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42화 (142/301)

# 142

추격자-1

“제황아! 일어나!”

찰싹!

등을 때려오는 따끔한 느낌에 제황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아무리 피곤해도 1시가 뭐니! 1시가!”

“어제 레이드 새벽 4시에 끝났어!”

제황이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불을 확 뒤집어 써버렸다.

“그럼 밥 먹고 자! 밥!”

“안 먹어!”

“너 아버지한테 말한다!”

“아, 쫌!”

아버지라는 말에 제황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침대에서 비척비척 일어났다. 그 꼴을 보던 중년의 여성이 호랑이 눈을 뜨고는 외쳤다.

“또! 옷 안 갈아입고 잤어?!”

“어어, 뭐 어때.”

“어떻긴! 밥 먹고 빨래 전부 내놔. 얘는 어릴 때는 안 그러더니 나이 먹고 왜 이렇게 게을러졌어. 빨리 움직여! 아버지 들어오셔.”

“네.”

드르륵...탁!

미닫이문이 세차게 닫히며 방 안에는 제황만이 남았다.

눈을 비빈 제황이 주위를 둘러봤다. 익숙한 자신의 방이다. 침대 오른쪽 책상 위에는 데스크탑이 있고 그 옆에는 검은색 대형 행거 하나가 세워져 있다. 행거 위에는 어제 대충 벗어 둔 클랜제복이 올려져 있고 방바닥에는 대충 벗어놓은 양말이 굴러다닌다.

반대쪽 벽면 거치대에는 제황의 근래 거금을 들여 마련한 헌터용 리커브보우와 컴파운드보우가 걸려 있고 그 밑으로는 메달과 트로피들이 장식되어 있다.

“끄으으...”

크게 기지개를 켠 제황이 런닝 속에 손을 집어넣고 북북 긁으며 방문을 나섰다.

“얼른 씻고 밥 먹어.”

“네.”

욕실에 들어가 세수를 한 뒤 얼굴을 닦고 나오니 현관문을 열고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제황을 발견하더니 주먹으로 제황의 머리를 따악 하고 때렸다.

“악!”

“엄살은!”

“엄살 아니에요!”

“너 이놈! 헌터가 되면 더 부지런이 단련해야지! 무련천가의 사내가 한시가 말이 돼?”

“아우, 헌터는 몬스터 많이 때려잡고 레벨업 하면되요. 무슨 힘들게 단련이에요. 단련은...”

“이 녀석이! 꼬박꼬박 말대꾸는!”

“아버지!”

제황이 빽하고 소리치자 움찔하는 제황의 아버지다.

“왜!”

“용돈”

제황이 눈을 가늘게 뜨며 아버지에게 속삭이듯 말하자 제황의 아버지 눈가가 꿈틀한다. 그러더니 더욱 작은 목소리로 제황에게 말했다.

“치사하다. 아들”

“아버지께 잘 배운 거죠.”

“이노무시끼”

움켜쥔 주먹을 부들거리지만, 딱히 그 주먹을 쓸 수는 없었다.

지금 집안의 주요 수입은 자신이 아닌 제황이 차지하고 있으니까.

“10프로 인상”

“동결입니다.”

“쳇”

혀를 차며 돌아서는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제황이 득이 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

보글보글보글

“와, 된장찌게 맛있다.”

평범한 가족의 식사시간이다. 제황은 뚝배기 속에서 끓고 있는 된장찌개의 두부를 큼지막하게 떠서 입안에 밀어 넣고는 연신 엄지손가락을 추어올렸다. 그러자 아들내미 앞에 잔뜩 놓인 고기반찬에 볼이 불퉁한 아버지가 말했다.

“야. 넌 맨날 먹는 거 뭐 그렇게 맛있다고 하냐.”

“맛있잖아요.”

“맛은 개뿔이..”

“여보, 이따 얘기 좀 할까요?”

“아니, 뭐 내가 뭐랬다고 맛있네.”

아버지가 얌전히 밥그릇으로 시선을 돌린다.

제황의 수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입지가 확 줄어들었다.

근래에는 근처 국궁장에 소풍 나가시는 게 일과니까.

“너 그보다 요즘 수지랑 어때?”

“네? 왜요?”

“아니 수지네 엄마가 자꾸만 날 잡자고 하잖니. 나야 좋지만, 너랑 수지가 아직 어리니까.”

“흥, 어리긴 저번에 보니까 대문밖에서 아주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더만”

“캑캑!”

사래가 들린 제황이 냉수를 들이킬 때 제황의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피임은 하고 있지?”

“...”

“네.”

“그래. 너나 수지나 중학교 때부터 사귀어서 혹시 오누이처럼 변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이구나. 에휴, 아무래도 내가 수지 어머니한테 먼저 말을 꺼냈어야 했던 것 같은데.”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제황이 밥을 후다닥 밀어 넣는다.

식사가 끝난 후 한참을 전화기를 붙잡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외출 준비를 했다. 설거지를 하던 제황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디 가세요?”

“사돈댁”

“쿨럭”

사돈댁이 어딘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너 오늘 또 동철이 만난다고 나가지 말고 집에 붙어 있어. 밤에 가족회의 있을 테니까.”

가족회의라는 단어에 힘을 주시는 게 장난이 아니시다.

“예.”

“말만 하지 말고! 레이드 끝났으니까 일주일 동안 놀꺼 아냐!”

“알았어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제황을 힐끔 한 번 바라본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다녀오세요. 어머니, 아버지.”

“오냐!”

“집 잘 지켜라. 강아지”

“네. 멍멍”

제황이 개 짖는 소리를 내며 혀를 내민다.

대문이 닫히고 제황은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얼굴이 짓던 우스꽝스러운 미소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때 제황의 핸드폰이 울렸다.

딸칵

-여보세요?

-...

-여보세요?

-괜찮아?

낯선 여자의 목소리다. 제황은 충동적으로 전화기를 끊어버릴 뻔했지만 애써 그 충동을 눌러 참았다. 솔직히 말하면 전혀 낯설지 않다. 너무 오랫동안 함께 지내서 이제는 그 자신의 목소리보다 익숙해져 버린 그녀의 목소리니까.

-응, 괜찮아.

-언제까지 있을 거야?

-후우

그녀의 말에 제황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

-참 지독한 술법이야.

궁기의 말에 제황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하고도 잔인하다. 사실 침대에서 눈을 뜰 때부터 알고는 있었다.

단지 당장에 위험해 보이지 않았기에 일단 몸이 움직이는 대로 놔뒀을 뿐이다.

꿈의 내용은 아마 제황의 가족에게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펼쳐졌을 미래를 그린 것 같다. 누군가가 억지로 새긴 듯한 기억 속에는 자신이 먼저 디바우저로 각성을 하고 최근 들어 여자친구인 한수지가 각성을 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수지는 제황이 몸을 담고 있는 클랜에 들어왔다. 그리고 요 며칠 수지의 선임으로 수지를 연습 레이드에 데리고 다니며 알콩달콩 추억을 쌓은 기억도 들어있다. 참으로 잔인하게도 말이다.

-주술이 어떤 건지는 전부 파악했어?

-응. 일단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천주백가야.

-그렇군.

예상은 했었다.

제황이 알기로 대현클랜과 천황클랜 그리고 삼천교는 생각 이상으로 끈끈했으니까.

가장 중요한 건 주술에 해박한 궁기가 천주백가의 흔적을 병원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주술의 효과는 너를 네 안에 가둬버리는 거야. 그리고 네 몸은 뭐 꼭두각시로 만들던 의념체 따위로 움직이던 하려던 것 같은데...

궁기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천주백가도 제황의 존재를 인식했다. 언론에 알려질 때 이런 상황을 예견하기는 했다.

박중위의 상태 또한 조금 이상했다. 그를 모르는 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겠지만 제황이 아는 박중위는 이렇게 태평하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사지에 두 부하를 두고 결사의 탈출을 감행하여 홀로 살아남았는데 그는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뭐, 의도한 바도 있으니까.

그동안 제황이 천주백가를 쫓으며 느꼈던 건 천주백가는 너무나 은밀하게 흩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그 뿌리를 일본의 천황클랜에서 찾았지만 무적성의 정보력으로 알아본 결과 천황클랜의 수뇌부는 천주백가와 연관이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했다.

그래서 그들을 직접 찾아오게 하려고 언론에 자신을 노출 시켰다.

이제는 제대로 자웅을 가릴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련천가와 천주백가의 질기디 질긴 악연을 끝내야 한다.

-내가 여기 얼마나 있었지?

-10분

-짧네.

-그것도 이제 곧 끊길 거야. 여의 보주가 자체적으로 술법을 거의 다 파훼시켜 버렸거든.

-그런가. 아쉽군.

여의보주 아니 여의용혈신공은 그 소유자가 적대적 주술에 빠져 있는 것도 용인하지 않았다.

굳이 제황이 정신을 차리지 않더라도 알아서 깨버렸을 것이다.

-뭐 인사도 드렸으니까. 바깥 상황은 어때?

-슬슬 나와봐야 할 것 같아.

-그런가. 하는 수 없군.

그 말과 함께 제황이 여의용혈신공을 일으켰다.

단전에서 뿜어진 맹렬한 마나가 사지백해를 치달아 오른다.

화아아악! 파칭!

투명한 유리창 같은 것이 제황을 중심으로 폭풍이라도 맞은 듯 사방으로 깨져나갔다.

그와 함께 흑연과 같은 어둠이 제황을 덮쳤다. 제황은 덮고 있던 이불을 치우고 간병인용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이지만 제황의 싸늘한 눈은 한곳을 응시하고 있다. 마치 야생동물의 그것처럼 푸른빛이 흐르는 그 눈 속에 한 인영이 들어온다.

그곳에는 밝게 웃고 있는 캐롤라인이 서 있었다.

“어마, 깨버렸네요. 별로 좋지 않았나요?”

“...”

“흠, 6성 헌터들은 이것을 피하지 못했는데 역시 7성인가요. 그건 그렇고 대체 언제부터...”

쉬이익! 팡!

쿵!!!

어느 틈에 비천궁을 꺼내든 제황이 화살을 날렸고 그것은 캐롤라인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러나 화살은 마치 허공을 친 것처럼 뒤로 날아가 벽에 박혔다. 화살이 자신을 관통해 지니간 걸 본 캐롤라인이 어깨를 으쓱한다.

“너무 성급하시네요. 우리가 충분히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호호”

“내 기억을 가지고 장난친 벌이라고 해두지.”

“그렇군요. 그렇지만 신도들중에는 일부러 자청해서 그 주술의 수단이 되기도 한답니다. 행복하니까.”

캐롤라인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신도? 삼천교인가?”

“그래요. 삼위일신은 언제나 저와 함께하시죠. 보세요. 삼위일신의 은혜를 받은 자랑스러운 천국병사를...”

박중위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크으...”

링거주사를 꽂힌 부위에서 피가 튄다. 그러나 박중위는 아무 고통도 없는지 호스를 거칠게 뽑아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박중위의 시선이 딱 멈췄다. 그곳은 바로 제황이 있던 곳

쾅! 우지직!

병원침대가 반으로 접힘과 동시에 박중위의 신형이 제황의 옆에 나타났다.

엄청난 속도. 박중위의 주먹이 제황에게 벼락같이 내리꽂혔다.

퍼어어억!

그러나 박중위는 날아오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반대로 날아가 처박혔다.

슈아앙! 퍼어억!

“커억!”

벽에 처박힌 박중위의 머리가 벽에 깊게 틀어박힌다.

“끄으으...”

박중위는 그대로 침묵해 버렸다.

“가차 없네요. 가혹 행위라도 있었나요? 꽤 친한 거로 알고 있었는데”

“대답할 의무는 없군.”

“그렇죠. 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묻죠. 혹 저와 함께 가실 생각 없나요? 당신을 무척 궁금해하는 분이 계시는데.”

“굳이 안내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흐응. 역시인가요. 좋아요. 뭐 꼭 살려서 데려오라고 하지는 않으셨으니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캐롤라인의 말에 제황의 입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나야말로 묻고 싶군.”

“뭐죠?”

제황의 몸이 천천히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지금 도망치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호호,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그 말과 함께 캐롤라인의 몸도 천천히 흩어져 갔다.

“도망쳐도 상관없어. 어차피 발버둥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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