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삼천교와오크-2
“뭡니까?”
“뭐 간단해. 짬뽕”
“짬뽕이요?”
“응. 그놈들 삼천교도 주제에 떡하니 웃기게 생긴 카림의 신물을 가지고 있더군.”
그 말과 함께 박 중위가 아공간에서 몬스터의 이빨을 얼기설기 엮은 손바닥만 한 물건을 꺼내 들었다. 특이한 건 가운데 삼천교를 상징하는 세 개의 작은 십자가가 중첩된 십자가가 있다.
“웃기지?”
“그렇네요.”
신물을 받아든 제황이 그것을 손안에서 굴려봤다.
제황은 카림을 나타내는 신물을 오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중심을 보면 세 개의 커다란 이빨이 맞물려져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오크언어의 해석도 힘들고 구강구조 자체가 틀려 대화는 불가능하지만, 대략적인 단어들을 밝혀졌고 이 삼각형을 ‘카림의 눈’ 이라고 부른다고 배웠다.
‘신의 눈’
그런데 그 중심에 떡하니 삼천신교의 신물을 꽂아 넣은 것이다.
제황은 그가 죽인 오크들 중 ‘카림의눈’을 손에 쥐고 죽어가던 것들을 부지기수로 봤다. 죽기 직전까지 놓지 않는 물건인데 그 안에 변형된 십자가를 꽂아 넣었다. 그리고 오크들이 그것을 용인한 것이다.
“삼천교 2대 교주 이시용이 오크로드 카룩을 삼천의 아들 중 하나로 인정했다더군.”
삼천교는 오크들의 토착신앙과 삼천교리를 융합시켰다.
“참 편리한 종교군요.”
“뭐 걔들이 쓰고 있는 교리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니까.”
삼천교의 교리는 제황도 대충 안다. 엘어스의 빌런들 중 가장 골치 아픈 놈들이니만큼 기본적인 것은 숙지하고 있다. 삼천의 아들이라는 것은 지구, 엘어스, 다크어스 세 개의 차원을 대표하는 삼위일신의 아바타를 말한다. 삼천교국의 초대교주인 이명복은 이것을 가지고 자신이 지구차원을 대표하는 아바타로 선전했다. 대한민국의 각종 종교기업 교리들을 제멋대로 짬뽕하여 태어난 것이 삼천교의 교리였다.
“인간들은 그렇다 치고 오크로드가 그걸 순순히 받아들입니까?”
“그 대가로 삼천교가 오크들의 문명발전을 가속화시켰지. 뭐 오크 로드 입장에서는 기술전수만 받고 내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삼천교는 그사이 오크들을 삼천교로 오염시켰어. 그렇지만 그것도 일정 이상은 힘들다고 하더군. 오크로드가 엄청나게 똑똑하니까.”
“그렇군요.”
오크로드라면 바로 그 녀석일 것이다. 몬스터의 뼈로 된 거대한 옥좌에 앉아 있던 오크, 제황이 낼 수 있는 최고의 공격력을 담은 날린 화살을 잡아낸 그놈밖에 없다. 제황은 카룩이라는 그 오크로드가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강한 것은 둘째치고 머리도 뛰어나다.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신에 대해 믿음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크 주제에···.
똑똑
그때 병실문을 노크하며 한 여성이 들어왔다.
“손님이 계셨네요.”
늘씬한 몸 위에 자색 롱코트를 걸친 붉고 긴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이다. 그녀를 따라 두 명의 보디가드가 더 들어섰다.
“아, 캐롤라인 님.”
박중위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황아. 이분은 미헌터사무국 인베이젼팀의 캡틴이신 캐롤라인이라는 분이야. 이분 덕분에 살았지. 케롤라인님 이쪽은...”
“아, 알고 있어요. 요즘 한창 전 세계 헌터계가 주목하는 화제의 인물을 제가 모를 수 없죠.”
그 말과 함께 캐롤라인이라는 여인이 제황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2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하얀 피부에 오뚝한 코 짙고 깊은 눈과 푸른 눈동자 갸름한 얼굴에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전형적인 백인 미녀다.
“필살님.”
“천제황입니다.”
제황이 그녀의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필살’ 같은 낯간지러운 이름 따위 듣고 싶지 않다. 그건 그렇고 캐롤라인이라는 이 여자 한국어가 무척 유창하다. 번역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거의 원어민 수준.
“필살이 뭐냐?”
박중위가 두 눈을 꿈뻑거리며 제황에게 물었다.
엘어스에서 돌아온 얼마 되지 않아 제황의 활약상을 모르는 박중위였다.
“호호, 이런 거죠. 저기 여기 사인 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캐롤라인이 제황에게 종이와 사인펜을 공손히 건넸다. 무려 미헌터사무국의 팀을 이끄는 여자가 한낱 한국의 헌터에게 정중히 사인을 요청한다. 박중위가 놀랄 틈도 없이 제황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제황은 무심한 손길로 사인을 휘갈긴 뒤 그녀에게 종이와 사인펜을 되돌려줬다. 사인쯤이야 과거에 숱하게 해봤다. 사인지를 받아든 캐롤라인이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그것을 소중히 받아 챙긴다.
“정말 감사해요. 생각 같아서는 사진이라도 같이 찍고 싶지만 그건 싫으시겠죠?”
“네.”
“그럴 거로 생각했어요. 무려 20대 초반의 7성 헌터치고는 너무 드러난 정보가 적으셔서...”
“7성?!”
깜짝 놀란 박중위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 6성입니다.”
“아니 뭐 6성이든 7성이든...허참”
살면서 6성도 본 적 없는 박중위는 아직 자신의 막냇동생 같은 제황이 천연덕스럽게 6성이라고 말하자 자신이 놀라는 게 이상한 건가 하고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흐뭇한 얼굴로 사인지를 보디가드에게 넘긴 캐롤라인이 말했다.
“답례로 귀찮은 것들을 치워드릴게요.”
“예?”
캐롤라인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갸우뚱 할 때 병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꺅! 이 손 놓지 못해! 이거 성희롱이야!”
“진득하게 물러났으면 이럴 일 없잖습니까. 이곳은 접근제한구역입니다.”
“이봐요. 난 대한민국 국민들의 알권리를 대표해서 온 거예요. 한 번만 더 손대면 성폭력으로 고소할 거예요. 나 XXX 일보 기자야!”
“더 이상 경고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거 다 녹취 중이에요! 협박하지 마세요!”
“경비! 끌어내!”
“꺅! 손대지 마! 천제황씨! 천제황씨! 살려주세요! 이 사람들이! 천제황씨!”
우당탕
여성의 비명소리가 복도를 진동하는데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많이 달고 오셨더라고요. 한국 기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죠.”
“감사합니다.”
어떻게 자신을 알고 뒤쫓아 왔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제황이 무적성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저 기자들 때문이다.
“아니에요. 그보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혹 지금 무적성 소속으로 오신 건가요? 아니면 개인 차원으로?”
“개인 차원입니다.”
“그렇군요. 흠”
제황의 대답에 캐롤라인이 뭔가 고심하는 듯 턱을 손으로 짚었다.
“사실 제가 이곳에 온 건 조만간 삼천교의 테러가 있을 수 있다는 첩보가 있어서예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이 병원은 저희 인베이젼팀과 요원들이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한국군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박중위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닙니다. 이해해요. 삼천교가 대한민국 권력자들과 면밀한 관계에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요. 저희 미국에 있어서 박중위님의 증언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박중위님의 증언이 있어야 저스틴포인트 탈환작전을 실행할 수 있으니까요. 그보다 제황님.”
“네.”
“그런 의미에서 부탁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뭡니까.”
제황이 반문하자 캐롤라인이 손짓으로 보디가드들을 내보냈다.
“괜찮으시면 며칠 동안 이곳을 지켜주실 수 있나요?”
“네?”
“사실 저는 박중위님의 신상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근래 첩보에 의하면 저희 미헌터사무국에서 파견된 요원들의 신상과 이동동선이 저들에게 모두 파악 당하고 있다 하더군요.”
“그 말뜻은 지금 이곳에 배치된 이들 중 삼천교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사실 그래서 제가 박중위님께 가장 믿을만한 이를 추천해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미안하다.”
박중위가 말했다. 아무리 친분이 있다 해도 상당히 위험한 일에 연루시키는 것이다````.
“저희 미헌터사무국 차원에서 적절한 보상이 있을 겁니다.”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차라리 무적성에 지원을 요청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무적성의 밀령대라면 미헌터사무국의 요원들보다 믿을만하리라.
그러나 캐롤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저는 이번 일을 기회로 저희 미헌터사무국에 잠입해 있는 삼천교를 색출할 생각입니다. 무적성의 명성은 익히 알지만 무적성이 본격적으로 나서면 그들 또한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일종의 미끼입니까?”
제황이 박중위를 턱짓하며 말했다.
“네.”
“나 또한 동의한 부분이야. 그리고 내가 아는 네 실력이라면 충분히 믿을만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박중위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부탁이 아니더라도 삼천교의 실마리라면 제황이 자청해서 나섰을 것이다. 게다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1소대의 생존자가 저스틴포인트에 있다고 한다.
“좋습니다.”
그날 저녁 박중위의 병실에는 박중위와 제황만 남았다.
병원을 돌며 경비상황 등을 둘러본 제황은 박중위와 간단한 저녁을 먹은 뒤 잘 준비를 했다.
캐롤라인은 꼼꼼한 성격인지 제황이 사용할 간단한 칫솔이나 수건등을 가져다 줬다.
“하하, 이거 검색할수록 재미있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그만하십시오.”
박중위는 캐롤라인에게서 얻은 태블릿에서 제황과 관련된 것들을 검색하고는 놀라워했다.
이전에 보여줬던 능력들도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뿐이었지만 검색을 통해 나오는 것들을 보면 이전에 보였던 것은 단순한 맛보기로 보일 지경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박중위 정도의 위치라면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는 위치에 선 제황이었다. 그런데 제황은 그런 기색은 단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은 우쭐해 하거나 혹은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해 은연중 내세울만도 하건만 제황은 한결같았다.
“인기 좋겠는데? 아까 보니까 캐롤라인 특무관이 너 보는 눈도 예사롭지 않았고...”
“관심 없습니다.”
“뭐? 눈이 삔 것 아니야? 저 정도 미녀인데 관심 없다고?”
“네.”
“허참, 하긴 예전에 민경이가 너한테 기웃거릴 때도...”
박중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민경을 떠올렸다. 아니 민경뿐 아니라 소대 안의 여자들은 모두 제황에게 관심을 보였었다. 그렇지만 제황은 그녀들에게 전혀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창밖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제황이 말했다.
“시답잖은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음? 뭐지?”
“저 캐롤라인이라는 여자는 믿을만합니까?”
제황의 물음에 박중위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왜? 이상해?”
오히려 뭐가 문제냐는 듯 반문하는 그의 물음에 제황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는 가장 믿을만해.”
“그렇군요.”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밤 9시가 지나자 제황은 병실의 불을 끄고 병실 한쪽에 비치된 보호자용 침대에 누웠다. 불이 꺼지자 몇 마디 잡담을 나누던 박중위가 일찌감치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박 중위와 같이 잠이 들었던 제황의 눈이 슥 하고 떠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박중위를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일단 당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