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30화 (130/301)

# 130

가주계승-3 (수정)

치기어린 애송이의 그것이 아니다. 고고히 높은 곳에 있는 이만이 보이는 눈빛이다.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천제황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나 최진하의 경계는 풀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의간격’내에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이질적인 괴물’ 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검 위에 올린 손이 가늘게 떨린다.

그는 지금 오랜만에 느끼는 인지부조화에 갈등하는 중이었다.

분명 그의 몸은 베어버리려고 하지만 이성은 제황이가 맞다고 외치고 있었다.

“너... 어떻게 된 일이냐.”

침묵 끝에 최진하의 입이 열렸다. 그러자 제황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조금의 성취가 있었습니다.”

최진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괴물은 두 달 정도면 이 정도의 발전도 가능한가 생각하니 소름이 돋을 정도다.

최진하는 칼에서 손을 놨다.

경계심을 푼 것은 아니다. ‘공의 간격’ 이 희미하게나마 녀석을 잡아내기 시작했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모르고 있을 것이다. 제황이 일부러 그에게 흔적을 남겨 줬다는 것을...

“놀랍구나.”

최진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감상을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후, 그게 운이라...”

농담이라면 정말 지독할 정도로 잔인한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최진하였다.

“그럼 저는 권제님을 뵈러...”

“그래... 가 보거라.”

제황이 뒤돌아 무적궁으로 걸어가자 제황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최재하는 잠시 후 그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이건 마치 예전에 그놈을 봤을 때 느꼈던 기분과 흡사했다.

‘더스트’

세계 단 두 명밖에 없는 8성 헌터 중 하나 더스트... 소속도 국적도 밝혀지지 않은 베일에 싸인 등급 외 괴물...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것이었다.

***

“후우...”

제황은 샤워를 마치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삼주?

“풋..”

제황은 머릿속에 떠오른 그 단어를 생각하며 실소를 터뜨렸다.

-궁기

-왜.

-우리가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대충 얼마나 될까?

제황의 물음에 한동안 말이 없던 궁기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대략 10년... 어쩌면 15년일 수도 있지. 3주가 맞을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겠어. 그곳에서 그의 능력은 무한 그 자체였으니까.

무한이라...

제황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 힘을 계승했다.

무련천가의 흔적이 있으리라 예상되는 백두산으로는 초고고도수송기를 이용한 고공다이빙을 시도했다. 궁기의 말을 종합하여 예상지점 두 군데를 찍었고 군전문가들과 상의한 결과 고공다이빙이 가장 몬스터와의 교전을 줄일 수 있다는 답을 얻어냈다.

물론 처음에는 제황을 완벽하게 미친 놈 취급했다. 아주 한결같이... 하필 갈 곳이 없어서 최악의 몬스터 천국으로 공격대도 아닌 혈혈단신으로 가겠다는데 미친 놈 취급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무적성의 이름과 그 동안 군과 쌓은 인맥을 통해 초고고도수송기의 사용을 승인 받았고 1주일간에 걸쳐서 속성 고공다이빙을 배울 수 있었다. 단기기는 하지만 각성자의 신체와 반사 신경이 받쳐주니 배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게다가 제황이 매우 성실하게 훈련에 임하자 제황을 가르치는 조교들도 제황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삼주 전 제황은 그곳에 내려앉았다.

비록 중간에 8티어 가량으로 보이는 도마뱀 형상의 공중몬스터에게 잡아먹힐 뻔하기는 했지만 운 좋게도 그것을 피해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

약 하루 간을 시간을 두고 주변탐색을 마친 제황은 곧바로 흔적 찾기에 돌입했고 다행히

제황이 가장 처음 찍었던 장소에서 무련천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일반적인 상식에서 나오는 허물어진 집터라던가 혹은 건물이 있던 흔적이 아닌 거대한 게이트와 같은 형태라도 말이다. 제황은 처음에 그것을 다크어스나 엘어스로 통하는 게이트로 생각했다. 그 모습이 워낙 비슷했으니까.

그렇지만 그 게이트가 이세계로 통하는 구멍이 아닌 고대의 술법을 통해 구축되어진 이동진이라는 걸 궁기에게 들은 제황은 곧바로 진입을 시도했다.

그리고...

미쳐버린 신... 아니 제황의 선조인 32대 무련천가의 가주 천무를 만날 수 있었다.

32대 무련천가의 가주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본가를 최후까지 수호하던 마지막 가주라고 하는 게 정확하리라.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제황은 깜짝 놀랐다. 저 게이트 밖은 하늘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거대한 이계수들로 인해 말 그대로 어둠 속에 잠긴 습하디 습한 밀림이었다.

햇살이 닿지 않으니 쌓이고 쌓인 낙엽과 각종 오물들이 썩어 문드러져 인간에게 해로운 유독가스가 지표면에 자욱했다. 게다가 궁기안에 잡히는 몬스터들은 단순한 7티어 8티어 따위가 아닌 8티어 몇 마리가 냄새를 맡고 접근 중이냐를 걱정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마치 과거의 기억을 되감기 한 듯 하얀 설원,  화창한 햇살 속에 거대한 궁이 고고하게 서 있었다.

-술법이야.

-그래.

만약 궁기가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믿어 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이 현실과 같았다. 궁으로 가는 오솔길 사이 목이 말라 마신 작은 샘터의 약수는 정말로 그의 갈증을 없애 주었고 신발에 묻은 풀잎 쪼가리들에서는 특유의 그 흙냄새가 진동했다.

활짝 열린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수십 채의 가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사람하나 보이지 않지만 마치 바로 조금 전까지 누군가가 쓸고 닦은 것처럼 깨끗하게 정리된 그 토담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했다.

전통 있는 무가의 고풍스러운 연무장으로 보이는 곳 한가운데 한 사람 형상의 것이 서 있는 것을 말이다. 재질을 알 수 없는 온통 검은색의 가죽갑옷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뒤덮은 그것은 한 손에는 한 자루의 철궁이 들려 있었다.

“저건...”

제황은 그 활을 보고는 눈이 커졌다.

믿을 수 없는 장소에서 믿을 수 없는 것을 발견한 제황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께 들은 바 있던 그 모양 그대로의 활이 그곳에 있었다.

“비천궁...”

하늘에서 떨어진 운철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 졌다는 비천궁은 무려 서른 근이라는 말도 안 되는 무게를 지닌 금속으로 된 태궁이었다고 전해 들었다. 애기살을 날리는 통아인 비천격과 한 쌍을 이루는 이 철궁은 무련천가의 가보이자 가주를 상징하는 신물이다.

대체 왜 할아버지께서 잃어버렸다고 알려진 비천궁이 이곳에 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만약 그 인물이 움직이지만 않았다면 제황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비천궁에 큰절을 올렸을 것이다.

연무장의 대리석을 제황이 밟는 순간 그 인물을 몸을 돌려 제황을 바라봤고 곧이어 입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열렸다.

“너희는 자격이 없다. 물러가라.”

증오만이 가득 섞인 그의 목소리 속에는 오랜 세월을 격해 뿌리를 찾아 돌아온 후손에 대한 한 가닥의 반가움도 들어있지 않았다.

-무련천가 32대 가주 천무...

-누구?

-네 까마득한 조상이야! 조심해!

궁기의 경고에 눈을 돌린 순간 제황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를 향해 짓쳐드는 한 줄기 빛을...

-죽는 줄 알았지.

-그래.

당시에 제황이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면 아마 이곳으로는 영영 돌아올 수 없었으리라.

그는 강했다. 단순히 강함을 비교한다면 권제를 말할 수 있겠지만 그는 권제보다도 한 차원 더 높은 경지를 가진... 그렇다 진짜 괴물이었다.

그의 손에서 비천궁을 통해  펼쳐 나오는 무련천가의 비기는 바로 진정한 완성형의 무련궁술이었고 제황은 오로지 그의 손에서 벗어나는데 전력을 다해야 했다.. 호랑이사냥이고 뭐고 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천무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로 이루어진 화살은 그 어떤 것보다 치명적이고 집요했다.

오히려 호랑이사냥을 켜는 순간 잠시의 방심이 있었고 그 잠시간 날아온 화살에 팔을 내줘야 했다.

비록 그가 실체조차도 의심스러운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가 쏘아낸 화살이 팔에 박히는 순간 제황은 그것이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도...

-술식의 세력권에서 벗어나자! 어서!

-어디!

-일단 궁 밖으로!!!

퍽! 퍼퍼퍼퍽!!!

궁기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수발의 화살이 날아와 제황의 뒤를 쫓았다.

피리리링!

날카로운 바람 찢는 소리와 함께 요동치는 화살이 마치 추적미사일처럼 계속해서 제황의 뒤를 따라붙는다. 제황의 경우 전력을 다해야 세 번 정도 공중에서 비틀 수 있는 ‘춤추는 화살’ 이 그의 손에서는 수십 번의 용트림을 보여줬고 강기의 화살의 이전 버전이 힘의 화살은 업그레이드 된 강기의화살이 무색할 정도의 파괴력으로 제황의 몸을 두들겼다.

“제길!”

스톰레이지로 반격을 노렸지만 오히려 그것은 적에게 화살을 가져다 바치는 짓이었다.

그는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붙잡아 비천궁의 시위에 거는 엽기적인 짓을 버젓이 해댔고 그 때부터 제황은 반격보다는 도망에 온 힘을 다했다.

-진짜 무련궁술이야!

-저게?

이전까지 제황은 그가 온전하게 가문의 궁술을 잇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무려 지구의 기억속에 남은 무련궁술의 자취를 시스템의 힘으로 끌어와 완성시켰던 거니까.

물론 그 말은 절반 정도는 맞았다. 최소한 무련궁술의 외형은 완벽하게 가져온 게 맞았다. 그러나 그 무련궁술의 혼은 시스템조차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고 선조의 비천궁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무련궁술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얼마나 도망쳤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하나 분명한 것은 무련천가를 빠져나오자 공격이 거짓말처럼 멈췄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 거짓말 같던 건 그곳을 벗어나는 순간 몸에 났던 모든 상처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육량천궁대환멸진(六量千穹大幻滅陣)

-뭐?

-그냥, 신적인 존재만이 펼칠 수 있는 강력한 술법이야. 시공을 거스르지는 못하지만 천년이고 만년이고 시공을 잡아두는 것을 목적으로 펼치는... 그런데 대체 왜...

궁기는 침묵에 빠졌다.

지금 저곳에 펼쳐진 절진은 그녀의 능력으로도 구현이 불가능한 고위의 술법이었다.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최악의 경우 제황과 그녀가 이곳을 탈출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런 것을 떠나서 왜 무련천가의 가주인 천무가 제황을 적대시 하냐는 것이었다.

-너무 위험해.

궁기가 제황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저 육량천궁대환멸진의 주체가 되는 저 천무가 가장 위험했다.

무련천가는 적에게 자비가 없다. 그렇기에 모든 공격은 적의 목숨을 노린다.

지금은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두어 대의 화살을 궁기가 나서서 막지 못했다면 제황은 이곳까지 도망치지도 못했으리라.

그렇지만 제황은 물러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얼굴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좋아.

-뭐?

-진정한 무련궁술을 배울 기회야.

제황은 천무가 펼치는 무련궁술을 보며 자신의 무련궁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깨달았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기뻤다. 가문의 궁술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본 것은 물론이고 작게나마 실마리도 잡았기 때문이다.

-도전하겠어. 얼마가 걸리더라도...

-하아. 이 미친 종자들...

궁기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지만 이미 제황은 다시금 돌아나온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황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헤아릴 수도 없는 시간의 굴레 속에서...

그리고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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