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가주계승-4
완전한 형태의 무련궁술과 무련천가의 모든 것을 말이다.
무련천가를 지키는 천무는 말 그대로 미쳐 있었다. 어느 날은 머리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잠잠했다. 한결 같은 것은 침범해 오는 모든 것에 살의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뭔가를 지키는 것처럼 무련천가 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제황에게 다행이었다. 만약 그가 제황을 끝까지 추적했다면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까.
"좋아!"
천무의 모든 동선을 파악한 제황은 그날부터 눈에 불을 켜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악! 허락되지 않는 자! 죽는다.”
매일 매일이 살얼음판과 같은 나날이었다. 매일 피투성이가 되기 일쑤였고 목숨이 경각에 달은 상처를 입는 날도 많았다.
"후욱...후욱..."
-너 이러다가 죽어!
-아직이야. 아직...
제황은 목숨을 담보삼아 매일 같이 그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 노력했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위기가 찾아왔다. 천무의 공격에 두 다리를 당하고 궁기조차고 화살에 꿰여 쓰러졌을 때 제황은 그의 운명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줄기줄기 강기가 흐르는 화살이 제황의 목에 겨누어 졌을 때 제황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순간 천만 다행으로 천무가 잠시나마 제정신을 차렸던 것이다.
천무는 즉시 공격을 멈췄고 제황은 그 틈에 긴급재생으로 몸을 치유할 수 있었다.
제황과 천무가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했다.
“무련천가 제58대손 천제황 32대 가주께 인사드립니다.”
“허...”
제황이 천무에게 큰절을 하자 천무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무려 16대를 거스른 조손의 만남이었다. 후손임을 알아보기는 쉬웠다. 굳이 비천격을 보이지 않아도 제황과 천무의 얼굴은 한 핏줄이라고 할 정도로 닮아 있었으니까.
천무와 마주한 제황은 그가 알고 있는 한에서 가문의 역사를 그에게 모두 이야기 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후...그런가"
천무는 제황이 무련천가의 마지막 후손이라는 말을 듣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 무련천가의 모든 가솔들에게 천주백가를 지옥 끝까지 쫓으라 명령했지. 그 바보 같은 명령을 그들은... 그들은 정말 고집스럽게 지키려 했구나. 슬프고 비통하구나. 이 내 몸은 이곳에 묶여 영영 지킴이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대체 왜! 저주받을 성산이여. 대체 언제까지 이 억겁의 숙명을... 크윽...”
말을 잇던 천무가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가 제정신을 유지하는 시간이 다 되어 가는 것...
“어서 이곳을 떠나거라! 내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천무가 그에게 도망치라 말했다.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것 그렇지만 제황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무련천가를 다시 일으킬 것입니다. 그렇기에 선조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이을 때까지 이곳에서 물러날 수 없습니다.”
제황의 말에 천무는 아무 말 없이 제황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이야. 강함을 원하느냐? 굳이 우리 무련천가의 힘이 아니더라도 난 네게 강함을 줄 수도 있다.”
천무는 그의 후손들이 더 이상 이 굴레에서 벗어나길 빌었다. 무련천가의 힘이 아니더라도 더욱 강한 힘을 그에게 줄 수 있는 그였다. 그러나 제황은 단호했다.
“무련천가의 힘이 아니면 제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무련천가를 잇는다는 것은 단순히 강함을 추구하는 게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와 그의 할아버지 그 거스르고 거슬러 올라 가문의 비기를 세월 속에 하나하나 잃어버려야 했던 모든 조상들의 염원이기도 했기에 그것을 계승하는 것은 제황의 사명이기도 했다.
“무련천가의 힘에는 숙명이 따른다. 넌 그 힘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야.”
“저는 절대 꼭두각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제황의 굳은 다짐에 천무는 결의에 찬 제황의 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나 또한 이제 이 숙명이 지긋지긋하구나.”
“예.”
그날부터 제황과 천무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천무가 제정신을 차리는 시간을 일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배우고 익히며 시간이 흘렀다.
스킬들이 하나하나 분해되고 재해석되었고 제황의 상태창은 그 때마다 대격변을 일으켰다. 숙련도가 널뛰기 하고 이름조차 생소한 스킬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제황은 시간의 흐름조차도 잊었다. 술법 속이기에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은 채 수련에 매진했고 제황의 힘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기 시작했다.
천무와 생활하며 제황은 바깥 이야기를 간간히 그에게 풀어놨다.
“철로 된 상자가 하늘을 날고 외계의 괴물들이 출몰하는 세상이라... 대융합... 세 개의 세상... 허...그러고 보면 내가 조금씩 이성을 잃기 시작한 때와 어느 정도 시간이 일치하는구나.”
천무는 허탈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세 개의 세상이 합쳐진다면...”
“추측일 뿐이지만 앞으로 내가 제정신을 유지할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 거라는 거겠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지만 제황은 왠지 마음이 아려왔다. 그것은 그와 함께할 시간이 줄어간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수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어느 날 천무가 제황에게 하나의 작은 옥함을 내밀었다.
그 옥함은 온갖 화려한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내부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게 제황에게도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게 뭡니까.”
“내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것이며 너를 완성시켜 줄 마지막 조각임과 동시에 우리 무련천가를 맹약에서 벗어나게 해줄 신물이지..”
“?”
뜻 모를 말과 함께 천무는 옥함을 열었다. 옥함 안에는 동그란 구체의 손바닥 만한 하얀 돌이 들어있었는데 그것을 손으로 집어든 천무는 옥함을 거칠게 내팽개쳐 버렸다. 아니 그것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발을 들어 옥함을 박살내 버렸다.
“이 정도 지켰으면 이제 성산의 의리는 다 지킨 것이다. 박살내 버리니 속이 후련하군.”
마지막 남은 조각까지 완전히 밟아 으스러뜨린 천무가 달걀 모양의 하얀 돌은 제황에게 내밀었다.
“받아라.”
제황은 온몸을 타고 흐르던 식은땀마저 말라버리는 걸 느꼈다. 흘러나오던 힘의 정체는 바로 이 돌멩이였다. 끝을 알 수 없는 힘이 구슬에서 마구 뻗어나와 사방을 가득 채웠다.
“받을 수 없습니다.”
제황은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저었다. 천무가 뭔가 엄청난 결심을 한 것 같은데 왠지 이것을 받으면 천무와는 더 이상 영영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제황에게 들었던 것이다.
-그,그것은 여의보주야.
궁기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뭐?
-여의보주! 모든 힘의 결정체! 신들의 무구이며 모든 생명의 시작이자 끝!
그녀의 말에 제황은 깜짝 놀라 그 하얀 돌을 바라봤다.
여의보주(如意寶珠)
전설 속에나 나오는 그런 물건이다.
-여의보주. 그래. 생각난다. 천주백가와 흑룡이 노리던 성산의 신물! 저것을 얻는 인간이나 짐승은 단숨에 신격을 얻을 수 있어. 하아... 보는 것만으로도 도력이 차오르는구나. 하아...제기랄..나...난 잠을 자야겠다. 이대로는 더 이상 유혹을 이기기가 힘들어.
참기 힘든지 힘겹게 말을 이은 궁기가 이내 제황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받거라.”
천무의 말에 제황은 그것을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청룡의 여의보주]- 갓 아티펙트
재질:???
특수능력:
“갓?”
제황은 듣도 보도 못한 등급을 지닌 여의보주에 다시 한 번 전율했다. 신급이라니...
아마 세상의 모든 아티펙트를 한 줄로 세운다면 아마 이 여의보주는 가장 앞에 서리라.
“네게 무련천가의 가주에게만 계승되는 마지막 오의를 전하려 한다. 무릎을 꿇어라.”
천무의 말에 제황이 곧장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천무가 그의 등에 매여져 있던 비천궁을 풀어 제황에게 넘겼다.
“들어라.”
“이것은...”
“들라했다!”
천무의 노성이 터졌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든 제황은 천무의 얼굴을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천무의 눈에는 서서히 살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눌러 참는지 이를 악문 채다. 그의 입가로 붉은 선혈이 흐른다.
“알겠습니다.”
천무는 지금 자기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날이 갈수록 아니 제황에게 무공을 전수하면 할수록 천무가 제정신을 차리는 시간은 짧아졌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제황이 눈을 질끈 감으며 비천궁을 받아 들었다.
“나 무련천가 제 32대 가주 천무는 무련천가 58대손 천제황에게 무련천가의 정통한 후계자로 인정하며 동시에 무련천가의 비의 ‘신벌의 화살’을 계승하노라!”
파파파팍!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황의 두 손에 들린 두 개의 물건이 하얀 빛을 내며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천무의 두 손에 제황의 머리 위로 올라왔고 동시에 세군데에서 일어난 하얀 빛이 제황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큭...”
제황은 그의 머릿속에 미증유의 기운이 홍수처럼 쏟아지자 그는 머릿속을 후벼 파는 고통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질렀다.
“으윽!”
“참아라!”
천무의 추상과 같은 호통에 제황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잇 사이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두 눈의 실핏줄이 터져 혈안이 되었다.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계승을 시작한다!”
잠시 후 제황은 그의 머릿속으로 머릿속을 까맣게 태워버릴 듯한 용암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것은 용암이 아닌 '신벌의 화살' 이라는 깨달음의 조각 들이었다. 그것은 각성자가 세이브를 통해 스킬을 얻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수천 수만가지의 깨달음이 말 그대로 제황의 머릿속에 세겨져 들어온다.
“으으...”
계속되는 고통에 제황이 서서히 정신을 잃어갈 즈음 어느 순간 여의보주에서 터져 나온 하얀 빛이 천지를 뒤흔듬과 동시에 제황의 손에서 사라져 버렸다.
[레전드 스킬을 각성하셨습니다.]
***
-그분은 소멸되셨을까?
-나도 그건 모르겠어.
“후우...”
제황은 몸을 일으켰다. 그 때를 생각하니 다시금 가슴이 진탕이 되었다. 눈을 감으니 다시금 그때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기억 속 천무가 제황에게 말했다.
“이제 쉬고 싶구나.”
“...”
“나의 후손이여. 너만이 나를 온전한 안식으로 인도할 수가 있단다.”
천무는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제황에게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황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쩌면 제황에게 진정한 사부의 의미에 부합하는 건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이 천무이리라.
무련궁술을 익히기 위해 그 지옥과 같은 궁기옥에서 몇 년을 참오했는지 모른다.
제황이라고 왜 힘들지 않았겠는가. 만약 궁기가 곁에 없었다면 제황의 정신은 진즉에 어딘가 망가졌을 것이다. 그런 고생 끝에 얻은 무련궁술이 천무의 손에서 다시금 재정립되었다.
“여린 녀석...”
천무는 쓸쓸한 표정으로 제황을 바라봤다.
그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가면 이제 이 세상에 무련천가는 오로지 단 한명만이 남는다. 그렇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제 무련천가의 숙명은 사라졌으니까.
“여의보주를 네가 가짐으로 이제 네게 무련천가에 얽힌 피의 숙명은 없을 것이다.”
“선조시여.”
“마저 듣거라. 성산과 얽힌 무련천가의 업은 이제 사라졌지만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었던 천주백가는 아직 세상에 남아 있다 들었다.”
“예.”
천무의 목소리가 비장하기 이를데 없다.
“찾아라. 찾아서... 그들에게 무련천가의 신벌의 화살을 날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