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다크나이트클랜-1
새벽에 받은 부하의 전화에 그는 술이 전부 깨버렸다. 그의 부하들이 병원에 입원한 건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 일에 6성헌터가 엮였다? 똥 밟았다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것도 넘어갔다. 천재지변을 어찌 하겠는가.
다행히 상대가 그나마 아량을 베풀어 두 팔만을 부셔 놨다는 것에 안도를 했다.
조직은 무사하고 오더 하나 잘린 것뿐이니까.
문제는 그 후다. 이 일을 최사장에게 알리려 전화를 했을 때 그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난 급히 볼일이 있어 해외로 좀 다녀와야겠네.
-예?
그가 알기로 최사장이 급하게 해외에 갈일이라는 건 기껏해야 카지노나 원정골프 혹은 해외에 있는 마누라들에게 볼일이 있어 갈 때뿐이었다. 그는 비밀리에 최사장에게 붙인 끄나풀에게 연락을 했고 충격적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탈색된 최사장이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끌고 황급히 공항으로 갔다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말이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 6성헌터를 떠올렸다.
아량이 넘치는 6성 헌터라고 생각하고 넘어간 게 실수였다.
6성 헌터라는 건 대형클랜의 클랜마스터 정도 되는 실력자다. 비록 부하가 말한 그 인물이 추적을 포기했던 천씨집안의 어린아들인 것 같아 진짜 그 나이에 6성헌터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만약 자신이 6성헌터 정도 되어서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했을 때 그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6성헌터 정도 되면 직접 움직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말지.
그는 최사장이 6성헌터가 보낸 ‘전문가’ 들로 인해 도망친다는 것을 가설로 삼고 그가 아는 라인을 총동원해 정보를 수소문했다. 그게 바로 약 30분 전까지의 일이다. 그리고 알아낸 사실은 그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게 했다.
공항에서 최사장이 탔던 비행기가 회항을 해버렸다는 것과 의문의 남자들이 나타나 최사장을 끌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항관계자에게 알아본 결과 비행기를 회항시킨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잡히면 끝이다.’
말할 수 없다라고 할 때 그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말할 수 없다? 그것은 흔한 경찰이나 검찰등의 공권력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공권력을 무시할 수도 있고 또한 공권력이 아님에도 출발한 항공기를 회항시켜 버릴 수 있는 조직이라는 뜻이다.
자신과 같은 조폭 나부랭이는 최사장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런 최사장이 대항 한 번 해 볼 엄두도 못 내고 도망쳤다는 것은 상대가 그만큼 거물이라는 뜻이다.
“헉헉...”
가방을 모두 챙긴 그는 황급히 사무실을 나섰다.
최사장이 비행기를 타고서도 잡힌 마당에 공항으로 가는 것은 미친 짓이다. 이대로 국내에 얌전히 잠수해서 몇 달간 추이를 지켜보다가 배를 통해 밀항하는 수밖에 없다. 정 상황이 안 좋으면 신분세탁을 하면 된다.
그의 능력은 3성 헌터였다. 비록 라이센스 발급시험에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는 그 능력으로 승승장구하며 동산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니 해외로 도망가 그곳에서 헌터질을 하며 살아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1층에 멈춰선 엘리베이터가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필 이럴 때 왜 이렇게!”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포기한 그는 비상구를 타고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약 6층 정도를 내려왔을 때 밑으로부터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긴장한 채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아연실색하며 걸음을 멈췄다. 이열 종대로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검은 양복들... 대체 숫자가 얼마인지 뒤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황급히 비상구를 벗어났다. 직감적으로 저들이 자신을 잡으러 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대...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의 헌터로서의 감각이 저들이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전원 각성자일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보다 강한 이들 뿐이다. 이건 단순한 클랜 차원에서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 아니다. 통일된 복장으로 걸어 올라오는 그들을 보며 그는 창문을 향해 뛰어갔다.
잡히면 정말 농담이 아니라 진짜 죽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차라리 창문을 통한 탈출이 가능성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곧 그 시도조차 포기했다. 왜냐하면 5층의 복도와 엘리베이터 심지어는 사무실 안까지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한사람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슥 내리며 테블릿을 들어 테블릿에 떠 있는 사진과 그를 비교하더니 씨익 하고 웃는다.
“휴, 새끼. 걸음은 더럽게 빠르네. 야! 우리가 잡았다?”
“오!”
그의 말에 그의 뒤에 서있던 이들의 얼굴에 환희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들의 환희는 곧장 사라져 버렸다. 슈슉하는 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검은양복이 박상두를 포위하듯 은신을 해제했기 때문입니다.
“죄송하지만 여기 먼저 도착한 건 저희입니다.”
그 말이 들려올 때 엘리베이터가 스르륵 열리더니 엄청난 수의 검은양복이 우르르 내렸다.
“아오씨! 빌어먹을 인원초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도착은 우리 7조가 먼저 했다고요.”
“야. 7조! 너희는 이미 공항에서 한 건 했다며 이건 좀 포기해라. 넌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냐!”
“아, 몰라요. 이놈에 상여금 인생. 우리 아기 분유값 모자라요.”
“니가? 이번에 강북에 빌딩하나 올리신 분이?”
“아! 몰라요.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지.”
“그래! 먼저 잡는 놈이 임자지!”
그 말과 함께 갈고리 같은 수십 개의 손이 박상두를 붙잡았다. 그는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할 무시무시한 손놀림들이다. 그리고 곧이어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으...으억!”
“야야! 얘 찢어진다. 살살 잡아! 산채로야! 산채로!”
“아, 그럼 선배가 좀 놔요!”
“내가 왜! 야야! 3조 조장! 얘 좀 포기하게 해라! 다음에 내가 밀어줄게.”
“형님! 저도 돈이 급합니다.”
“으...으...으아아악!”
박상두는 고통 속에 의식이 아득히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기도했다. 제발 빨리 좀 기절시켜 달라고...
***
두두두두
창밖으로 로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요란할 거라는 생각과는 틀리게 로터음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 소음 때문에 헤드셋 위에 귀마개를 하던데 굳이 그럴 필요가 보이지 않았다. 내부는 꽤 쾌적했다. 헬기에 냉장고는 물론이도 티브이도 달려있다. 이대로 30분이면 서울에 도착한다니 문상이 보내 준 헬리콥터는 제황의 마음에 쏙 들었다.
-오오, 하늘 위를 날다니!
궁기가 처음 해보는 신기한 경험에 좋아서 날뛰는 중이다. 생각해보니 궁기와 함께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다. 제황은 예전에 몇 번 타본 적이 있었는데 해외친선양궁대회에 초청되었을 때 타봤다.
-엄청 빨라. 엄청 빨라.
제황의 머리 위로 얼굴만 실체화한 궁기가 창밖에 얼굴을 딱 붙인 채 밖을 구경 중이다.
-하늘이야 평소에도 많이 날잖아?
-이건 내가 나는 게 아니잖아. 틀리다고 틀려! 올라가라고 해! 더더!
이미 상당한 고공에서 비행 중인 헬기를 더 올리라고 징징거리는 궁기의 말에 제황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 떨어져도 죽을 위험은 없지만 그런 쪽팔리는 짓은 사절이다.
궁기리의 일은 문상이 보내준 팀에 전담시켜 놓은 상태다. 한 차례 회의를 해 본 결과 그들은 모두 전문가 들이었다. 건축전문가와 변호사는 물론이고 제황이 입으로 구술한 무련천가의 건물들을 그 자리에서 손으로 슥슥 그리더니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는 건축디자이너를 보고 그냥 맡겨 버렸다.
문상의 말대로 헌터는 몬스터만 잘 때려잡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궁기의 수다를 자장가삼아 잠이라도 자려 할 찰나 헬기 내에 비치된 스피커에서 통신이 들려왔다.
-3급 게이트경보를 발령합니다...3급 게이트경보를 발령합니다. 현재 세종시 남쪽 반포면 일대에 3급 게이트 발생경보를 발령합니다. 반포면 일대 주민 소거 및...
공용통신이 끝나자 헬기조종사가 굳은 표정으로 제황을 돌아보며 말했다.
“게이트 경보입니다. 서해 쪽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게이트 경보라는 것은 종류가 여러 가지다. 단순히 작은 윔홀이 돌발적으로 발생하여 몬스터가 나타나는 것도 게이트 경보라고 불리고 진짜 새로운 게이트가 나타나는 것도 게이트 경보라고 한다.
3급이라고 하면 대략 욈홀 출몰 정도로 보면 되는데 일반적인 윔홀이 1급이니 3급이라면 윔홀에서 출몰한 몬스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 제황이 조종사에게 물었다.
“혹시 세종시 레이드 관제실과 연락이 되십니까?”
제황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레이드 관제실 센터 주파수는 항상 외워두는 편이죠.”
“그럼 그쪽으로 연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황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단말기를 조작했다.
“아, 레이드에 지원하실 생각입니까?”
“예.”
제황이 고개를 끄덕인 후 헬기조종사의 조수석 쪽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비프음이 울리고 무전기를 통해 세종시몬스터관제실이 연결되었다.
-세종시 몬스터 관제실 무전팀 서강득입니다.
-금일 14시 발생한 3급게이트 경보에 참가 요청 합니다. 참가 요청 헌터 헌터번호 xxxxx 천제황입니다.
헌터라이센스에는 고유번호가 존재한다. 일단 가등록 상태에서 참가신청을 한 뒤 나중에 확인 가능하다.
-아, 참가신청입니다. 헌터님의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내용 확인하겠습니다. 금일 14시 발생 3급게이트 참가요청 헌터번호 xxxxx 천제황헌터님 맞습니까?
-맞습니다.
-신원확인 후 교신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6성 헌터라도 아무 레이드에나 마음대로 낄 수는 없었다. 사건 발생 시 현장에 있는 입장에서야 어쩔 수 없지만 마음대로 끼어들면 중앙관제실에서의 효율적인 지휘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원론적인 것일 뿐 5성 헌터 정도 되면 자잘한 독립지휘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보 형식으로 말한 후 참가해도 무방하다.
제황은 참가신청이 수락될 것이라 생각하고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헬기조종사도 가장 가까운 관제탑에 용무를 설명한 뒤 게이트경보가 발생한 곳을 향해 기수를 돌렸다.
그러나 잠시 후 무전기로 들려온 말은 제황의 예상과는 다르게 참가승인 불허하는 말이었다.
-세종시 관제실에서 알린다. 헌터번호 xxxxx 천제황 헌터 참가를 불허한다. 이상
처음 무전을 받았던 이와는 다르게 딱딱하고 고압적인 남성의 목소리다.
-불허 사유를 알 수 있는가?
불허되었다는 말에 제황이 되물었다.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6성헌터가 참가해 준다면 오히려 반가워해줘야 하는 게 정상이다. 헌터번호를 말했으니 6성헌터라는 걸 알텐데 상대가 꽤 고압적으로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나 다크나이트 클랜 클랜마스터 정영춘이다. 인원은 충분하다. 귀하의 참가신청은 고맙지만 필요 없다. 이상
상대는 일방적으로 교신을 끊어 버렸다.
“쩝.”
그의 말에 제황은 입맛을 다시며 무전기를 내려놨다.
다크나이트 클랜...잘 알고 있는 클랜이다.
대한민국 2위권에 랭크되는 클랜이었으니까. 닉네임 ‘흑검’ 이라 불리는 정영춘은 7성 라이센스를 가진 헌터였다. 권제와 같은 7성인 그는 검은 검신을 지닌 아티펙트급 바스타드소드를 사용하는데 검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나라 최고라고 불리는 이였다.
자신의 개인정보를 확인하고서도 왜 저리 고압적인지 이해는 간다.
그는 권제와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는데 과거 권제에게 도전했다가 ... 뭐 그리 된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제황이 헬기조종사에게 말했다.
“서해로 돌아서 가죠.”
“알겠습니다.”
제황의 말에 헬기조종사는 군소리 없이 기수를 돌렸다. 멀리 세종시의 환한 불빛이 보인다.
거절당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다크나이트 클랜 정도면 게이트경보는 무리없이 막아낼 것. 단지 찜찜할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상념에 빠져 있을 때 궁기가 제황에게 말했다.
-몬스터다.
궁기의 말에 밑을 내려다본 제황이 시력을 돋우었다. 그러자 십여 마리의 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긴 뿔 두 개가 인상적인 이륙보행의 몬스터다. 뒷다리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해서 마치 공룡 중 티라노사우르스를 연상케 하지만 그보다는 좀 작다. 등에 다닥다닥 붙은 번쩍이는 각질이 인상적이다.
“다크혼 종류인데”
제황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4티어의 몬스터 다크혼이라는 종류다. 이 다크혼들은 신장은 동급의 몬스터들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 체고는 4미터 무게는 2톤가량인데 문제는 엄청나게 빠르고 도약력이 뛰어나며 다크어스의 몬스터답게 무리사냥에도 익숙하다는 것이다.
시선을 돌린 제황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다크혼들이 무언가를 쫓고 있고 그 쫓기고 있는 그것들은 지금 마구잡이로 달리며 길가에 정차해 있는 자동차들을 마구잡이로 박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차량에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민간인들이 보인다.
“미친...”
차들을 박살내며 달리는 것들은 헌터들이 타고 다니는 장갑이 달린 자동차다. 그들이 몬스터를 사냥하지는 않고 오히려 민간인들의 자동차를 부수며 도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저리로 가면...”
제황은 시선을 돌려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한참 대피중인 민간인들이 보인다. 거리로는 약 1킬로미터 차량의 속도로 봤을 때 1분도 되지 않아 몬스터들은 대피중인 민간인들을 덮칠 것이다.
“문 열어주세요!”
제황이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