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필살-2
레이드 경보가 끝난 후 제황은 해당 사건을 그대로 경찰에 넘겼다.
공격대를 적당히 두들겨주며 흑검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는 내심 ‘흑검’ 정영춘이 칼이라도 뽑아 들고 덤벼주기를 바랐던 제황이다. 공격대의 행동에 모든 책임을 지는 공격대장을 반병신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이런 일이 발생한 책임은 다크나이트 클랜의 클랜마스터 흑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무전기로 빽빽 소리 지르던 흑검은 끝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드론을 통해 사건 현장을 모두 봤기에 나타나 봤자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게 제황이 생각하는 추측에 가까운 진실이다.
경찰에서는 그들을 민간인 보호법으로 모두 구속했다.
헌터는 레이드에 있어서 민간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본디라면 흐지부지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제보자가 워낙 고위 헌터다 보니 경찰도 위 사건은 신중하게 다뤄 법의 심판을 받게 했다.
구속된 헌터들이 소속된 다크나이트 또한 의외로 고분고분 수긍했다.
물론 그들이 착해서 수긍했던 것은 아니다.
다크나이트 클랜이 크게 반발하지 못했던 건 전혀 의외의 사건 때문이었다. 현장 주변에 있던 민간인들이 이 일을 모두 핸드폰으로 촬영했고 그것을 인터넷에 올렸다. 비록 조악한 촬영환경과 한정된 구도로 인해 제대로 된 영상은 아니었지만 통제하기도 전에 올라가 버린 그 영상들로 인해 다크나이트 클랜이 대처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제황에게도 전혀 새로운 골칫거리를 안겨주게 되었다.
-‘필살’ 의 주인공 나타나다. 6성의 위용!
-‘필살’은 무적성의 6성헌터였다.
그동안 유툽에 돌아다니던 동영상 중 ‘필살’ 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있었다.
활 한 자루만을 든 채 오크의 물결을 막아내던 극한에 이른 활 솜씨의 헌터 동영상이다.
영상 속의 주인공은 뒷모습뿐이었기에 그 당사자가 누구냐는 사람들의 입에 의견이 분분했었다. 그러다가 이번 영상이 공개되면서 눈썰미 좋은 사람들이 제황과 그 ‘필살’ 의 영상을 비교 분석한 뒤 80프로 이상의 확률로 두 인물이 같다며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게 발단이 되었다.
물론 제황이나 무적성은 딱히 그에 대해 해명하거나 공개하지는 않았다.
유명세가 스킬 ‘신위’ 에 도움이 된다지만 대중의 관심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제황은 금세 잊힐 거라고 예상했고 무적성에서도 제황의 뜻에 따라 침묵을 지킨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여론의 관심이 뜨거워지자 각 언론사는 제황의 신상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정보가 하나둘 세간에 밝혀지기 시작했다.
제황은 과거에 양궁유망주였다. 단순한 유망주도 아닌 거의 특급유망주 소리를 듣던 그였기에 이름과 활이라는 연관검색을 통해 제황의 정보를 알아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초신성 양궁유망주의 화려한 변신
-대한민국 최연소 고위 헌터 나타났다.
국내 제1 클랜인 대현 클랜이 무너지고 제2 클랜인 다크나이크 클랜이 지저분한 사건에 휩쓸리며 대한민국 헌터 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은 제황이라는 헌터를 보도함으로 그 사건을 덮으려 연일 제황에 관한 이야기를 확대재생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방점을 찍은 건 한 언론사에서 제황에 대한 특집을 보도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번 세종시에서 발생한 게이트 사건에서 제황이 보인 능력을 가지고 집중 분석을 했다. 그리고 그 특집보도가 나간 후 그것은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로 뻗어 나갔다.
-우리 호주에도 이런 헌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ㄴ부럽냐. 우린 켈리가 있잖아.
ㄴ그 병신은 이제 늙어서 나오지도 않아. 새로운 영상 업로드도 1년째 감감무소식이야.
ㄴ[필살의 무삭제 동영상.avi] 부럽지?
ㄴ위에 글 삭제해라. 남에 영상에서 타 영상 홍보하냐?
-갓 한민국 파이팅 날아오르라!
ㄴ그런데 너무 조작된 느낌이 난다. 역시 날조의 대국 wwwww
ㄴ 맞아. 이런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도 많다. 자국 헌터 물고 빠는 것 하루 이틀인가.
ㄴ네 다음 쪽바리···. 뇌네 망상 오지고요.
-조작이 아니라면 왜 본인이 나오지 않지? 그거 하나로 충분한 것 아냐? 그리고 갓 20살 초반에 6성? 웃기지도 않아? 무슨 5살 때부터 레이드 뛰었나? 보통 6성이면 만렙은 찍어야 정상이잖아.
ㄴ 맞아. 한국프로그램의 이번 보도는 너무 신중하지 못했어. 디바우저라는 특수성을 고려해도 6성이라니···. 희망 사항 아니야?
각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한국의 네티즌들은 과거 ‘필살’ 의 동영상을 증거로 내밀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 또한 조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식의 자국헌터 홍보 영상이 넘쳐나는 실정이었고 그런 짓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일본의 극우방송 들이다.
그렇게 세계적인 동영상 사이트에서 위의 한국프로그램에 대한 갑론을박이 커질 즈음 새로운 특집 보도가 나왔다. 특히 이번에는 특별히 다크나이트 클랜의 레이드 영상도 포함되었다고 알려졌기에 세계인들이 그 특집보도에 주목했다.
“현재 유튭 최대 논란거리는 단연 대한민국에 나타난 넘사벽급의 극딜 원거리 헌터 천제황 헌터인데요 그가 가진 능력에 대해 현재 서원대학교 헌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신 장익수 헌터님께서 짤막하게 요약해 주시죠.”
사회자의 말에 감색양복을 걸친 넉넉한 인상의 수염남자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최대사거리가 시쳇말로 넘사벽입니다.”
“호호호깔깔깔!”
그의 말에 웃음소리가 요란하다.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줄어들자 사회자가 말했다.
“그건 너무 짤막한데요? 그냥 제가 영상으로 설명해 드리죠.”
커다란 화면에 세종시의 지도가 뜨고 게이트가 발생한 장소들과 몬스터들의 출몰장소 그리고 제황의 위치와 함께 거대한 반원이 그려졌다.
“최대 공격 반경 3.2km 라는 측정결과가 도출됩니다. 장교수님 그런데 최대사거리라는 말은 어폐가 있지 않습니까? 레이드 당한 몬스터들을 모두 분석한 결과 공격당한 곳은 모두 치명적인 급소이니만큼 최대사거리가 아닌 유효사거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뭐···. 맞습니다. 일단 그 부분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지만 드러난 팩트가 있으니 다시 말하겠습니다. 유효사거리가 대략 반경 3㎞입니다. 이건 같은 활을 쓰는 헌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참 분분한데요. 드러난 상황을 종합하면 이 ‘천제황’ 이라는 헌터의 공격반경이 3㎞에 달하는 건 둘째치고 오차반경이 50센티 내외라는 뜻이 됩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4티어 몬스터들 단 한발로 침묵시킨 경우도 있다는 거죠.”
“세간에서는 저희 특집프로그램을 가지고 조작이다. 혹은 과도한 자국 헌터 부풀리기가 아니냐 하는 논란이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 현 유성 클랜의 클랜 마스터이신 6성 헌터 ‘신궁’ 조필현님께서 나와서 설명해 주시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스튜디오의 뒷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건장한 체형에 얼굴에는 긴 자상이 있는 호남형의 중년인이다.
“안녕하십니까. 유성 클랜의 클랜 마스터 조필현입니다.”
커다란 스크린에 유성 클랜과 신궁 조필현에 대한 소개가 5초가량 펼쳐졌다.
제황이 나타나기 전까지 한국 내에서 활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헌터들 중 가장 강하다고 알려졌던 이였는데 이번 특집을 기획한 NKBC가 어렵게 초대한 인물이다.
“바쁘신 와중 어려운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본론으로 넘어가서 조필현님께서 보시기에 천제황 헌터의 능력은 과도하게 포장된 건가요?”
사회자의 물음에 유성클랜의 클랜 마스터 조필현이 답했다.
“일단 같은 활을 사용하는 헌터의 입장에서 천제황헌터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활이라는 무기가 그 특수성으로 인해 총기에 밀려 배제되어가는 이때 전 세계에 활의 우수성을 입증한 좋은 사례라고 봅니다. 아무튼, 본래 이야기로 넘어가서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천제황 헌터는 현재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오히려 과소평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스튜디오 안의 방청객들이 웅성거린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 이 프로그램을 시청 중인 커뮤니티 채팅창도 후끈 달아올랐다.
소란이 조금 잦아들자 사회자가 말했다.
“오히려 과소평가 되었다고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말에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도 출현을 결심하며 NKBC에서 보여준 영상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네. 일단 가장 큰 반대의견을 보자면 아이템과 헌터의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면 3km 정도는 충분히 화살을 날릴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건 사실입니다.”
“아. 가능한가요?”
“네. 아이템 화 한 무기는 기존의 일반적인 무기들과는 비교를 불허할 강력함을 자랑하게 되죠. 제가 사용하는 활 또한 최대사거리는 5km가량 되죠. 한 마디로 활이 버텨주기만 한다면 그 이상도 쏘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앞서 말씀하신 말과 상충 되는 것 아닙니까? 누구나 쏠 수 있다면 역시 그의 능력은 너무 과장되었다?”
“아,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건 마치 옹알이 시작한 갓난아기가 프로육상선수를 이긴다는 말과 똑같죠.”
“하하하하”
스튜디오 안에 폭소가 터진다.
“방금 조필현 헌터께서는 천제황 헌터의 허구를 밝힌다며 실제로 3km 저격을 보여준 일본의 켄타라는 헌터를 갓난아기로 표현하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사회자의 말에 조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헌터도 저격 관련 스킬을 가진 건 맞는 것 같은데 그와 천제황헌터를 비교하라면 저는 아예 논할 가치도 없다고 하고 싶군요. 만약 제 말이 억울하면 저희 클랜에 한 번 정중히 초대하죠.”
“하하하...”
스튜디오에 다시금 웃음이 터졌다. 최근 일본의 한 헌터가 3km 저격을 보여준다면서 시연한 영상이 화제가 되었었다. 화면이 편집된 감이 조금 있었지만, 그는 연속사격으로 3km 저격을 보여줬다. 그 영상이 짤막하게 나간 후 사회자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이 프로를 보고 계실 타케야마 켄타 헌터님을 위해서 저희 NKBC에서 이번에 새롭게 입수한 영상 보여드리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스튜디오가 어두워지고 스크린에는 이번에 NKBC가 새롭게 입수한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45도 각도로 활을 든 채. 붉은 강기를 줄기줄기 흘리는 영상이었다. 이내 그의 활에서 터져 나오는 후폭풍에 드론이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잠시 후 나타난 건 몸에 강제로 터널이 개통되어 버린 ‘그레이트다크혼’ 이었다. 자극적으로 편집하지 않더라도 강렬한 임팩트를 보이는 모습이다.
“조필현 헌터님께서는 저 영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네. 저건 7성 헌터들만이 사용한다는 오리지널 강기입니다. 서구권에서는 오러라고 부르지만 저희는 강기라고 하죠. 제가 천제황 헌터가 과소평가 되었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중에 알려진 것으로 그는 지금 6성 헌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필현님의 말씀은 그가7성이라는 말씀입니까?”
“예. 그는 7성입니다.”
생방송은 곧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충격이 컸는데 추가로 공개한 영상을 영상전문가가 분석한 결과 영상에는 단 1그램의 조작도 없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주둥이 나불대던 놈들 모두 나와라. 뒈졌냐?
ㄴ걔들 전부 지네 2Ch에 모여서 정신 승리 중이다.
ㄴ이상하게 인터넷이 깨끗하다 싶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
-FOX에서 자막만 입힌 것 방송 중이다. 형제들...
ㄴ쩐다. 저걸 뭐라고 말하더라?
ㄴ오러에로우... 같은 7성헌터들보다 한 끗발 높게 쳐주는 능력이다.
ㄴ이제 20대 초반에 오러에로우라... 앞으로의 성장을 생각하면 후덜덜하구나.
-미국 어벤저스 클랜에서 곧 영입한다더라.
ㄴ그거 신빙성 있는 소식이야?
ㄴ웃기지 마라. 한국의 무적성 소속이라더라. 무적성 모르냐?
ㄴ무적성이 별거냐. 돈을 쏟아부으면 안 흔들릴 헌터가 어디 있냐.
-천제황 헌터, 우리 뉴질랜드로 와주세요.
ㄴ어디 뉴질랜드 따위가... 스페인의 미녀들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ㄴ농담 아니고 지금 전 세계 클랜들이 한국으로 향하는 중이다.
***
“후우욱...”
호흡을 가다듬은 제황이 천천히 시위를 당겼다.
꾸우우우웅
활을 당기면서 나는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리가 시위에서 울린다.
“후우...”
천천히 시위를 놓은 제황이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금 시위를 잡아당겼다.
꾸우우우웅
개인수련실에 울려 퍼지는 건 오직 활을 잡아당기는 소리와 제황의 호흡 뿐이다. 일체의 모든 소음이 배제되어 극한의 집중력으로 시위를 잡아 당긴지 벌써 3시간째다. 지겨울 법도 하지만 제황은 한번 한번 당길 때마다 심혈을 기울인다.
“오와! 오왓! 세상에!”
그때 궁기의 방정맞은 목소리가 제황의 명경지수를 와장창 박살 내버렸다.
“좀 조용히 볼 수 없니?”
“뭐래. 지금 17편 정주행 중이야. 말 시키지 마. 세상에 언니가 사실은 남자였다니!”
“그딴 막장 드라마에 맞장구쳐줄 생각 없으니까 나가서 봐줄래? 확 뺐어 버린다?”
“쳇...알았어. 조용히 할게. 쳇쳇”
개인수련장 한쪽에 기대앉아 깔깔거리던 궁기가 볼을 퉁퉁 부풀리며 들고 있던 테블릿을 소중히 가슴에 끌어안는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제황이 다시 시위를 붙잡았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은 채 특수제작된 연습용활을 잡아당기는 건 매우 조심해야 했다. 아무리 헌터의 기본스텟이 있다고 해도 마나를 사용하지 않으면 당기기 힘들 정도로 이 시위는 무거웠다. 자칫 호흡조절을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꺄하하! 어떻게 저걸 못 알아봐! 병신”
우지직! 팅!
궁기의 웃음소리에 당기고 있던 활의 시위가 끊어지고 날개 부분이 꺾여 버렸다.
“훅...후욱 젠장...”
제황은 엉망이 된 활을 옆으로 던져 버렸다. 그곳에는 망가진 연습용활들이 널려 있다. 오늘로 벌써 세 개의 활을 망가뜨렸다. 아무리 한계까지 강화시킨 연습용활이라도 제황이 마나를 주입하면 이렇게 박살나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