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45화 (145/301)

# 145

드러난마각-2

제황이 호출한 밀령들이 병원 내에 있는 모든 흔적의 조작을 끝내자 얼마 후  미헌터사무국에서 출동한 조사팀이 들이닥쳐 병원 인근 10km를 원천 봉쇄했다.

사건 내용은 심각했다.

무려 미헌터사무국 인베이전팀의 팀장인 캐롤라인과 일베이전팀 일부 그리고 그녀를 호위하던 보디가드들이 삼천교 빌런들에 의해 전원 실종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미헌터사무국의 조사팀의 내린 1차 결론은 삼천교가 인베이젼팀이 엘어스에서 구출해온 한국군인을 처단하기 위해 이곳 병원에 침투했고 인베이젼팀과 삼천교 간의 둘 간의 충돌 결과 결국에 삼천교가 승리했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6성헌터 천제황 당신을...”

미헌터사무국 조사팀의 리더는 호기롭게 제황의 신병을 구속하려 했다.

중요 참고 조사인이라는 명목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와 같이 자국의 특수팀이 증발한 사건이라면 피의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건 경우에 따라 무적성에 대한 심각한 모욕행위로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로빈슨 소령.”

그러나 중간에 끼어든 한 노인으로 인해 조사팀의 리더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과 미헌터사무국 사이 맺은 협정에 따라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경우 수사권을 가진 이의 판단에 따라 강제적으로 인신구속이..!”

“허허, 우리 대한민국 아니 무적성의 6성 헌터를 고작 미헌터사무국의 일개 팀장이 강제로 데려가겠다라. 하하하. 이게 지금 미국식 유머라면 꽤 성공했습니다. 로빈슨. 그렇지만 우리나라 헌터보호법에는 헌터가 인신구속에 대해 방어할 권리도 있습니다. 또한 헌터가 소속된 단체 또한 그 권리를 지녔지요.”

스스스...

노인의 등 뒤로 검은 그림자들이 도열한다. 아니 그들은 위협적이지 않다. 그의 앞에 서있는 노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무형의 기세에 그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어디 한 번 시험해 보겠습니까? 우리 무적성의 정당한 방어를?”

“으윽...”

노인의 말에 로빈슨이라는 이름을 지닌 허여멀건 멀대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 노인을 잘못 건드리게 되면 자신의 조사팀의 ‘생사’ 또한 인베이젼팀과 똑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설령 이곳에 삼천교가 있다고 해도 저 노인이 허락지 않으면 자신들을 데려갈 수 없다. 이곳은 저 노인의 홈 그라운드다.

차라리 대한민국헌터사무국의 인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자신이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 노인은 무적성의 총관... 아니 무적성의 이인자 나길환이었다.

“천제황 헌터는 분명 나와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설마 나 또한 중요참고인으로 구속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무리한 시도는 추천하고 싶지 않군요.”

“아, 알겠습니다.”

나길환의 강수에 로빈슨 소령이 백기를 올렸다. 어차피 밀령들은 모든 증거의 조작을 끝냈다.

병원 안에 근무하던 이들과 환자들은 삼천교의 빌런들의 테러로 인해 모두 중경상을 입은 채이기에 현장을 증언할 사람이 없다. 몇몇 의식이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제 밤 동시에 의식을 잃은 듯 진술이 동일했다.  설상가상으로 병원은 지금 외부에서 몰려온 응급 차량으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제황의 뜻에 따라 밀령들이 사건 현장을 ‘깨끗이’ 정리해 버렸으니 그들이 현장에서 가져갈 증거물도 얼마 없었다.

그나마 병원 옥상에서 발견된 삼천교의 인물들로 보이는 벌집투성이 시체들이 성과라면 성과랄까? 벌거벗겨진 채 가슴이 개복(開腹)된 일곱 구의 시체들을 미헌터사무국에서 전부 바디백에 담아 수거했다.

“차후 사건과 관련된 협조가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무적성으로 연락 주십시오.”

“아, 이래서는...”

로빈슨 소령은 나길환이 인사불성이 된 박중위를 응급침대에 눕혀 그가 끌고 온 제황의 개인 헬기에 실기 시작하자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으려 했다. 최후의 수단으로는 무력의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나길환이 그의 귀에 몇 마디 속삭이자 그 시도 또한 부질 없이 무산되었다.

“그럼 이만...”

무적성의 마크가 새겨진 중형 헬기가 공중으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헬기가 천천히 기수를 이동하기 시작하자 제황이 입을 떼었다.

“혹시 근처에 잠복이라도 하셨습니까?”

“설마요. 제황님의 일이면 언제나 특급입니다. 허허허”

호출한 지 단 30분 만에 제황의 헬기를 타고 나타난 건 밀령들이 워낙 기동성이 좋아서라고 친다. 그러나 제황은 그 헬기 안에 나길환이 동행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밀령들과 함께 도착한 나길환의 노련한 지휘 속에 모든 흔적을 꼼꼼하게 지우고 조작했다.

제황과 관련된 모든 흔적을 지우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분.

병원 내에 있는 전자기기는 어차피 재밍에 의해 파괴되어 있었기에

시간이 좀 남아 옥상에 널려있는 전투 후 남은 전리품들의 수거까지 꼼꼼히 했다. 실험용으로 천군천사 셋을 챙기고 나머지 것들의 갑주들을 전부 벗겼다. 물어보니 그 갑주들이 전부 엄청나게 비싼 금속으로 되어 있단다. 그것들은 밀령들이 지닌 아공간에 모조리 사라졌다.

그것도 모자란지 천군천사들의 가슴을 열어 가슴에 이식되어 있던 7티어 마나석들까지 꼼꼼하게 챙기시는 나길환이었다. 역시 무적성의 살림도 책임지는 총관답다고 할까?

“자, 이제 설명해 주시죠. 왜 저들을 배제해야 했는지···.”

나길환이 제황에게 물었다.

일단 제황의 뜻에 따라 정보를 조작하기는 했지만 정확한 이유는 설명받지 못했다.

“받으시죠.”

“제황은 캐롤라인에게서 짜낸 정보들이 적힌 종이를 나길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지구에 숨어 있는 삼천교의 간세입니다. 전부는 아닐테지만 상당한 숫자입니다.”

제황으로부터 종이를 받아 읽어 내려가는 나길환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미헌터사무국 내에도 삼천교의 간자들이 침투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음. 이건!”

리스트 가장 후반부에 있는 이름 두 개가 마음에 걸린 것이리라.

그 앞에는 무려 ‘무적성’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 높은 직위는 아니지만, 삼천교의 간세로 무적성의 인물이 적혀 있는 것이다.

그 인물들은 나길환도 얼굴 정도는 아는 이들이었다.

“이게 확실한 겁니까?”

“네. 이번 테러의 주동자인 미헌터사무국 인베이전팀의 팀장인 캐롤라인의 입에서 나온 명단이니까요. 물론 그녀의 본래 신분은 삼천교입니다.”

제황은 확인차원에서 녹음해둔 음성을 나길환에게 들려줬다.

그러자 그것을 모두 들은 나길환의 얼굴에 북풍한설이 몰아쳤다.

“그 여자는...”

“상황이 어쩔 수 없어 제가 처리했습니다.”

“으음.”

제황의 대답에 나길환은 더 묻지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는 제황에게 할말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단체는 소속원을 보호해야 한다. 그렇지만 무적성은 제황에게 받은 것에 비해 해준 게 별로 없었다. 이번 사건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무적성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제황을 위험에 노출 시킨 꼴이었다. 그렇기에 나길환이 이곳에 직접 온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제황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런 상황에 제황에게 중요한 증인을 마음대로 처리했다고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나길환은 더욱 충격적인 사실에 맞닥뜨린 상태다.

무려 무적성의 인물들 중 삼천교의 간세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그렇군요. 60년이니 보안에 구멍이 뚫린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요. 허허, 내가 너무 자만했군요.”

철통이라고 자랑했던 무적성의 벽에 금이 갔다. 그것은 무적성의 정보와 방어를 담당하는 오롯한 그의 책임.

자책하는 그를 두고 제황은 헬기 뒤편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박중위가 응급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창백한 표정의 그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두부에 상당한 손상을 입은 흔적이 있군요. 조금만 발견이 늦었어도 아주 위험할 수 있었습니다.”

응급조치를 담당한 밀령이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

‘두부’ 에 상당한 손상을 입힌 범인이 자신이기에 제황은 그냥 잘 부탁드린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렇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제황이 박중위를 적으로 둔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손속의 사정을 보이거나 망설였다면 캐롤라인은 분명 박중위를 이용해 제황을 압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중위의 생명 따위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으리라.

두두두두

로터음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니 이내 무적성이 보인다.

-어떻게 할 거야? 역시 그 백린이라는 놈의 흔적이 있는 일본의 천황클랜?

궁기가 물었다.

-천황클랜이라...

제황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번에 캐롤라인의 일이 없었더라면 제황은 천황클랜부터 털어볼 생각이었다. 평안남도에서 잡았던 술법을 쓰던 놈들도 천황클랜 소속이었고 예전 교토지부를 습격했을 때도 천주백가의 흔적을 찾았었으니까.

단지 제황이 그것을 미루고 백두산을 먼저 찾았던 이유는 추적을 시작할 실마리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마구잡이로 천황클랜을 때려 부수고 다닐 수도 있지만, 그것은 범위가 너무 넓다.

천황클랜의 규모는 엄청났다.

단순비교로 무적성과 비교한다면 무적성의 근 10배가량 많은 헌터를 보유한 일본 제일의 초거대 클랜이었다. 물론 무적성은 철저한 검증을 통해 정예 중의 정예만을 받아들였고 천황클랜은 수 개의 거대클랜이 모여 그 규초를 키운 이유도 있었지만, 그걸 차치하더라도 일본 정·재계와 결탁하여 성장한 천황클랜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전에 제황이 교토지부에 테러를 일으켰을 때 동철과 빠르게 치고 빠진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만약 거기서 조금 더 지체했으면 둘은 일본 자위대와 맞닥뜨렸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둘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수많은 죄 없는 일본인들이 군에 의해 희생되었을 것이다.

-아니 천황클랜은 일단 보류

-에?

-저스틴포인트의 동료들을 먼저 구한다.

제황은 생각을 바꿨다. 박중위가 지금껏 살아있었다.

그곳에 얼마나 더 살아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그들이 우선이었다.

박중위가 깨어나면 계획의 수립이 끝나는 데로 저스틴포인트로 갈 생각이다.

-그래? 그거 큰일이네.

궁기가 자못 심각한 투로 말했다.

-왜?

궁기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가 알기로 궁기에게 큰일이랄 건...

-일본에서 꼭 먹어봐야 할 간식에 대해 조사를 끝마쳤는데···.

“...닥..”

육성으로 ‘닥쳐’라고 말할 뻔한 제황은 그때부터 일본의 유명한 간식들을 주르르 읊는 궁기를 무시한 채 무적성의 헬기착륙장을 내려다봤다. 수십 명의 밀령들이 헬기착륙장에 도열해 있다.

“저들이 왜...”

저들은 단순한 밀령들이 아니었다. 모두 한 개의 밀령대를 책임지는 밀령대주들이었다. 그런 이들 수십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헬기의 바람이 밀어닥치지만, 그들은 일절 미동도 없다.

헬기가 착륙하고 나길환이 내리자 그들 전원이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러나 나길환은 그들의 환대에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싸늘한 눈초리로 그들을 둘러볼 뿐이다. 그의 눈길에 닿을 때마다 밀령대주들의 어깨가 부르르 떨린다.

“20분 후 대회의실에서 전체 회의가 있을 것이다. 각 대주는 대기할 것.”

“존명!”

평소의 나길환이라면 자신의 부하인 밀령대원이라도 가급적 예의를 지켰다. 그러나 지금 나길환의 눈은 혹한의 불꽃을 내뿜고 있다.

“저는 박중위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길환에게 꾸벅 목례를 한 제황은 박중위가 누운 구급침대의 옆을 따랐다.

그의 상세가 못내 불안했던 것이다. 그 때 죽은 듯 누워 있던 박중위의 손이 갑자기 제황의 팔뚝을 꽉 잡아 왔다.

“제...제황아!”

“깨셨어요?”

제황이 박중위의 얼굴을 바라봤다.

박중위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들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비통함이었다.

“제황아! 내가...내가!”

“일단 병실에 도착하면 이야기하죠.”

“그래.”

제황의 말에 박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제황의 손을 풀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손에 더욱 힘을 줄 뿐이다.

병실에 도착한 박중위는 간단한 검사를 마친 뒤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특별한 내상이 없는 이상 웬만한 건 치료마법으로 차유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황은 박중위에게 진짜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이미 들은바 있는 이야기도 있고 새로운 것도 있다.

일단 저스틴포인트의 대피시설에 있는 총 인원은 894명이었다. 대부분이 한국의 군인들과 헌터들이었는데 저스틴포인트를 최후에 최후까지 사수하던 이들이었다.

뒤늦게 철수하려던 찰나 오크들에게 퇴로가 차단되어 대피시설로 숨어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저스틴포인트 지하에는 적에게 고립되어도 몇 년은 버틸 양식이 있었다. 그렇기에 헌터들은 감금에 대한 패닉 보다는 체계적으로 탈출을 준비했다. 그렇게 모인 이들이 총 50명이었다. 이들은 지구로 탈출하여 저스틴포인트의 현 상황을 알리고 탈환을 위한 연합군을 요청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탈출 도중 모두 죽거나 붙잡혔다. 바로 배신자 때문이었다.

“우리 사이에도 놈들의 간세가 있을 줄은 몰랐어. 죽일 놈...크흑”

박중위는 분한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입가에서 피가 스며 나온다.

“이제 걱정마세요. 저스틴포인트는 곧 탈환될 겁니다. 그러니 안정을 취하세요.”

“아니 아니야. 그것 때문이 아니야.”

박중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를 배신한 놈이 대피시설로 이어진 식수라인을 알고 있었어. 식량은 문제가 없지만, 만약 그로 인해 물공급이 끊기고 비축한 식수가 다 떨어지면 그때는 끝이야.”

제황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박중위의 말이 사실이라면 차분히 앉아 계획을 세울 틈도 없을지 모른다.

게다가 캐롤라인이 실토한 명단 중에는 각국의 중요인물들이 많았다. 만약 그들이 이 사실을 저스틴포인트에 알리거나 혹 방해라도 한다면 더 큰 위기가 될 수 있었다.

“저만 믿으세요. 제가 구하겠습니다.”

“그들을 꼭 구해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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