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33화 (133/301)

# 133

돈지랄의왕-2(수정)

제황이 보고 있던 건 우리나라 전통 가옥들을 리뷰해 놓은 블로그였다.

“궁기산에 있는 산장 좀 리모델링 해볼까 하고...”

“아...”

제황의 말에 동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궁기산의 산장은 동철도 두어 번 따라가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모르겠지만 혀를 빼물고 산을 올랐던 기억이 있다. 심하게 험하지는 않지만 산세가 울창하고 골이 깊은 산이다.

“갑자기 왜?”

“낡았잖아..”

“그런가.”

“응 그래서 겸사겸사 좀 다녀오려고 한다. 부모님 묘소를 너무 오랫동안 비운 것도 걸리고...”

제황은 백두산에서 봤었던 무련천가를 궁기산에 다시금 그려볼까 생각 중이었다. 비록 백두산은 아직 힘들지만 이곳에서라도 그것을 실현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부모님의 묘소와 조상님들을 모신 사당이 가장 먼저 마음에 걸린다.

산장의 관리와 부모님의 묘를 송노인에게 부탁하기도 했고 궁기리 이장님이 호언장담하기는 했지만 가장 최근에 들렀던 것을 생각하면 근 2년간 발길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럼 나도... 끙 아니다.”

제황을 따라 오랜만에 시골에 갈까 하던 동철이 곧 자신의 목에 권제가 걸어놓은 동아줄이 있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권제의 성격이라면 어쩌면 추격대를 보낼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그의 여자친구에게 면이 살지 않는다. 어제 뜨거운 밤을 보내며 그렇게 자신만 믿으라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그게 무섭다고 도망치면 사나이 가오가 죽지 않는가.

‘설마 죽기야 하겠어.’

두렵기는 하지만 동철은 어제 밤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를 한 상태다.

이제 오늘부터 부딪히기만 하면 될 일... 그러나 동철은 그걸 알까. 그가 잡아놓은 목표점인 제황이 권제와 최진하에게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말이다.

***

무적궁의 뒤편에는 가로세로 100미터의 정사각형 모양인 권제의 개인연무장이 있다. 바닥이 온통 특수합금으로 되어 있기에 강기를 이용한 공격이 아니라면 흠집조차 생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야외에 설치되어 있지만 권제의 노제자들은 마치 아침을 여는 의식마냥 손수 매일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기에 먼지 한 톨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연무장 한가운데에 지금 두 노인이 앉아 있었다. 둘은 상당히 특이한 방식으로 앉아 있었는데 한 노인은 가로세로높이 2미터 가량 되는 거대한 상자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고 한 노인은 3미터 가량 되는 거대한 검을 똑바로 세운 채 그 위에 한가롭게 앉아 있었다.

“형님 그거 설마 예전에 그겁니까?”

최진하는 권제가 깔고 앉은 거대한 상자를 턱짓 하며 물었다. 그러자 상자 위에 정좌를 한 채 눈을 반개하고 있던 권제가 입을 열었다.

“음. 맞아. 오랜만에 다시 한 번 써먹어보려고... 마침 좋은 실험대상도 있잖아?”

권제의 말에 최진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거 형님도 사흘만 쓰고서 처박아 둔 거 아닙니까.”

저 물건은 과거에 권제가 훈련을 위해 주문제작한 물건이었다. 그렇지만 권제가 너무 자신에 대해 과신한 것일까? 권제도 얼마 쓰지 못한 채 그대로 창고에 처박아 버렸었다.

“그런데 넌 그게 뭐냐?”

이번에는 권제가 최진하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

검 비슷하게 생기기는 했는데 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고 크다.

“그놈이 지금 아는 거라고는 형님 주먹질 밖에 없지 않습니까. 서브무기로 좀 쓰라고 태도술 하나 가르쳐 보려고요. 몬스터 잡는데 주먹질이 불편할 때도 종종 있으니까요.”

“태도 치고는 좀 크지 않냐? 그놈 키에 비해서도 너무 큰데?”

“본래 태도술에 사용하는 것보다 좀 더 크고 좀 더 무겁기는 하지만 녀석 스펙도 만만치 않으니 아마 쓸 수 있을 겁니다. 뭐 제대로 배운다는 가정 하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흐흐”

마지막 문장을 끝맺음하며 살기가 조금 묻어났지만 권제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뭐 그럼 나 8시간 너 8시간 정도로 가르칠까?”

“그거 참 적당한 방법이군요.”

무려 16시간을 수련으로 굴리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둘이다.

물론 권제나 최진하가 동철을 죽이고 싶어서 이런 스케줄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그놈이라면 견디겠지.”

제황이 괴물이라면 제황이의 친구인 마동철은 돌연변이였다. 마동철은 단순한 강제 각성자가 아니다. 마동철은 대현그룹과 삼천교 놈들의 실험체가 되어 온갖 시술을 받아 살아남은 생존자다.

동철이 무적성으로 운반되어 온 후 연구소에서 가져온 동철의 대한 심층검사서를 읽은 권제는 깜짝 놀랐었다.

극대화된 초회복과 거대화, 그리고 초회복과 거대화의 상승작용을 통해 더욱 강력해진 괴력이라는 패시브 스킬... 마지막으로 동철의 심장에 이식되어 있는 무시무시한 마나석까지...

또한 동철은 다른 이에게 없는 그만의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싸울 줄 안다는 것이었다. 유식하게 말하면 전투감각이 뛰어나다. 그리고 끈기와 투지가 강하다. 아니 강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지독하고 지독하고 지독하다.

처음 제황이 친구의 수련을 부탁했을 때 앞에서는 승락했지만 뒤로는 버텨야 얼마나 버티겠냐는 심정이었다. 권제의 수련은 독하기로 유명했었고 권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동철은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정말 신기한 놈이었다.

잘 배워서? 아니다. 이해하는 머리는 확실히 떨어지는 편이다. 상대에게 스킬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세이브가 인정할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대략 예를 든다면 스페셜급의 스킬을 4년에서 5년 정도 진득하게 파면 그것을 스킬로 등록시킬 수 있었다. 그 정도의 숙련이 필요한데 동철에게 그 정도의 재능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쉽고 파괴력이 좋은 무적권을 가르쳤다. 실제 무적권은 무적성의 성원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초 스킬이다. 그런 무적권을 입으로 가르쳐 주기보다는 몸에 새겨버린다는 심정으로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며 가르쳤다.

보통의 끈기를 지닌 이라면 아무리 자신이 초회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수십 번은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동철은 걸레가 돼서 들것에 실려 나가도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하도 신기해서 어느 날은 정말 마음먹고 두들겨 패봤다. 입으로 똥물이 올라오다가 다시 내려갈 정도로 두들겨 팼다.

그래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아무리 초회복이라도 하루 만에 회복할 정도의 부상이 아닌데 꾸역꾸역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그 때 처음으로 권제는 동철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후 권제는 또 다른 이유로 동철에게 놀랐다.

그것은 무적권의 마나를 싣는 걸 가르칠 때였는데 권제는 동철이 이것을 배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철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 재능을 드러냈다.

‘마나감응력’

권제는 신이 동철이라는 놈을 만들 때 분명 지능이라는 걸 넣으려다가 실수로 마나감응력을 집어넣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결론은 동철은 정말 가르쳐 볼 만 한 놈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친구인 제황을 뛰어넘겠다니 정말 기특하지 않은가.

진짜로 동철이 제황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솔직히 회의적인 입장이지만 이번에는 정말 진지하게 가르쳐 볼 생각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예전에 만들어놓고 써먹지 못한 수련도구도 꺼내 왔다.

이 상자에 든 것은 무려 1톤에 달하는 특수합금으로 제작한 수련용 전신갑옷이었다. 자신도 이것을 입고서는 도저히 수련이 되지 않아 포기했었다. 그렇지만 녀석이라면 ... 아마 가능하겠지? 뭐...안되면 될 때까지 두들겨 패볼 생각이다. 의외로 이 수련법이 가장 어울리는 게 동철이다. 패다보면 되더라. 안되면 될 때까지 패면 된다.

“뭐, 너도 열심히 가르쳐 봐.”

“예.”

“근데 이 새끼는 왜 아직도 안와. 빠져가지고...”

“그러게 말입니다.”

기연이라면 기연이지만 아마 무적성의 성원들 중 권제와 최진하의 수련방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이라면 동철에게 명복을 빌었을 것이다. 최진하 또한 권제 못지않은 강도 높은 수련을 자랑했으니까.

일동 묵념

***

위이이잉...끼이익

“오만 삼천원입니다.”

“여기요.”

제황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택시 값을 지불했다.

부우웅

떠나는 택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휘날리는 먼지를 바라보던 제황이 고개를 돌려 길게 뻗은 오솔길을 응시했다.

“이 동네는 변하는 게 없구나. 송어르신은 정정 하시려나.”

근 이 년 만에 오는 궁기리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도 바위도 하다못해 작은 잡초 하나마저도 기억 속 그대로인 정겨운 이 곳... 워낙 산골 오지다보니 택시를 타려면 원래 택시비에 두 곱은 내야 가능하긴 하지만 그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곳이었다.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궁기의 투덜거림이 들려온다.

-차 좀 사! 네 친구 똥철이도 5억 짜리 오프로드 타더라.

-운전면허 없어.

-그럼 면허를 따!

-귀찮아.

제황의 시큰둥한 대답에 궁기가 열이 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드라마에서 보면 3성 쩌리들도 스포츠가 굴리고 다니는데 넌 왜 맨날 대중교통이야.

-왜 굳이 힘들게 운전을 해. 남이 편안하게 운전해주는 택시가 있는데.

-으으, 너는 남자의 로망도 없니. 좋은 차! 명품 옷! 악세사리! 최소한 버는 만큼 꾸며야 할 것 아니야.

-갑자기 왜 그런 걸로 시비야.

-답답해서 그렇지. 무려 5시간이나 걸리는 버스 따위를 타는 건 시간 낭비라고!

궁기는 평소 제황의 생활 습관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이제 현대 문물에 완전히 익숙해진 궁기가 보기에 제황의 생활은 정말 무미건조했다.

아마 제황의 평소 생활을 색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회색인간아! 좀 즐겨!

-즐기다니?

-취미 말이야. 취미!

일단 제황은 취미라고 할 게 없었다.

-취미 있잖아. 활쏘기

-으으.

그렇다. 제황의 취미는 바로 활쏘기수련이었다. 기분 전환이라며 하는 짓은 활쏘기다. 여가를 즐기라고 하면? 잔다. 다른 남자들이 흔히 환장하는 최신전자기기나 명품악세사리, 차 같은 건 제황과는 백만 광년 정도 떨어진 것들이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헌터들은 쇼핑도 전투처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크게 지르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헌터들만을 상대하는 명품샵이 따로 있을 정도로 헌터들은 손이 큰 중요고객 들이다.

그런데 제황은 어떤가.

옷도 거의 사지 않는다. 평상복이나 양말 같은 것은 같은 디자인을 여러 벌 사서 돌려 입는다. 고르기 귀찮으니까.

그렇다고 제황이 구두쇠인 건 아니다. 제황도 돈을 써야 할 때는 쓴다. 바로 장비를 맞추거나 전투소모품을 살 때다. 가령 예를 들면 예전 스톰레이지를 사거나 개조할 때는 정말 지갑을 팍팍 열었다. 재료값으로 수십 아니 수백억을 쏟아 부었으니까.

또한 제황이 가장 많이 소모하는 화살은 한 달 화살 값만 해도 2억이 가뿐히 넘어갔다. 그 2억도 무적성 맴버쉽 할인 20프로 디씨로 사긴 하는 것이지만 아무튼 제황은 전투와 관련된 것 아니면 그다지 지갑을 열지 않는다. 뭐 궁기의 간식을 위해서라면 좀 쓰기는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넌 아웃이야.”

“뭐?”

“남자가 쓸 때 안 쓰고 꾸밀 때 안 꾸미면 여자가 안 따른다는 이야기야.”

“요즘 재벌 드라마 보냐.”

“드,드라마가 아니라고!”

묘하게 열기를 내며 부정하는 걸 보면 아예 상관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데...

“꼭 그런 게 있어야 여자가 따르나?”

제황의 말에 궁기가 제황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가 무슨 걱정이 있겠니.”

헌터는 잘 늙지 않는다. 특히나 그것은 고위급으로 올라갈수록 노화가 느려지는데 권제 같은 경우에는 지금 대략 아흔 살 정도였다. 무적성의 지배자이기에 권위를 살리려는 건지 신선놀이를 즐기는 건지 수염을 길게 길러서 그렇지 수염 깎아 놓으면 5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제황이 지금 20대 초반이니 아마 큰일이 없으면 삼사십년은 지금 얼굴에서 걱정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 얼굴이 모든 걸 씹어 드시는 수준이니까. 오히려 달라붙는 여자들이 귀찮아 매번 후드를 쓰고 다닌다.

그렇게 서로 투닥거리며 걸으니 어느새 마을 초입에 다 달았다.

그리고 제황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제황은 나무위에 펼쳐진 꼬질꼬질 때 묻은 현수막들을 올려다봤다.

[궁기리 주민들은 국유지 매각을 반대한다.]

[평화로운 시골마을에 호화웰빙주택단지가 웬 말이냐!]

[궁기산을 터전 삼아 사는 주민들의 생계를 보장하라!]

현수막들을 바라보는 제황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나무에 걸린 지 오래된 듯 보이는 게 왠지 불안하다. 제황은 땅을 박차고 날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주변 풍광을 구경하고 궁기와 이야기도 하며 천천히 걸었다면 지금의 제황은 일반인은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궁기리에 들어선 제황은 마을의 공기가 이전과 다름을 느꼈다.

일단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산촌이라고 해도 계단식 논농사와 밭농사를 주로 하는 지금은 마을 어르신들이 논에서는 한창 모내기를 하고 밭에서는 콩이나 감자, 옥수수 등을 심는 시기였다.

과거에는 젊은이들은 무조건 도시로 떠났지만, 게이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몬스터들의 잦을 출몰로 인해 몬스터 출몰이 적은 궁기리 같은 곳에 와서 정착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제황은 눈을 들어 궁기안을 펼쳤다.

시선을 돌린 제황은 마을 외곽을 쭉 살폈다. 그리고 드디어 사람들을 발견했다.

“저기에...왜? 응?”

그곳은 바로 궁기산을 오르는 오솔길의 초입이었는데 오륙십 명의 사람들이 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거대한 중장비 서너 대가 시동을 끈 채 자리해 있고 건장한 남자들이 중장비의 앞에 서 있다.

부르르르릉

잠시 후 거대한 포크를 단 굴삭기 한 대에 힘찬 시동이 걸렸고 굴삭기는 그대로 마을 사람들을 향해 슬금슬금 접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위협하듯이 엔진을 크게 울리는데 그 앞에는 지팡이로 짚으신 송노인이 서 있다. 궁기안으로 그것을 발견한 제황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왔다.

“저 개새끼들이!”

살기가 줄기줄기 피어올랐다.

휘릭...철컥... 우드드득

재빨리 손에 비천궁을 꺼내든 제황은 시위를 당겼다.

저 굴삭기가 단순히 송노인을 겁주기 위해 접근하는 것이든 아니면 진짜로 밀어버리려는 수작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사실은 있다.

“감히...”

저들이 궁기산에 침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궁기산의 주인이 이렇게 버젓이 있는데...

그리고 자신을 가장 귀여워해주시는 송씨어르신을 감히 겁박하고 있다.

“폭발하는... 강기의... 소나기!”

파캉! 파라라라라랑!!!

제황의 주변으로 강렬한 소닉붐이 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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