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38화 (138/301)

# 138

필살-1

이것이 바로 국가에서 헌터들에게 윤리의식을 강요하는 이유다.

헌터는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들이니까.

제황의 손에 드론의 저장장치가 들어가자 분위기가 싸하게 변했다.

그가 저것을 어떻게 이용하냐에 따라 다크나이트 클랜 이름에 먹칠을 할 수도 있다.

그때 그들의 헤드셋으로 관제실의 지령이 내려왔다.

-다크혼 30개체 출현! 210도 방향 3㎞에서 제2공격대로 접근 중! 위치 사수 요망!

충격적인 소식에 헌터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10마리 정도라면 피해 없이 막아내지만, 그 이상은 위험하다. 그런데 관제실에서는 위치를 사수하라 명령한 것이다.

문제는 지금 그들의 앞에 적대적인 6성 헌터도 버티고 있다는 것.

한 여성헌터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린 몬스터와 싸워야 해!”

“그, 그래. 우린 몬스터와 싸워야 해!”

적대적인 6성헌터와 싸우는 것보다는 몬스터와 싸우는 게 더 나으리라 판단한 헌터들이 하나둘 소리쳤다.

그러나 제황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에게 다가선 제황이 손을 내밀었다.

“내놔.”

“뭐...뭘”

“헤드셋”

제황의 말에 그녀는 자신의 헤드셋을 벗어 제황에게 넘겼다.

그러자 제황은 헤드셋을 켠 뒤 말했다.

-헌터번호: xxxxx 6성 헌터 천제황 이 시간부터 독립작전권 행사를 통보한다.

-어...어엇!

관제실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제황은 헤드셋을 여자에게 획 던졌다.

제황은 독단으로 독립작전권을 선포했다.

그는 6성임과 동시에 국내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가진 무적성의 헌터다. 물론 제황은 무적성에 기댈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다크나이트의 클랜마스터가 7성의 흑검?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오면 갈아 마셔 버릴 것이다. 이따위 정신상태를 가진 놈들의 우두머리니까.

차라리 그리되면 제황의 ‘신위’ 도 상승할 테니 일석이조다.

-궁기

-응!

-이 근방에 모든 몬스터를 찾아줘.

-좋아!

어느새 하늘 높이 날아오른 궁기가 사방을 돌며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몬스터들을 제황의 궁기안에 전송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든 몬스터들이 록온 되었을 때 제황의 비천궁이 하늘을 향해 겨누어졌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작게 중얼거린 제황이 이윽고 비천궁의 시위를 놓았다.

‘춤추며 폭발하는 화살!’

파팡! 쉬이이익! 팡! 쉬익!

첫 화살을 쏨과 동시에 곧바로 두 번째 화살을 공중으로 쏘아올린다.

제황이 화살을 발사할 때마다 그의 몸에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한발 한발에 담긴 강력한 에너지의 발출, 게다가 그가 발사하는 화살들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 마치 지대공 미사일처럼 공중으로 뻗어 올라가 마치 목표물을 포착한 것처럼 검은 궤적을 만들며 씨잉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마침내 비천궁을 거둔 제황이 어깨를 가볍게 돌리고 있을 때 헌터들의 헤드셋으로부터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 1공격대 1조! 다크혼 14개체 침묵! 어디서 지원 들어온 거야!

-제 3공격대 3조! 다크혼 18개체 침묵! 화살! 누구야! 레이드 난입 확인 요청한다!

-경계 중이던 다크혼 괴멸!

-관제실에서 알린다! 남서 방면 전 몬스터 침묵! 이...이런... 엇!

관제실 요원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노기 어린 정영춘의 목소리로 바뀐다.

-이런 빌어먹을! 너 이 천둥벌거숭이! 감히 다크나이크 클랜을 무시해!

무려 7성의 헌터가 분노했지만, 제황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피식 웃으며 주위에 있는 헌터들에게 말했다.

“이제 신경 쓸 몬스터 없지? 마저 이야기해 볼까?”

“으...으윽”

제황의 무시무시한 신위에 사람들이 질려 버렸다는 듯 물러났다.

이 6성 헌터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깨달은 것이다. 자신들이 몬스터를 레이드 한다는 핑계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자 단숨에 근방에 있는 몬스터들을 싹쓸이해버린 것이다.

악몽이라면 빨리 깨고 싶은 심정이다.

팟!

그때 제황에게 첫타로 옥수수를 털린 제2 공격대의 공대장 김성준이 벌떡 일어나더니 제황에게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공격대의 힐러가 제황 몰래 그에게 회복스킬을 사용했고 정신을 차린 그는 엎드린 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쉬이잇...

그의 온몸이 마나에 휩싸였다. 그의 필살기인 ‘폭신퇴’다.

“죽어!”

짤막한 외침과 함께 그의 몸이 제황과 충돌했다.

“좋아!”

헌터들에게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자신들의 공대장 또한 5성의 헌터, 아까는 워낙 얼떨결에 머리를 두들겨 맞아 쓰러졌다지만

상대는 원거리를 장기로 삼는 데미지딜러다. 이렇게 근거리에서 습격하면 근거리딜러인 공대장이 극단적으로 유리하다.

퍼어엉!

‘얕다.’

상대의 몸에 폭신퇴를 먹인 것을 알았지만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는 5성 헌터와 6성 헌터의 차이를 알고 있다. 방심해서 상대에게 공간을 주면 자신은 금세 아까의 꼴이 될 것이다. 게다가 방금의 공격이 이상하리만치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정타가 아닌 것이다.

“후욱!”

그러나 폭신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대와 몸이 충돌함과 동시에 그의 허리가 과도하게 꺾이며 축이 되었던 다리로 눈앞의 사내를 돌려 찍었다.

콰콱!

두 번째 공격은 제대로 먹혔다. 이제 하나 남은 마지막 공격이다. 그는 전신의 마나를 모두 쥐어짜 어느새 오른손에 뽑아 든 단검에 집중했다. 몬스터의 강력한 방어막을 전문적으로 뚫기 위해 특수주문한 메일 브레이커다. 이것이 그의 폭신퇴의 정점! 그렇지만 그는 마지막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돌려차기를 마친 다리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 들어왔기 때문.

츄리릭 빠각!

“으아악!”

발목을 꺾으며 타고 오른 활대에 기형적으로 난 뿔이 그의 허벅지를 찌름과 동시에 분질러 버렸다.

푸쉭!

허벅지의 대동맥이 파열되고 굵은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잘 봤다. 헛짓거리”

차갑게 한마디 남긴 제황은 활대에 꽂힌 남자를 쓰레기 마냥 옆으로 떨쳐 버렸다.

“아윽! 아아악!”

남자가 바닥을 구르자 힐러 여성이 달려와 그의 허벅지를 지혈하기 바쁘다. 그녀의 눈썹이 꿈틀한다. 허벅지의 상처는 그녀의 스킬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지만, 남자의 발목은 단순회복으로는 치유가 힘든 복합골절이 보였다. 재생스킬이 아니면 이 자리에서 치료가 불가한 부상. 이건 분명 노리고 한 짓이다. 제2 공격대장인 김성준은 촉망받는 인재였다. 이 부상으로 그는 최소한 3달 병원 신세 확정이다.

“당신! 이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욧!”

그녀가 외쳤다. 그녀는 김성준이 제황에게 폭신퇴를 먹이는 걸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스킬의 시전자인 김성준은 스킬이 먹혔다고 생각했지만, 제황은 그 첫 몸통박치기를 활대를 이용해 받아냄으로 수직의 회전에너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를 2연타 격인 내리찍기를 휘감는 데 사용해 허벅지까지 찍어냈다. 정말 절묘한 차력미기(借力彌氣)다.

“강자의 아량이라도 바라는 건가?”

“6성의 헌터라면 당연히!”

“너희는 그 아량 민간인한테 베풀었나?”

“우리도 목숨을 거는 레이드야! 항상 민간인을 배려할 수는 없잖아!”

“그 말을 아까 죽어간 사람들 앞에서 해보지그래?”

제황의 이죽거림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민간인이든 헌터든 목숨의 무게는 똑같다고 배운다. 비록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그때 모두의 헤드셋이 요란하게 울림과 동시에 비상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치익! 돌발상황 발생! 게이트 경보 5급으로 상향! 그레이트다크혼 출현! 북동쪽으로 빠르게 진행 중! 무리 개체 수 20개체! 모두 비행형이다!

관제실에서 날아온 무전음에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레이트다크혼, 참 성의 없게 이름 붙인 것 같지만 그레이트다크혼이라는 건 ‘그레이트’ 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대한 몸과 강력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그레이트다크혼은 무리를 이끈다. 거기에 모두 비행형이다.

우우우웅

요란한 벌의 날갯짓 같은 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상공에 검은 점들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마치 이전에 제황이 날린 화살의 주인을 찾듯 곧장 제2 공격대 쪽으로 날아왔다.

“피해!”

“관제실에서 지령이 없었어!”

공격대는 혼란에 빠졌다. 본디라면 일찌감치 현위치를 포기했어야 정상이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내리는 것은 공대장이다. 공대장은 괜히 공대장이 아니다. 공대의 절대명령권을 가짐과 동시에 모든 책임을 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섣불리 나서서 명령을 내린 뒤 일이 잘못되면 명령을 내린 이가 뒤집어쓰기에 모두가 나서기를 주저했고 그것이 화근이 되어 그레이트다크혼에게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것들이 진짜...”

그러나 제황은 지금 심기가 무척 불편했다. 그것은 자꾸만 방해를 해대는 훼방꾼(?)들 때문이었다.

제황이 시선을 돌려 멀리 날아오고 있는 다크혼킹을 노려봤다. 평범한 다크혼들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몸과 수십 개의 뿔이 온몸을 뒤덮고 있다. 느린 듯 보이지만 어느새 수박씨만 하던 크기가 주먹만 하게 커졌다.

“방해하지...마라.”

비천격을 꺼내 비천궁에 걸었다. 한 대의 애기살을 밀어 넣은 제황이 시위를 당겨 만궁을 만들었다. 최대한 두 다리를 벌려 자세를 굳힌 채 여의용혈신공을 끌어올렸다.

츠츠츳

제황의 두 발을 시작으로 뻗어 올라간 붉은마나가 제황의 온몸을 불태우듯 뿜어진 뒤 일제히 비천궁에 모여들었다. 천천히 회전하듯 화살을 타고 오른 마나가 이내 하나의 거대한 창을 만들어낸다. 붉은 물이 뚝뚝 떨어 내릴 듯 선명한 강기의 선형에 주위에 있던 헌터들이 놀라 외쳤다.

“강기!”

이전까지는 그 속도가 워낙 빨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니 화살에 입혀진 강기를 실제로 본 이가 이 자리에 없다. 그들의 클랜마스터인 ‘흑검’ 정영춘이 강기를 몇 번 보여주기는 했다. 그게 문제다.

‘흑검’ 정영춘이 7성으로 인정받는 건 그의 강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이도 7성에 버금간다는 소리다. 그러나 제황은 그들의 놀람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궁기안에 잡힌 수십 개의 붉은 점만을 노려봤다.

‘비상하는 강기의 소나기!’

콰콰콰쾅!

제황을 중심으로 흙먼지의 폭풍이 터져 나갔다.

“우아앗!”

폭풍에 휘말린 몇몇 헌터들이 동시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뻐어어어엉!

강기를 머금은 빛의 창이 음속을 돌파해 몬스터들을 향해 레이저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이 몬스터와 부딪히려는 순간 제황이 조그맣게 말했다.

“터져라.”

뻐어엉!

제황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강기의 창이 터져 나갔다. 동시에 그것들이 수십 갈래로 갈라져 몬스터들을 덮쳐 갔다.

“꾸아아악!”

“캬아악!”

그레이트다크혼을 위시한 다크혼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이 되었다. 특히나 치명적이었던 건 저들이 공중몬스터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헌터들이라면 공격수단이 원거리로 제한됨과 동시에 기동력에서의 차이로 인해 고전했을 테지만 오히려 제황에게는 더욱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제황의 강기의화살에 적중 당한 다크혼들이 땅으로 우수수 떨어지며 2차 피해를 입었다. 단 한 수에 전세역전.

“크라라라락!”

그러나 그레이트다크혼은 역시 놈들의 우두머리다웠다. 드러난 몸에는 자잘한 상처는 보였지만 충돌 직전 방어막으로 충격을 대부분 흡수했다.

“크헝!”

방금의 공격에 제황을 가장 위험한 인물로 생각했는지 그레이트다크혼은 괴성을 지르며 제황을 향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공중으로부터 몸을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뿔들이 마치 팽이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근 7미터짜리 팽이가 공중으로부터 내리꽂힌다. 그러자 헌터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굳이 찍어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 것이 아니다.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도 저건 피해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당사자인 제황은 한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히려 더욱 느긋한 손으로 시위를 당기며 회전하며 급강하하는 그레이트다크혼을 노려봤다.

‘폭발하는 강기의화살’

퍼어어엉!

소닉붐을 일으키며 음속을 돌파한 붉은강기가 그레이트다크혼의 중심에 날아가 맞부딪혔다.

콰쾅!!

사람들은 처음에는 제황이 미친 줄로만 알았다. 아무리 그가 강기를 뿜어낼 줄 아는 헌터라고 해도 육탄으로 폭격해오는 몬스터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름 끼치게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서서 태연하게 화살을 쐈다.

어지간히 담이 크다고 할 게 아닌 저건 그냥 미친 거다.

아무리 자신의 힘을 믿는다고 쳐도 안전이 담보된 상황에서의 공격이 아닌 몬스터와 생사를 건 일점승부를 벌이는 건 미친 짓이다.

그리고 그레이트다크혼과 발사한 붉은빛의 창이 맞부딪히는 순간 그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레이트다크혼과 부딪히자 붉은 강기를 머금은 화살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레이트다크혼의 맹렬한 회전에 붉은강기가 흩어져 버리고 잠시 후 저 헌터는 그레이트다크혼에 깔려 죽게 되리라는 게 눈에 그려졌다.

콰콰쾅!!!

땅과 부딪히는 맹렬한 충격음이 난 후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을 뗐다.

비록 적의를 보이기는 했지만, 경지에 오른 강자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었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떨어져 내리는 그레이트다크혼에 깔려 죽다니...

그러나 이내 눈을 뜬 그들은 믿지 못할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그레이트다크혼은 중심을 관통하는 거대한 구멍이 난 채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가볍게 내려앉은 제황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자, 아까 하던 거 마저 할까?”

이제 그의 말에 토를 달 이는 아무도 없다.

딸꾹...딸꾹...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힐러 또한 바닥에 주저앉은 채 제황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딸꾹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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