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돈지랄의왕-3
우르르릉
거대한 굴삭기가 송노인의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송노인을 위협하듯 포크를 움직였지만 송노인은 피하지 않았다.
송노인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굴삭기가 포크로 바닥을 찍었다.
쿵!
“어이 영감, 명년 잿밥 먹고 싶지 않으면 비키지?”
굴삭기 위에 서 있던 야비한 인상의 양복남자가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지은 채 소리쳤다.
“이놈들아! 썩 꺼지지 못해! 어디 감히 신성한 궁기산을!”
“허 거참, 자식 놈이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나 했더니 애비새끼가 귀가 막혔구만. 이 산의 사분에 일은 우리 꺼야. 몰라? 서류라도 보여줘?”
“이놈들아! 나쁜 놈들! 사람을 반병신을 만들고 그게 할 소리냐!”
“여기가 왜 너희 땅이야!!”
궁기리 주민들 사이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하 지겹네. 이게 며칠 째야.”
“형님. 그냥 밀어버리죠.”
사정을 설명하면 이렇다. 궁기리에는 제법 크게 밭농사를 짓는 주민이 있었다. 궁기산 기슭까지 걸치는 상당히 넓은 면적의 밭이다. 원체 오지이기에 땅값도 그다지 나가지 않는 그런 땅이었고 한 평생 농사나 지으며 사는 이들이기에 그들이 땅을 팔 일은 없었다. 문제가 일어난 건 그 자식들에게 있었다.
자식 중 하나가 사업을 하던 중 큰 빚을 졌다. 흔한 망해가는 프로세서대로 끝내 사채업자들에게까지 돈을 빌렸고 늙은 노모는 자식의 보증을 서줬다. 그리고 끝내 그들의 땅은 가압류가 들어왔다.
뭐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이야기다. 자식이 사업이 실패하고 부모가 빚보증을 섰다가 함께 망하다. 너무나 흔한 이야기아닌가.
궁기리 마을 사람들도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한숨만 내쉬었다. 빚보증으로 망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던가.
그런데 이때부터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본디 절차대로라면 실제 압류 조치가 들어가는 건 한참 후의 일이다. 그 사이 압류가처분신청이라던가 회생이라던가 수많은 단계가 필요하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은 밤사이에 짐을 싸 야반도주하듯 궁기리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궁기산의 사분에일 가량인 국유지가 뜬금없이 민간에 매각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궁기산은 온전히 천씨집안의 소유가 아니었다. 산마루 중 일부가 국유지였는데 그곳이 아무런 사전 낌새도 없이 팔려나가 버렸다. 마을 사람들과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없었다. 사전고지나 공개매각도 없이 수의매각 형식으로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동산건설’이라는 건설회사가 들어오더니 떡하니 빚보증으로 망한 그 집을 허물어 버리고 콘테이너를 가져다놓고 간판을 내걸었다.
마을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동네로 들어온 건설회사 직원이라는 이들이 온갖 패악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술을 먹고 고성방가를 일삼는 건 양반이었다. 여자라면 가리지 않고 성희롱을 해대니 마을의 여자들은 문 밖 출입도 자제했다. 파출소가 출동했지만 그들도 소용 없었다. 오히려 파출소장도 전혀 생판 연고가 없는 외지 사람으로 교체되었다.
급기야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를 막아버렸다. 이유는 압류한 땅 중 진입로가 아주 미세하게 일부 포함된다는 이유...
그러더니 얼마 전부터 공사에 들어간다며 중장비까지 마을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 중장비를 막아선 채 며칠 째 대치중이었다. 이 일이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대명천지에 날벼락 맞아 죽을 놈들...”
“흐흐, 맞출 수 있으면 맞춰 봐. 그깟 벼락...”
앞에서 마을사람들이 어떤 눈초리로 쳐다보건 사내는 느긋했다. 자신과 같은 프로가 이런 순박한 시골사람들 등치는 거야 여반장이다.
특히나 자신이 소속된 조직에 오더를 준 최사장은 서울 노른자 땅에 수백억짜리 빌딩 수채를 지닌 땅부자였다. 돈이 많다는 건? 그렇다. 곧 힘이 있다는 뜻이다. 그가 이 궁기산을 먹기로 마음먹었으면 이미 이야기는 끝난 것이다.
그가 소속된 조직에도 큰 콩고물이 떨어지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그뿐일까? 산림청, 군청, 국회의원까지 기름칠을 마쳤다. 이형우대통령이 탄핵 말미에 대규모의 국유지를 민간에 매각하려 용쓰는 중이고 자신 같은 불법개발업자들은 옳다구나 하고 올라탄 상태다. 굳이 이런 시골 촌동네 하나 먹는데 무슨 기름칠까지 하냐고 하겠지만 최근 함경남도 수복으로 인한 대한민국의 개발붐이 거세졌다.
특히 대한민국은 인구밀도 대비 고위헌터가 많고 다른 국가들에 비해 사회질서가 잘 유지된다고 평가받는 국가다. 거기에 최근 무적성의 국토수복성공으로 대외 이미지까지 좋아져서 한국으로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이런 몬스터 비출몰지역이 사람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이 근방에 거대한 신도시가 생겨난다.
비록 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 동네의 터주대감을 밀어내는 건 모종의 불상사로 나중으로 미뤄졌지만 일단 공사를 시작하기만 하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이 동네 사람들을 다 쫓아낼 것이다.
“얘들아. 좀 치워봐라!”
“예! 형님!”
험상궂은 검은 양복들이 각목을 들고 사람들에게 슬금슬금 접근했다.
“얘들아. 조심조심 모셔라.”
“예!”
그는 이 근방 읍내에서 노는 양아치들을 모아 총알받이로 데려왔다.
양복 한 벌씩 입히니 좋다고 손에 연장을 든다. 이들은 말 그대로 총알받이다. 마을 사람들을 두들겨 패던 혹은 두들겨 맞던 요긴하게 쓰일 총알받이... 서울에서 내려온 진짜 조폭들은 뒤에서 실실 웃으며 폼만 잡고 있다.
“거참 노인네 귀찮게...”
“이노옴!”
눈앞에 있는 이 꼬장꼬장한 노인이 가장 성가시다. 가장 극성스럽게 공사를 방해하던 노인이었는데 아들놈을 두들겨 패 입원을 시켰으면 좀 조용히 할 것을 오히려 더욱 날뛴다.
그가 슬쩍 고개짓을 하자 뒤에 서 있던 그의 오른팔이 쇠파이프를 들고 걸어 나왔다.
이 노인네만 정리하면 끝이다. 그 때...
그가 떨어지라고 큰소리치던 날벼락이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콰콰콰쾅!! 콰콰콰쾅!!! 쾅쾅!!
“으아악! 뭐야!”
“꺄아아악!”
“지...지진이닷!”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과 함께 연속적인 땅울림이 사방을 강타했다. 사람들이 일제히 땅에 납작 엎드렸다. 폭음이 터지는 것은 산마루에 있는 거대한 바위언덕이었다. 공중으로부터 붉은 빛줄기가 떨어져 내려 바위언덕에 무자비하게 파헤쳤다.
푸쉬이이이...
소음이 잦아들고 남은 것은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 깨지고 박살나버린 바위언덕뿐이다.
“뭐, 뭐야. 폭격이야?”
“아니 이게 무슨...”
엉거주춤 일어난 사람들은 난데없는 괴사에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위언덕을 바라보고 있다.
그 때 그들의 사이로 한 인영이 홀연히 나타났다. 마치 허공중에 그려지듯 나타난 제황이 송씨 할아버지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으음?”
고개를 돌린 송노인은 깜짝 놀랐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인물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제..제황아!”
제황을 알아본 송노인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제황을 올려다봤다. 멀쑥하게 키가 큰 제황이 웃고 있다.
송노인의 목소리에 마을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제황을 주목했다.
“저게, 누구야?! 엇 제황아!”
“제황이가 왔네!”
“산대장네 아들이 왔어.”
“아이고 제황이가 왔다!”
제황의 얼굴을 알아본 마을사람들이 모두 제황이를 반겼다. 헌터시험 본다고 마을을 떠났지만 제황의 아버지인 산대장의 아들인 제황은 이 동네 사람들에게 어릴 적부터 사랑받았다.
7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궁기산을 뛰어다니던 귀여운 꼬마를 누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깡패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갑자기 폭격이 떨어졌으니 혹 몬스터라도 나타난 게 아닌가 하고 잔뜩 긴장한 채다. 그때 제황을 발견한 양복남자가 외쳤다.
“어이 거기, 너 뭐냐!”
그러자 마을 사람들의 인사를 받던 제황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넌 내려와 봐.”
“예. 옛!”
제황의 말에 그가 나사가 하나 빠진 표정으로로 비실비실 굴삭기에서 걸어 내려왔다.
“이리와.”
“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을 듯 굴던 그는 제황이 한마디 할 때마다 마치 뱀을 만난 개구리처럼 얌전히 제황의 말에 따랐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뭐에 홀린 듯 제황과 양복남자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제황의 말에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네 뒤에 애들 전부 대가리 박으라고 해.”
제황의 말에 그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모두 대가리 박아!”
그의 말에 깡패들이 영문을 알 수 없어 주춤거린다.
“빨리 박아!”
“예? 예!”
고성이 터지자 하나 둘 비실비실 머리를 박았다.
“너도 같이 박고 있어.”
“옛!”
제황의 말이 무슨 지상과제라도 되는 듯 그는 바닥에 머리를 쿵 하고 박았다.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듯 제황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제황이 송노인에게 물었다.
“얘들 뭐에요?”
“이..이게 무슨...”
송노인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명령을 하고 있으니 제황이 뭔가를 한 것 같은데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이것은 블러드메리 티아라에 있는 지배 라는 스킬을 통해 우두머리의 이지를 제압한 것이다. 3성의 헌터도 지배가 가능한 이 티아라를 일반인에게 썼으니 완벽히 제압되어 버리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깡패들의 팔다리를 하나씩 박살내 버린 뒤 차분하고 진솔한 대화를 시작하고 싶지만 순박한 마을 사람들에게 잔인한 장면을 보이기가 싫다. 게다가 제황은 굳이 법을 어겨가며 일을 해결할 생각이 없었다. 물리적인 수단이 아니더라도 대처 방법은 많으니까.
송노인이 정신을 못 차리자 제황은 머리를 박고 있는 양복남자를 향해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네가 설명해봐라.”
“예. 이 일은...”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제황에게 조목조목 말하기 시작했다. 이번 건을 모두 책임진 터라 그는 음모의 대부분을 알고 있었다.
“최사장?”
최사장이라는 말에 제황은 과거의 기억 한 자락을 떠올렸다. 그의 외삼촌을 고문하며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놈이 여길 왜?”
“예. 빠르면 내년 늦어도 이삼년 후에 이 근방에 신도시가 들어올 예정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 국회의원인 김대남의원이 최사장과 손을 잡고 이 근방의 땅을 매입하는 중입니다. 궁기리는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서고 궁기산은...”
우두머리의 말이 끝나자 마을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벙찐 표정이 되었다. 그가 술술 불고 있는 게 신기한 건 둘째 치고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역 국회의원과 서울의 땅부자가 작당을 하고 마을을 통째로 먹으려고 작당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군청이고 산림청이고 국회의원이고 모두 작당한 것도 기가 막힌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것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과거에 실행하려 했던 계획은 궁기산의 천씨가문을 몰아내고 궁기산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산사람들이기에 산에서 나는 약초나 버섯 등은 궁기리 사람들의 주수입원이다.
그걸 막아버린 뒤 마을 사람들을 압박해 쫓아내려 했던 것. 중간의 중요한 연결점인 천씨집안 사람이 반병신이 되면서 그 계획은 물 건너갔지만 다음으로 벌인 짓은 궁기리 마을 사람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이번에 집과 땅을 빼앗긴 이들도 알고 보니 이들의 협박이 있었다.
“어엇!”
그 때 양복남자에 대한 지배가 풀렸다.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의 부하들이 모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머리를 박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외쳤다.
“야! 이 새끼들아. 뭐 하는 거야. 모두 안 일어나?!”
그의 고함에 부하들이 하나둘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비대하게 살을 찌운 그들에게 머리박기는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자기가 시켜놓고 갑자기 고함을 지르자 모두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게다가 저 대장이라는 놈은 자신들이 벌인 짓을 낱낱이 저들에게 고하지 않았던가.
“너! 너 이 새끼! 뭐야!”
부하들의 얼굴에 어린 불만을 눈치 챈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마을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눈앞에 서 있는 제황에게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이 일의 범인이 바로 이 눈앞에 있는 기생오라비 같은 놈 때문이라고 직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
그의 말에 제황이 그를 노려봤다. 그러자 뭐라고 한마디 하려던 그의 입이 턱 막혔다. 이 짓을 하면서 웬만한 험하고 더러운 일은 다 해봤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이 어린 청년의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냉기는 그가 감히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누...누구신지...”
대번에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이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나 이런 사람”
제황은 등에 맨 배낭을 끌러 안에서 한 장의 금속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충 쑤셔 박은 티가 나는 카드지만 그 모양과 새겨진 것들이 범상치가 않다.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 무적성에서 발급해 준 것인데 귀찮아서 그냥 배낭에 넣어 버렸던 물건이다.
제황이 카드를 꺼내들어 앞으로 내밀자 그 카드에 써진 것을 주르륵 읽던 그는 이내 두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6성 헌터 천제황]
이런 일을 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게 무었일까. 그건 바로 힘 있는 이들을 알아보는 안목과 경험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우두머리는 경험과 눈치가 누구보다 빨랐다. 특히 헌터들의 라이센스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헌터들은 움직이는 화약고 들이다. 자신들과 비슷하게 무력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그 무력이 법에 저촉되지도 않는다.
“지...진짜 잖아.”
헌터 라이센스는 위조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6성 헌터라이센스를 위조하는 간 큰 인간은 이 대한민국에 절대 없다. 헌터 라이센스가 필요하면 널리고 널린 1성에서 3성 헌터들 것을 위조하는 게 보통이다. 4성부터는 국가에서 특별 관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위조를 하는 건 미친 짓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나타난 라이센스는 무려 6성 헌터의 라이센스였다.
6성헌터는 대한민국 내에서 몇 십 명밖에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이 라이센스가 가짜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6성 헌터!”
“어버버...”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얼어붙었다. 이유는 틀리지만 6성헌터가 자리에 나타났다. 6성 헌터가 마음만 먹으면 이 자리에 있는 깡패들을 쓸어버리는 건 정말 냉수 마시는 것보다 쉽다.
“저..저.. 어째서 여기에...”
우두머리가 힘겹게 입을 떼었다.
“나? 이 산주인”
제황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그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