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32화 (132/301)

# 132

돈지랄의왕-1

침대에서 일어난 제황은 벽 한쪽에 있는 커다란 창의 블라인드를 거뒀다. 저물어가는 붉은 석양 속에 어슴푸레 이어지는 구름이 징검다리 같다. 지평선 끝에 닿아있는 그 징검다리는 마치 제황이 떠나 온 북쪽의 한 산기슭으로 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들게 했다.

그곳에서는 대체 몇 년이 지났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데 지난 시간은 고작 삼 주... 만약 상태창과 궁기가 없었다면 한낱 꿈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그런 일이었다.

[상태창-스킬]

레전드스킬

신벌의 화살 (숙련도-)

여의용혈신공 (숙련도-)

유니크스킬

진(珍)무련궁술 (숙련도-)

-비상하는 화살

-춤추는 화살

-폭발하는 화살

-강기의 화살

-소나기 화살

암혼보(호랑이사냥) (숙련도-)

용혈무 (숙련도-)

궁기안-15랭크

커먼스킬

요리-8랭크 11프로

빠른 재생 12랭크 45프로

제황의 상태창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변해 있었다.

무련가와 관련된 모든 것은 아예 숙련도라는 것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이유는 간단했다.

“감히 누가 있어 무련천가의 비전을 재단하는가. 무련천가의 무공들은 깨달음의 무공이다.”

세이브에 대한 광신적이 믿음을 지닌 모든 헌터들이 들으면 단체로 기함할 소리를 아무렇게나 한 천무지만 그는 그 말 그대로 제황의 상태창에서 무련천가 무술들의 숙련도라는 것을 지워지게 만들었다. 스킬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제황은 이 현상에 대해서 권제에게 들을 바가 있었다. 유니크 스킬 중에서도 최상급의 스킬들은 가끔 숙련도가 사라진다고 한다. 세이브가 스킬의 이해에 실패했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달라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무련궁술과 호랑이사냥은 아예 스킬 이름이 바뀌어 버렸다.

아니 바뀐 것이 아닌 본디의 이름을 되찾았다는 게 옳은 표현이다.

무련궁술의 기본을 이루는 비상하는, 춤추는, 폭발하는, 강기의 라는 네 개의 인첸트에 새로운 ‘소나기 화살’ 이라는 것이 추가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화살을 빠르게 쏘아 구현하는 스킬이 아닌 하나의 화살을 마나를 통해 수십 개로 실체화시켜 날리는 것이었다. 그 본질은 고작 마나로 이루어진 실체가 없는 화살이지만 그 파괴력은 일반화살보다 강했으면 강했지 못하지는 않다.

또한 이전까지는 주먹구구식으로 그것들을 섞어 사용했다면 천무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노하우를 흡수했기에 좀 더 유연한 사용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무한고를 통한 사격방법과 융합되자 말 그대로 화살의 소나기가 뿜어지게 만들었다.

호랑이 사냥의 이름은 암혼보로 바뀌었다.

엄밀히 따지면 호랑이 사냥은 무련천가의 사람들이 착호갑사의 뿌리가 되면서 그 본질이 호랑이 사냥에 특화되며 그에 맞게 분화된 것일 뿐이지 본디 그 원류는 암혼보였다.

호랑이사냥은 이전에도 거의 무적에 가까운 은신능력을 제황에게 부여해 줬지만 이제는 그 엄청난 은신 능력에 속도라는 무기를 달았다. 스킬 이름의 끝에 ‘보’ 라는 게 붙은 이유를 말해주듯 암혼보를 실행한 상태에서 빠른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역시 이전에 보유하고 있던 것 중 가장 엄청나게 변한 것은 바로 용혈신공이었다.

‘여의용혈신공’

천무는 하나 밖에 남지 않은 후손을 위해 성산을 수호하는 삼신가 무련천가의 의무를 스스로 버렸다.

“본디 무련천가의 용혈신공은 여의보주를 품기 위해 만들어진 심법이다. 이제 본디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일 뿐이지. 훗. 어차피 반대할 놈들도 없다.”

성산의 신물인 여의보주를 제황의 몸에 흡수시킨 천무는 만족스럽다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제황은 웃을 수 없었다. 천무를 포함한 무련천가의 모든 것들이 희미한 안개에 휩싸이듯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의보주를 통해 지탱되고 있던 술법이 이제 그 힘을 다하고 있었다.

“선조시여.”

“아쉬워하지 마라. 이것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무련천가의 흔적이...”

“하하! 무련천가의 가주가 있는 곳이 바로 무련천가다.”

정겨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 천무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네가 무련천가의 가주다.”

“가주...”

눈을 감고 천무와의 추억에 잠겨 있던 제황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금 스킬을 확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여의용혈신공...그리고 신벌의 화살”

여의보주를 흡수한 용혈신공은 단숨에 그 격이 두 단계 상승했다.

복부에 느껴지던 묵직한 마나엔진의 느낌은 이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제황은 지금 온몸을 휘도는 거대한 물결을 느끼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순수한 에너지다. 근육 한 줄기 한 줄기가 모두 마나를 머금은 듯 생동한다.

마치 몸 전체에 마나가 가득 찬 것 같다.

위이잉

제황이 손바닥을 펴자 제황의 손 위로 붉은 구체가 떠올랐다.

이것은 이전에 제황이 스스로 창안했던 ‘제황식 강기방출’ 이라는 스킬이었다.

이 스킬은 아예 상태창에서 사라져 버렸는데 그 이유는 바로 유니크스킬로 격이 높아진 용혈무가 강기를 사용하는 고위의 무공으로 탈바꿈 되었기에 더 이상 상태창에 있을 필요가 없어져서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구체를 만드는데 아무런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나양: 11,050

마나회복량: 30

찔끔하고 소모되었던 마나가 금세 차올랐다.

이전에 고작 천 대 남짓이었는데 그것이 무려 10배가량 커지고 마나회복량 또한 전설급 스킬에 걸 맞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지.”

지금 제황의 눈앞에 보이는 이 엄청난 마나양이 여의보주가 가진 공능의 아주 작은 조각 하나일 뿐이라고 천무에게 들었다. 여의보주는 쓰기에 따라 세상을 파멸에 이르게 만들 수도 있다. 단지 지금은 제황이라는 한 인간의 몸속에 그 실체를 감추고 있을 뿐 그렇기에 천무는 그 누구에게도 여의보주의 소유를  감추라 했다.

“그리고 여의보주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무련천가 가주의 상징... 신벌의 화살”

무한고에서 화살 하나를 뽑아든 제황은 그 화살촉에 정신을 집중하려 했다. 그렇지만...

-그거 하지 마!

궁기가 뾰족한 목소리로 말하며 제황을 제지했다.

-왜?

-네가 그 짓 할 때마다 소름 돋는다고... 그 기운을 보는 것도 난 힘들어... 게다가 너 그거 아직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잖아.

-쩝, 알았어.

궁기의 칭얼거림에 제황에 쓴웃음을 지으며 화살을 다시 집어넣었다.

‘신벌의 화살’

.

이것은 무련천가의 마지막 가주 천강이 여의보주의 공능을 통해 제황에게  전해준 스킬이었는데 그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필수조건이 필요했다.

‘여의보주’

신을 죽이는 능력이니만큼 만약 여의보주 없이 이 능력을 사용하게 되면 스킬을 사용한 순간 시전자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 제황은 모르겠지만 과거 ‘신벌의화살’ 의 사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 삼신가가 모두가 그것에 동의했을 때만 꺼내들 수 있는 성산이 보유한 최강의 무기가 바로 이것이었다.

삼신가가 모두 동의한 상태에서 성산의 재가가 떨어지면 그 때서야 여의보주를 받아 살행에 나서는 무련천가였다. 이제 그 힘이 제황 하나에게 오롯이 모였다.

‘신벌의 화살...아니 신살자의 화살’

“신벌의 화살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부정하고 끊어내고 부순다.”

제황에게 신벌의화살을 넘긴 직후 천무가 말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화살입니까.”

“그렇다. 모든 것이다. 신조차 죽일 수 있다. 과거 수많은 반신들이 ‘신벌의 화살’ 속에 스러져 갔지.”

담담한 어투지만 그 말 속에 담긴 뜻은 너무나 어마어마했다.

신적인 격을 지닌 것들조차도 이 화살은 피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궁기도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아직은 네 몸에 새긴 것에 불과하기에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오랜 고련이 필요할 것이다.”

“예.”

굳이 그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제황은 깨닫고 있었다.

신벌의 화살은 함부로 쓸 수 없는 능력이라는 것을...

“여의보주가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신벌의 화살 그리고...”

제황은 마지막으로 무한고에서 한 자루의 철궁을 꺼내 들었다.

비천궁-슈페리어등급 세트 아티펙트 (2/2)

사용제한:무련천가의가주

활세기: 600파운드

최대사거리:6000미터

유효사거리:3000미터

제질: 강철(아티펙트)

특수능력

가속(S급)

관통(S급)

방어무시(S급)

세트효과

무련천궁단 소환 (쿨타임: 10일)

비천궁 (1/1)

비천격 (1/1)

제황은 검은 가죽으로 마감된 활손잡이를 잡은 채 조심스럽게 시위를 잡아당겼다.

드드드득...

활세기가 무려 600파운드에 달하지만 시위를 당기는데 필요한 힘은 오히려 이전에 사용하던 것들보다 훨씬 적었다. 마치 주인을 알아보는 듯한 이 활은 바로 무련천가의 가보인 비천궁이다.

드러난 성능만 따져도 비할 데 없이 강력한 이 철궁은 마치 제황과 한 몸이었던 것처럼 손에 착 달라붙었다.

제질이 강철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강철이 아니다. 아티펙트가 되는 순간 그것은 그 지나온 세월만큼의 힘을 얻어 강해진다. 또한 아티펙트라는 것들은 자체수복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괜히 아티펙트에 수십 수백억을 쏟아 붓는 게 아니다.

특히나 세트아티펙트를 모으자 나타난 세트능력인 ‘무련천궁단 소환’ 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쿨타임이 좀 길기는 하지만  사용하기만 하면 단 일인이 전쟁의 성패를 가를 수 있을 정도로 그 능력은 가공스러웠다.

그때 제황의 옆에서 여성의 고운 미성이 들려 왔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궁기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제황을 노려보고 있다.

“저기 그동안의 성과를 확인하는 건 좋은데 오늘은 그냥 좀 자면 안 될까?  확 기절시켜 줘?”

“윽... 아니야.”

순식간에 목을 파고 들어오는 부드럽고 가녀린 팔의 느낌에 제황이 식은땀을 삐질 흘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목을 죄는 듯한 모습이지만 등에 느껴지는 궁기의 풍만하고 말랑말랑한 그것의 느낌이 더 곤혹스럽다.

“자자.”

“그래.”

제황이 먼저 침대에 눕자 궁기는 제황의 한쪽 팔을 끌어와 자연스럽게 팔베개를 해버렸다.

따스하고 말랑말랑한 여체가 붙어오자 제황은 침음성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오늘밤도 힘들겠군.’

만약 제황과 궁기의 관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꼴을 본다면 제황을 향해 ‘고자냐?’ 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아는 실력좋은 비뇨기과를 추천해 주거나... 그러나 이것에는 제황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궁기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 여성의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그 본질은 호랑이 신수다. 아무리 그녀가 금수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해도 종의 차이는 뛰어 넘을 수 없었다. 물론 남녀 간에 유사성행위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하기에 제황의 성지식은 너무나 부족했다.

그냥 그런 것이다. 이 병신 커플은...

***

다음날 아침 부스스한 얼굴로 잠에서 깬 제황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숙소를 나섰다. 오랫동안 평상복처럼 입고 있던 장비들을 모두 벗고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도착한 곳은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식당이다.

가벼운 아침식사를 시킨 채 스마트폰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식당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한 인영이 고개를 숙인 채 비척비척 걸어 들어왔다. 그는 식당 안에 누가 있는지는 아무 관심 없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배식구로 가서 말했다.

“이모, 어제랑 똑같이요.”

“앉아있어.”

주방에서 제황의 식사를 준비하던 중년여인은 그 거한이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익숙한 손길로 거대한 밥솥을 꺼내 들었다. 남자가 먹는 양은 일반인의 수배에 달한다.

“어...”

앉을 곳을 찾아 고개를 휘휘 돌리던 그는 창가에 앉아 스마트폰을 뒤적이고 있는 제황을 발견하고는 소태씹은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와서 앉아라.”

제황이 스마트폰에서 시선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자 씩씩 거리던 동철이 제황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동철이 제황을 말없이 노려보고 있자 제황이 스마트폰에서 눈을 뗀 채 동철에게 물었다.

“내가 너무 빨리 돌아온 게 그렇게 불만이냐? 대체 뭐가 문제야?”

“그...그건...끙... 아니다.”

제황이 어제부터 성질을 내던 이유를 묻자 씩씩거리던 동철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설레발이 자초한 참사다. 솔직히 따져서 제황이 무슨 죄가 있는가. 단지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고 화를 낸다면 그건 정말 자신만 우습게 되는 것이다.

잠시 후 식탁이 가득 채워지고 둘은 묵묵히 식사를 시작했다.

동철이 커다란 주걱을 수저 삼아 전투적으로 밥을 입에 퍼 넣는 반면 제황은 젓가락으로 밥을 떠 건성으로 입안에 밀어 넣으며 한손으로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킁...”

자신의 몫으로 놓인 거대한 밥그릇의 절반정로를 후딱 해치운 동철은 불만스러운 눈으로 맞은편의 제황을 노려봤다. 자신은 오늘부터 훈련을 빙자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그 원인제공자는 스마트폰질 하면서 밥 먹는 꼴이 마치 눈꼴 시려워 미치겠다.

“뭐 보냐?”

동철이 퉁명스럽게 묻자 동철을 힐끔 바라본 제황이 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슬쩍 뒤집었다. 그러자 스마트폰에 떠 있는 화면을 본 동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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