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46화 (146/301)

# 146

광신도vs광신도-1

박중위와 헤어진 제황은 그길로 곧바로 대회의실을 찾아갔다.

“총관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아직 회의 중이십니다. 아, 잠시만...”

제황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한 밀령대원이 안으로 기별을 넣었고 잠시 후 제황에게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이 들려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던 제황은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나길환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해괴한 자세를 취한 채 엎드려 있었기 때문이다.

둘씩 짝지은 상태인데 앞으로 몸을 반쯤 엎드리고 머리를 맞댄 상태에서 뒷짐을 지고 버티는 중이다. 꽤 힘든 자세인데 그 와중에 그 둘의 머리 사이에는 볼펜 한 자루가 세워져 있었다.

“언제부터 우리 밀령이 똥이나 싸고 돌아다녔나.”

“...”

“너희들이 싸 논 똥을 왜 닦아줘야 하냐는 거다.”

퍽퍽퍽퍽퍽!

위태롭게 기대 있는 것도 꽤 힘들 텐데 나길환은 그 와중에 검은색으로 번들거리는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고 지나간다.

그러나 대주들은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그것을 묵묵히 두들겨 맞고 있었는데 사실 그들은 지금 이런 굴욕적인 자세로 구타를 당하는 것보다 그들이 자신하고 있던 자부심들이 그들의 안이함으로 허무하게 뚫렸다는 것에 더 큰 고통을 느끼는 중이었다.

“너희들이 진정 무적성을 수호하는 밀령들인가!”

“그렇습니다!”

“웃기는군. 대체 몇 명이 이번 일을 지나친 건지... 허허. 내가 이 자리에 너무 오래 있었던 건가?”

나길환은 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밀령대주들에게 많은 권한을 준 편이었다.

이번 일도 만약 나길환이 알았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처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절대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나길환의 몽둥이가 다시금 매섭게 휘둘러졌다.

퍽퍽퍽!!!

“총밀령은 오늘 이시간부로 보직에서 해임한다.”

“알겠습니다!”

“또한, 조만간  특.별.훈.련이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후, 나도 많이 물러졌군. 예전이었다면.”

좌중을 쓸어보며 나길환이 말하자 밀령대주들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겉으로 보기에는 야만적인 얼차려이었지만 이건 사실 그냥 애교에 불과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정도의 사고가 터지면 단순히 얼차려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때를 알고 있는 밀령대주들이기에 감히 입을 열 수 없다.

현장에서의 실수는 몇몇 목숨이 사라질 뿐이다. 그렇지만 정보를 다루는 이들의 실수는

수십 많으면 수백의 피해도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밀령의 규율은 엄격하다 못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고작 이런 짓이나 하고 있으니 꼴도 보기 싫다. 꺼져라.”

나길환의 말이 끝나자 자세를 바로 한 밀령대주들이 일제히 나길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존명!”

밀령대주들이 대회의실을 모두 빠져나갈 때 나길환이 한 남자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총밀령”

“예!”

그는 바로 조금 전 일반밀령대원으로 강등당한 밀령의 총밀령이다.

나길환은 그에게 비밀리에 귀엣말을 했다. 그러자 총밀령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내가 왜 널 일반밀령대원으로 강등시켰는지 알겠지?”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둘의 조사를 시작하라.”

“예!”

마지막으로 그가 대회의실의 문을 나가자 적막이 감돈다.

나길환이 한숨을 내쉬며 몽둥이를 내려놨다.

“앉으시죠.”

“예.”

“못난 꼴을 보였군요.”

“아닙니다.”

제황이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무적성의 밀령이라는 자부심으로 사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자부심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저들이다.

그런 그들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미헌터사무국을 과신하고 정보의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제황이 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힘을 감추고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무적성의 중요인물인 제황이 납치되거나 혹은 살해될 수도 있었다. 그뿐일까? 그들은 분명 병원 내에 있던 모든 이들을 죽음이라는 수단으로 침묵시켰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길환이 그들을 거칠게 다룬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 남은 자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말이다.

“상의드릴 게 있어서 찾아뵀습니다.”

제황은 박중위와 나눈 이야기를 나길환에게 말했다.

나길환은 거의 반세기 동안 무적성의 이인자로 온갖 귀계와 계략 속에 무적성을 지켜온 이였다. 수많은 경험을 지닌 그라면 분명 좋은 방법을 제시해 주리라.

아니나다를까 제황의 말을 모두 들은 나길환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그려졌다.

“좋은 생각이 있으십니까?”

“예. 그보다 일단 제 집무실로 가시죠.”

“알겠습니다.”

제황은 나길환의 뒤를 따라 그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나길환은 제황을 잠시 앉혀두고는 한쪽에 있는 서고로 들어가 몇 개의 종이로 된 서류뭉치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 시간여 다시 나타난 나길환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일단, 오크들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운을 띄운 나길환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모두 끝났을 때 나길환의 계획에 제황은 놀라고 말았다. 역시 늙은 생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나길환은 단순히 저들을 구해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저스틴포인트에 있는 오크들과 삼천교에까지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계략을 단 한 시간 만에 짜낸 것이다.

그러나 하나 걸리는 게 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계획대로만 된다면 저야 좋지만 밀령 전체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하.”

제황의 걱정 섞인 우려에 나길환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던가. 그가 키운 밀령이 누군가의 걱정의 대상이 되다니 말이다.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면 되었지 걱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걸 지금 나간 밀령대주들이 들었다면 모두 수치심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이번에 보여드리겠습니다. 진정한 밀령이 무었인지...”

***

이틀간에 걸쳐 작전의 세밀한 부분을 정리하고 그에 필요한 장비 및 물건들을 밀령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모두 준비했다.

그 후 제황은 비밀리에 엘어스로 진입하는 게이트를 통과했다. 저스틴포인트에서 가장 가까운 게이트는 폐쇄되었기에 그 중 가장 가까운 대구 쪽 게이트로 진입한 제황은 기다리고 있던 밀령들의 도움으로 최단시간으로 오크들과의 경계지역에 도착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제황을 이곳까지 데려다 준 밀령대원에게 가볍게 목례한 제황이 주위를 둘러본다. 내리쬐는 태양 후덥지근한 기온... 괴이하게 생긴 갖가지 동식물들... 지겹기도 혹은 그립기도 했던 엘어스에 다시금 돌아온 것이다.

부우우웅

밀령들을 태운 소형무장버스가 떠났다. 이제부터는 제황 홀로 움직여야 한다.

“오랜만이군.”

현실 시간으로는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백두산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거의 10년 만에 도착한 기분이다.

제황이 군복무를 한 곳과는 꽤 떨어진 곳이기에 낯설기는 하지만, 굳이 문명의 이기를 가지고서 길찾기 따위로 고민할 생각은 없다.

띠릭...

제황은 무한고에서 네비게이션 꺼내 전원을 켰다.

전에 사용했던 군용 네비게이션이다.

저스틴포인트가 함락당했기에 실시간 업데이트는 불가능하지만, 밀령대는 이 근처에서 활동하는 공격대로부터 수집된 모든 정보를 취합해 최대한 최신정보로 업데이트 해줬다. 단순한 민간공격대의 정보들뿐만 아니라 군에서 취득한 최신 몬스터 동향까지 업데이트해줬기에 꽤 쓸만했다.

지형과 주변 환경을 모두 확인한 제황은 입고 있던 장비아이템을 벗고 무한고에서 준비해온 것들을 꺼내 몸에 걸쳤다. 후드가 쓸 수 없기에 변장 도구를 이용해 얼굴도 고쳤다. 변장을 끝마친 제황이 거울을 보자 그곳에는 엘어스의 강렬한 태양에 얼굴이 타버린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평범한 남자 얼굴이 있었다.

“좋았어.”

가죽으로 된 투구를 걸친 제황은 마지막으로 박중위로부터 받은 삼천교의 신물을 목에 걸쳤다.

-어때?

-완벽한데? 당장에라도 삼위일신의 가호가 내릴 것 같아.

-그거 참 고마운 악담이군.

고개를 끄덕인 제황이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눈썹을 모았다.

지형정보를 통해 추측하기로 저곳에 제황의 목적지가 있다. 내리쬐는 태양빛 속에서도 자욱한 안개가 낀 괴상한 곳... 그곳에서부터 작전이 시작될 것이다.

“시작해 볼까.”

제황이 한걸음 내디디는 순간 그의 몸이 흩어지듯 사라졌다.

***

“쿠르륵, 미치겠군.”

자랑스러운 엔줄 부족의 전사 오룩은 오늘도 따분한 경비를 서고 있다.

호전적이고 활동적인 오크에게는 한 자리에 몇 시간 동안 서 있는 일은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그의 옆쪽에 서 있는 상급전사 놈의 변덕을 아는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세를 바로 할 수밖에 없었다.

“우적우적···.”

‘코볼트 같은 놈...’

그가 욕하고 있는 상급전사는 지금 바닥에 주저앉아 주머니에서 육포조각을 꺼내 뜯어 먹고 있다. 뭐 자신만 이렇게 경비를 서고 있는 건 그렇다 친다. 그건 낮은 계급의 오크에게는 숙명과 같은 것이니까.

그렇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저놈은 이곳에 올 때마다 어디에서 났는지 갖가지 간식거리를 가져왔고 저렇게 쩝쩝거리며 처먹어댔다.

“꺼어억”

덕분에 지금 그의 뱃속은 요동을 치고 있다.

‘빌어먹을, 내가 더러워서 자리를 옮기든가 해야지. 췩!’

그는 자신이 지키고 있는 거대한돌산을 돌아다보며 생각했다.

처음 이곳에 배속되었을 때만 해도 그 영광스러운 임무에 눈물을 흘리며 카녹에 감사의 절을 올렸었다. 신성한 임무에 동원되는 것은 오크의 신 카녹에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설령 카녹이 그의 생명을 원하더라도 그는 언제든 그의 심장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자신과 같은 부족 출신의 다른 오크전사들이 몬스터를 사냥하며 점점 강해져만 갈 때 그는 이곳에 뿌리박힌 나무처럼 서서 내내 경비만 서고 있을 뿐이다.

“쿠륵, 오룩 똑바로 서.”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실컷 육포나 뜯고 있던 주제에 자신에게 참견질하는 상급전사 놈의 머리를 그가 자랑하는 글레이브로 단숨에 꿰어버리고 싶지만, 그는 품에 걸린 카녹의 신물을 손에 꾹 쥐며 화를 눌러 참았다.

실력을 키워 후일 ‘피의축제’ 가 시작되면 이 상급전사에게 도전해서 그의 목을 베어버리고 놈이 가진 모든 것을...

딱!

“컥!”

게걸스럽게 육포를 뜯던 상급전사가 돌연 뒤통수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어찌나 강하게 맞았는지 그는 앞으로 털썩 엎어졌다.

그러더니 분노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상관의 비명에 고개를 돌린 오룩과 눈이 마주쳤다.

“크르륵! 네놈이 미쳤구나.”

“쿠룩, 무슨 말입니까.”

영문을 알 수 없는 오룩이 반문했지만, 상급전사는 이미 자신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게 이 정신 나간 놈이라고 단정지었는지 씩씩거리며 일어나 그의 배틀액스를 허리춤에서 뽑아 들었다.

“감히 내 뒤통수를 쳐?”

“크르륵! 저는 아닙니다!”

“웃기지 마라! 날 죽이려 한 게 틀림없다!”

쾅!

상급전사가 배틀액스를 휘두르자 오룩은 반사적으로 그의 글레이브를 들어 그것을 막았다.

“감히 막아!”

“크륵! 그럼 어쩌란 겁니까!”

막지 않으면 자신의 골통을 부술 것 같았는데 그걸 막았다고 성질을 내니 오룩도 슬슬 열 받기 시작했다.

우우웅!

상급전사의 배틀액스에 검은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카녹의 축복이 무기에 주입된 것. 그 모습에 오룩은 굵은 땀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저것은 상급전사의 상징이다. 자신 같은 일반전사의 무기는 부딪히면 그대로 박살 날 것이다.

“크륵! 제가 아닙니다!”

“죽어!”

촹!

배틀엑스가 그를 베어오자 오룩은 기지를 발휘해 상급전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도망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이 비열한 놈은 자신을 탈영이라는 죄목으로 오명을 씌운 뒤 죽일 것이다.

“크륵! 약삭빠른 코볼트 새끼!”

상급전사의 가슴을 어깨로 받은 오룩은 그를 안고 그대로 밑으로 몸을 던졌다.

카녹의축복을 무기에 주입하면 몸은 그만큼 약해진다. 그렇기에 이렇게 엉키는 것이 자신이 살길이기에 그는 필사적이었다. 둘이 몸이 한데 뭉쳐 계단을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죽인다!”

“크륵! 난 아니라고!”

계단을 구르며 무기를 떨어뜨린 둘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저 위에서 은신한 채 바라보고 있던 제황이 빙그레 웃으며 몸을 돌렸다.

제황은 조금 전 상급전사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투박하게 생긴 쇠로 된 큼지막한 메이스를 공중에 휙휙 휘둘러본 뒤 무한고에 집어넣었다.

“일단 오크 무기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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