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44화 (144/301)

# 144

드러난마각-1

“아직이야. 무련천궁대 소환”

비천격과 비천궁이 동시에 붉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슈욱...슈욱...슈육...슈슈슈슈슉!

하나...둘 ... 넷... 여덞... 열둘... 스물...

제황의 등 뒤로 하늘로부터 하얀 빛줄기가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앉은 빛줄기가 총 스물 그것들은 하나하나 인간의 형상을 갖추어 갔다.

검은 가죽투구와 동일한 색의 가죽갑옷. 어깨에서부터 허리를 가로지르는 묵빛 쇄갑과 한쪽 손에는 가죽보호대와 반대쪽 손에는 거대한 태궁을 허리에는 활통을 매고 있다.

후드가 달린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총 이십 인의 인영이 제황의 뒤에 도열 했다.

“무련천궁대 가주의 부름을 받습니다.”

초대가주 천강이 입었던 것과 같은 검은 가죽갑옷을 입은 스물의 궁사들이다. 그들의 정체는 비천궁과 비천격에 깃든 가주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 가주를 제외한 역대로 가장 강력했던 무련천가의 궁사들 중 경지에 이른 이들의 혼을 가주의 이름으로 현계에 강림시키는 능력이다.

“이...이게 무슨?”

캐롤라인이 놀란 듯 말을 더듬었다. 물론 제황은 그녀의 물음에 답해줄 의무도 생각도 없다. 적이 당황했다는 건 전투의 호기. 제황은 굳이 그 좋은 시간을 날려버릴 생각이 없었다.

“사냥을 시작한다.”

“존명!”

제황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스물의 무련천궁대가 일제히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고...공격해!”

캐롤라인 또한 놀라움을 뒤로 하고 단봉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10기의 천군천사가 강기가 어린 검을 곧추세우고 전방의 궁사들을 향해 돌진해 나갔다.

슈우욱! 퍼어엉! 슈욱! 펑!

천군천사와 무련천궁대의 충돌!

어둠을 가르며 검강이 충천하고 스물의 무련천궁대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좋아! 돌격!”

천군천사의 돌파가 먹힌 듯 보이자 캐롤라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이때 캐롤라인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아니 그건 사실 무지에서 오는 실수였다. 만약 그녀가 무련천궁대를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절대 이렇게 무식한 돌격 명령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강력한 갑주를 기반으로 방어에 힘썼다면 전투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흘렀을 것이다.

무련천궁대의 기본 공격패턴은 사냥이었다. 철저히 적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무리에서 이탈한 적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이다.

또한, 단순한 거리를 벌리는 것이 아닌 스물의 궁사들이 마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전진과 후퇴, 공중과 바닥을 휩쓸며 전방위 360도를 점유한 채 천천히 숨통을 끊어가는 게 기본 움직임이다.

푸칵!

천군천사 하나가 관자놀이를 대각선으로 관통당한 채 공중으로 치솟았다.

푹! 푸푸푸푹! 푹푹푹!

공중으로 치솟은 천군천사의 몸에 수십 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들어 부위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꽂혀버린다.

츠컥!

마지막을 장식하듯 스치듯이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지나치는 무련천궁대의 손에 들린 태궁의 손잡이 부분에 돋은 칼날이 예리하게 빛난다. 벌집이 된 천군천사가 땅에 떨어질 겨를도 없이 그 목은 공중을 빙글빙글 날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 나타난 작은 빈틈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줬다.

푸카칵!

다시금 천군천사 하나가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그 또한 앞 전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목을 잃었다. 가히 압도적인 공격력이다.

휘이이이... 타탁...탁...탁

무련천궁대가 빠르게 이동하며 일으키는 선풍만으로 주위 대기의 흐름이 그들을 중심으로 용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무련천궁진]

수천 년 전 무련천가의 자랑이자 적에게는 공포의 상징이던 무련천궁진이 시공을 격하여 이곳에 나타났다.

-역시 마나소모가 만만치는 않네.

제황은 쭉쭉 떨어지고 있는 보유마나량에 속으로 혀를 찼다.

무련천궁대 한 명을 소환하는데 필요한 마나는 무려 200이었다. 과거의 제황이었다면 고작해야 5기가 최선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소모 마나 또한 무시무시했다. 거의 초당 5정도의 마나를 사용하고 있는데 전체가 아닌 한 명당 필요 마나가 그 정도다.

계산상으로 대략 20명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1분 가량. 그나마 여의용혈신공과 화신체의 시너지효과로 무지막지한 마나회복율이 받쳐주기에 5분가량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이 되면 자신이 사용할 마나마저 부족하게 된다.

물론 제황이 미치거나 무련천궁대를 자랑하려 이렇게 무리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저들을 소환했을 때 머릿속으로 들어온 지식에는 고대 무련천가의 비전 ‘무련천궁진’ 에 대해 들어있었다. ‘무련천궁진’을 이루는 기본인원은 20명이었다. 물론 더 작은 숫자인 10명으로 이루어진 소무련천궁진이 있었지만 제황은 이번 실전에서 그 진면목을 확실히 보고 싶었다.

결과는 일단 대만족이다. 앞으로 레벨과 숙련도가 더 오르고 마나양이 늘어나면 유지시간은 더 길어지리라.

츠컥! 츠컥! 츠컥!

천군천사가 하나하나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마다 수십 발이 날아와 벌집을 만들어 버리고 동시에 목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덜덜덜덜덜...

캐롤라인은 벌린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압도적? 아니다. 학살? 처형? 아니...이건 그냥 사냥이다. 천군천사는 말그대로 몰이사냥을 당하고 있었다.

‘저들이 전부 7성 같지도 않은데...’

아무리 숫자에서 밀린다고 해도 이건 너무 일방적이다.

물론 천군천사가 7성에 버금간다는 것은 아니다.

강기를 뽑아낼 수 있지만 천군천사가 홀로 7성헌터를 상대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인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야수와 같은 본능에 기댄 공격은 가능하지만, 지능적인 전투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강기를 뽑을 수 있지만, 반쪽짜리에 불가하다. 그렇지만 그런 천군천사가 무려 열이었다.

절대 이런 식으로 사냥당할 이들이 아닌 것이다.

‘도망쳐야 해!’

캐롤라인은 곧장 몸을 뒤로 날렸다.

빠른 전세판단이다. 십 기의 천군천사 중 여덟이 사냥당하는데 걸린 시간은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서 도망쳐야 한다. 비록 아직 대기 중인 자신의 부하들이 천제황이라는 저 헌터의 무서움을 교단에 알리겠지만 정작 자신의 생명은 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그 행동 또한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그녀의 옆에는 구름 사이로 나타난 보름달을 등진 붉은 머리카락의 미녀가 자리해 있었다.

“어디 가니? 볼일은 끝내고 가야지.”

귓가에 속삭이듯 말한 그녀의 두 주먹에서 대기를 찢어발기는 파공성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퍼퍼퍼퍼퍽!!!

왼팔 오른팔 왼 다리 오른 다리 마지막으로 얼굴에 내려찍기를 가하자 공중으로 날아올랐던 캐롤라인은 그대로 옥상 바닥에 처박혔다.

“끄어어...”

바닥에 도장 찍듯이 처박혀버린 캐롤라인은 너무나 처참했다.

사지가 역으로 틀어진 채 입에서는 연신 붉은 피를 게워내고 있었다.

골수를 파고드는 고통에 줄줄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흐린 망막 위로 마지막 천군천사가 벌집이 됨과 동시에 목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게 보인다.

“이, 이럴 수는···.”

그 때 그녀의 곁으로 한 남자가 다가와 섰다.

쭈그리고 앉은 그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발버둥은 끝났나?”

그의 속삭임에 캐롤라인은 고통마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온몸에 오한이 드는 걸 느꼈다.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치라고 했잖아.”

“으... 으어...으어...”

캐롤라인은 부러진 사지라도 움직여 사신에게서 조금이라도 떨어지려 발버둥 쳤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온다. 아마 마지막 바닥에 내려 찍혔을 때 내장이 상한 것 같다. 이대로 방치하면 쇼크가 올 것. 그러나 제황은 그것도 용인하지 않았다.

‘빠른 재생’

제황의 손이 그녀의 복부에 닿자 입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아직 죽으면 안 되지. 물을 게 많은데.”

“으어으..사려..주..세...”

말을 할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 조각난 치아가 흘러나왔다.

“애 좀 적당히 패지. 정신 나가려고 하잖아.”

제황이 궁기에게 힐난하듯 말했다. 그러자 궁기가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감히 제황이 자신에게 적당이라고 하다니...

“너 저번에 일본놈 머리 잘못 차서 골로 보낸 건 까먹었니?”

“흠흠”

듣고 보니 할 말이 없는 제황이다.

부우우웅

그 때 건물 밑으로 요란한 엔진음이 들려왔다.

“흐음...”

그 소리에 몸을 일으킨 제황이 병원의 정문 쪽을 바라보자 자동차 한 대가 정문을 박살 내려는 듯 미친 듯이 달려나가고 있다.

“넌 일단 저거 정리하고 보자.”

***

“불어 봐.”

“삼위일신의 영광을...순교자의 피는...”

푹... 악...악...아아아악!

적막을 깨며 한 여인의 비명이 산중을 찢었다.

그리고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이 그녀의 검지의 첫마디를 분리해 버린다.

“주...죽이어!”

캐롤라인이 외쳤다.

그러나 방금 전 그녀의 손가락을 잘라낸 그림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냐.”

“삼위일신께서 영광을! 악! 아아아악!”

천천히 검지의 두 번째 마디가 썰려 나갔다.

“흑..흐어억...그냥 죽여.”

치아의 절반이 날아갔지만,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발음이 또박또박하다.

“불어.”

“크으...큭..”

“또 혀 깨물려고?”

남자의 말에 캐롤라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총 두 번...그녀는 독하게 혀를 깨물었다. 그렇지만 남자가 가진 재생스킬은 그 혀마저 재생시켜 버렸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부러진 사지도 문제지만 발목을 묶어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으니 머리로 피가 쏠려 두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그런데 놈은 이 상황에 손가락을 한마디 한마디 끊어내고 있다. 남자는 상상 이상으로 잔인했다. 마치 사냥감을 도축하듯 그 자신을 다루었다.

“스무고개라고 아나?”

“...”

츠컥...

“윽! 으아아아악!”

이번에는 중지 손가락의 첫마디가 썰려 나갔다.

“아, 안다.”

아무리 강한 믿음과 정신력의 소유자라도 더 이상 버티는 자체가 지옥이다.

“스무고개 해보자.”

남자가 그녀의 남은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단검으로 짚으며 말했다.

“이게 삼십 고개가 될지 사십 고개가 될지는 너에게 달렸어.”

제황이 눈을 들어 그녀의 발가락을 바라보자 캐롤라인은 혼백이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손가락을 모두 썰어내면 다음으로는 발가락을 자르겠다는 소리다. 긴급재생이라는 힐러스킬을 지녔으니 손가락 발가락이 다 잘려도 자신은 죽지 못한다. 손가락 발가락을 다 잘라내면? 그럼 포기할까? 그녀는 절대 아닐 거라고 단언했다.

삼천교의 요직에 있었기에 그녀는 사람의 신체가 어느 정도까지 잘려도 살아있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몸뚱이만 남아도 이 악마는 고문을 계속할 것이다.

“흐으, 흐어어...”

각성자이기에 정신력도 질기다. 혀도 끊을 수 없다. 자폭주술? 주술을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손이 온전해야 한다. 그런데 놈이 가장 먼저 한 짓은 바로 수인을 맺는 손가락 끊기 였다.

“자, 불어봐. 전부”

“흐흑...”

으스스한 그의 말에 캐롤라인은 고문당하는 동안 억눌러왔던 삶에 대한 애착이 터져 나오는 걸 느꼈다. 그러나 상대는 자신을 굳이 살려줄 것 같지 않다.

“사, 살려주세요.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요. 노예가 되라면 노예라도 되겠습니다. 제발...”

거꾸로 매달린 그녀는 구차하게 삶을 구걸했다. 본디 아름다웠던 그녀는 얼굴로 피가 쏠려 흉측하게 변했지만, 최대한 자신의 몸뚱이를 보이려는 듯 꿈틀거렸다.

“불어.”

그러나 상대는 냉혹했다.

***

푹...

“컥...허어..”

숨골에 단검을 깊숙이 밀어 넣자 이승에서의 마지막 숨과 함께 캐롤라인의 눈에서 빛이 사라져갔다.

“후우...”

몸을 일으킨 제황이 쓸쓸한 눈으로 바닥에 누워 있는 캐롤라인의 시체를 쓸어봤다.

“괜찮아?”

“응.”

피로가 몰려온다. 몸의 피로는 이미 거의 사라졌지만 이것은 정신적인 피로다.

해야 했기에 악마 같은 고문기술자가 되었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을 해체하는 건 제황의 두터운 정신스텟도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모두 해소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군가에게 맡길 일이 아니었다.

무련천가와 천주백가 사이에 얽힌 수백 년의 추적은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될 그만의 이야기였기에 직접 고문을 가했다. 정보는 많이 얻었다. 그렇지만 캐롤라인 역시 전부를 알지는 못했다.

“정말 철저하군.”

캐롤라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모두 이야기했다. 그녀는 본디 엘어스에서 태어난 삼천교국 출신이었다. 마나에 특출난 자질을 보인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전문적인 스파이교육을 받았고 그렇게 위장신분으로 지구에 잠입해 미헌터사무국에 들어갔다.

삼천교국에서 강제각성 시술을 받은 뒤 디바우저로 포장하여 미헌터 사무국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후 삼천교국에서 한 사내가 찾아왔다. 그리고 대뜸 술법이라는 걸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이도 얼굴도 남자인지도 여자인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몇 가지 술법을 가르친 그는 그대로 사라졌다. 후에 알게 된 것은 그가 일본의 천황클랜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인물로 교주 이시용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 뿐이다.

“백린”

그의 이름이다.

아무튼 그에게 주술을 배운 그녀는 그때부터 삼천교에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가 가르친 주술들은 일반적인 헌터들의 능력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그녀가 강제각성하며 얻은 능력은 마법이었지만 주술은 그것들을 보완함과 동시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그녀의 숨겨진 무기가 되었다.

“그는... 단지 실험이라고...했습니다.”

캐롤라인도 더 이상 알지 못했다.

“백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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