는 불신자들 영원지옥 가리라.”
삼천교의 대표적인 찬미가 ‘우리목사님 찬가’ 가 공동안을 쩌렁쩌렁 울린다.
귀가 예민한 이들이라면 눈살을 찌푸릴 소음이지만 지금 그것을 들으며 서 있는 이들은 그런 것을 신경 쓰기에는 눈앞에 보이는 충격적인 현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카녹이시여.”
“감히 성지에 침입자가... 저주 받을지어다.”
쿵...
“쿠룩! 대제사장님!”
“여봐라! 어서 대제사장님을 모셔라!”
온갖 화려한 깃털과 뼈로 장식된 로브를 걸친 수십의 오크들은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늙은 오크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놀라 모여들었다. 늙은 오크를 부축하랴 고함을 질러 늙은오크를 모실 가마를 부르랴 정신이 없다. 그러나 늙은 오크의 귀에는 그 소리들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팔을 휘저으며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우리 엔드릴 오크의 성지가!”
카녹의제단이 더럽혀졌다. 그뿐일까. 엔드릴 오크부족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대지의심장’ 마저 강탈당했다. 아주 오래전 종족 최강의 대전사였던 ‘카탈’ 이 카녹에게 바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냥했던 몬스터의 정수가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눈을 들어 카녹의제단이 있던 곳에 세워진 저주스러운 흉물이 보인다.
오만방자하며 더럽고 저주스러운 인간들의 그것이...
“으어어! 카녹이시여!”
늙은 오크가 피를 토하는 듯한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그는 실제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입에서 줄기줄기 흘러내린 피가 그의 턱에서 흘러 그의 목에 걸린 해골들의 위로 줄줄 흘러내렸다.
“카녹이시여! 위대하신 카녹이시여! 이 죄를!”
늙은 오크는 목이 터지라 울부짖으며 카녹을 불렀다. 그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그의 눈에 어린 녹색의 안광이 점점 커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손에 들린 화려한 지팡이에서 시린 빛이 터져 나오고 잠시 후 삼천교의 십자가는 꼭대기에서부터 물과 같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통짜 금속으로 된 그것이 물처럼 녹아 사라졌다.
“오, 대제사장님.,.어찌”
땅에 엎드린 제사장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것을 지켜봤다.
지금 대제사장은 자신의 생명을 태워 저것을 녹이는 것이었다.
그는 제단을 지키지 못한 죄를 자신의 생명을 태움으로써 속죄하고 있는것이다.
“우욱... 크흡...퉤”
각혈을 한 늙은오크가 입에 남은 잔혈을 토해내고는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음울하고도 처연하다.
“너희들은 침입자의 흔적을 찾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대제사장이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수백에 이르는 오크전사들이 제단을 포위한 채 서 있었다.
“죽은 전사들의 시체를 가져오라.”
“예.”
잠시 후 그의 앞에 네 구의 시신이 놓였다. 카녹의제단을 지키고 있던 오크전사들이다.
“크륵, 두 놈은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고 두 놈은 그나마 반항이라도 하다가 죽었군. 크르르. 이후 이놈들의 시체는 들판에 가져다 버려라. 타라 훔 쉬름 카락.”
시체들의 목덜미에 난 자상에 손가락을 깊숙이 쑤셔 넣거나 팔을 이리저리 돌려 상처들을 확인한 대제사장이 지팡이를 시체들의 머리에 하나하나 가져다 대며 말했다.
“전사여. 삶의 끝에서 본 것을 고하라. 테르다 타후 움 더 우르”
지팡이에서 녹색마나가 뿜어져 나와 죽은 오크들의 머리를 감싸고 잠시 후 대제사장의 뇌리에는 오크들이 죽기 직전 봤던 장면들이 단편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시체가 깨끗했던 오크들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죽었다.
경계하던 중 큰 고통과 함께 시야가 암전되어 버렸다.
그들이 죽음의 순간에 느꼈을 고통이 함께 흘러들어 왔지만, 그런 건 대제사장의 높디높은 정신방벽을 넘지 못했다.
‘놈이다!’
마침내 팔과 목에 치명상을 입은 오크의 기억 속에서 대제사장은 놈을 볼 수 있었다.
“삼위일신, 이...이... 씹어 먹다가 뱉어버릴 광신도 놈들...”
예상은 했다.
범인은 역시 삼위일신이라는 이단을 섬기는 인간들이었다.
그가 그렇게 단정했던 이유는 삼천교국과 처음 부딪혔을 때 그들이 한 짓이 지금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오크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들여 자신들의 신을 믿으라 강요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오크들의 껍질을 벗기고 불태웠다.
만약 오버로드헬칸의 뜻이 아니었다면 저들은 십만 오크 군세에 짓밟혀 뼈 한 조각 남기지 못했으리라.
“대제사장님!”
그때 공동 내에 있던 제사장 하나가 황급히 뛰어와 대제사장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무슨 일이냐.”
“췩!이것을 보십시오.”
제사장이 손에 들고 온 물건을 공손히 내밀었다.
그가 카녹의제단이 있던 곳 주변을 훑던 중 발견한 것이다.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물건이다. 물론 제황이 뿌려놓은 몇 가지 장난감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빨로 만들어진 오크들의 신물이었다.
긴 뼈 두 개가 교차하는 모양의 신물...
엔드릴 오크부족의 것이 아니다.
“두다마 오크 놈들의 신물입니다.”
제사장이 말을 했다.
“두다마 오크?”
“분명 부족 내에 남아있는 두다마 오크 놈들의 씨가 범인입니다. 두다마 오크놈들의 암컷들과 그 씨들을 족치면 곧 범인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이건 분명 인간들과 우리 엔드릴 부족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제사장은 자못 예리한 추측까지 하였다.
과거에도 비슷한 전례가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유추 가능한 것이다.
무력으로 다른 부족을 흡수하게 되면 보통 흡수당한 부족은 얌전히 승리자의 밑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것이 좋은 건 아니다. 흡수당한 부족의 최하층으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
엔드릴 오크는 그것이 조금 더 심해서 수컷들은 젖먹이까지 모조리 죽인다. 그래서 간혹 거기에 앙심을 품은 암컷오크가 멸망 당한 부족에 대한 기억을 새끼들에게 전승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대제사장은 범인의 얼굴을 본 상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앞에서 말하고 있는 놈은 평소 인간들과의 연합을 찬성하던 놈들 중 하나였다.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놈들 때문이다. 성지가 더럽혀진 건... 이런 놈들이 있기 때문에 인간 놈들이 감히 오크를 우습게 보고 사교로 카녹의 전사들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우매한 오크들을 영도해야 할
푹..
“컥”
대제사장의 지팡이가 눈앞에 있는 제사장의 눈을 꿰뚫어 버렸다.
“네놈의 썩어빠진 눈은 카녹님을 볼 자격도 없다.”
“대, 대제사장님!”
“죽어라. 전사의 홀에도 들어가지 못할 쓰레기...”
푸푹!
“커억”
제사장의 머리를 관통해버린 지팡이를 옆으로 떨쳐 시체를 빼낸 대제사장이 말했다.
“이 사실을 오크로드님께 알려야 한다! 제사장들은 광역통신주술을 준비하라.”
“알겠습니다.”
“아울러”
그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모든 오크히어로들을 소집하라.”
“크르륵!”
대제사장의 말에 놀란 오크가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은 오크들을 이끄는 지휘관들이었다. 그 말뜻은 저들의 밑에 소속된 오크들까지 모두 모은다는 뜻이다.
***
휘이이이
바람이 부딪혀 오는 얼굴이 따갑기는 하지만 제황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엘어스의 맑은 공기를 가르고 있자니 폐부가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힘들지 않아?
-괜찮아.
제황은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날고 있는 궁기를 올려다봤다. 날개를 활짝 펴니 거의 4미터가량 되는 느낌이다.
-거의 도착해 가네.
-음.
-내려갈게.
-그래.
궁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자 바람이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구름을 뚫고 내려가자 울창한 밀림이 발밑에 닿을 것 같다.
지상이 나타나자 제황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찾던 것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에서 내려가자.
-응.
후두두둑...
장막과도 같은 나뭇가지들을 뚫고 지상에 착륙하자 지금까지 제황을 태우고 온 궁기가 사라졌다.
-고생했어.
-뭐 이정도 가지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지만, 궁기가 없었다면 며칠에 걸쳐 이동해야 했을 거리다.
씨익 웃은 제황이 무한고에서 네비게이션을 꺼내 들었다. 땅에 내려서기 전 봤었던 지형지물들을 떠올리며 네비게이션 안에 있는 지도를 검색했다.
“정확하네.”
제황은 밀령들이 업로드해 준 정보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것에 혀를 내둘렀다.
원래 삼천교를 치기 위해 꾸준히 정보수집을 해왔다지만 이 정도면 정말 자신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지형에 대한 확인이 끝낸 제황은 곧장 암혼보를 켠 뒤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움직이니 인적이 지나다니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오솔길이 나타났다.
그렇게 길을 따라 걸으니 잠시 후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한 이정표까지 나타났다.
“25구역 성전으로 가는 길이라...”
갈림길 사이로 서 있는 이정표를 읽은 제황은 쓴웃음을 지었다.
엘어스 밀림 한복판에 나타난 이정표라니...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제황은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밀림 속에 존재한다고는 상상도 못 할 건물이 나타났다.
그것은 하나의 요새였다.
요새는 매우 자연 친화적으로 생겼는데 일단 외곽을 두르는 목책은 기존에 있던 거목들을 그대로 둔 채 사이사이를 다른 나무들로 채웠다. 꽤 튼튼해 보이는데 가장 낮은 곳도 높이가 20미터가량은 되어 보인다.
물론 제황에게는 아무 장애가 되지 않았다. 목책을 박차고 올라가고 있음에도 암혼보의 영향으로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이윽고 요새 안의 상황이 제황의 눈에 들어왔다.
안은 꽤 넓었다. 작은 마을 하나의 크기랄까? 그렇지만 요새 한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목조건물과 그 옆에 세워진 거대한 석상 외에는 다른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크네.”
공중에서 봤던 석상과 땅에서 바라보는 석상의 크기는 사뭇 달랐다.
그것은 초대 교주이명복의 석상이었다. 높이는 농담이 아니라 대략 30미터가량인데 오죽 컸으면 밀림 사이로 석상의 머리가 보일 지경이었다.
초대교주이명복은 지구에 있을 때 자신의 동상 세우기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엘어스에 와서도 가장 먼저 한 것이 교회를 세우고 그 옆에 자신의 석상을 세운 것이다.
그의 힘이 광신에서 오는 것이기에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수많은 이주민이 굶어 죽어 감에도 가장 먼저 석상을 만들었다는 건 정말 종교에 미치면 답이 없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뭐, 상관없지. 그건 그렇고 고민이 참 덧없네.”
처음 나길환에게 계획을 들었을 때 제황은 마음 한구석의 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삼천교국의 주민들에게 해가 가할 수 있을 것인가다. 비록 삼천교국이 하는 짓이 흉악하기 그지없다지만, 그것을 모든 이들에게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분명 그중에는 무고한 이도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요새 안의 상황을 살핀 제황은 그런 고민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동상의 앞에는 마치 수영장과 같은 모양의 사각 구덩이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검게 타버린 잿더미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 앞에는 대략 백여 명 정도의 남녀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기도을 올리고 있었는데 기도가 끝나자 그들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오늘 우리는 불신자들을 불로 심판하고 삼위일신께 한 걸음 더 나아갈 겁니다. !”
“영세!”
“오, 삼위일신이시여!”
“모두 기쁨의 찬미가를 부릅시다!”
“영세천국의 전사들이여 모두 믿고 따르라~”
그들은 소각장을 돌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 소각장 한쪽에 장대에 꼬치처럼 꿰어져 있는 십여 명의 사람들을 향해 다가간다. 결박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피부가 벗겨진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지 피가 말라붙어 있어 그들이 꿈틀거릴 때마다 갈라지며 피가 스며 나온다.
“삼위일신의 은혜를 저버리고 왕국에서 도망치려 한 죄!”
“태워라! 태워!”
-저것들이 사람인가.
-사람이 아냐. 광신도지.
궁기의 말에 답한 제황이 무한고에서 오크의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저런 것들이라면 양심의 가책 없이 쳐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제황은 뛰어내리기 전 나길환이 한 말을 떠올렸다.
“오크와 삼천교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서로가 믿는 신이 틀리고 서로의 사회체계를 이루는 근간이 종교이기 때문에 둘은 절대 융합할 수 없습니다. 제황님이 하실 일은 그들 사이의 갈등을 외부로 끄집어내 주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