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가주계승-2
“야! 이 미친 새끼야!”
동철의 외침이 무적궁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아아악!”
아니 그것은 외침이 아니었다. 목소리의 끝은 억울함이 사무쳐 차라리 비명이라고 표현하는 게 어울리리라.
매일 수없이 고민했다. 신중하기 보다는 기분파인 그도 권제의 앞에 서기까지 무려 삼주가 걸렸다. 무적궁 앞까지 왔다가 망설이기를 몇 번이던가.
그런데 그 결심의 원인이 되었던 친구가 어디 가벼운 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약속된 기간도 안채우고 돌아왔으니 동철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뛰는 것도 당연하다.
“왜 욕하고 지랄이야!”
나름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왔는데 환영해 주지는 못할망정 대뜸 욕부터 하니 기분이 상한 제황도 마주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그러나 동철에게 제황의 그 말을 들을 정신 따위는 없었다.
“난...난! 난! 으아아아!”
푸른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은 동철은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외쳤다.
-얘 왜이래?
-그러게. 뭐 잘못 먹었나.
덩치 큰 곰이 머리를 쥐어 뜯으며 대리석 바닥에서 몸부림치는 꼴도 그다지 보기 좋지 않지만 지금 이 정신 나간 친구에게 뭔가를 주지시켜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 드는 제황이었다.
“동철아.”
“왜!”
“너 여기가 어딘지 잊은 거냐?”
제황의 한마디에 이계로 가출했던 동철의 영혼이 황급히 되돌아왔다. 이대로 미친 척 하기에 이곳의 주인은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
이곳은 무적궁 앞, 바로 권제가 기거하는 곳이다.
“젠장... 크윽.”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동철이 비실비실 몸을 일으켰다. 아니 동철이 몸을 일으킨 것은 자신이 지금 비명이나 지르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잘하면 주워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동철의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세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황아.”
“왜?”
“나 나! 한... 한달 정도만 입원시켜 주면 안 되냐?”
“너를?”
제황이 동철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뜬금없이 자기를 입원시켜 달라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게... 하아.”
이유를 설명하려던 동철은 고개를 저었다. 말하기도 쪽팔리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역시, 힘들겠지. 크으”
자신이 부상으로 한 달간 입원을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자신이 한 달 짜리 부상을 입는다는 건 말 그대로 헌터의 생명이 끊어졌다는 뜻과 같다.
권제에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아도 이삼일이면 회복하는 게 자신이었다.
예전 레이드에서 7성 몬스터에게 배를 관통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가진 스킬 ‘초회복’ 은 그 상처마저도 3일 만에 회복시켰다. 회복하는데 엄청난 양의 음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먹을 것만 있으면 거의 무적에 가까운 재생력이었다.
한 달 부상을 만드는 것보다 죽이는 게 더 쉬운 동철이었다.
그때 뜻하지 않은 대답이 제황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뭐, 가능하기는 한데... 대체 이유가 뭐냐?”
제황이 고개를 갸웃하며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동철의 눈이 커진다.
“정말 가능해?”
“뭐, 가능은 해. 이전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가능할 것 같아.”
제황의 대답에 동철이 잠시 움찔 했다. 어떤 상처든 낫게 만드는 초회복을 지닌 자신을 한달 입원 시켜 줄 수 있다는 제황의 말이 선뜻 믿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제황의 말이니 믿기로 작정하고 입을 열려는 찰나...
철컹...
무적궁에서부터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다지 크지 않은 키에 헐렁한 왼팔 허리춤에 아무렇게나 끼워넣은 검... 최진하다. 그런데 뭔가 상당히 불만스러워 보이는 눈치다.
얼굴에 심통이 가득한 그는 동철과 제황을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제황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그 인사를 건성으로 받은 최진하가 바닥에 앉아 있는 동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놈...”
동철을 내려다보는 최진하의 눈빛이 사납기 그지없다.
“네놈 때문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마주 바라보는 동철을 노려보며 최진하는 조금 전 권제와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진하야.”
“예.”
“저놈 참 기특하지 않냐?”
권제의 말에 최진하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사석인 자리이기에 편하게 말하는 최진하였다.
“그렇습니다. 형님. 요즘 녀석들 답지 않게 참 인내심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게 어떤 악바리 같은 놈도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었는데 말이야. 저놈은 자청해서 수련을 더 받겠다고 하네.”
권제가 묘한 눈초리로 최진하를 흘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최진하의 낯빛이 살짝 붉어졌다.
“흠흠, 아 형님 그 이야기는 왜 또...”
“왜 또 라니? 대 무적성에 무상 최진하가 수련이 무서워 도망친 즐거운 추억인데...”
“거 참 애들 있는 곳에서...”
둘만 있다면 모를까 이곳에는 듣는 귀가 너무 많았다.
“아니 내가 못할 말 했냐? 너 그 때 그만하시라고 울며불며 뛰쳐나가서는 열흘 동안 밥도 안 먹고...”
“아! 형님!”
“거참, 짜식... 뭘 그리 부끄러워 해.”
“그게 아니라.”
“푸풋...”
어디선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최진하의 두 눈이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으스스하게 돌아갔고 그의 눈빛에 노출당한 한 밀령대원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거참 애들 좀 괴롭히지 마라. 웃긴 걸 참는 게 얼마나 힘든데...”
“크윽”
최진하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아마 지금 최진하의 얼굴을 그의 제자들이 봤다면 모두가 빠짐없이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이런 상태의 최진하에게 잘못 걸리면 그 날로 의료센터에 장기입원환자 수속을 밟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최진하의 분노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권제가 말했다.
“억울해? 억울하면 강해져서 덤벼서 이겨. 쉽네. 그치? 강해지면 돼.”
“후우, 아닙니다.”
뭐라 항변하려던 최진하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권제의 저 말 한마디면 끝난다. 한 때는 저 말이 그렇게 멋있어서 자신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나이 먹고 보니 주책도 그런 주책바가지가 없더라.
권제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각성을 하고 한창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뛸 때가 있었다. 몬스터에게 쫓겨 도망치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해낸 그를 칭송하기 바빴다. 각성자들이 착한 이들만 있었을까. 마치 왕처럼 군림하며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려던 각성자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최진하의 일검을 막아내지 못했다.
최진하는 강했다. 수십 수백 명의 각성자가 그에게 도전했지만 그를 이기지 못했다. 그렇게 기고만장하여 슬슬 머릿속에 ‘천상천하유아독존’ 이라는 글귀가 깊게 새겨질 무렵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를 만나게 된 계기는 별 것 없었다. 길을 가다가 여자를 희롱하는 각성자 하나를 만나서 두들겨 패 줬었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가 여동생이었다는 웃지 못 할 뒷이야기가 있었지만 아무튼 다음날 그 각성자의 형님이라는 인간이 찾아와 최진하에게 말했다.
“너 좀 친다며? 한 판 뜨자.”
마치 뒷골목 잡배 마냥 껄렁껄렁 말하는 그를 처음에는 무시하려 했지만 그가 주먹 한 방에 그가 살던 집을 반파시켜버리자 분노한 최진하는 검을 뽑아들었다.
그 다음은? 뭐 당연하지 않은가. 신나게 얻어 터졌지. 가루가 되도록 얻어 터졌다. 아침에 얻어터지기 시작해서 저녁밥 먹기 전까지 얻어 터졌다.
악바리 근성으로 덤벼들었지만 그 근성도 매타작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하늘에 하나둘 별이 떠올랐을 때 그의 곁에 쭈그리고 앉은 권제가 말했다.
“억울해? 억울하면 강해져서 덤벼서 이겨. 쉽네. 그치? 강해지면 돼.”
아무튼 그 이후로 최진하는 권제의 동생이 되었다. 물론 그 일이 최진하에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그 전까지는 재능과 스킬에 기대 주먹구구식으로 싸우던 그의 무술 기틀을 잡아 준 것이 권제니까.
도망친 적?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그다지 부끄럽지는 않다. 당시 특별히 선발된 100여명 정도가 권제에게 스킬을 사사 받았는데 그는 그 100명 중 가장 최후까지 버텼으니까. 그리고 후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이용기랑 권제가 한 달 설거지를 걸고 내기를 했고 자신은 그 내기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냐?”
“잘 모르겠습니다.”
“이 녀석아. 우리 무적성의 위상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는 말이다.”
“예?”
장난기를 지운 권제의 차가운 목소리가 대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우리 무적성이 언제부터 나이 들었다고 수련을 등한시하고 후배 놈들 크는 꼴 흐뭇하게 쳐다보면서 뒷방 늙은이마냥 뒤로 물러나 있었냐는 말이다. 저 놈도 제 친구한테 지지 않겠다고 저렇게 아등바등 수련시켜 달라고 달라붙는데 말이다. 설마 무적성의 이름에 기대어 여생 배 두들기며 살 생각들인 거냐?! 앙!”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흥! 애새끼들 빠졌어. 아주 하는 꼴들이 마음에 안들어. 잘해야 배때기에 군살이나 안 꼈으면 다행이지.”
권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몸에서부터 뿜어지는 기운이 주위를 잠식한다.
“조만간에 사부들 모아서 한번 정신교육 한다고 전해. 간만에 추억질 좀 하자고...”
“예. 예.”
“너도 포함이다.”
“알겠습니다.”
최진하는 식은땀을 흘리며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권제와 이번 사태의 원흉이라고 할 동철을 원망하며 말이다.
“죽여 버리...아 아니지.”
“예?”
깜빡하고 속마음을 그대로 말할 뻔한 최진하가 말을 정장했다.
그러나 그 말 또한 그리 곱게 나가지는 않았다.
“그 의지가 가상하구나. 강해져라. 나 또한 최선을 다해 도.와.주.마. ”
“예.”
입으로는 도와준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한 글자, 한 글자에 맺힌 살기는 그 뜻이 마냥 좋지 만을 않다는 것을 동철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동철의 추측에 종지부를 찍는 최진하의 한마디가 더해졌다.
“설마 포기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아, 아닙니다.”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최진하의 말에 동철이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최진하가 내뿜는 살기는 진짜다.
동철을 눈빛만으로 난도질하던 최진하는 동철이 그의 눈을 피하자 그제야 분이 풀리는 듯 시선을 돌렸다. 사실 진짜 원흉이라고 치면 이쪽이다. 물론 제황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니 애초에 동철이 설레발만 치지 않았으면 원망들을 일도 없는 게 제황이었다.
그러나 제황을 향해 시선을 돌리던 최진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분명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제황이 맞았다. 그 얄밉게도 곱상하게 생긴 얼굴과 시크한 성격으로 무적성의 여성들 사이에는 제황의 사진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니고 자신의 손녀딸도 제황을 어떻게 알았는지 한 번 소개시켜 달라고 귀찮게 달라붙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제황의 껍질을 뒤집어썼을 뿐 내용물은 전혀 틀렸다.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 묻는다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녀석!’
권제 정도는 아니지만 그 또한 무의 극점에 닿은 초인이었다. 아니 순수한 디바우저로써의 능력만을 따지면 그는 권제와 막상막하라고 자신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자랑하는 스킬 중 하나인 ‘공의 간격’ 때문이었다.
공의 간격은 쉽게 말해 최진하가 설정한 공간 안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었다.
그 안에 들어선 것들은 절대 최진하의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음속보다 빠르던 혹은 정점에 이르는 은신능력을 지니고 있던 상관없다. 그 감각 안에서 그는 무적이었다.
최강의 탐색스킬인 ‘공의간격’ 이 가지는 범위는 지름 20미터... 그리고 지금 제황은 그 공간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느껴지지 않는다. 전혀...
“누구냐 넌”
제황을 마지막으로 본 게 근 두 달 만이기는 하다. 그렇다. 고작 두 달이다. 그런데 두 달 전과 지금의 제황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결정적으로 제황의 눈빛이 마음에 걸린다. 마치 그 눈빛은...
‘마치 형님의 눈빛 같군.’
절대자의 그것과 같았다.